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11화
제3장 학교에서(1)
토요일 오후.
제원대 병원 신경외과 입원실.
준후는 어머니의 곁에서 사과를 깎고 있었다.
사과는 한 시간 전 병문안을 왔던 친척들이 주고 간 것이었다.
“우리 아들, 사과 한 번 예쁘게도 잘 깎네? 엄마보다 훨씬 잘 깎는다?”
“다 어머니 닮아서죠.”
준후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준후가 깎은 사과가 그릇에 내려앉았다.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극 세사처럼 얇은 사과 껍질은 준후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무림에서의 경험이 고스란히 유산으로 남았으므로.
준후는 손재주가 탁월했다.
손을 쓰는 일이라면 다 자신이 있었다.
근육과 신경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었다.
준후는 과도 대신 메스를 쥘 날을 상상해 보곤 어머니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아삭!
사과를 먹는 어머니의 모습이 편안했다.
실제로 병실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병에 지친 환자. 간병에 지친 보호자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건강하셔서 참 다행이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준후는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무사히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먼저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중환자실에서 이틀 정도 회복한 뒤 사흘 전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
준후의 입장에선 조금 의외였다.
어머니의 회복 기간이 너무 빨랐던 것이다.
-박재현 교수님이 수술하셔서 회복이 빨랐을 거예요. 준후 학생이 어머님을 제때 병원에 모시고 왔던 덕분도 크고.
준후가 주치의에게 물었더니 그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준후가 무림을 경험하고 그 능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준후가 진맥을 통해 어머니의 뇌혈관이 불안정하다는 것 미리 알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준후가 다소 무리하게 CT를 요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머니는 평범한 두통 환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나중에 구급차에 실려 왔을 테고.
수술이 늦어 목숨은 건지더라도 큰 후유증을 앓았을 확률이 컸다.
그러고 보면 점혈도 톡톡히 제 역할을 했다.
점혈을 이용한 진통.
점혈을 이용한 지혈.
이 두 가지 덕분에 어머니는 수술 전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었으니까.
무공과 내공.
무인으로서의 경험과 침착함.
이 두 가지는 지구상에서 준후만 가진 것이었고.
앞으로 준후의 날개가 되어줄 엄청난 무기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못 했네?”
어머니가 준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들이 큰 병원으로 가자고 했던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살아 있구나. 고맙다. 우리 아들.”
“저야말로 어머니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는데요. 저도 감사해요. 어머니.”
준후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어머니는 물론이요.
아버지까지 앞으로 더 행복하게 오래 사셔야 했다.
두 분을 꼭 그렇게 만들겠다고 준후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이 효도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말도 참 예쁘게 하네.”
어머니가 꽃처럼 화사하게 웃었다.
“잠깐 눈 감고 쉬세요.”
준후는 어머니를 침상에 눕힌 후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총명탕과 운기조식으로 쌓은 내공을 조금씩 흘려보냈다.
무림에서 기(氣) 치료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기 치료는 면역력과 회복력 증강에 큰 효과가 있었다.
준후는 어머니께 닷새째 기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 경과는 의사들이 다 경악할 정도였다.
-이상하게 환자분은 회복속도가 다른 환자분보다 몇 배 이상 빠르시네요. 재활도 필요 없을 것 같고…….
-지금 상태라면 다음 주 월요일쯤 퇴원하셔도 좋겠습니다.
오늘 오전 회진을 돌 때 교수가 했던 말이었다.
그밖에도 준후는 어머니의 머리에 틈틈이 추궁과혈도 시도했다.
뇌혈관을 확장하고 뇌 혈류를 정상화하기 위함이었다.
그 덕분일까.
지주막하 출혈이면 보통 한 달 정도 입원을 하는데 어머니는 열흘 정도로 입원 기간이 짧았다.
회복이 빠르면 일상으로의 복귀가 빨라지고.
그만큼 입원비도 아낄 수 있지 않겠는가.
준후는 의사가 되어서도 입원환자에게 간간이 기 치료를 할 계획이었다.
내공이 그리 풍족하지는 않으니.
아마 중환자에게만 펼치게 되겠지만.
“오셨어요?”
상념에 빠졌던 준후가 속삭이듯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택배 일을 마친 아버지가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 아들 귀신이네. 아빠 오는 건 어떻게 알고?”
무공을 익히면 기감이 넓어집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었던 것을 준후는 참았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엄마는 아빠가 보고 있을 테니 가서 바람 좀 쐬고 오렴.”
아버지의 제안에 준후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병원 건물을 나왔다.
병원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CPR로 용진을 살리고 진맥과 점혈을 통해 어머니를 살린 후.
준후는 외과의를 향한 목표를 더욱 굳혔다.
자신이 외과의로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하루라도 빨리 이런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무림에서 살리지 못한 생명들을 제 손으로 살리고 싶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
준후는 신경외과에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 *
다음 주 월요일.
오전 회진 때 어머니의 퇴원 결정이 내려졌다.
어머니의 상태가 워낙 호전되었고 검사 결과에서도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교수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회진이 끝난 후 준후는 어머니를 수술했던 재현에게 말을 걸었다.
재현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수술 스케줄이 있어서 길게는 못할 것 같은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잠깐이면 됩니다.”
준후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저는 선생님처럼 멋진 외과의가 되고 싶습니다. 선생님 같은 외과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후가 당돌하게 물었다.
준후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재현은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신경외과의였다.
재현이 성장하고 인정받게 된 비법을 준후는 알고 싶었다.
그래야 준후도 재현 같은 외과의가 될 테니까.
준후의 질문을 받은 재현은 그저 웃기만 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걸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외과의가 될 수 있다는 증거예요. 보통은 그런 질문을 안 하거든요.”
“…….”
“좋은 외과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마음. 그것 외에 다른 건 필요 없어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져서요.”
준후는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자 재현이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턱을 쓸어내렸다.
한참 동안 준후를 빤히 쳐다보았다.
“학생의 각오와 재능이라면 아마 어렵지 않게 나를 뛰어넘는 외과의가 될 거예요.”
재현이 차분하게 말을 계속했다.
“굳이 보충을 해야 한다면…… 지식이겠죠?”
“지식이요?”
“그래요. 지식.”
재현은 의료 지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은 변하고 의료 기술은 발달하고 있다.
뛰어난 외과의가 되려면 신의료기술과 새로운 수술법 등에 뒤처져선 안 된다고 했다.
“세상일이란 무릇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법이죠.”
“…….”
“열심히 공부해요. 의사는 공부해서 남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니까.”
재현의 대답을 준후는 금방 납득했다.
무림에서 익힌 피지컬(무공과 내공).
거기에 해박한 현대 의학 지식이 더해지면 정말 무서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정말 완전체 외과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야말로 뿌듯하네요. 나중에 멋진 동료가 생길 것 같아서.”
재현이 말을 이었다.
괜찮다면 본인이 의대 시절에 공부했던 의학 서적을 준후에게 보내주고 싶다는 제안도 했다.
준후가 감사히 받겠다고 대답하자 재현이 준후의 주소를 휴대폰에 적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 이 마음을 잊지 말아요. 그리고 항상 스스로에게 질문해요. 좋은 외과의란 어떤 외과의인지.”
재현이 준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자리를 떠났다.
준후는 넋을 잃은 채 재현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마운 사람, 멋있는 사람.
재현은 준후의 롤 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화를 마친 준후는 병실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다가 짐을 챙겨 입원실을 떠났다.
모든 것이 술술 풀리는 듯했지만 아직 가장 큰 이벤트가 남아 있었다.
바로 입원비 정산이었다.
“어머니. 제가 입원비 보탤게요.”
원무과 앞에서 수납대기를 할 때, 준후가 나섰다.
“그게 무슨 소리니? 아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아버지에게는 미리 말씀드렸는데요. 저 얼마 전에 심폐소생술 대회 나가서 상금 받았어요.”
“…….”
“그 돈을 입원비에 보탤게요.”
“엄마, 실손 보험 있어. 나중에 돈도 어느 정도 돌려받을 수 있단다.”
“그래도 받아주세요. 제 생일 선물이니까요.”
준후는 어머니의 생일을 입에 올렸다.
입원비를 보태는 게 가장 확실한 생일 선물이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그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아들이 번 돈은 아들이 써야지. 엄마는 그렇게 못하겠다.”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준후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편지로 했을 감사의 말을 어머니에게 직접 전달하며 어머니가 입원비를 꼭 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준후야.”
어머니가 별안간 흐느껴 울었다.
“미안하고 고맙다.”
어머니의 반응에 준후는 코끝이 쨍하게 울렸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감동과 슬픔은 전염되는 것이었다.
준후는 말없이 어머니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여주었다.
앞으로 어머니가 운다면 그건 반드시 기쁨의 눈물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106번 고객님.”
원무과 직원의 호출에 모자가 나란히 수납대로 이동했다.
입원비는 500만 원.
입원 기간이 워낙 짧아서 보통 지주막하 출혈 환자보다 입원비가 2배 이상 적었다.
준후의 진맥으로 인한 빠른 수술.
재현의 완벽한 수술.
준후의 기 치료와 추궁과혈.
이 세 가지가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입원비를 수납하고 나선 바깥은 햇볕이 쨍쨍했다.
하늘은 푸르고 맑았으며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일상으로 돌아가기에 좋은 날씨였다.
* * *
퇴원을 한 후 어머니의 상태는 더욱 호전되었다.
어머니가 집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며 준후에게 기 치료와 추궁과혈까지 받은 덕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준후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아침·저녁 두 번씩 총명탕을 챙겨 먹었다.
하루 종일 공부에 매진했으며 때때로 약수터를 찾아 무공수련을 했다.
물론 일주일에 두 번 아버지의 택배 일을 돕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사이 준후의 제안으로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받았다.
아버지는 본인의 건강을 자신하며 검진을 거절했으나 결국 준후의 제안을 이겨내지 못했다.
어머니도 평소 건강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으니까 말이다.
아버지의 건강검진 결과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었다.
간 수치가 평범한 사람보다 높다는 것을 제외하면.
건강검진 이후 아버지는 술을 줄였다. 평소 한 병 반 정도 마시던 것을 한 병으로 줄였다.
어머니의 입원과 수술로 집안이 잠시 뒤숭숭했지만 혼란은 금방 수습되어갔다.
준후가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의대 수석을 위해 공부에 매진하던 어느 날.
준후는 한 통의 메신저를 받았다.
[개학 얼마 안 남은 거 알지? 100만 원 꼭 챙겨서 등교해라. 비 오는 날에 먼지 나게 맞고 싶지 않으면. ㅋㅋㅋㅋㅋ]
형태의 문자에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을 사람이 정말 나일까?
네가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