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7화 (7/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7화

제2장 운수 좋은 날(2)

지애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독서 동아리 활동 중 친한 사이가 되었고 고등학교에 와서는 사이가 멀어졌다.

첫째로 다니는 학교가 달랐다.

준후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지애는 인근에 있는 공연·예술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교가 달라지다 보니 자연스레 보는 일이 줄고.

보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서로를 챙겨주기도 힘들고 그랬다.

그리고 지애와 멀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두 번째에 있었다.

당연하게 형태 패거리의 괴롭힘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든데 지애를 신경 쓸 여력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오랜만이지. 5개월 만인 데다가 네가 내 연락 다 씹었잖아.”

지애가 뾰족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상적인 대화를 하려면 아무래도 오해부터 풀어야 할 듯싶었다.

그래서 준후는 냅다 질렀다.

“나, 사실…… 일진들한테 괴롭힘당하고 있었어.”

준후의 충격적인 고백에 지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진들한테?”

“어. 내가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대. 맞기도 하고 돈도 뺏기고 심부름도 하고 난리도 아니었어.”

“바보야.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떻게 해!”

지애는 자기 일처럼 화를 내주었다.

그 고운 마음씨가 준후는 고맙고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보다 많이 마른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괜찮아. 다 해결했거든.”

준후는 지애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형태 패거리의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는 개학 당일 형태를 패거리를 묵사발 낼 계획이었으니까.

“무슨 방법으로?”

“선생님한테 말씀도 드렸고. 애들도 의외로 금방 정신을 차리더라고.”

준후는 적당히 둘러댔다.

한편 지애는 준후의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사과부터 했다.

설마 준후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픈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두 사람 사이의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하여간 그 새끼들, 나쁜 새끼들이네. 분명 나중에 천벌 받을 거야.”

“받아야지. 당연히.”

준후의 입가에 문득 서슬 퍼런 미소가 걸렸다.

준후는 조만간 형태 패거리를 심판하는 심판자가 될 것이다.

“배고프지 않아? 모처럼 만난 김에 분식이라도 먹을까?”

“좋아.”

준후는 지애와 함께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분식집에서 마주한 지애는 예뻤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음악방송에서 활동 중인 아이돌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았다.

피부는 잡티 없이 깨끗하고 뽀얀 빛깔을 띠었다.

눈동자는 순정 만화 주인공처럼 크고 선명했으며 코는 오뚝하고 입술은 앵두 같았다.

주문한 떡볶이를 먹으면서 대화가 이어졌다.

화제는 당연하게도 준후가 괴롭힘을 당했던 일이었다.

준후가 자주 웃고 괜찮다는 말을 하자 지애도 안심하는 눈치였다.

이제 슬슬 본론을 꺼내도 좋겠지?

“지애야.”

“응.”

“너 나랑 심폐소생술 대회 나갈래?”

준후의 깜짝 제안에 지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폐소생술? 보건 시간에 배운 사람 살리는 처치 말하는 거지? 그건 왜?”

“다음 달에 부모님 생일 있어. 상금 타서 부모님 선물 해드리려고. 겸사겸사 수상경력도 채우고.”

“대회면 잘하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아? 난 그거 기억도 잘 안 나.”

지애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심폐소생술에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고, 굳이 같이해야 할 필요도 못 느끼는 눈치였다.

하지만 준후는 포기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애 이외에 파트너로 삼을 친구는 없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대회 참여는 물거품이 된다.

“금방 배우면 돼. 어렵지 않아.”

“그래도 자신 없는데.”

“너라면 충분해.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지애, 네가 꼭 필요해.”

준후는 힘을 주어 강조했다.

지애를 파트너로 삼기 위해 빈말을 했던 건 아니었다.

실제로 지애는 훌륭한 CPR 파트너였다.

왜냐고?

지애가 배우 지망생이기 때문이다.

CPR 경연 대회는 상황극으로 이루어지는데 배우 지망생인 지애라면 상황극을 실감 나게 재현할 수 있으리라.

“뭐야? 갑자기 왜 박력을 뽐내고 난리인데?”

준후의 태도 변화에 지애가 키득키득 웃었다.

“시간 많이 낼 필요도 없어. 이번 주말에 한 번, 다음 주말에 한 번이면 돼. 부탁할게.”

“으음…… 좋아. 내가 널 오해했던 일도 있었으니까 같이 참여할게. 대신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감사합니다. 대배우 유지애님.”

“야! 쪽팔리게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쩌려고?”

“내 마음속에 넌 언제나 대배우야.”

“됐어. 킹받게 하지 말고 그만해.”

대답과는 달리 준후의 능글맞은 태도가 마냥 싫지만은 않은 지애였다.

그러고 보니 못 본 사이에 준후 성격이 조금 바뀐 건지도?

* * *

모처럼 찾아온 주말.

준후는 오후 공부를 생략하고 집을 나섰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난 지애와 가까운 소방서를 찾았다.

소방서에는 미리 연락을 해두었다.

CPR 대회를 나가는데 간단한 CPR 교육을 받을 수 있냐고.

소방서 측이 흔쾌하게 허락을 해주어서 일이 잘 풀렸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에 연락드렸던 학생들인데요. CPR 교육 때문에 왔습니다.”

준후가 소방서 데스크로 이동해 말했다.

준후의 이야기를 듣고 40대 중반 정도 되는 사내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내 가슴에 달린 이름표에 김영표라고 적혀 있었다.

“잘 왔어요. 근데 둘 다 선남선녀네. 혹시 사귀는 사이?”

영표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평소에도 사교적이고 장난을 자주 치는 스타일인 것 같았다.

“그냥 친구 사이입니다.”

“친구예요.”

“친구가 어딨어~ 이번 기회에 잘되면 되겠네.”

농담하는 영표의 뒤를 쫓아 도착한 곳은 2층의 소강당이었다.

강당 무대에는 벌써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형 애니가 누워 있었다.

곁에는 제세동기도 세팅이 되어 있었다.

“일단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줄게요.”

영표가 상황을 연기하며 흉부압박과 인공호흡, 제세동기 사용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경연 대회의 CPR은 일반적으로 실시하는 CPR과 규칙이 조금 달랐다.

인공호흡도 심사 기준에 포함되었다.

실제로 CPR을 할 때는 인공호흡을 하지 않도록 규정이 변경되었다.

준후 또한 빌딩에서 CPR을 할 당시 인공호흡을 하지 않았고.

다만 경연 대회의 경우 인공호흡이 없으면 CPR의 적합성을 평가할 항목이 그만큼 줄어들기에 인공호흡이 추가되었다.

참고로 준후는 흉부압박.

지애는 인공호흡과 제세동기 사용으로 역할을 미리 나눠둔 상태였다.

“이제 학생들이 해 봐요.”

“제가 먼저 해보겠습니다.”

준후가 자신 있게 먼저 나섰다.

인형 옆에 자리를 잡고 깍지 낀 손을 인형의 가슴 중앙에 올려놓았다.

흉부압박으로 사람을 살려 본 경험이 있었기에 손톱만큼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양팔부터 어깨까지의 형태는 역삼각형.

팔은 곧게 쭉 편다.

신체의 하중을 담아서 인형의 가슴을 힘차게 압박한다.

퍽! 퍽! 퍽! 퍽!

준후는 적절한 리듬감과 적절한 힘을 담아 인형의 가슴을 눌렀다.

1분 정도 흉부압박을 하니 영표가 그만하면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학생, 진짜 잘하네. 바로 119대원 해도 되겠는걸?”

영표는 감탄한 기색을 내비쳤다.

거짓말이 아니라 준후의 흉부압박에서 흠잡을 곳이 없었다.

팔의 각도.

인형에 가하는 압박의 정도.

초당 2회를 소화하는 리듬감과 속력 등등.

준후의 흉부압박을 영상으로 떠서 교과서로 써도 될 수준이었다.

“이렇게 잘하면서 교육은 왜 받으러 왔어요?”

“친구가 익숙하지 않거든요.”

“아, 그래요? 이젠 지애 학생이 해 봐요.”

“네.”

바톤이 지애에게 넘어왔다.

지애는 긴장한 표정으로 인형에게 인공호흡부터 시도했다.

하지만 곧바로 지적이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기도 확보를 잊었네. 아까 가르쳐 줬죠?”

영표는 한 손을 환자의 이마에 대고 다른 손으로 환자의 턱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기도를 확보한 다음에 인공호흡을 해야죠.”

“아, 죄송해요. 제가 깜빡해서…….”

“괜찮아,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어떻게 처음부터 잘하겠어.”

준후는 쑥스러워하는 지애를 달랬다.

초심자일수록 뻔뻔한 태도가 중요하다고 준후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면 피곤해진다는 걸 무림에서 배워왔던 것이다.

준후의 독려에 힘입어 지애는 인공호흡을 깔끔하게 소화했다.

몇 번 버벅이긴 했지만 제세동기도 곧잘 부착하고 사용법도 빠르게 소화했다.

반복을 하면 할수록 지애가 성장하는 게 느껴졌다.

지애를 파트너로 삼은 준후의 결정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학생들 CPR 대회 나간다고 했죠?”

40분의 교육 후 찾아온 쉬는 시간, 영표가 말을 걸었다.

“네.”

“둘 다 잘하긴 하는데 이번 대회는 만만치 않을 거예요.”

“왜죠?”

“이번 대회부터 인형에 센서를 부착한다고 하던데요?”

영표의 우려를 준후는 이미 모집 요강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번 CPR 대회부터 특수 룰이 적용되었는데 바로 센서였다.

인형에 센서를 달아 흉부압박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연기력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처치로 입상은 불가능해요. 제대로 된 실력이 뒷받침되어야지.”

“저는 차라리 잘 된 것 같은데요?”

사실 센서 도입이 반가운 준후였다.

센서가 도입되면 심사위원들이 CPR을 더욱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될 테니까.

흉부압박의 황금비율을 체득한 준후에겐 센서가 오히려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 지애의 상황극 소화 능력까지 더해진다면 어떨까.

금상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뭐, 둘 다 야무지니까 입상을 기대해 볼 만하겠지만.”

“저희가 입상하면 대원님들께도 한 턱 쏘겠습니다.”

“말만으로도 고맙네요. 둘 다 고생해요.”

교육을 마친 영표가 강당을 떠났다.

준후는 지애와 합을 맞춰서 CPR을 해보고 직접 상황극도 짰다.

아직까지 계획은 순조로웠다.

* * *

한 주가 지나고 다시 찾아온 주말.

준후는 지애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서울 주민 CPR 경연 대회]

대회 장소를 안내하는 입간판과 현수막들이 곳곳에 달려 있었다.

안내를 따라 참가자들이자 라이벌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나이대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어른도 있었고 두 사람처럼 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이들도 있었다.

기존 CPR 대회 수상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긴장돼. 청심환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나 봐.”

지애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 줘볼래?”

“갑자기? 너 은근히 검은 속내를 가지고 있다?”

“멀쩡한 사람 변태로 몰지 말고. 빨리 손이나 내.”

지애가 양 손바닥을 내밀었고 준후는 지애의 중지 아래에 있는 부위를 엄지로 둥글게 문질렀다.

내공을 적당히 실어서.

해당 위치에는 심중혈이 존재했다.

긴장, 불안, 초조할 때 심중혈을 자극해 주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상하네. 뭔가 진정이 되는 기분이야.”

반신반의하던 지애가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이 말씀.”

준후는 허락을 받아 지애의 귓불도 자극했다.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운혈에 추궁과혈 수법을 활용했다.

“으…… 간지러워.”

“조금만 더 참아 봐.”

추궁과혈이 끝나고 나서 지애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졌던 것이다.

“신통방통하네? 안 본 사이에 무슨 한의학 공부라도 했어?”

“뭐, 비슷한 느낌이지. 어쨌거나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되니까.”

준후는 피식 웃으며 지애를 격려했다.

시청에 도착하기 전.

준후는 공원에서 지애와 마지막으로 합을 맞춰보았다.

CPR이 그리 복잡한 처치는 아니었기에 지애는 CPR을 완벽하게 익혔다.

배우 지망생다운 연기력도 뽐냈다.

지애를 택한 준후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외과의를 꿈꾸는 준후가 CPR 대회에서 금상을 타고.

그 돈으로 부모님께 멋진 생일 선물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그림이 있을까.

“전에도 말했지만 상금은 반 땡이다. 알지?”

“벌써 상금 이야기를? 준후, 너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야?”

지애의 지적에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대회 입상이 자만인지, 자신인지는 곧 알게 되리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