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8장. 어디로 가는 겁니까?
눈앞이 번쩍하는 순간 두 사람은 설산의 봉우리에 도착했고, 양준은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다시 공간을 찢었다. 공간을 찢는 수단을 연이어 세 번 펼치자, 짧은 시간 동안 양준은 무겁을 데리고 천 리 밖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무겁은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매번 허공에서 나올 때마다 주변의 환경이 점점 더 추워지는 것이 끊임없이 설산 안쪽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무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놀라서 소리쳤다.
“지금 대인께서는 허공에서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겁니까?”
“어느 정도요!”
양준은 대답하는 한편, 단약을 복용해 소모된 신식의 힘을 보충했다.
무겁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는 양준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 대해 점점 더 파악할 수가 없었다. 공간을 찢는 수단은 자신이 2~3년 전에 양준에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양준은 신통력의 실체를 꿰뚫었을 뿐만 아니라 공간 속에서 방향도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무겁은 양준이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자신은 이 신통력을 터득하기 위해 십몇 년이란 시간을 허비해서 겨우 문턱을 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신통력을 조금 터득했다지만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방금 전의 한 번까지 더해서, 그는 평생 이 신통력을 세 번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무겁은 마음을 다잡고서 더는 허튼 생각을 하지 않고 나지막하게 물었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될 겁니다.”
양준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서 신식을 방출해 흰 눈이 흩날리는 가운데 정확한 위치를 찾아냈다. 이와 동시에 천 리 밖의 설리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온몸의 마원이 들끓었고, 온몸을 무지갯빛으로 감싸고서 놀랄 만한 속도로 양준과의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그녀는 양준의 몸속에 내재된 마신의 금빛 피를 반드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 그 마신의 금빛 피만 얻을 수 있다면, 설리는 현존하는 마존에게 도전할 자신이 있었다. 운이 좋다면, 양준에게서 대마신의 비급들도 알아낼 수 있었다. 설리가 어떻게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있겠는가? 설리는 이 일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욱말만 거느리고 인령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사성에 돌아가지 않은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다.
양준은 끊임없이 설산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탐지한 설리는 점점 더 기대에 부풀었다. 무슨 영문인지 그녀는 양준이 지금 찾아가는 곳이 대마신과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설산 속에서 양준과 무겁은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설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거리를 점점 더 좁혀 오고 있었다. 무겁은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설리의 기운이 멀리서 느껴졌지만, 그는 왠지 독사가 뒤쫓아오는 것 같아 공포감에 휩싸였다.
이때, 양준이 우뚝 걸음을 멈추고서 신식을 방출해 잠깐 감지해 보더니, 한쪽 방향을 바라보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여기다!”
그러고는 그의 신형이 움찔하더니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무겁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양준의 뒤를 바싹 따랐다.
잠시 뒤, 양준은 눈이 가득 쌓여 거의 보이지 않는 동굴 입구를 파내더니 미소를 짓고는 훌쩍 뛰어 들어갔다. 양준이 이곳에 대해 매우 익숙한 것을 보고, 무겁은 잠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이었으나 따로 묻지 않고, 양준의 뒤를 따라 동굴 속으로 뛰어들었다.
동굴 안은 한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어찌나 추운지 신혼마저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무겁은 동굴에 들어서는 순간, 기운을 돌려 추위를 막아야 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는 한편, 양준을 따라서 앞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걸었다. 이윽고 양준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앞쪽을 바라보던 무겁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휘청거리며 몇 걸음 물러서더니 소리쳤다.
“관을 멘 사람?”
앞쪽은 동굴의 가장 안쪽이었는데, 그곳에는 육신이 모두 부패해 온몸에 고름이 가득한 사람이 동굴 벽에 기대 앉아 꼼짝 않고 있었다. 무겁은 관을 멘 사람을 본 적이 없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사람이 등 뒤에 음산하기 그지없는 핏빛 관을 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관을 멘 사람은 얼음에 봉인된 듯했다. 그는 두꺼운 얼음층에 감싸여 있었는데, 몸속에서는 짙은 죽음의 기운이 흐를 뿐,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장오와 조관이 찾는 사람입니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대인께서는 관을 멘 사람과 정말로 연관이 있었군요.”
무겁의 낯빛이 변했다. 그는 은연중에 자신이 곧 세상 사람들이 그동안 밝혀내려던 비밀을 확인할 수 있을 것만 같아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네, 연관이 있습니다.”
양준은 전혀 숨기지 않고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러고는 더는 무겁을 거들떠보지 않고, 쭈그리고 앉아 관을 멘 사람의 귀에 대고 가볍게 불렀다.
“선배, 선배!”
관을 멘 사람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무겁은 저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린 채 조용히 살펴보았다. 관을 멘 사람은 전해지던 소문대로 이미 죽은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양준이 저리 부르는 것은 그만의 생각이 있을 터였다.
한참을 계속해 부르자, 관을 멘 사람이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의 몸을 감싸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실체화되면서 그를 봉인하고 있던 얼음층이 ‘우지직’ 소리를 내는 것이 당장이라도 얼음을 뚫고 나오려는 것만 같았다.
무겁은 눈도 깜빡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우지직-
얼음층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가면서 불쾌한 죽음의 기운이 점차 짙어졌다. 곧이어 얼음층이 폭발하며 가루가 되더니, 도대체 죽은 지 얼마나 됐는지도 모를 관을 멘 사람이 천천히 눈을 떴다.
무겁은 깜짝 놀라 몇 걸음 물러섰다.
관을 멘 사람이 눈을 뜨자, 방금 전보다 훨씬 강한 기운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입성 경지 2단계의 기운이었다. 그러니까 관을 멘 사람은 살아 있었을 때 적어도 입성 경지 2단계의 고수였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전혀 생기가 없어 공포감을 줄 뿐이었다.
“선배, 제가 좀 들어가려고요!”
양준이 관을 멘 사람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관을 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번 시도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관을 멘 사람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전혀 생기가 없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반짝 빛나면서 기쁨과 흥분을 뚜렷하게 전했다. 곧이어 그는 산과도 같은 우람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짙은 죽음의 기운과 그의 몸의 부패한 기운이 한꺼번에 발산되며 그 속에 내재된 극독이 맑고 투명한 동굴을 한순간에 혼탁하게 만들었다.
무겁 같은 고수도 현기증을 느끼고 얼른 호흡을 멈춰 극독의 흡입을 막았다.
이내 관을 멘 사람이 등 뒤에 메고 있던 핏빛 관에서 붉은빛이 피어오르더니 꼭 닫혀 있던 관이 천천히 열렸다.
양준은 씩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 고맙습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한쪽에서 경계하고 있는 무겁을 잡고서는 핏빛 관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이쪽으로 달려오던 설리는 눈을 반짝이며 소리쳤다.
“마기? 대마신의 기운 같은데?”
그녀는 속도를 더 끌어올렸다.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을 흥분케 하는 기운이 흐르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
마신성.
고마 일족의 통솔자 려용은 성곽의 높은 곳에 조용히 서서 혼돈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그때, 등 뒤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한비가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과연, 잠시 뒤 한비가 옆에 다가오더니, 그녀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우아하고, 다른 한 명은 티 없이 맑았다. 산들바람이 불어오자, 두 사람의 머릿결과 치맛자락이 나부끼는 것이 마치 아름다운 화폭을 보는 것 같았다. 적지 않은 고마 일족 제자들이 아래쪽에서 지나가다가 무심코 이 광경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려용과 한비의 경지를 떠올리자, 그들은 모두 고개를 움츠리고 갈 길을 갔다.
“휴우!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기억하고 있나요?”
한비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려용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는 해, 달, 별이 없어 나도 시간을 파악할 수가 없네. 아마 적어도 5~6년은 지났을 거야.”
“아마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죠.”
“언제쯤 바깥 세계를 볼 수 있을까?”
려용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양준의 성장 속도에 달렸죠.”
“맞아. 모든 건 양준이 언제 성장할 수 있는가에 달렸지. 양준이 이곳을 떠날 때는 겨우 신유 경지 8단계 정도밖에 안 되었어. 그리고 연단술도 영급 정도였고. 성급 중품 단약을 제련하려면 적어도 십몇 년은 걸려야 할 거야.”
“대인은 양준을 그렇게 높게 사는 건가요? 그의 연단술에 대한 조예로 볼 때 연단술 수준을 높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 같지만, 성급 단약을 제련하려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무공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연단술뿐만 아니라 무공의 경지도 함께 향상되어야 한다는 말이죠. 십몇 년만으로 가능할까요?”
한비는 고개를 갸웃하고서 려용을 바라보며 손으로 귀밑머리를 쓸어 넘겼다.
“십몇 년이 부족하면 이십 년, 삼십 년 계속해 기다리지 뭐. 언젠가 우리 고마 일족은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야.”
려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의 예쁜 얼굴에는 기대가 서려 있었다.
고마 일족은 이곳에 봉인된 지 너무 오래되었고, 그녀들도 기다림에 지쳐 있었다. 몇 대를 내려오며 수많은 사람들이 늙어 죽어 가는 동안, 시종일관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희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그녀들의 대에 이르러 일말의 희망을 보게 되었고, 더욱이 양준에게는 멸세마안도 있었다.
려용과 한비는 은연중 대마신이 그녀들을 소현계에서 구해 주기 위해 양준을 보내준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린 기다릴 수 있지만, 그가 성장하는 과정에 보호해 줄 사람이 없어 뜻밖의 변고가 생기지 않을지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한비가 걱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려용은 순간 가슴이 철렁하여 더는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이 문제가 가장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