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2장. 경지를 돌파하는 건가요?
설리는 설산의 하늘에서 아래쪽을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욱말의 표정도 일그러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장오와 조관 일행은 아직 두려움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아래쪽, 설산 몇 채는 평지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이는 입성 경지 2단계 고수와 입성 경지 3단계 고수가 격전을 치른 결과였다. 또한, 아직까지도 독 기운과 부패한 기운이 넓은 범위를 뒤덮고 있었다. 누구도 감히 아래쪽으로 내려가 탐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티 없이 맑고 흰 설산은 한순간 독의 늪이 되어 버렸다.
실력이 낮은 사람들은 두 기운을 흡수한 순간 중독되어 죽었고, 그 자리에서 녹아내렸다. 아래쪽에 내려가 탐지하려던 파현부의 제자들이 모두 이렇게 희생되었다.
“망할! 같은 마족인데 감히 나를 공격해, 죽어 마땅하지!”
설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서 씩씩거리며 욕을 퍼부었다.
며칠 전 그녀는 양준의 기운을 쫓아 이곳에 이르렀고, 동굴 속에서 관을 멘 사람의 종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미처 탐지하기도 전에 관을 멘 사람이 별안간 공격해 왔다.
입성 경지 3단계인 설리도 입성 경지 2단계에 달하는 산송장을 대적하는 것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틀 동안의 고전을 치러서야 관을 멘 사람의 육신을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몇천 년 동안 내재돼 있던 독 기운과 부패의 기운이 퍼져 나가자, 설리도 잠시 동안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수단을 펼쳐 아래쪽 독 기운을 밀어내는 동시에 시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관을 멘 사람이 보호하고 있던 핏빛 관이 무척 신경 쓰였다. 관에서는 사람을 흥분케 하는 대마신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핏빛 관이 전설 속 대마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장오와 조관 일행은 한쪽에서 싸움을 지켜보며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들은 사실 관을 멘 사람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목표물이 눈앞에 있다 한들, 마장 앞에서 그들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 그저 조용히 상황을 예의 주시할 뿐이었다. 그들의 마음속 씁쓸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래쪽에 뒤덮여 있던 독 기운과 부패의 기운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다시 내려가서 상황을 탐지할 수 있을 듯했다.
바로 이때, 붉은빛이 불현듯 피어오르더니 사람을 불안케 하는 기운이 퍼져 나왔다.
설리는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바라보았다. 붉은빛 속에서 사람 그림자가 번쩍하더니 하늘에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 얼마 남지 않은 독 기운과 부패의 기운을 밀어내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낯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관을 멘 사람의 육신 조각을 보았던 것이다.
“입성 경지 2단계?”
설리는 놀란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아리따운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의혹이 서려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여인의 몸속에는 짙은 마원이 내재돼 있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마족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어떻게 마족이 나타난 거지?’
상대 또한 그녀의 존재를 감지했는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증오와 도발이 섞인 눈빛이었다.
설리는 소리 없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실력이 상대보다 작은 경지 하나는 더 높았기에 그녀 역시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슈욱- 슈욱- 슈욱-
붉은빛 속에서 사람의 그림자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모두 마족들로 그들은 처음 나타난 여인을 중심으로 각자 설 곳을 찾았다. 자리를 정하고 몸을 가눈 그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들뜬 표정이었다. 주위의 한기를 느낀 그들은 땅바닥의 눈을 손에 들고서 감탄과 놀라움을 표했다. 눈을 처음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미 깊은 밤이라, 차가운 달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휘영청 밝은 달과 보일 듯 말 듯한 별들도 그들의 관심을 일으켰다. 그들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설리 일행은 그만 멍해서 제자리에 굳어져 버렸다. 그들은 미간을 잔뜩 구기고서 이렇게 많은 마족들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궁금해했다.
수천 년 동안 봉인되었던 고마 일족은 다채로운 세계를 구경하며 세상에 다시 태어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몸을 흠칫 떨며 흥분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왈칵 쏟으며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었다.
장내는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 설리 일행은 한순간에 구경꾼이 되었고, 누구도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양준이 무겁과 함께 한비를 뒤따라 소현계에서 나올 때가 되서야, 설리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더니 탐욕을 드러냈다.
*
소현계에서 빠져나온 거의 천 명이나 되는 고마 일족들은 큰 범위에 흩어져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설리를 선두로 해, 욱말, 장오, 조관 일행이 정신을 가다듬고 경계하는 한편,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고마 일족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천지의 기운이 어지러워지더니 소현계에서 빠져나온 고마 일족들의 몸속에서 서로 다른 흡입력이 전해지면서 주변의 천지간 영기를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사방 몇십 리의 천지간 영기가 그들에게 깡그리 흡수되었고, 멀리서부터 천지의 기운이 빠르게 몰려와 끊임없이 그들에게 흡수되었다.
하늘의 날씨가 급변하면서 무시무시한 위압감이 머리를 내리눌렀다. 모든 사람들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고마 일족은 기쁜 표정으로 몸과 마음을 활짝 열어젖히고 천지간 기운을 흡수했다. 무겁은 이상한 표정으로 둘러보다가, 한참 지나서야 놀라서 소리쳤다.
“지금 경지를 돌파하는 건가요?”
이 광경은 경지를 돌파하려는 징조가 분명했다. 또한 한두 사람이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천 명에 달하는 거의 모든 고마 일족들이 돌파할 태세였다. 그 외에 나머지 사람들도 몸속 기운이 순식간에 향상되었다.
양준의 표정도 수시로 변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처음으로 통현대륙에 도착하자마자 경지를 돌파했던 것을 떠올렸다. 몸을 봉인하고 있던 무형의 속박이 깨진 데다가 천지 기운을 흡수하다 보니 경지가 당연히 크게 향상될 수밖에 없었다. 고마 일족도 그때 그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경지를 돌파하려는 고마 일족들 가운데서 한비와 화묵의 기척이 가장 요란했다. 두 지배자는 원래 입성 경지 1단계로 이미 한계치에 도달한 상태였고, 지금 돌파하면 입성 경지 2단계에 이르렀다.
입성 경지 고수의 돌파는 예사롭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곧바로 신법을 펼쳐 일행과 멀리 떨어졌다. 괜히 자신들이 돌파할 때 생긴 천지의 기운 때문에 다른 이들이 영향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양준은 긴장한 모습으로 려용을 바라보았다. 려용도 생기가 넘치고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소현계를 떠나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게 분명했다. 단아와 혈극도 마찬가지였다.
“려 대인……! 사람들을 흩어지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양준이 그녀에게 물었다.
경지를 돌파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한데 모여서 돌파하면서 생기는 천지간 기운은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사람들이 흩어져서 돌파하지 않으면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적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지금, 흩어져 있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주인은 우리 종족의 가장 큰 밑천이 무엇인지 잊었습니까? 한비와 화묵이 이미 자리를 떴습니다. 그들이 돌파하면서 생기는 천지의 기운이 우리 일족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려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말에 양준은 문득 고마 일족의 가장 큰 밑천이 바로 강한 신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같은 등급의 무인 가운데서 고마 일족의 신체는 어느 누구보다도 훨씬 강했다. 게다가 그들이 마문을 펼치면 신체가 더욱 단단해졌다. 천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려면, 마침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려용의 여유 있는 모습에 양준도 긴장을 늦출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의 경지 돌파가 아닙니다. 저 여인이 마장입니까?”
려용은 멀리 설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입성 경지 3단계 고수입니다.”
“실력이 괜찮은 거 같군요. 우리 고마 일족이 너무 뒤처지지는 않았네요.”
려용이 가볍게 웃더니 설리를 훑어보며 평가했다. 이와 동시에 욱말도 미간을 찌푸리고 설리에게 물었다.
“대인, 이젠 어떡해야 합니까? 저 모습들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경지를 돌파하려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설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마족이다. 왜 저 인간 녀석과 함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나서서 공격하면 그들의 증오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들이 경지를 돌파한 다음 다시 물어보자꾸나. 될 수 있다면, 저들을 사성으로 데려가고 싶군. 입성 경지 1단계 네 명에 입성 경지 2단계 한 명이라… 정말 강한 힘이야! 만약 저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면, 우리 사성의 실력이 다른 세 마장보다 훨씬 우위를 차지할 것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욱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더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마족들은 인원수가 적지 않을뿐더러 고수의 수도 많아 정말 굴복시킬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세 마장의 세력은 설리와 비교할 수조차 없을 터였다.
“저들은 우리의 돌파를 막지 않으려는 모양입니다.”
려용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준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저 여인은 아마 당신들이 자신의 적수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 경지를 돌파하게 내버려 두는 것일 겁니다.”
“그럼 아마 깜짝 놀라겠군요.”
려용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양준은 놀란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보았다. 려용의 눈동자에 자신감이 서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생각에 잠겼다. 그는 려용이 출수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경지가 입성 경지 2단계로, 설리보다 경지 하나가 낮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그녀의 말투를 보아서는 설리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했다.
양준은 소리 없이 씨익 미소를 짓고는 몰래 기대하기 시작했다. 그는 두 여인이 싸우는 모습이 어떠할지 무척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