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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9화 (9/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9화

제2장 운수 좋은 날(4)

“으으으으.”

방 청소를 하던 금희는 한 손을 이마 위에 얹었다.

이마에서 시작된 지진이 관자놀이와 뒤통수까지 퍼지는 데는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찌르르 한 통증에 미간은 좁아지고 주름은 깊어졌다.

금희는 평소에도 이따금 두통을 느끼곤 했다.

체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신경이 예민할 때 등등.

다만 금희의 두통은 살면서 누구나 몇 번씩은 겪었을 그런 종류의 두통이었다.

문제는 오늘 두통이 유독 심하다는 것이었다.

두통을 느낄 별다른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식당일을 하면서 손님과 마찰이 있었던 일도 없었고.

집안 문제로 속 썩는 일도 없었고.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픈 걸까.

두통이 가라앉은 후 금희는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그녀는 두통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프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계속 아픈 것도 아니고 드문드문 아팠다.

아들이 사 온 두통약을 먹고 한숨 자면 아무 문제가 없을 듯했다.

청소를 마친 금희는 부엌으로 향했다.

뽀얀 사골 국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사골 국물에 여러 밑반찬이었다.

택배 일로 고생하는 남편.

최근 들어 부쩍 대견해진 아들.

집 안의 두 남자를 위해 든든한 보양식을 챙겨줄 생각이었다.

가정이 화목해서일까.

금희는 집안 분위기가 항상 요즘만 같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 *

벌컥!

준후는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부터 찾았다.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아프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의외로 외견상은 멀쩡해 보였다.

“준후 왔니?”

“네. 어머니. 두통은 좀 어떠세요?”

“그럭저럭 참을 만하단다. 약 먹고 자면 괜찮을 거야.”

어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의 대답이 워낙 편안했기 때문일까, 준후는 자신이 너무 예민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진맥은 해봐야겠지?

“어머니. 제가 머리 마사지 좀 해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어. 약 주고 편히 쉬렴.”

“마사지를 해드리는 게 더 편해서 그래요.”

준후는 기어이 어머니의 등 뒤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백회혈, 아문혈, 풍지혈, 태양혈을 차례대로 짚고 내공을 흘려보냈다.

어머니의 혈 자리를 한 바퀴 돌아서 돌아온 내공.

그 내공의 파동을 분석하면서 준후는 미간을 좁혔다.

파동이 불안정하고 드셌던 것이었다.

머릿속에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파동이 느껴질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의 순환마저 엉켜 있는 상태였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어머니.”

“응. 왜 아들?”

“일하면서 혹시 머리를 어디에 부딪치셨어요?”

“아니 그런 거 없는데?”

“잘 생각해 보세요. 정말 없으세요?”

“엄마 머리를 엄마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겠니? 부딪친 적도 없고 누구한테 스트레스받은 것도 아니야.”

어머니조차 두통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더 답답한 준후였다.

‘일단 통증부터 줄여 놓자.’

준후는 내공을 사용해 어머니의 혈을 다시 짚었다.

신경이 지나가는 혈을 이완시켜놓으면 진통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아들 마사지는 환상적이네. 약까지 먹으면 하나도 안 아프겠는걸?”

점혈을 당한 어머니가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준후는 웃을 수 없었다.

진통보다 중요한 일은 진통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것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었다.

어머니께 물을 따른 물컵을 건네고 준후는 방으로 돌아갔다.

두통과 관련된 질환들을 열심히 검색해 보았다.

두통의 원인은 각양각생, 가지각생이었지만 준후는 원하는 만큼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이미 진맥을 통해 의심 가는 질환을 추려놓았으니까.

검색 삼매경에 빠진 지 30분.

준후는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두통의 원인을 드디어 발견했다.

안타깝게도 상황은 심각했으며 시간을 다투었다.

하필이면 경연 대회에서 보상을 받은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건 뭐란 말인가.

인생이란 어찌 이렇게 얄궂다는 말인가.

“어머니. 머리는 좀 어떠세요?”

준후가 거실로 나와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들 마사지하고 약 때문에 멀쩡한걸?”

“그러지 마시고 저랑 병원 가요.”

준후의 제안에 어머니는 휘휘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아프지도 않은데 왜 병원에 가야 하냐는 반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점혈을 하지 말 것 그랬나.

잠깐의 후회를 뒤로하고 준후는 어머니를 설득했다.

작은 병을 방치하면 큰 병이 된다.

모처럼 어머니와 둘이서 외출을 하고 싶다 등등.

갖은 이유를 다 붙여서 어머니의 병원행을 유도했고 어머니는 그런 준후의 정성에 백기를 들었다.

“준후, 너 오늘따라 이상하다?”

집을 나오면서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의 몸 상태가 이상하니까, 저도 이상할 수밖에요.

……라고 대답하고 싶은 것을 준후는 참았다.

어머니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질환을 말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해봤자 어머니의 불안함을 가중시키거나.

어머니가 자신의 진단을 믿지 않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10여 분을 걸어 도착한 번화가.

평범한 동네답게 휴대폰 가게, 음식점, PC방, 편의점 등이 도로 양옆으로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아들, 방금 의원 지나쳤는데?”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한철 의원. 진료과목: 내과, 피부과, 정형외과, 소아청소년과.]

평소 어머니가 자주 찾는 의원으로 준후도 저 의원의 단골이었다.

하지만 한철 의원은 어머니의 두통을 치료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준후는 횡단보도 앞에 서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택시를 발견했다.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질문에 뒤늦게 대답했다.

“의원으로는 안 돼요. 병원으로 가야 해요. 그것도 대학병원으로.”

* * *

택시를 타고 도착한 병원은 집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제원대 병원이었다.

제원대 병원은 대한민국의 명실상부 빅4병원 중 한 곳이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현대식 디자인의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들이 위용을 뽐냈다.

“아들, 이건 좀 멀리 온 거 아니니?”

어머니가 건물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두통으로 아들 손에 끌려 온 곳이 무려 대학병원이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리라.

하지만 준후는 알았다.

어머니 두통의 근본을 치료할 수 있는 장소는 이곳뿐이라는 사실을.

“어머니가 여기서 진료를 받는 게 올해 제 소원이에요. 제 소원 들어주실 거죠?”

“휴. 그렇게까지 말하면 어쩔 수 없지. 하여간 아들, 오늘따라 정말 이상해.”

어머니가 체념하듯 한숨을 쉬었다.

준후가 가자는 대로 응급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원무과에서 접수하고 대기하는 일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주말임에도 대학병원 응급실은 환자들로 넘쳐났다.

접수할 때 들은 바에 따르면 진료까지 대략 1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거의 두 시간을 쓴 셈이네. 한시가 급한데.’

준후는 고개를 꾸벅 숙인 채 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두통약과 점혈이 함께 작용한 다음부터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두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통증만 가라앉혀놓은 것이니까.

준후는 졸고 있는 어머니의 머리를 다시 한번 진맥했다.

기맥과 혈맥을 돌고 복귀한 내공의 파동은 아까보다 훨씬 더 불안정한 상태였다.

이제 어머니의 머리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뇌출혈.

준후는 어머니의 진단명을 이미 뇌출혈로 파악한 상태였다.

진맥해 본 결과에 따르면.

머릿속에 출혈이 있어야만 발생하는 내공의 진동과 파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해부학적인 지식이 부족해 어머니의 정확한 출혈 부위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검사를 받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무림을 경험했던 게 천만다행이지.’

준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공은 단순히 외과적인 처치와 시술뿐만 아니라 진료에도 큰 도움이 됐다.

예전의 준후라면 어머니의 두통을 분명 가볍게 지나갔으리라.

‘추가 조치가 필요한데.’

뇌출혈로 졸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준후는 어머니의 혈맥을 짚었다.

출혈이 발생한 혈맥에 내공을 흘려보내고.

그 내공을 구슬 모양으로 실체화시켜서 출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

나봉 점혈이라 불리는 수법으로 서씨세가의 백 의원에게 배워두었다.

하지만 이 역시 임시 변통책에 불과했다.

뇌출혈을 막기 위해선 외과 수술이 반드시 뒤따라줘야 했다.

“이상하게 졸리네. 엄마가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구나.”

나봉 점혈이 끝나자 어머니가 의식을 되찾았다.

출혈 속도가 늦추어지면서 생긴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 정도면 어머니가 진료와 수술을 받을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루하고 길고 초조했던 대기 시간이 이윽고 끝났다.

“이금희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호명을 받은 준후는 어머니와 응급실로 들어갔다.

진료의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응급의학의 강민호]

의사 가운 가슴에는 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은연중에 풍기는 분위기나 기색을 봤을 때 레지던트 저년차는 아닌 것 같았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그게 두통이 심해서 왔습니다.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요.”

어머니가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준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응급실까지 끌려온 것이었으니까.

민호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언제부터 두통이 있었냐.

머리가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아프고 어떤 부위가 가장 아프냐.

머리를 다친 척이 있느냐.

뇌 기저 질환이 있느냐, 가족 중에 뇌 질환을 앓은 사람이 있느냐 등등.

어머니는 매번 고개를 가로저었고.

민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차트를 작성했다.

민호의 얼굴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두통으로 왜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왔어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준후뿐이었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두통도 나아졌다고 하셨으니까 검사는 생략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악화되면 응급실에 다시 오시고요.”

“…….”

“일단 하루 치 두통약만 처방해드릴게요.”

“네. 네. 바쁘실 텐데 시간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준후의 예상대로 어머니의 두통은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집에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몇 시간 내에 뇌출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테고.

어머니의 뇌에 심각한 장애가 오겠지.

그때의 어머니는 걸어서가 아니라 누워서 응급실을 찾게 되겠지.

준후는 눈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꼴은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제 슬슬 내가 나서야겠어.’

준후는 각오를 다지며 모처럼 입을 열었다.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왜요? 학생?”

“저희 어머니 검사받게 해주세요. 뇌 CT나 뇌혈관 조영술로요.”

준후는 당돌하게 검사를 요구했다.

그것만이 어머니가 살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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