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46화 (845/853)

제 846장.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양준은 기본적으로 전투를 할 때 비보의 도움을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적은 마장 설리이므로 그는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성급 상품 비보를 꺼냈다. 이 정도의 비보가 아니면, 설리의 의념 봉쇄를 꿰뚫을 수가 없었다.

은빛이 쏟아지면서 양준의 몸에 고정되었던 의념들이 순식간에 튕겨서 돌아갔다. 설리는 순간 당황해 넋을 잃었고, 양준은 그 사이 백 장 높이의 상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엄청난 비보군!”

설리는 비보 속에 내재된 무시무시한 위력을 감지하고서 눈썹을 찌푸리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욱말은 빛으로 변해 양준을 쫓아갔다. 이윽고 그의 몸속의 진원이 용솟음쳤고, 그는 공격을 펼쳐 양준의 앞길을 봉쇄하고서 잔인하게 웃었다.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양준은 그를 무시한 채 손을 휘저어 앞쪽을 내리치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 틈이 나타났다.

욱말은 심연과도 같은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신식을 펼쳐 탐지하려 했으나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칠흑같이 검은 심연은 마치 무형의 맹수처럼 그의 신식마저도 삼켜 버렸다.

“욱말, 돌아와!”

설리가 급히 불렀다. 그녀는 양준이 무슨 수단을 펼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검은 틈 사이에서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는 기운이 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을 감지하는 동안, 마치 그녀가 위치한 공간마저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설리는 욱말을 부르는 동시에 손을 휘저었다. 그녀의 시커먼 진원이 비단처럼 양준이 있는 곳을 향해 곧바로 날아갔다.

양준의 몸 반쪽은 이미 틈 속에 들어간 상태였지만 설리의 공격을 피하지 못해 어깨가 적중되었고, 뒤이어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횡포한 기운이 폭발하자, 틈 안이 불안정해졌다. 안에서 흐르고 있던 허공 난기류가 맹수처럼 날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양준은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얼른 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사라지기 직전, 두려움과 독기가 뒤섞인 눈빛으로 설리를 노려보았다.

허공의 틈이 순식간에 봉합되면서 세상은 다시 평온해졌다.

설산의 정상에서 장오와 조관 일행은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바랜 채, 멍하니 고개를 쳐들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욱말도 창백한 얼굴로 착지하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나지막하게 물었다.

“대인, 이건 또 무슨 수단입니까?”

“몰라… 이미 백 리 밖까지 갔군!”

설리는 한참을 감지해 보더니 차가운 낯빛을 하고서 말했다.

“뭐라고요?”

욱말은 경악하고 말았다. 바로 눈앞에 있던 양준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백 리 밖으로 도망쳤다니…….

‘이건 또 무슨 술수지? 설령 설리 대인의 경지로도 짧은 시간에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가 없을 텐데. 아니면 하늘에 허공 통로가 있었나?’

그는 하늘을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까 그 녀석과 같이 있던 사람은?”

설리는 한 바퀴 둘러보고서, 무겁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도망쳤습니다.”

장오가 급히 대답했다.

“쓸모없는 것들!”

설리는 이를 악물고 욕을 퍼부었다. 사람들이 떼를 지어 이곳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두 명 모두 도망쳐 버린 것이다. 양준이 도망칠 수 있는 건 이상할 것이 없었다. 양준이 펼친 수단은 너무나 신비해 설리도 약간의 방해만 했을 뿐,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고작 입성 경지 1단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대인, 계속해 쫓아야 합니까?”

욱말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물론 쫓아야지. 하늘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사로잡아야 해.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을 거니까!”

설리가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무지갯빛으로 변해 빠르게 날아갔다. 욱말도 얼른 따라나섰다.

장오와 조관은 서로 마주 보다가, 조관이 물었다.

“이제 우린 어찌해야 합니까?”

“따라가야지, 이제 어쩌겠어?”

장오는 연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자신을 부추겨 설산에 오게 한 신비한 사람이 마장 설리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끝까지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고 마장과 결탁했다는 소식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파현부와 전혼전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고, 인령에서는 더는 발을 붙일 수가 없을 터였다. 이제 그는 설리가 약속을 지켜 이번 일이 끝나면 사방 몇만 리에 달하는 지역을 그와 조관에게 선물해 주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입성 경지와 초범 경지의 고수들이 너도나도 신법을 펼쳐, 설리가 사라진 방향으로 뒤쫓아 갔다.

*

백 리 밖,

공간의 어느 한 곳이 갑자기 일그러지고 주름지더니, 이윽고 틈이 나타나면서 양준이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을 한 채 그 속에서 뛰쳐나왔다.

“마장의 위용이 정말 허명이 아니었군!”

양준은 가볍게 기침을 하고서 악에 받쳐 이를 갈았다. 그는 허공을 찢는 수단으로 쉽게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는 설리의 강한 실력을 저평가한 것이었다. 설리는 허공을 찢는 수단을 알지 못했지만, 순간 아무렇게나 일격을 날렸음에도 양준에게 타격을 주었다. 다행히 공간을 찢는 수단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모든 수단을 펼쳐도 설리 같은 고수 앞에서는 도망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양준은 신식을 방출해 한참 감지해 보더니 얼굴빛이 급변했다.

설리가 신속하게 접근해 오고 있었다. 이미 지금 그가 있는 곳과는 오십 리도 채 안 되는 곳까지 쫓아온 상태였고, 아마 얼마 안 되어 곧 그가 있는 곳에 다다를 듯했다. 양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금 허공을 찢고서 틈 사이로 도망쳤다.

양준이 있는 쪽으로 달려오던 설리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의 무시무시한 신식이 소리 없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고, 동시에 그녀의 표정이 음산해졌다.

잠시 뒤 따라온 욱말이 그녀가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모습을 보고서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대인, 다 쫓아온 겁니까?”

설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녀석의 기운이 사라졌어. 도대체 무슨 수단을 펼친 거지? 마치 허공 통로를 만들어서 순식간에 백 리 밖까지 이동한 것 같은데…….”

“세상에 그런 수단도 있습니까?”

욱말은 적잖게 놀랐다.

“아주 오래전에는 우리가 모르는 많은 수단들이 있었어. 그런 수단들의 현묘함은 우리가 짐작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일단 그 녀석의 위치를 찾아보고… 흥! 이 정도로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날 너무 얕보는군!”

설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욱말은 금세 말문을 닫고서 설리의 옆에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

*

끝없이 펼쳐진 암흑의 텅 빈 공간 속에서 양준은 숨을 헐떡이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설리의 추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공간을 찢는 데는 힘이 많이 소모되기에 이제 한 번 더 펼치고 나면, 기운이 깡그리 소모될 판이었다. 게다가 설령 몇백 리 밖까지 도망친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설리가 쫓아올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틈에서 나가지 않기로 했다. 허공의 난기류 속에 숨어 있으면, 설리의 수단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를 잡을 수가 없을 터였다.

그는 단약을 조금 복용한 뒤, 운기 조식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준의 기운도 점차 회복되었다. 설리에게 공격당해 생긴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았기에, 금빛 피의 효능에 힘입어 이미 거의 다 아문 상태였다.

양준이 심심하다고 느낄 무렵, 귓가에 문득 예사롭지 않은 기척이 들려왔다.

그는 얼굴빛을 가다듬고 조용히 귀담아들었다. 잠시 뒤, 그의 표정이 이상해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의 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척이 뚜렷해졌다. 누군가 죽기 직전에 발버둥 치며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듯했다.

한참 더 지나서, 양준은 드디어 기척이 울리는 곳에 다다랐다. 멀리서 바라보던 그는 놀란 표정으로 소리쳐 불렀다.

“무 문주?”

앞쪽 허공 난기류 속에서 초록빛 기운에 감싸인 무겁이 발버둥 치면서 그 속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발버둥 칠수록 그의 움직임은 점점 더 느려졌다. 허공 난기류는 마치 늪지대처럼 끊임없이 그의 몸을 삼켜 버리려 했다.

무겁은 볼품없는 몰골로 온몸의 기운이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줄곧 그의 몸 밖을 감싸고 있던 초록빛 기운도 많이 옅어진 것이 이미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것만 같았다.

양준은 허공 속에서 무겁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무겁 또한 생사를 오가는 순간, 귓가에서 양준의 목소리가 들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고개를 들어 보니 양준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그를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허공의 난기류가 양준의 발밑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양준은 평지에 서 있는 것처럼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애원했다.

“성주 대인, 살려주십시오!”

양준은 실소하고 말았다. 그가 손을 휘젓자 현묘한 기운이 폭발했다. 무겁을 감돌면서 끊임없이 잡아당기던 허공의 난기류가 갑자기 얌전해지더니 규칙적으로 변했다. 무겁은 얼른 그 속에서 뛰쳐나와 양준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창백한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대인, 목숨을 살려준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때마침 오셨습니다.”

“별말씀을요. 무 문주도 그 수단을 펼쳐 도망쳐 나온 것입니까?”

양준은 순간 많은 문제점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무겁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분명 공간을 찢는 수단을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방금 전 그가 산 정상에서 떠날 때도 무겁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움직이기 전에, 무겁이 먼저 도망친 것이었다.

“맞습니다. 그런데 운이 안 좋아 이곳에서 나가지 못하고 그냥 죽을 뻔했군요.”

무겁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곳은 확실히 위험합니다.”

무겁은 짚이는 데가 있는지 양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인께서는 이미 이곳의 비밀을 각성한 듯하군요.”

“당신보다 좀 더 많이요.”

양준은 망설임없이 깔끔하게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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