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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0화 (10/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0화

제2장 운수 좋은 날(5)

‘이건 또 뭐야?’

민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준후가 감히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3년 차인 민호에게 검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웃기는 짬뽕이었다.

검사가 필요할 정도로 환자가 위중했다면 말이다.

민호가 왜 검사 오더를 안 내렸겠는가.

이학적 검진 결과 환자는 평범한 두통 환자에 불과했다.

머리에 외상이 없고.

뇌 질환 가족력과 기왕력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외견상으로도 멀쩡해 보였고 말이다.

그런데 의학은 쥐뿔도 모르는 고등학생이 CT를 찍어달라고?

민호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떠올랐다.

“학생. 어머니는 검사가 필요 없어요.”

“그래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검사까지 받아서 후련하게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준후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호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준후가 단순히 떼를 쓰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학생답지 않은 패기와 기백이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잠깐 움찔했다.

“학생. 선생님 못 믿어요?”

“그런 게 아닙니다. 병원에 오고 대기하는데 무려 2시간을 소모했어요.”

“…….”

“그냥 집에 돌아가면 빈손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건강하다는 걸 알았으면 소득이 있었던 거 아닌가?”

민호는 좋게좋게 준후를 타일렀다.

민호는 하루에도 수십 명씩 준후의 어머니 같은 환자를 진찰했다.

여기서 말하는 준후의 어머니 같은 환자란 경증 환자를 말했다.

감기.

손가락 찰과상.

두통 및 복통 등등.

대학병원 응급실에는 경증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런 환자들은 동네에서 치료가 가능함에도 굳이 응급실을 찾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료를 받고 나서는 진료비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며.

왜 바가지를 씌우냐며 따져 묻기 일쑤였다.

응급의학 관리료가 추가로 붙는다는 사실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민호 입장에서는 실로 피곤한 일이었다.

“학생. 검사는 증상 없이 함부로 찍어줄 수가 없어. 찍더라도 보험 적용이 안 돼서 비용이 엄청 비싸.”

“상관없습니다. 돈은 충분히 있어요.”

“참 나, 계속 이렇게 답답하게 나올 거야?”

“준후야, 엄마는 괜찮으니까 이제 가자꾸나.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시잖니.”

민호의 으름장을 환자가 거들었다.

이제 준후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검사해 주세요. 검사 비용 많이 나왔다고 선생님께 따지지 않을게요. 결과만 정상이면 수납하고 바로 떠날 거고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준후를 보며 민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내원 전에 소 심줄을 구워 먹고 왔나.

어린 친구의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래. 내가 졌다. 졌어.’

이대로라면 진료가 밀릴 판국이라서 민호는 어쩔 수 없이 뇌 CT 오더를 내렸다.

그렇게 20분이 지난 후.

두통 환자의 뇌 CT를 확인한 민호는 기겁하고 말았다.

전대뇌동맥 부근에 출혈 음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지주막하 출혈이 상당 부분 진행되어 응급 수술이 필요했다.

지주막하 출혈.

이는 뇌 표면 부위의 동맥이 터지면서 발생하는 응급 질환이었다.

만약 CT를 안 찍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응급실을 떠난 환자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돌아왔겠지.

출혈의 발견이 늦어 수술을 하더라도 후유증을 피할 수 없었겠지.

상상만 해도 아찔한 그림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럼 저 학생의 고집이 맞았단 말이야?’

민호는 대기 중인 준후를 힐끔 쳐다보다가 콜폰을 손에 쥐었다.

신경외과에 연락해 응급 SAH(SubarAchnoid Hemorrhage, 지주막하 출혈) 환자의 발생을 알렸다.

신경외과는 당장 내려오겠다고 했다.

다른 검사 오더를 내리고 난 후.

민호는 뇌 CT를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음영이 추가로 보였다.

출혈이 발생한 전대뇌동맥 부근에 하얀 점 같은 것이 존재했다.

그 점이 출혈이 퍼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었다.

이건 또 뭘까?

* * *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은데.’

준후는 고개를 숙인 어머니를 바라보며 초조함을 느꼈다.

점혈을 통한 출혈 지연.

점혈을 통한 통증 감소.

이 두 가지의 효과가 슬슬 떨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어머니는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고개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렇다고 점혈을 한 번 더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점혈의 반복하면 어머니의 몸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준후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어머니의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빨리 검사 결과가 나와서 수술을 받아야 할 텐데.

준후는 초조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뇌 CT 촬영한 이금희 환자분 맞으시죠?”

20대로 보이는 의사와 30대로 보이는 의사가 다급히 어머니 앞에 섰다.

오는 동안 뜀박질을 했는지 호흡이 가빠 보였다.

두 사람의 가운 가슴에는 신경외과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20대로 보이는 의사의 이름은 강백호.

30대로 보이는 의사의 이름은 박재현.

순간 준후는 구세주가 등장한 것을 직감했다.

어머니의 뇌출혈을 꿰뚫어 본 자신의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도 확인했다.

그제야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어머니가 의식을 잃기 전 수술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단 검사 결과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환자분은 지주막하 출혈 진단이 나왔습니다.”

“…….”

“쉽게 말하면 뇌혈관이 터진 상태인데 응급수술이 필요해요.”

“제…… 제가요? 평소에는 멀쩡했는데 왜…….”

어머니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갑자기 수술이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청천벽력인 소식이었을 것이다.

“뇌동맥류(뇌혈관이 꽈리처럼 부풀어 올라 있는 질환)가 있는 걸 모르고 계셨던 것 같은데. 그게 갑자기 터졌다고 보면 됩니다.”

백호가 속사포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데리고 황급하게 수술실로 올라갔다.

이제 대기실에 남은 건 준후와 재현뿐이었다.

재현은 의사가 아니라 의사 역할을 맡은 남자 배우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릴 만큼 미남이었다.

준후가 무림에서 만났던 고수들처럼 특이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이 사람 대체 정체가 뭐지?

“어머니가 수술을 하게 됐는데 의외로 침착하네요.”

재현이 준후에게 말을 걸었다.

“제때 수술을 받고 건강해지실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허…… 여러모로 대단한걸?”

재현이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에 응급의학의에게 들은 노티에 따르면 말이다.

응급의학의는 최초 환자의 두통을 단순 두통으로 치부했다고 한다.

두통약만 처방한 뒤 돌려보낼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눈앞의 학생이 CT를 강력하게 원했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어머니가 뇌출혈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처럼.

결론적으로 학생의 판단은 탁월했다.

덕분에 늦지 않게 집도를 할 수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학생의 눈빛은 아니야.’

재현은 학생의 눈빛을 바라보며 확신을 굳혔다.

이 학생에겐 평범한 학생에게 없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직감이었지만 재현의 직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이거 한 번 읽어볼래요?”

재현이 수술 동의서를 건네며 수술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준후에게 동의서 서명도 받아냈다.

“아버님에게 연락은 했어요?”

“아니요. 아직 못했습니다. 검사 결과를 듣고 전화 드리려고요.”

“아버님께 전화부터 드려요. 일단 학생이 사인한 동의서로 수술하고 나중에 아버님 동의서도 따로 받아야 할 것 같으니까.”

“네. 선생님.”

아버지와의 통화를 마친 후.

재현이 수술실로 앞장섰고 그 뒤를 준후가 따랐다.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수술실.

저 안은 한창 수술 준비로 바쁠 것이다.

어머니는 전신 마취를 받은 채 수술대에 누워 있을 테고.

어머니가 제때 수술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런데도 준후는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인생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는 사실을 무림에서 깨달았으니까.

살 사람이 죽고 죽을 사람이 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으니까.

“학생,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재현이 별안간 준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부드러운 눈길로 준후를 내려 보았다.

준후의 초조함과 근심을 다 알고 있다는 것처럼.

“어머니는 건강하게 돌아오실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날 믿어요.”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준후가 허리를 숙였고 재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수술실로 들어갔다.

재현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준후는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살다 보면 말에 힘이 담긴 사람을 만나기 마련인데 재현이 바로 그런 부류 같았다.

할 일이 끝났으므로

준후는 보호자 대기실 벤치에 앉았다.

주변에는 준후 말고도 수술을 기다리는 수많은 보호자가 있었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초조하고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심리적 고통을 준후는 200퍼센트 공감할 수 있었다.

무림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을 잃어보지 않았던가.

그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준후는 소중한 사람의 고통과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끔찍한 고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역시 난 외과 의사가 되어야 해.

악인을 베는 대신 사람을 살려야 해.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과 상실과 맞서 싸워야 해.

대기하는 동안.

준후는 자신의 가슴 속에 품어둔 외과의를 향한 열망과 동경을 더욱 강화했다.

이제는 외과의가 마치 하늘이 내려 준 천직처럼 느껴졌다.

“준후야!”

발소리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택배 복장을 한 아버지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엄마가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네. 방금 수술실에 들어가셨어요.”

준후는 전화로는 못다 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전했다.

설명을 듣고 난 후 아버지의 얼굴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평소 건강하던 어머니가 별안간 뇌수술을 받는다고 하니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힘들고 괴로운 건 준후도 마찬가지였지만 티는 내지는 않았다.

불행과 고통은 전염되고.

전염된 불행과 고통은 무릇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었다.

준후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아버지를 위로해야 했다.

“수술이 늦지 않아서 다행이래요. 수술하는 선생님도 실력 좋은 분이고요.”

“그럼 다행이다만…… 휴…….”

아버지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일하는 중이셨을 텐데 깜짝 놀라셨죠?”

“물론이지. 네 전화 받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단다. 엄마가 갑자기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니까.”

아버지가 준후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준후, 너도 많이 놀랐지?”

“처음에는 많이 놀랐는데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준후는 지애에게 했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점혈을 했다.

심중혈과 청운혈을 자극하자 아버지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초조한 기색이 사라지고 침착함을 되찾았다.

준후는 모처럼 자신에게도 점혈을 했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준후에게도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기다림.

1초가 10분과도 같은 기다림.

그 기다림 끝에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인 재현이 준후 쪽으로 다가왔다.

재현의 표정만으로도 준후는 이미 수술 결과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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