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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화 (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2화

제1장 나비의 꿈(2)

의과의에 대한 각오를 굳힌 준후가 집으로 돌아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외과의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외과 의사는 뭉뚱그려놓은 하나의 개념일 뿐, 세부적인 과가 나뉘어 있었다.

흉부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정형외과, 소아외과, 소화기 외과 등등.

또한 외과 안에서도 세부적인 갈래가 더 있었다.

흉부외과를 예로 들면 이랬다.

심장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와 폐를 전문으로 보는 의사가 따로 있는 식이었다.

준후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외과의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지만 어떤 외과의가 되고 싶은지는 아직 막막했다.

‘차라리 한의학을 배워볼까?’

준후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았다.

무공을 익힌 준후는 한의학에 기본 소양과 지식이 있었다.

혈의 위치.

근 골격의 위치.

사람의 체형과 체질을 어느 정도 볼 줄 알았다.

하지만 한의학이 괜찮은 의학임에도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수술이 필요한 응급 상황에서는 손 쓸 도리가 없었기에.

서씨세가의 명의였던 백 의원조차 살리지 못한 무인들이 많지 않았던가.

그런데 만약 그들이 현대에서 외과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들 중 최소 4할은 살아남을 것이다.

준후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외과의를 목표로 삼았다.

세부 과목은 앞으로 수련을 받으면서 정하면 되리라.

‘참 나,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었네.’

준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의사가 되려면 의대를 가야 했다.

그러니 지금은 의대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현재 준후의 학교 성적은 하위권.

중학교 시절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으나 고등학교에 입학 후.

형태 패거리에 시달려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다.

남은 고등학교 시절 2년 4개월.

그 안에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국내 최고의 의대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전교 1-5위권 안에는 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꼭 못할 일도 아니었다.

준후에게는 평범한 학생들이 갖지 못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까.

똑. 똑. 똑.

상념에 잠겨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준후야, 들어가도 되니?”

식당 일을 다녀온 어머니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네. 어머니.”

“우리 아들 뭐 하고 있었어?”

“컴퓨터 좀 보고 있었어요. 식당은 잘 다녀오셨어요?”

“그럼. 아들 좋아하는 떡볶이 사 왔는데 먹을래?”

“좋아요.”

준후는 거실로 나가 식탁에 앉았다.

어머니가 비닐봉투에 담긴 떡볶이와 튀김을 그릇에 옮겨 담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준후는 애잔함을 느꼈다.

아버지의 사업이 폭삭 주저앉은 후.

어머니는 하루에 7시간씩 식당일을 했다.

설거지 때문에 어머니의 손은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주방의 무거운 식기를 옮기다 보니 손목과 허리도 좋지 않았다.

무림에서 고생했더니 어머니의 고생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준후였다.

“많이 먹으렴.”

어머니가 그릇을 식탁에 놓고 준후의 맞은편에 앉았다.

문득 퉁퉁 붓고 상처가 난 어머니의 손에 눈이 갔다.

준후는 코끝이 시리고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왜? 오늘은 생각 없니?”

“그런 거 아니에요.”

준후는 애써 웃으며 떡볶이를 한 입 먹었다.

매콤 달달한 것이 입맛에 딱이었다.

떡볶이는 무림에서 맛볼 수 없었던 별미였다.

“근데 준후야.”

“네.”

“너 무슨 고민 있지? 엄마가 차마 말은 못 했는데 계속 얼굴이 어두워 보였거든.”

“…….”

“괜찮으면 엄마한테 말해줄래?”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준후가 괴롭힘을 당하는 사실은 몰랐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기색은 눈치챈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젠 상관없었다.

오늘부로 형태 패거리는 준후의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그게…… 사실은요…….”

준후는 말끝을 늘리며 괜찮은 거짓말을 지어냈다.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좀 우울하더라고요.”

준후의 그럴듯한 거짓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정말? 우리 잘 생긴 준후를 거절한 여자애가 있다고? 눈이 한참 잘못됐나 보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준후는 착하고 잘생겼으니까 나중에 좋은 여자 만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네. 엄마 같은 아름다운 사람이랑 사귈게요.”

준후의 대답에 어머니가 빙긋 웃었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 준후도 기분이 좋아졌다.

약속해요.

앞으로는 행복하실 일만 만들어드릴게요.

준후는 속으로 다짐하며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안방에 좀 누워보실래요?”

“응? 왜?”

“제가 마사지해 드릴게요.”

“괜찮아. 엄마 나이쯤 되면 몸 한두 군데가 아픈 게 정상이야.”

“아픈 게 정상이면 저는 어머니가 비정상이었으면 좋겠네요.”

준후는 어머니를 반 강제로 떠밀어 안방에 눕도록 만들었다.

배를 바닥에 대고 누운 어머니 옆에서 준후는 가볍게 목을 풀었다.

뚜두둑.

뚜두둑.

지금부터 어머니에게 무림표 초특급 마사지(?)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근육과 혈 자리에 능통한 준후였다.

준후는 마사지사, 물리치료사, 접골사보다 사람의 몸을 더 잘 풀 자신이 있었다.

“시작할게요.”

준후는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엄지손가락에 담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척추 중심부를 기준으로 양옆의 부위를 지압했다.

무림에서 ‘추궁과혈’이라 부르는 수법이었다.

쉽게 말하면 기(氣) 마사지였다.

준후는 기를 흘려보내며 어머니의 뭉친 근육을 살살 풀었다.

엄지로 근육을 꾹꾹 누르고.

동심원을 그리면서 문지르기도 하고.

척추를 지압한 후에는 양쪽 어깻죽지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기분이 어떠세요?”

“어휴. 허리랑 어깨가 살살 녹는 느낌인데? 물리치료보다 백번 나은 것 같다.”

“저만 믿으라고 하셨잖아요.”

“이런 건 어디서 배웠니?”

“뉴튜브에 있더라고요.”

준후는 대충 둘러대고 어머니를 일으켰다.

“손바닥을 펼쳐서 저한테 내밀어 보세요.”

“이렇게?”

“네.”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준후는 활짝 펼친 어머니의 손바닥을 주먹으로 툭툭 건드렸다.

무림에서 격타술이라고 불리는 수법이었다.

쉽게 말해서 물리적인 타격으로 근육을 풀어주고 혈관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주는 수법이었다.

거지 집단인 개방의 경우 타구봉을 사용한 격타술로 후계자에게 벌모세수를 시켜주기도 했다.

“이건 허리 마사지할 때랑은 다른 느낌이네? 뭔가 좀 더 시원한 느낌이구나.”

“피가 통해서 그러는 거예요.”

“이런 것도 뉴튜브에 나오니?”

“네. 머리에 힘 빼고 가만히 계세요.”

준후는 어머니의 등 뒤로 돌아갔다.

목 주변을 만져보니 근육이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목 관절의 유연성도 떨어져 있었다.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계속 힘 빼고 계세요.”

준후는 양팔의 상완부로 어머니의 머리를 감싼 후 좌측 90도로 획 돌렸다.

뿌드드득.

우측 90도로도 획 돌렸다.

뿌드드득.

“어머! 깜짝이야. 이건 또 뭐니?”

“목을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스트레칭이에요. 목 한 번 움직여보실래요?”

어머니는 준후의 말대로 목을 움직여보더니 화들짝 몰랐다.

“정말 목이 훨씬 유연해졌는걸?”

“제가 이 정도예요.”

준후가 너스레를 떨었다.

가뿐해진 몸에 신기해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무림에서의 30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무림표 마사지(?)를 끝내고 준후는 어머니를 마주 보고 앉았다.

“저 어머니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 말해보렴.”

“저 의대에 들어가고 싶어요. 전액 장학금 타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의대에 들어갈게요.”

“…….”

“의사가 돼서 어머니 아버지 호강시켜드릴게요. 그러니까 그때까지 아프지 마세요.”

준후는 어머니께 당당하게 포부를 밝혔다.

진심이 깊더라도 말로 전하지 않으면 닿지 않는다.

준후는 그 사실을 무림에서 깨달았다.

“준후야.”

어머니가 별안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대견한 아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준후는 어머니를 한참 동안 품에 안아주었다.

울고 싶었지만 아직 울 수는 없었다.

눈물은 의대에 입학한 다음에.

그때에 제대로 흘리고 싶었다.

* * *

“나 왔어.”

고된 택배 일을 마친 형석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아내와 아들은 벌써 현관에 마중 나와 있었다.

“다녀오셨어요?”

“왔어요? 배고플 텐데 빨리 저녁부터 들어요.”

“그래야지.”

형석은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씻은 뒤 식탁에 앉았다.

저녁상을 준비하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죄스러울 따름이었다.

사업만 망하지 않았더라도 식당에서 고생할 일은 없었을 텐데.

일하느라, 살림살이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식사를 하기 전 형석은 소주부터 한 잔 마셨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긋지긋한 사업 빚도 2-3년 안에는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아내를 푹 쉬게 해주리라.

“준후랑 이야기는 해봤어?”

아내가 차려준 식사를 들며 형석이 물었다.

“큰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닌가 봐요.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대요.”

“휴. 그거 천만다행이군.”

형석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집안이 기울고 형편이 나빠져서 아들놈이 우울증에 걸렸다.

……라고 형석은 내심 자책을 하던 참이었다.

아들내미가 언젠가부터 도통 웃지를 않았으니까.

다행히 형석의 걱정은 기우로 판명되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늘 일은 좀 어땠어요?”

“뭐, 할 만했어.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으니까.”

“새벽 5시에 나가서 밤 9시에 들어오는 게 일찍이에요?”

“나 때문에 당신도 고생하고 준후도 고생하는데.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형석은 쓰게 웃으며 쓴 소주를 마셨다.

모든 고생은 자신의 업보라고 형석은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

“당신 너무 무리하는 거 같은데…… 일을 좀 줄여야 하지 않겠어요?”

“나 아직 쌩쌩해. 백세 시대인데 나 정도면 이팔청춘이지.”

“요즘 이팔청춘은 새치도 있나 보네요.”

아내가 농담을 하며 형석의 흰머리를 뽑았다.

형석은 괜히 민망해서 소주를 한 잔 더 입에 털어 넣었다.

“준후 말인데요.”

“응. 왜? 별일 없다고 하지 않았어?”

“뭐랄까, 하루 만에 엄청 의젓해진 느낌이에요. 갑자기 엄청난 마사지를 해주지를 않나.”

“…….”

“의대에 가겠다고 하지를 않나.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니까요?”

“실연의 상처를 완전히 극복한 모양인데?”

“그럴지도 모르죠. 하여간 너무 대견하고 의젓해서 보기 좋더라고요.”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형석은 든든하게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때마침 아들이 형석에게 다가왔다.

마사지를 해주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형석은 허락했다.

“아구구구구. 이렇게 시원해도 되니?”

대략 이십여 분의 마사지를 받고 나서 형석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상·하차와 배달을 하면서 느꼈던 피로가 싹 녹아내렸던 것이다.

아들의 마사지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마사지는 바로 발 마사지였다.

아들이 발을 지압해 주니 하체가 완전히 풀렸던 것이다.

‘확실히 달라진 것 같긴 한데?’

어느새 마주 앉은 아들을 지켜보며 형석은 감탄했다.

뭐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뭔가 단단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니?”

“저 내일부터 아버지 택배 일 도와드리고 싶어요.”

“택배는 무슨 택배야. 엄마한테 의대 가겠다고 했다면서? 그럼 집에서 열심히 공부해야지.”

“공부는 택배일 도와드리면서도 할 수 있어요.”

아들의 대답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 마음이야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웠지만, 아들이 택배로 고생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은 형석이었다.

그래서 반 위협조로 말했다.

“준후야, 네가 뭘 모르는 모양인데 택배 일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

“아빠 구역은 특히나 구식 빌라가 많아서 계단으로 생수나 쌀 같은 걸 날라야 해. 잘못하면 허리를 다칠 수도 있어.”

이쯤이면 아들도 물러나겠지 싶었지만 아들은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전 잘할 수 있는데요?”

아들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을 형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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