소설리스트

무련전봉-845화 (844/853)

제 845장. 지금 당장 사로잡을까요?

상대편 고수들은 주위를 둘러보고 입성 경지 3단계인 설리까지 자리에 있자, 모두 양준이 도망칠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서둘러 사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수들끼리 서로 날을 세우는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욱말도 설리의 곁에 나른하게 서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의념을 양준의 몸에 고정한 채, 양준이 도망칠 기미만 보이면 나서서 퇴로를 막을 심산이었다.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에 무겁은 칼이 목을 겨누고 있는 것만 같아 불편함을 느꼈다.

“이번 일은 제가 도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여인을 위해 일하지는 않겠지만 계속해 남아 있으면 죽는 길밖에 없을 듯합니다……. 각자 살 길을 찾죠. 위급한 상황이 되면 저 혼자 자리를 뜨겠습니다.”

무겁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전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무겁에 대한 그의 태도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무겁이 자신을 돕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장오 일행처럼 자신을 적대시하지 않아도 만족했다. 그리고 무겁이 이곳을 떠나려고 해도 아마 공간을 찢어야만 설리 같은 고수의 눈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성공적으로 도망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반면 양준 자신은 공간을 찢는 수단을 이미 각성했기에 무겁보다 상황이 나았다.

“대인, 지금 당장 사로잡을까요?”

욱말이 인내심을 잃고 설리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아니, 급하지 않아. 저 녀석과 잘 이야기해 봐야겠어.”

설리는 가볍게 웃고는 양준에게 소리쳤다.

“주제 파악을 한다면 반항하지 말고, 얌전히 나와 함께 사성으로 돌아가자. 널 절대 죽이지 않을게.”

그러고는 다시 음산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으름장을 놓았다.

“감히 반항하면 쓴맛을 보여줄 것이다. 손발을 분질러 버리는 건 가벼운 거고, 아예 네 경지를 폐해 버릴 수도 있어!”

“대인, 저놈과는 대화가 필요 없습니다. 저놈이 진짜 미꾸라지 같거든요. 기회를 찾아 도망치기라도 하면 다시 사로잡기 힘들 텐데…….”

장오가 급히 고함을 질렀다.

“맞습니다, 대인. 지난번에 저희들이 저놈을 몇 개월 동안 쫓았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저놈은 구천성지의 새 성주로 기묘한 구천신기를 쓸 수 있습니다. 저놈을 사로잡아 구천신기의 수련 방법과 전승을 알아내기만 하면 됩니다.”

조관도 괜히 시간을 끌다가 양준을 또 놓칠까 두려워 옆에서 부추겼다. 지난번 구천성지를 공격할 때도, 그들이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해 양준이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두 사람은 더욱 경계했다.

“입 다물어. 대인께서 말씀하시는 데, 네가 뭔데 끼어들어?”

욱말이 싸늘하게 장오를 쏘아보며 호통쳤다.

장오는 경지가 욱말보다 한참 높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대신 마음속에서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구천신기와 전승 때문에 여기까지 온 줄 알아? 그깟 게 뭐라고?”

설리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힐끗 보았다.

장오와 조관은 깜짝 놀랐다.

‘그것들을 위한 게 아니라면, 몇십만 리나 떨어진 마강에서 왜 이곳까지 온 거지?’

양준도 미간을 찌푸린 채,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설리 대인, 전 당신의 미움을 살 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요? 비록 사성에서 사이좋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당신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리 저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십니까?”

이는 양준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충분한 이익이 없다면, 설리 같은 사람이 쉽사리 마강을 떠났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어떤 부분이 설리의 주의를 끌었을까?

“연유를 알고 싶어?”

설리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양준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널 찾은 이상, 조금 이따가 너의 도움도 필요하니까 지금 알려주지!”

설리는 별안간 태도가 부드럽게 변하더니 양준의 의문을 풀어줄 듯한 태도를 보였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이고 기다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설리는 진원을 세차게 뿜어내더니 손을 휘저어 다른 사람들을 모두 차단시켰다.

장내는 그녀와 양준 그리고 욱말 세 사람만 남게 되었다.

양준은 표정이 살짝 바뀐 채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오직 짙은 청색 빛의 장막이 머리 위로 뒤덮여 있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원래 그의 곁에 서 있던 무겁도 보이지 않았다.

‘여인네가… 수단이 대단하군!’

양준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반면 설리의 눈동자에는 흥분의 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살기를 전혀 띠지 않은 빛이 양준에게 쏘아졌다.

양준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피하지 않았다. 빛은 매섭게 양준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치지익-

가벼운 소리가 들리더니, 양준은 팔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느낄 수 있었다. 붉은색 가운데 금빛을 띤 피가 쏟아져 나왔지만, 상처가 난 곳의 피와 살이 끊임없이 꿈틀거리더니 한순간에 다시 상처가 아물었다.

“역시 내 짐작이 옳았군!”

설리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양준의 상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욱말은 그녀의 곁에 서서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아직 연유를 모르는 듯했다.

“내가 마장으로서 왜 너를 이리 주목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하지?”

설리가 물었다.

양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건 우리 둘 다 피 속에 같은 기운이 흐르기 때문이야!”

설리가 몸까지 흔들며 요염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자신의 팔을 획 그었다. 하얀 팔에는 순식간에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흘러나왔다.

“대인……!”

욱말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다가, 곧바로 제자리에 굳어 버렸다.

설리의 팔에서 흘러내린 피에서도 양준의 것보다는 조금 옅은 금빛이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처도 마찬가지로 신비한 힘에 의해 천천히 아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는 속도는 양준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느렸다.

“마신의 금빛 피?”

양준이 놀라서 엉겁결에 소리쳤다.

“역시 알고 있었군!”

설리는 흥분을 금치 못하고, 얼굴마저 일그러졌다.

“당신한테 어떻게 마신의 금빛 피가 흐르는 것입니까?”

양준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설리를 바라보았다.

“그건 나도 똑같이 묻고 싶구나!”

설리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큰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압박감이 덮치면서, 양준은 몸이 저절로 꺾였고, 하마터면 숨도 쉬지 못할 뻔했다.

“마신의 금빛 피? 전설 속 대마신의 피? 네게 어떻게 대마신의 피가 흐르고 있지? 그 금빛은 네가 수련한 양성 진원의 색깔이 아니었어? 우리 같은 마족인 거야?”

욱말의 표정이 끊임없이 변했다. 그는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양준을 바라보더니 그를 대하는 태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저 녀석은 인간이야. 어디서 마신의 금빛 피를 얻었는지는 이제 알아내야지. 마신의 금빛 피와 그가 수련한 양성 진원의 색깔이 비슷해서 처음에는 나도 눈치채지 못했어. 만약 투기장에서의 마지막 혈투를 보지 못했다면 아마 확신하지 못했겠지.”

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대인께서 그때 저 녀석을 갑자기 죽이지 않으려고 했던 건 바로 그 연유 때문이었군요?”

욱말은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 당시 설리는 원래 양준을 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투기장에서 마지막 혈투를 본 다음, 그녀는 갑자기 태도를 바꿔 욱말에게 양준을 사로잡아 오라고 명령했다. 욱말은 줄곧 설리가 갑자기 태도를 바꾼 이유가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대인의 몸속에도 마신의 금빛 피가 흐르고 있으니, 그럼 대마신의 후계자인 겁니까?”

욱말은 들뜬 표정을 하고서 설리를 바라보았는데 온통 숭배하는 눈빛이었다.

대마신은 마족 전체가 우러러보는 신으로, 죽은 지 수천 년이 되어도 그의 위엄과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역대 마존들은 대마신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노력했지만 누구도 이를 이루지 못했다. 마족 내에서는 대마신이 죽고 그의 전승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안타깝게도 누구도 그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지금 설리의 몸에 마신의 금빛 피가 흐르고 있으니, 대마신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때문에 욱말이 이처럼 흥분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설리는 마존이 될 가능성이 컸고,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성취였다.

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대마신의 후계자가 아니야. 오래전에 무의식중에 마신의 금빛 피를 얻게 되었고, 그 피 덕분에 오늘날 성취를 이루게 된 거야! 저 녀석 몸속에 있는 마신의 금빛 피는 나보다 훨씬 더 짙어. 분명 대마신의 비급을 알고 있을 거야. 어쩌면 대마신의 전승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알지도 몰라.”

욱말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설리의 말대로 양준을 통해 대마신의 전승을 찾을 수 있다면, 다시 마족의 전성기를 재현할 수도 있었다. 그러한 생각에 욱말은 피가 들끓으며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제는 나한테 제대로 말해줘야 하지 않겠어? 내 앞에서 꼼수를 부리려고 하지 마. 오늘 널 찾아낸 이상,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할 테니까.”

설리가 미소 띤 얼굴로 양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인께서는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양준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물었다.

“어디에서 마신의 금빛 피를 얻었어?”

“제가 알려주지 않으면요?”

양준이 냉소하며 되물었다.

설리는 잠깐 당황하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쓴맛을 보여줘야지. 널 폐인으로 만들어 놓아도 여전히 물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줄게……. 마신의 금빛 피는 신비하거든. 만약 네가 내 말에 얌전히 따르지 않으면, 그냥 죽여 버리고 온몸의 피를 뽑아낸 다음 제련해서 마신의 금빛 피만 얻을 수도 있어.”

“아마 그럴 재주까지는 없을 걸요!”

양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는 확실하게 사실의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설리는 그의 몸속의 피 때문에, 장오와 조관은 관을 멘 사람 때문에 이곳으로 찾아왔던 것이다. 모두 그와 연관이 있었기에 설리는 장오와 조관 일행을 이용한 것이었다. 다만 설리는 장오 일행이 주목하는 관을 멘 사람이 문제를 푸는 열쇠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방자하긴! 지난번엔 도망쳤지만, 이번에는 절대 도망치지 못할 거야!”

욱말은 표정이 일그러지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동시에 그의 온몸의 진원이 들끓더니 검은 안개로 변해 양준을 덮쳤다. 검은 안개 속에는 각종 험상궂은 맹수의 형상들이 나타났다. 맹수들은 모두 살아 움직이는 듯했고 살기등등했다.

양준의 낯빛이 변했다. 순간 은빛 나뭇잎 모양의 성급 상품 비보가 나타났다. 양준이 그것을 휘두르자 은빛 파도가 겹겹이 앞으로 밀려가면서 정면으로 공격해 오는 검은 안개를 저지했다. 곧이어 은빛 파도는 조수처럼 사방을 휩쓸면서 순식간에 설리가 만든 짙은 청색 빛의 장막을 꿰뚫었다.

이와 동시에 양준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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