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54화 (853/853)

제 854장. 전설의 종족

려용이 펼친 마신변에 영향을 받았는지 경지 돌파의 중요한 순간에 이른 고마 일족들은 너도나도 나지막하게 울부짖었다. 마원이 끊임없이 발산되며, 사람마다 얼굴과 몸이 서로 다른 마문으로 뒤덮였다.

하늘에서 마지막 천지 기운이 쏟아져 내렸다. 고마 일족들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울부짖더니 어떤 힘도 모으지 않고 오로지 육신으로 파괴성 짙은 천지간의 기운을 받아내었다. 피와 살, 골격에서 연이어 소리가 들려왔다. 무형의 기파가 그들의 발밑에서 확산되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은 순식간에 작은 경지 하나를 돌파했다.

설리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떨렸다. 욱말도 그 순간, 무거운 표정으로 손발을 떨었다. 두 사람은 마문을 보는 순간, 거의 동시에 오래된 전설을 떠올렸다.

“너희들… 혹시 그 일족인 거야?”

설리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는 이미 려용 일행의 정체를 눈치챘으나 감히 그 이름을 입 밖에 내뱉지 못하는 듯했다.

대마신이 세상을 휩쓸던 그 시기에 마족 중에는 대마신을 시중드는 일족이 있었다고 전해졌다. 그들은 대마신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아, 대마신을 제외하고 마족 전체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을 가지게 되었다. 마장이란 호칭도 고마 일족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떤 마족이든지 그들을 만날 때는 반드시 공손하게 대해야 했다. 그들은 대마신의 하인이자, 마족 전체의 영광이기도 했다.

대마신의 시대 때 어떤 마족이든 모두 고마 일족에 합류할 수 있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줄곧 외부인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종족 내에서만 번식했다. 때문에 인원수는 적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마 일족들은 경지를 뛰어넘어 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 손꼽히는 이들은 여러 개의 경지를 뛰어넘은 결투에서도 열세에 처하지 않았다.

그때 당시 고마 일족은 대마신과 함께 세상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웠고, 대마신을 대표해 세상을 다스리기도 했다. 그들은 대마신의 심복인 동시에 무적의 상징이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이 전력으로 싸울 때면, 온몸이 마문에 뒤덮이게 되는데 마문에는 대마신의 힘이 내재돼 있다고 했다. 마문이 나타나는 순간, 세상에 그들을 상대할 적수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대마신이 죽은 뒤, 고마 일족은 자취를 감추었다. 수천 년이 흐르는 가운데 전해지는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설 속 고마 일족은 그저 대마신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이 지어낸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에서 전설 속에만 존재하던 고마 일족이 설리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온몸에 뒤덮인 마문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안목이 아예 없는 건 아니군!”

려용은 조소 어린 눈빛으로 설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그럴 수 없어! 당신들은 진작 멸했잖아. 기록에는 대마신께서 건드리지 말아야 할 힘을 건드린 당신들을 직접 묻어 버렸다고 적혀 있어.”

설리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녀는 마장으로서의 품위를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마장으로서 그녀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마 일족의 기록에 대해서 들은 것이 많았다. 특별한 연유로 인해, 대마신은 죽기 전에 고마 일족을 멸했다고 전해졌다. 때문에 설리는 줄곧 고마 일족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믿지 못하겠으면, 네 몸뚱이로 검증해 보든가!”

려용이 차갑게 코웃음을 치더니 다시 한번 선제 공격을 했다.

설리가 잠깐 정신을 판 사이, 려용이 그녀의 코앞으로 다가가서 손가락으로 찍어 누르자 빛이 반짝였다. 빛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담겨 있었고, 설리는 순간 정신이 몽롱해졌다.

“대인!”

욱말이 깜짝 놀라, 설리의 곁으로 다가가 도우려 했다.

이때, 고마 일족들 쪽에서 줄곧 꿈쩍도 하지 않던 단아와 혈극이 출동했다. 그들은 잔인하게 웃으며 양쪽에서 욱말을 협공했다. 욱말은 순간 갈팡질팡하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비명과 함께 설리가 끈 떨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그녀의 가냘픈 어깨에는 뼈가 다 보일 정도의 피 구멍이 생겼고, 옅은 금빛을 띤 피가 흘러내렸다.

“네까짓 게 대마신의 금빛 피를 가질 자격이 있어?”

금빛을 보는 순간 려용의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이면서 설리를 연신 몰아붙였다. 설리는 볼품없이 공격받는 가운데, 얼른 몸과 마음을 진정시켰다. 방금 전, 깜짝 놀란 탓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려용의 선공에 당한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녀는 고마 일족의 고수들을 대적하면서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전설적인 종족이었다. 그제야 설리는 상대가 비록 경지에서 작은 단계 하나가 차이 나지만, 자신과 결전을 치를 자격과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멍 때리고 뭣들 하는 것이냐? 살려거든 어서 와서 도와. 아니면 우리 모두 전멸될 것이다!”

단아와 혈극에게 협공을 당하고 있던 욱말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욱말의 이 말은 넋을 놓고 있던 장오와 조관 일행에게 외친 것이었다.

그 말에 장오와 조관 일행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표정이 착잡해졌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비보를 펼치며 욱말을 도우러 나섰다. 설리와 려용의 전투는 이 세계 최고 수준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오와 조관의 실력으로도 감히 끼어들 수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욱말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파현부, 전혼전에는 입성 경지 고수가 모두 네 명 있었고, 그중 장오는 입성 경지 2단계였다. 네 명의 실력이 높은 고수가 결투에 참가하면서 단숨에 단아와 혈극의 기세를 제압했다. 5 대 2의 대결에서 단아와 혈극은 마신변을 펼쳐도 열세에 처했다.

“우리도 가서 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무겁은 긴장해서 바라보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필요 없습니다.”

양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규모의 전투에 무겁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다. 자신은 원래 나서서 싸우려 했지만, 잠깐 감지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을 듯했다.

양쪽 멀리서 두 사람이 질주해 오고 있었다. 경지 돌파를 마친 한비와 화묵이었다.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한비의 차가운 기운과 화묵의 강한 기운의 압박감이 먼저 밀려왔다. 겨우 버티고 있던 단아와 혈극은 기쁜 내색을 하며 공격이 더욱 난폭해졌다.

새하얀 설산은 검은 마원에 뒤덮여 어둠 속에 잠겨 버렸다.

슈욱- 슈욱- 슈욱-

파괴성 짙은 기운을 내재한 얼음 기둥이 천지를 뒤덮으며 장오와 조관 일행에게 쏘아졌다. 장오와 조관 일행은 등골이 서늘해져 얼른 피했다. 하지만 설산의 땅 밑 깊은 곳에서 검은색 손이 수없이 뻗어 나오며 그들을 움켜잡으려 했다. 동시에 화묵이 아래쪽에서 귀신처럼 나타나 솟구쳐 올라왔다. 곧이어 그의 손에서 정묘한 원기 파동이 뻗어 나오더니 장오 일행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급습에 장오와 조관 일행은 볼품없이 당했다. 실력이 조금 나은 장오만 무사하고 다른 입성 경지 고수들은 모두 피를 토하며 뒷걸음질 쳤고,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끝났군!”

양준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는 이쪽의 전투를 더는 주목하지 않고, 더 높은 하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서는 려용과 설리의 전투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설리는 방금 전 방심하여 작은 손해를 입었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은 덕분에 열세에 처하지는 않았다. 두 여인은 마침 호적수를 만나 우열을 가릴 수 없게 싸우고 있었다. 이윽고 기괴한 기운과 신혼 파동이 겹겹이 퍼져 나왔다. 정묘한 파동이 지나는 곳마다 천지가 흔들려 마치 세상이 파멸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깜짝 놀랐다. 이는 절정 고수들 간의 전투로 인해 생긴 영향이었다. 그는 더욱더 정신을 집중해 지켜보며 눈앞의 전투에서 유용한 경험을 얻으려 했다. 다만 실망스러운 것은 기세등등하던 설리가 려용을 상대하면서 왠지 손발이 묶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한비와 화묵까지 달려온 것을 감지하고는 더는 싸울 생각이 없는 듯했다.

환한 달빛 아래서, 두 그림자가 순간 갈라섰다.

백 장 거리를 사이에 두고 두 여인은 진중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 려용의 눈동자에는 살기와 증오가 번뜩였고, 설리의 눈빛에는 온통 두려움과 망설임이 어려 있었다.

고마 일족은 마족의 전설이었다. 려용은 입성 경지 2단계밖에 안 되었지만 입성 경지 3단계인 설리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만약 그녀가 입성 경지 3단계에 오를 경우, 아마 지금의 마존도 그녀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설리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는 려용과 계속해 싸워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관을 멘 사람을 경솔하게 죽인 것이 후회되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같은 마족으로서 서로 잘 이야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인간들 앞에서 마족끼리 싸우며 웃음거리가 될 필요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려용의 눈빛을 보는 순간, 설리는 이 원한을 풀 방법이 없고 한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설리는 이를 꼭 깨물고 나지막하게 일갈했다.

“고마 일족… 오늘 잘 봤어……. 마존 대인께서 너희들을 찾아갈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방자할 수 있길 바랄게!”

그러고는 그녀의 몸이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기괴한 피비린내가 그녀의 몸속에서 발산되었다.

려용의 낯빛이 급변했다. 설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급히 저지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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