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1장. 마족들과 무슨 사이입니까?
무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중얼거렸다.
“관노 선배께서 좀 오래 버텨 주셨으면 좋겠네요.”
고마 일족의 지배자들 또한 걱정했지만 조급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들어온 무겁이 가장 안달을 냈다. 지배자들은 관노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설리가 섣불리 핏빛 관을 훼손하지 않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만약 그녀가 대마신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생각이 있다면 말이다.
소현계의 변화에 고마 일족들은 공포감에 휩싸였다. 화묵, 단아, 혈극 세 지배자들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을 위로하는 한편, 려용의 명대로 양준이 성급 단약을 제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말해 주었다.
그 말에 고마 일족의 사기는 금세 들끓었고, 다들 기대에 부풀어 성급 단약을 손꼽아 기다렸다.
*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현계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고, 양준이 돌아온 지 이틀이 되던 날, 흔들리던 소현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려용 일행은 이 변화를 감지하고 표정이 암담해졌다. 이는 관노가 마장을 이겼거나, 아니면 관노가 마장에 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관노는 수천 년 동안 소현계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고마 일족들은 그를 만난 적도 없고, 그가 어떤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다들 그를 존경해 마지않았다. 관노가 십 년마다 한 번씩 세상으로 나가 고마 일족을 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기에 결국 양준을 찾게 되었고, 그들도 드디어 밖으로 나갈 희망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고마 일족이 봉인을 풀고 나가려는 때에, 관노는 강적을 만나게 되었다. 려용 일행은 누구보다 조바심이 났고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나가 관노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양준이 성급 단약을 제련하지 못하면 그들은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조바심을 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바로 이때, 소현계 안에서 천지간의 기운이 다시 한번 어지러워지더니 사방팔방에서 기운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감지해 보더니 기쁨을 금치 못했다. 영기가 모이는 곳은 양준이 연단하고 있는 지하 밀실이었다. 은연중 상큼한 단약 향기가 풍겨왔다.
사람들은 그쪽을 바라보며 미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잠시 뒤, 천지간의 기운이 다시 평온해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뒤, 그쪽에서 그림자가 날아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양준이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주인……!”
려용은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양준은 씩 웃으며 손을 펼쳐 보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련에 성공했습니다.”
밤알 크기의 누런 단약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자욱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뜨거운 시선으로 성급 단약을 바라보았다. 화묵의 눈가에는 눈물이 반짝였다.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십시오.”
양준은 려용에게 성급 단약을 조심스럽게 넘겨주었다. 성급 단약은 한 알뿐인데 고마 일족은 거의 천 명에 달했다. 양준은 성급 단약의 약 기운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건 저와 한비가 처리하면 됩니다.”
려용은 성급 단약을 꼭 쥐고서 한비와 시선을 교환하더니 곧바로 마신성의 가장 높은 곳으로 날아갔다.
“제가 가서 사람들을 부르겠습니다.”
화묵은 단아와 혈극을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떴다.
려용과 한비는 마신성의 가장 높은 곳에서 무언가를 설치하는 듯했다. 이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묘한 기운 파동이 그쪽에서 발산되었다. 동시에 화묵, 단아, 혈극의 부름을 받고 고마 일족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려용과 한비는 마신성의 높은 곳에서 서둘러 무언가를 설치했고, 화묵, 단아, 혈극은 사람들을 한곳으로 모이게 했다. 양준은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한편, 기운을 회복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무겁은 표정이 연신 바뀌더니 뭔가를 말하려고 입술만 움찔거렸다.
“무 문주께서는 묻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양준이 웃으며 말했다.
무겁은 잠깐 망설이다가 공수했다.
“그럼 묻겠습니다……. 대인께서는 이곳의 마족들과 무슨 사이입니까?”
“제가 만약 저들이 제 부하라고 하면 믿을 겁니까?”
양준이 무겁을 곁눈질하며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겁은 무거운 표정으로 눈도 깜빡하지 않고 양준을 지켜보더니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믿습니다!”
그는 여기서 머무는 이틀 동안, 입성 경지 고수들의 양준에 대한 호칭과 태도로 보아 내막을 일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양준이 직접 인정했는데 믿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대인께서는 어떻게 이런 부하들을 둔 것입니까? 그들은 마족입니다.”
“마족인 것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양준이 웃으며 물었다.
“자고로 인간과 마족은 대립각입니다.”
무겁은 놀란 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절 도울 수 있다면, 저한테는 유용한 사람들입니다. 마족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다 같은 생명인데 꼭 그렇게 구분해야 합니까?”
무겁은 얼이 나간 표정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는 양준이 한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혼란스러웠다. 그는 양준처럼 나중에 통현대륙에 온 것이 아니라, 이곳 태생이었다. 통현대륙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다른 종족을 싫어하고 신임하지 않았다. 무겁 또한 마찬가지로 은연중 마족과 어울리면 좋은 결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양준의 지나치게 넓은 도량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대인께서는 혹시라도 이곳에서의 일이 소문나게 되면, 영원히 인령에 발을 붙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대인 때문에 구천성지와 천소종도 연루될 수 있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는 세상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보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제가 하는 일에 간섭할 권리가 없지요. 누구든 트집을 잡으려 한다면 절 찾아오면 됩니다.”
무겁은 입술을 실룩이다가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
“성주 대인께서는 역시 남다릅니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족들은 실력이 높고 입성 경지 고수도 다섯 명이나 있습니다. 게다가 마족들은 원래 자부심이 강해 우리 인간보다 더 오만하죠. 그런데 그들의 경지와 실력으로 어떻게 대인의 부하가 된 거죠?”
지금까지 마족이 인간의 부하가 된 적은 없었다. 마족들의 성격상 이런 모욕을 당할 바엔 아예 죽는 쪽을 택할 터였다. 하지만 려용 일행은 양준을 공경할 뿐만 아니라 그의 휘하에 있기를 달갑게 원하는 듯했다.
“제가 대마신의 후계자거든요!”
양준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무겁의 낯빛이 급변하더니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농담하지 마십시오…….”
양준도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무 문주는 앞으로 어쩔 계획입니까?”
“계획이요? 당분간은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눈앞의 난관에서 벗어난 다음, 다시 생각해야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요 며칠 동안 본 모든 것은 절대 누설하지 않을 것입니다.”
양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 문주의 사람 됨됨이를 알고 있으니, 그리 맹세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겁은 더는 말하지 않고 양준과 함께 마신성의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려용과 한비가 드디어 설치를 마친 듯했다. 려용은 양준이 제련한 성급 단약을 손에 받쳐 들고서 경건한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곧이어 그녀와 한비의 몸속에서 짙은 마원이 용솟음쳐 나왔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발밑에서 빛이 피어오르며 은은하게 현묘한 진법이 나타났다. 빛이 반짝이는 가운데, 려용의 손에 들려 있던 단약이 별안간 폭발하더니 자욱한 안개가 되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며 한곳에 모여 있는 고마 일족을 뒤덮었다.
고마 일족은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공법을 돌려 성급 단약의 약 기운을 몸속에 흡수했다. 하나같이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우지직- 우지직-
피와 살, 뼈가 꿈틀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신기하게도 고마 일족은 한순간에 미묘하고 신비한 변화가 생긴 듯했다. 은연중 그들의 몸에 덧씌워 있던 속박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그들은 드디어 자유의 몸을 회복하게 되었다. 이러한 광경은 족히 한 시진이나 지속되었다. 피어올랐던 안개가 천천히 사라지며 고마 일족에게 깡그리 흡수되었다.
려용과 한비는 눈을 번쩍 뜨더니 미소를 머금고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려 대인,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화묵이 아래쪽에 서서 높은 목소리로 외쳤다.
“물건들은 다 정리했느냐?”
“네!”
“좋아! 오늘 우리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동포들이여, 두 눈으로 이곳을 기억하라. 이곳은 우리가 몇천 년을 생활했던 곳이다. 앞으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려용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흥분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높여 연설했다.
고마 일족은 모두 주위를 둘러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나서부터 그들의 소망은 이곳을 떠나 바깥 세계로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순간이 다가오자, 왠지 슬픈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이곳은 그들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 때문이었다.
“지배자들은 올라오거라.”
려용이 손을 흔들자, 화묵과 단아, 혈극이 려용의 곁으로 날아갔다. 다섯 사람은 서로 시선을 교류하다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공간을 가를 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혼돈의 하늘을 찢었다.
그들이 하늘을 찢는 수단은 양준이 공간을 찢는 수단과 달랐다. 그들은 특정한 수단으로 소현계에서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열 수 있을 뿐이었다. 지난번 양준이 이곳을 떠날 때도, 려용 일행은 이 수단을 사용했었다.
“내가 먼저 나가 볼 테니, 너희들은 사람들을 보호하면서 따라 나오거라.”
려용이 한마디 당부하고는 곧바로 틈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그림자가 사라진 다음에야, 한비 일행은 사람들을 입구로 질서 있게 통과시켜 소현계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