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8화
제2장 운수 좋은 날(3)
시청 3층에 위치한 강당.
무대에 오른 팀이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었다.
퍽! 퍽! 퍽!
한 명은 힘차게 인형의 가슴을 압박했고 다른 한 명은 제세동기를 연결하는 중이었다.
심사위원석은 무대 아래에 바로 있었다.
심사위원의 숫자는 3명.
그들은 참가자의 심폐소생술을 유심히 관찰하면서도 기록계도 놓치지 않았다.
기록계에 흉부압박의 압력과 횟수의 적합성이 표시되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석 뒤에는 대략 100여 명의 참가자가 좌석에 앉아 있었다.
엄연한 경연 대회이기 때문일까.
강당의 분위기는 엄숙했으며 참가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 한 사람 준후만 빼고.
‘잘하긴 하네.’
준후는 팔짱을 낀 채 다른 참가자들의 심폐소생술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들 충분히 연습을 해 온 것 같았다.
실수는 거의 없었다.
심폐소생술 과정은 물 흐르듯이 흘렀다.
하지만 상황 설정에 대한 디테일, 어색한 연기들이 단점으로 보였다.
즉 모든 조건을 갖춘 완전체는 준후 팀이 될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살려야한다 팀.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때마침 앞선 참가자의 심폐소생술이 끝나고 준후 팀의 차례가 되었다.
짝!
준후는 지애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무대에 섰다.
심사위원들에게 목례를 하고 상황극을 위해 인형과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문득 지애와 눈이 마주쳤는데.
무대에 올라서자 지애의 눈빛이 180도 달라졌다.
진지하면서도 믿음이 가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준후가 미리 혈을 풀어준 덕분도 있으리라.
터벅. 터벅.
지애에게 시작 신호를 보내고 준후는 인형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준후는 인형과 거리를 좁힌 후 무릎을 꿇었다.
인형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고, 두 눈으로 인형의 흉곽을 살피고, 인형의 코 밑에 손가락도 대었다.
“거기 지나가는 학생분, 119에 신고해 주세요.”
준후는 곁을 스쳐 가는 지애를 붙잡았다.
“119요? 저기 여기 주소 모르는데요? 오늘 처음 왔어요.”
지애가 당황한 연기를 하며 되물었다.
배우 지망생은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다.
다른 참가자들처럼 목소리와 행동이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오는 길에 제세동기도 가져다주세요. 심장 충격하는 기구 아시죠? 입구 쪽에 있어요.”
준후는 상황극에 맞는 대사를 했다.
환자가 빌딩에서 쓰러졌다는 상황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장소의 디테일이 빛났다.
하지만 준후의 디테일은 거기서 멈출 줄을 몰랐다.
본격적인 흉부 압박에 앞서서.
준후는 인형의 몸 안쪽으로 손을 넣는 시늉을 했다.
무언가를 걷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쓰러진 환자는 여성이다.
여성 속옷을 착용한 상태로 흉부압박을 하면 후크 때문에 흉부 외상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연기로 녹여낸 것이다.
퍽! 퍽! 퍽! 퍽!
드디어 흉부압박의 막이 올랐다.
1초에 2번.
실전이었다면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담아 준후는 인형의 가슴을 압박했다.
‘이 친구가 여기 있었네.’
흉부 압박을 하는 도중 준후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인형 가슴에 내장된 센서가 느껴졌던 것이다.
센서를 심장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꾸준히 내공을 쌓고 육체를 단련했기 때문일까.
준후는 어렵지 않게 흉부압박을 이어나갔다.
용진에게 CPR을 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편했다.
“하아…… 하아…… 119 신고했고요. 여기 제세동기 가져왔어요.”
지애가 현장으로 복귀했다.
제세동기를 준후의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설명서대로…… 따라 하시면 돼요.”
“잠깐만요. 저 아직 119와 통화 안 끊었거든요?”
지애가 열연을 펼쳤다.
화면이 까맣게 죽은 휴대폰으로 진짜 대원과 통화하는 척했다.
이 역시 다른 참가자들은 보여주지 못했던 디테일이었다.
“접수하시는 분이 이야기하는데 두 명이 구조하면 인공호흡까지 하는 편이 좋대요.”
“…….”
“그리고 제세동기를 사용한다면 여성분의 상의 속옷도 제거하는 편이 좋대요. 그건 제가 할게요.”
지애가 인형의 상의 속옷을 벗기는 시늉을 했다.
곧바로 기도 확보 및 인공호흡도 2회 실시했다.
대회에서는 인공호흡도 평가 항목이었으니까.
이어서 지애가 야무진 손놀림으로 제세동기를 연결했다.
나중에 데뷔해서 의사 역할을 해도 잘할 것 같았다.
-심장 리듬 분석 중…….
제세동기에서 알림이 들렸다.
하지만 인형에게 전극을 연결했기에 제세동이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제세동이 되는 상황을 가정하고 연기를 계속 펼쳐나갔다.
‘슬슬 마침표를 찍어볼까?’
심사위원 쪽을 힐끔 쳐다보고 준후가 웃었다.
* * *
“어린 친구들이 엄청 잘하네요. 연습하고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인데요?”
심사위윈 중 한 명인 선중이 감탄하며 말했다.
살려야한다 팀의 심폐소생술은 아직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남학생은 흉부압박에 특화가 되어 있었다.
틈틈이 센서를 확인하고 있었는데 흉부압박의 압력과 속도가 환상적이었다.
마치 기계가 흉부압박을 하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가 없었다.
사실 의사나 119대원도 저 정도로 흉부압박을 하지는 못했다.
여학생의 경우 연기력이 발군이었다.
목소리와 표정이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대회를 심사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응급 상황을 맞닥뜨린 것 같은 실감이 났다.
디테일한 상황 설정도 눈여겨볼 만했다.
장소를 빌딩으로 구체화하고.
주소를 몰라서 경비에게 주소를 물어보고.
환자를 여성으로 상정해서 처치를 하고 있다는 점 또한 높게 평가할 만했다.
원래 선중은 위기일발 팀을 1위로 점찍어 두었는데.
살려야한다 팀의 처치를 보고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만큼 살려야한다 팀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었다.
이 팀을 능가하는 참가 팀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제가 기록을 살펴봤는데 다른 대회 입상 경력도 없네요.”
선중 곁에 있던 또 다른 심사위원 명희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 친구들이 금상 탈 것 같은데요? 너무 잘해서, 원.”
선중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살려야한다 팀의 푹 빠진 눈치였다.
의견이 모이고 있는 가운데.
선중이 다시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심폐소생술을 펼친 지도 어언 4분째.
슬슬 연기를 끝내도 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살려야한다 팀의 연기는 끝날 줄 몰랐다.
“119가 10분 뒤에야 도착한다는데 어떻게 하죠?”
여학생이 바닥에 내려놓은 휴대폰을 보며 다급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피커 폰 상태로 119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설정까지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올 때까지…… 해야죠.”
“힘드실 텐데 저랑 교대해요. 제가 흉부압박할게요.”
“아닙니다. 제가 끝까지 할게요. 그쪽은 인공호흡과 제세동기에 집중해 주세요.”
남학생이 힘든 내색을 비치며 더듬더듬 대답했다.
놀랍게도 남학생은 그 후로도 혼자서 흉부압박을 10분 동안 더 했다.
그것도 혼자서.
처음과 똑같은 리듬과 압력을 유지한 채로.
그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는, 심사위원을 포함해 강당에 있는 참가자들이 모두 아는 것이었다.
흉부압박의 피로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오죽하면 의료진과 구급대원들도 2분마다 교대를 하겠는가.
그걸 혼자서 감당할 줄이야.
“119 대원분들 도착했어요, 이제 교대해요.”
여학생이 도착한 119대원들과 대화하는 연기를 펼쳤다.
대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처치를 인도하면서 살려야한다 팀의 경연은 마침내 끝이 났다.
“…….”
“…….”
강당을 휘감은 침묵.
침묵을 가장 먼저 깨뜨린 사람은 선중이었다.
짝. 짝. 짝.
선중이 박수를 치자 다른 심사위원들과 참가자들도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퍼포먼스에는 모두를 감동케 하는 힘이 있었다.
* * *
경연 대회가 끝난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
준후는 지애와 함께 시청을 나오는 중이었다.
방금 막 대회 시상식에 참여하고 인터뷰까지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준후의 팀은 당연하게도 금상을 차지했다.
너무 당연해서 준후는 감동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
준후가 웃으며 지애에게 물었다.
“그럼 좋지? 안 좋아? 상금도 타고 명예도 얻고. 덕분에 좋은 경험했네.”
“그래. 이게 다 오빠 덕분인 줄 알아.”
“네. 감사합니다. 오빠.”
지애가 준후의 농담을 받아주었다.
지애와 가까운 식당을 찾으면서 준후는 생각에 잠겼다.
이번 대회 경험을 통해.
무공을 배운 자신의 응급처치가 다른 사람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영역은 비단 심폐소생술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환자 진료.
천자와 드레싱 등의 처치.
마지막으로 외과수술에서도 연결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하루라도 빨리 멋진 외과의가 되고 싶다는 꿈에 부풀었다.
무림에서 검을 들었던 것처럼.
병원에서 메스를 들어보고 싶었다.
상금이 시상식에서 바로 입금되었기에.
준후는 상금의 절반을 바로 지애에게 휴대폰으로 입금해 주었다.
“금상 타고 먹으니까 더 맛있네.”
“나도.”
식당에서 돈가스를 썰며 준후는 지애와 대회 뒷풀이를 나눴다.
부모님의 생일 선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준후가 대회에 참가한 가장 큰 이유.
그것은 다음 달에 있는 부모님 생일에 멋진 선물을 드리기 위함이었으니까.
“내 생각에는 그냥 현금을 드리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아.”
“그러면 너무 정 없지 않을까?”
지애의 의견을 준후가 반박했다.
돈을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막상 선물을 드리려고 해도 마땅한 게 없잖아.”
“…….”
“미리 생각해 둔 건 있고?”
지애의 질문에 준후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생각은 많이 했지만 거둔 성과는 없었다.
준후가 선물을 한다면 부모님은 무조건 좋다고, 또는 고맙다고 할 것 같아서.
“에이, 그냥 현금으로 드리는 게 좋겠다.”
“잘 생각했어. 돈으로 원하시는 걸 사시는 게 좋지.”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동네로 돌아왔다.
심폐소생술을 교육해 주었던 소방서에 피자를 배달해 주고 헤어졌다.
“준후 너, 앞으로도 내 연락 씹으면 죽는다?”
지애가 솜방망이 주먹을 휘두르며 준후를 위협했고 준후는 두려움에 떨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일까.
귀가하는 발걸음이 깃털을 단 것처럼 가벼웠다.
이제 개학할 때까지 열심히 공부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지이이잉.
집이 가까워질 무렵, 휴대폰이 몸을 떨었다.
번호를 확인하니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시지?
“네,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별건 아니고 오는 길에 두통약 좀 사다 주겠니? 집에 두통약이 다 떨어졌네?
어머니가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머리가 어떻게 아프세요?”
-전체적으로 다 아프구나. 심하지는 않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네. 금방 사서 들어갈게요.”
준후는 약국에 들러서 두통약을 구입했다.
집을 향해 뛰듯이 걸어나갔다.
별일이 아닐 거라는 건 알았지만 괜히 걱정이 커졌다.
일단 진맥부터 해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