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7장. 끝까지 쫓아오다
그 말에 무겁의 표정이 흐려지더니 곧 입을 다물었다. 사실 공간을 찢는 수단은 무겁이 양준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그런데 양준이 청출어람으로 이 수단을 자신보다 훨씬 더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모든 걸 떠나서 일단 방금 전 양준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데에 대해, 무겁은 고맙기 그지없었다.
“설리가 저를 쫓고 있어, 잠시 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당신도 급히 떠나지 마시고 이곳에서 한동안 회복하시죠. 나가면 아마 그 여인에게 잡힐 겁니다.”
“이곳에서 회복한다고요?”
무겁은 놀란 나머지, 저도 몰래 혀를 내두르며 눈을 부릅떴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니요, 문제없습니다. 대인께서 살펴봐 주시면 문제없죠.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무겁도 영리한 사람이기에 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단약과 정석을 꺼내고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공법을 돌렸다.
양준은 더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허공을 묵묵히 관찰했다. 그는 두 사람이 공간을 찢고 들어와서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그동안 개개인이 찢은 공간은 독립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니 누가 공간을 찢든지 다른 한 목적지에 이르기 전에 사용하는 공간은 통해 있는 듯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무겁이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직도 내가 탐지하지 못한 비밀들이 있었군!’
*
설산의 하늘 위에서 설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채 우뚝 서 있었다. 욱말은 그녀의 옆에 서서 주위를 경계했다. 그 뒤를 쫓아온 장오와 조관 그리고 그들의 친인척과 지인들은 모두 아래쪽에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쳐들고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 여인이 이곳에 서서 한참 동안 꿈쩍하지 않는 걸 보니, 그 녀석이 도망친 게 아닙니까?”
조관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장오의 낯빛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신식을 펼쳐 살펴보고는 대답했다.
“모르겠네. 하지만 나도 녀석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군……. 저 여인의 수단이 나보다 나으니 아마도 무슨 단서를 발견한 모양이야.”
“녀석의 성장이 무서울 정도가 아닙니까? 지난번에 뒤쫓을 때만 해도, 우리를 겨우 따돌리더니 이번에는 아예 녀석의 종적을 파악할 수가 없잖습니까. 게다가… 경지가 초범 경지 3단계가 되었더군요.”
장오는 가볍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그러니까 녀석을 남겨 두면 화근이 될 걸세. 이번에 어떡해서든 죽여야 한단 말이네. 나중에 정말 성장해서 우리를 찾아와 복수하게 둘 수는 없지.”
“맞는 말씀입니다……. 저 여인이 빛 좋은 개살구가 아니길 바라야죠.”
두 사람은 목소리를 죽여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에 설리가 들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들이 마장에 대해 감히 이렇게 대놓고 뒷담화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또 한참 동안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설리가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의문이 가득 서려 있었다. 그녀는 도대체 양준이 무슨 수단으로 한순간에 백 리를 이동해 자신의 기운까지 온전히 숨겼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높은 경지와 뛰어난 육감으로 양준의 기운을 조금이나마 감지할 수 있었다. 다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양준이 마치 또 다른 공간에 있는 듯했다. 그 공간은 신비해서 그녀도 감히 탐지할 수 없었고, 신식도닿지 않았다. 이는 마치 먼 곳에서 양준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지만, 어렴풋한 그림자만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차갑게 냉소하며 말했다.
“숨어 있으면 내가 널 어쩌지 못할 줄 알아?”
그러고는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짙고 세찬 마원이 머리카락들에 들러붙자, 머리카락들은 꿈틀거리며 뾰족한 이를 드러낸 독사로 변하더니 앞쪽으로 달려들었다.
설리가 움직이자, 장오와 조관 일행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고개를 들고 바라보다가 마침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설리의 앞쪽 공간은 마치 평온한 호수가 된 것처럼 독사들이 그곳에 달려들자 잔물결이 겹겹이 퍼져 나갔다. 이윽고 독사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도 독사들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설리마저도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이 신통력은 상대를 추적해 공격하는 효력이 있었다. 물론 전제는 양준의 종적을 파악해야만 신통력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평소 아무리 강적을 상대한다 해도, 그녀는 이 신통력을 웬만해서 쓰지 않았다. 매번 신통력을 펼칠 때마다 수많은 머리카락들이 빠지기 때문이었다. 설리는 마장이지만, 우선 여인이었다. 빠진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신통력을 자주 펼치면 나중에 민머리가 될 수도 있었다. 여인으로서 그런 모습을 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이번에 양준을 숨은 곳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설리는 이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사실 그녀도 양준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녀의 의념과 마원이 모두 머리카락에 붙어 있어, 머리카락은 스스로 양준을 찾아내어 공격할 수 있기에 그녀가 따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냉소했다. 그러고는 양준이 숨은 곳에서 나오면 아주 혼쭐을 내주리라 다짐했다.
*
허공 공간에서 무겁은 여전히 회복 중이었다. 그는 양준처럼 방대한 자원을 갖고 있지 않았기에 회복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양준은 신비하고 끝없는 심연 같은 공간을 살피며 무슨 특별한 부분이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
바로 이때, 문득 살이 떨리는 불안감이 덮치며 온몸의 모공이 모두 닫히고 솜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떤 위험이 그에게로 조용히 다가오는 듯했다.
양준의 표정이 급변하더니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감지해 보았다.
슈욱- 슈욱- 슈욱-
공간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멀리 허공에서 백 마리에 달하는 무시무시한 독사들이 꿈틀거리며 그가 있는 쪽으로 덮쳐 오고 있었다. 양준은 그 공격에서 설리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독사마다 무시무시한 위력이 내재돼 있었다.
양준은 저도 모르게 죽음이 닥쳐온 듯한 공포감을 느꼈다. 이내 무겁이 눈을 번쩍 뜨더니 급히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말을 마친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이제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양준은 암담한 낯빛으로 말했다. 설리가 무슨 수로 허공의 틈 속까지 공격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입성 경지 3단계 고수의 수단은 역시 대단했다. 그런데 보아하니 설리 본인은 이곳에 올 수 없는 듯했다. 양준은 그제야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있었다.
그는 손을 흔들어 공간을 찢고는 재빨리 뛰쳐나갔다.
“잠깐만요!”
무겁이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따라나섰다. 하지만 양준은 혼돈의 허공에서 벗어나자마자 욕설을 내뱉었다.
“망할 년!”
그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설리의 의념이 그의 몸에 고정되었고 찰거머리처럼 떼어낼 수가 없었다.
백 리 밖,
설리가 얼굴까지 일그러뜨리며 미친 듯이 웃더니 양준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평생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더만!”
그리고 그녀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멀리 날아갔다. 욱말도 얼른 그녀를 뒤따라갔다.
장오와 조관은 서로 마주 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신법을 펼쳐 쫓아갔다. 그들은 이번 추격전에서 자신들이 마치 인형처럼 선택의 권리가 전혀 없이 오직 양준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인이 또 쫓아온 건 아니겠죠?”
무겁은 양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얼른 물었다.
양준은 고민 어린 표정으로 그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끝장이군요!”
무겁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 문주, 지금 번복해도 늦지 않습니다.”
양준이 미간을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번복이라니요?”
무겁이 놀라서 되물었다.
“저와 확실히 갈라서서 장오와 조관처럼 저 여인을 위해 일하면 됩니다.”
“농담은 그만하시지요. 저는 소인배지만 저 여인을 위해 일하는 건 호랑이에게 가죽을 달라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장오와 조관은 언젠가 저 여인의 버림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지금 저 여인을 찾아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주께서는 멀리도 내다보십니다.”
“몇 년 전에 제가 말했죠. 저는 다른 장점은 없지만 상황 파악을 잘한다고요…….”
“좋습니다. 그럼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마음대로 고르십시오.”
무겁은 놀란 표정으로 얼른 공수했다.
“대인께서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첫 번째는 저와 갈라져서 혼자 도망치는 겁니다. 설리의 목표물은 저입니다. 아마 당신의 생사는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설리에게 잡히기 전까지, 당신은 마음껏 도망칠 수 있습니다.”
무겁은 미간을 찌푸린 채, 바로 선택하지 않고 계속해 물었다.
“그럼 다른 선택지는요?”
“저와 함께하는 겁니다.”
“그럼 전 대인과 함께하겠습니다!”
무겁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대답했다.
양준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에 무겁이 웃으며 대답했다.
“대인은 화난 듯했지만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도망칠 방법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저 혼자 도망쳐도 일말의 희망이 있을지 모르지만, 당신이 잡히는 순간, 저도 죽음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설리는 저를 죽이지 않을 테지만 장오와 조관이 저를 죽여 입막음을 할 테니까요……. 때문에 당신과 함께하는 것이 더 안전하죠. 그리고 대인께서 방금 전에 절 구해 주었는데, 지금 바로 당신 곁을 떠나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양준은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씩 웃어 보였다.
“무 문주는 참 영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자, 그럼 갑시다.”
양준은 말하는 한편 손을 흔들어 공간을 가르고 무겁과 함께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틈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양준은 설리의 공격이 자신의 기운을 쫓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방향을 파악한 다음, 여유 있게 공간에서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