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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화 (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화

제1장 나비의 꿈(3)

아버지와 대화를 마치고 준후는 방으로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야 아버지를 매일 돕고 싶었지만 일주일에 딱 두 번 돕는 것으로 협의를 봤다.

아버지는 준후가 택배 돕는 것을 극도로 부담스러워 했으니까.

현재 시각은 밤 10시.

준후는 책상에 앉아서 교과서를 펼쳤다.

펄럭. 펄럭.

교과서가 술술 넘어갔다.

거침없이 넘어갔다.

무림을 경험했다고 해서 현대의 지식이 증발하지는 않았다.

무림의 준후가 곧 현대의 준후고.

현대의 준후가 곧 무림의 준후였으니까.

형태 패거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 또한 집중력에 큰 보탬이 됐다.

의대에 간다.

국내 최고의 국공립대인 신원대학교 의대에 간다.

수능 만점으로 전액 장학금까지 받아낸다.

의욕에 불타오른 준후는 새벽 1시까지 공부에 매진했다.

수능 과목 중에 가장 취약한 수학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하지만 집중력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새 잠이 밀려왔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쌩쌩 돌아가던 두뇌가 작동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 대신 준후의 머리가 흐물흐물 풀리기 시작했다.

하아아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이 찢어지도록 큰 하품도 나왔다.

‘드디어 비장의 무기를 쓸 때가 왔군.’

준후는 과감하게 책상에서 일어났다.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운기조식은 내공을 빠르게 축적하는 기능 외에 또 다른 기능이 존재했다.

바로 육체 피로 및 정신력 회복이었다.

내공이 전신을 순환하면서 회복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준후는 가부좌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 30분 운기 조식을 했을 뿐이거늘…….

졸음이 싹 달아나고 집중력까지 되살아났다.

다른 사람들은 피곤할 때 커피나 카페인 음료 등에 의존하지만 준후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계획대로군.’

준후의 입가에 피어오르는 미소.

운기조식과 함께라면 시간은 언제나 준후의 편이었다.

운기조식의 회복력.

이것은 준후가 의대에 들어가서도, 나중에 외과의를 할 때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리라.

뚜두두둑.

뚜두두둑.

준후는 가볍게 스트레칭하고 다시 공부에 매진했다.

그동안 진도가 밀렸던 수학을 단숨에 정복하고 영어공부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렇게 오후 4시쯤 찾아온 두 번째 위기.

준후는 역시 운기조식을 통해 몸 상태를 최상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곧바로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소리가 안 나게 조심스레 집을 나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주택가를 벗어나 준후가 찾은 곳은 오전에 이미 들렀던 약수터였다.

야심한 시간이라서 그럴까.

약수터는 개미 한 마리 안 보일 정도로 적막했다.

준후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깊숙한 공터에 들어섰다.

무림에서 익혔던 권법과 보법, 호신술을 가볍게 펼쳐보았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매서운 주먹과 발차기가 바람을 갈랐다.

동작들은 무림에서 준후가 펼치던 동작에 비하면 단순하고 형편없긴 했다.

부실한 하체 탓에 몇몇 동작에서 과부하가 걸렸다.

무공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현대에서는 마인들과 싸울 필요도 없었고 진검을 들 이유도 없었으니까.

사실 지금 수준으로도 형태 패거리를 한 트럭은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일단 적게나마 모아 놓은 내공이 있었고.

육체는 단련이 안 됐지만 육체를 사용하는 방법은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가까이 무공을 수련하고 준후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벌써부터 개학이 기대되는군.’

* * *

무공 수련까지 끝낸 준후는 집으로 돌아와 공부를 했다.

공부가 1순위고 무공 단련은 어디까지나 2순위였다.

똑. 똑. 똑.

“준후야, 아침부터 공부하니?”

어머니가 잠이 덜 땐 얼굴로 물었다.

“네. 의대 가려면 열심히 해야죠.”

준후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는 분명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준후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공부에 전념했다는 진실을.

모처럼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하고 준후는 오후 1시까지 공부만 팠다.

중간 중간 운기조식을 섞었더니 피곤할 틈이 없었다.

수능 만점은 흐릿한 희망 사항이 아니라 어느새 손에 쥘 수 있는 뚜렷한 목표로 바뀌어 있었다.

‘슬슬 가볼까?’

준후는 집을 나와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수요일.

아버지의 택배를 도와드리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택배 일이 가장 많고 바쁜 화·수요일에만 준후가 돕기를 원했다.

아버지의 택배 구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준후는 하염없이 차창 바깥의 풍경을 응시했다.

사실 준후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었다.

사업이 주저앉으면서 집은 좁아졌고 용돈은 대폭 줄어들었다.

먹는 것과 입는 것도 항상 아껴야만 했다.

하지만 무림을 경험한 준후는 철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철이 들었다.

세상에는 제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

세상의 풍파에 휘말리면 누구라도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죄가 없었다.

아버지는 그저 재앙처럼 닥쳐온 경기불황에 휩쓸렸을 뿐이었으니까.

비록 가진 재산은 잃었더라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준후의 생각에 아버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무림을 경험하기 전에 이 깨달음을 얻었으면 좀 더 좋았으련만.

아쉬움이 짙어지는 가운데.

목적지가 가까웠다.

당산역에서 조금 떨어진 빌라촌에 도착하자 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는 탑차가 보였다.

탑차 화물칸에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택배가 한가득이었다.

물, 생수, 헬스 기구, 쌀, 배추 등등.

흔히 똥짐이라고 불리는 것들도 꽤 많이 보였다.

바로 저것들이 그동안 아버지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구나.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두 눈으로 확인한 준후의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꼭 성공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려야겠다는 각오도 다졌다.

그 시작은 오늘 아버지를 멋지게 돕는 것이겠지.

“아버지. 저 왔어요.”

“우리 아들, 빨리 왔네. 좀 더 쉬다가 와도 괜찮은데.”

주소별로 짐을 정리하던 아버지가 준후를 바라봤다.

“빨리 도와드리고 빨리 퇴근하고 싶어서요.”

준후는 너스레를 떨며 말을 이었다.

“뭐부터 나를까요? 여기 있는 생수 두 통?”

“무거울 텐데, 이건 저기 있는 빌라 4층까지 날라야 해.”

“어차피 할 거면 제가 하는 게 낫죠.”

준후가 곧바로 생수를 나르려고 하자 아버지가 준후를 제지했다.

그러더니 빨간 코팅이 된 목장갑을 건넸다.

“물건 막 나르면 손 다친단다. 장갑은 꼭 끼고.”

아버지의 세심한 배려에 준후는 괜히 코끝이 시렸다.

이런 아버지를 그동안 원망했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 갔다 올게요.”

장갑을 착용한 준후는 생수 두 통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빌라로 쌩-하니 달려갔다.

현대의 육체가 제대로 여물지는 않았지만 내공을 적당히 섞으니 별로 힘들지 않았다.

준후는 보법까지 섞어가며 달리고 또 계단을 두세 개씩 올랐다.

빌라 4층이 어느새 코앞에 있었다.

띵동!

“생수 왔습니다!”

준후는 배달을 알리고 순식간에 아버지가 있는 탑차 앞으로 돌아왔다.

준후의 복귀에 놀란 아버지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버…… 벌써 배달했니?”

“네. 물건 주세요. 기왕이면 무거운 걸로.”

“안 돼. 처음부터 무리하다가 허리 다칠라.”

“안 다치게 조심할게요. 저도 제 허리가 소중하거든요.”

준후는 적당히 농담을 섞어가며 아버지를 안심시켰다.

그러자 아버지가 별수 없다는 듯 다음 물건을 건네주었다.

이번 물건은 존 리의 실내 바이크였다.

대충 무게를 짐작해 보니 10-20킬로그램은 족히 나갈 듯했다.

포장 안에 쇳덩어리만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파바바밧.

준후는 상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주소지로 달려나갔다.

세로로 길쭉해서 운반이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애를 먹지는 않았다.

‘하체 운동, 제대로 되겠는데?’

준후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어쩐지 아버지의 택배 일을 하면서 육체 단련도 같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그 날 오후.

준후는 아버지를 도와 열심히 택배를 날랐다.

무거운 물건은 대부분 준후가 도맡아서 날랐는데 그 속도는 무시무시할 지경이었다.

보법을 사용했더니 그 이동 속도가 일반인보다 2배 이상 빨랐다.

짐을 들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또 내공과 완력을 같이 쓰니 지칠 일도 없었다.

준후의 활약 덕분에 탑차 화물칸의 짐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절반 넘게 줄어 있었다.

“준후야, 정말 안 힘드니?”

준후가 한 차례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자 아버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안 힘든 데요.”

“허…… 그럴 리가 없는데. 갑자기 힘든 일을 하면 아프기 마련인데…….”

“잘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아버지 눈에는 제가 힘들어 보이나요?”

준후가 되묻자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버지도 택배 일을 오래 해서 알 것이다.

준후가 힘든 내색을 참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힘들지 않은 것인지를.

“이 시간에 주택가를 끝낸 건 신기록이구나.”

아버지가 화물칸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잠깐 차 안에서 쉬자고 제안을 했다.

아버지가 운전석에 앉고 준후가 보조석에 앉았다.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구입한 빵과 커피로 간식을 먹었다.

“준후야, 그동안 아빠 원망 많이 했지?”

아버지가 불쑥 무거운 이야기를 화제로 꺼냈다.

“집도 좁아지고 용돈도 적어지고. 이것저것 아끼느라 고생이 많았을 거야.”

“절대 아니에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얼마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단다. 네가 요새 부쩍 말수도 적어지고 잘 웃지도 않았으니까.”

준후는 아버지가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형태 패거리의 괴롭힘으로 찾아온 우울증.

그것을 아버지는 본인의 탓으로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동안 아버지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지 준후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여자 친구한테 고백했다가 차여서 그랬던 거예요. 아버지랑은 상관없어요.”

“네 엄마도 그렇게 이야기하던데…… 그래도 아빠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란다.”

아버지는 여전히 준후의 눈을 피한 채 말을 계속했다.

“한참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에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 어머니나 저를 위해 항상 노력하시잖아요. 전 그거면 충분해요.”

준후는 솔직한 마음을 전달했다.

예전이라면 낯 뜨거워서 못했을 말은 지금은 할 수 있었다.

무림에서의 준후는 무림의 아버지에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고.

그것들이 깊은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현대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를 부끄럽게 하는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이제 적당히 뻔뻔해졌거든요.”

“원 녀석도.”

아버지가 갑자기 코를 훌쩍거렸다. 내색은 안 했지만 준후의 말에 퍽 감동한 눈치였다.

“적당히 쉬었으니까 다음 지역으로 가볼까?”

부자 사이의 달달한 분위기가 어색하고 간지러웠기 때문일까.

아버지가 차를 몰아 한 빌딩 앞에 주차했다.

준후는 할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

아버지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앞으로도 많았으니까.

“이 빌딩은 경비실 앞에 물건을 다 내려놓고 오면 된단다. 아빠는 저쪽 지역에서 배달하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오렴.”

“네.”

아버지가 먼저 떠나고 준후는 사각 접이식 핸들카에 물건을 실어 빌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빌딩 1층 로비의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몇몇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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