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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4화 (14/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4화

제3장 학교에서(4)

“와, X발 어처구니가 없네.”

형태는 혀를 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비롯한 일진들이 준후 한 녀석에게 개 박살 났다는 사실을.

“아아악!”

답답한 마음에 손을 이마에 얹었다가 형태는 비명을 질렀다.

준후에게 딱 밤을 맞아 부풀어 오른 이마는 예민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시큰한 통증이 밀려왔다.

“내가 예감이 안 좋다고 했잖아.”

형태의 오른팔 승호가 형태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다른 패거리들은 아직 옥상에 뻗어 있었는데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 신음만 흘릴 따름이었다.

“준후 새끼 졸라 세더라. 눈빛도 독사 같았고. 우리 완전 X됐어.”

승호가 형태 옆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승호의 말에 형태는 딱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형태도 느끼고 있었다.

계획이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꼬여버렸음을.

본랜 준후에게 100만 원을 삥 뜯어 유흥비로 쓸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준후에게 50만 원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어디 그뿐이랴.

앞으로 준후에게 잡혀 살 생각을 하면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선생님한테 말씀드려볼까?”

“미친 새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준후한테 우리 여섯 명이 얻어맞았다고 하면 담탱이가 잘도 믿어주겠다.”

“근데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어?”

승호가 빈정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늘처럼 또 다구리칠 거야? 한 번 더 다구리쳤다가 실패하면 준후 새끼 미쳐 날뛸걸?”

“다음엔 선배들까지 불러서 조지는 건 어때?”

형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준후는 강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싸움 실력을 탑재해서 돌아왔다.

하지만 제아무리 강해도 쪽 수에 장사가 있을까 싶었다.

형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준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선배들은 우리 일에 안 끼어들걸?”

“그러니까 말을 잘해야지.”

“난 안 할래.”

“X새끼가 이제 와서 쏙 빠지겠다고?”

형태가 성난 목소리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다른 건 몰라도 준후랑 싸우는 건 안 해. 난 솔직히 준후가 무섭다.”

승호가 자신 없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두 차례의 기습.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준후는 단 한 방도 허용하지 않은 채, 패거리들을 제압했다.

선배들이 가세한다고 무언가가 바뀔까?

승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승호가 보기에 준후는 인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졸업할 때까지 준후 새끼한테 바짝 쫄아서 살 거냐?”

“다른 방법이 없잖아. 그렇다고 매일 처맞을 수도 없고.”

“으이구. 한심한 새끼.”

형태는 승호를 비웃으며 난간에 등을 기댔다.

사실 답답한 건 형태고 마찬가지였다.

미치도록 복수하고 싶은데 마땅히 복수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꼭 무력으로 복수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기가 막힌 묘수가 어디에 없을까.

사악한 머리로 궁리를 하던 형태가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야, X발 아주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뭔데?”

“손 안 대고 코 푸는 방법.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형태는 승호에게 작전을 설명하고 나서 씨익 웃었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이 방법이라면 준후를 확실하게 보낼 수 있었다.

서준후, 조금만 기다려라.

* * *

“준후야!”

학교 건물을 나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영호가 준후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직 집에 안 갔어?”

“너 걱정이 돼서. 근데…….”

영호가 준후를 위아래로 훑더니 입을 떡 벌렸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영호가 왜 놀랐는지 준후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형태 패거리와 한 판 붙었을 텐데 외양이 너무 멀쩡해서 당황스러웠겠지.

“내가 말했잖아. 형태 패거리들 혼내주겠다고.”

“와, 진짜 혼자서 걔네들 다 눕혔어?”

“보시다시피.”

준후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무림을 경험하고.

운기조식으로 내공을 축적하고.

야산에서 무공 수련을 하면서 준후는 이미 인류 최강의 병기로 거듭났다.

적어도 싸움에 관해서라면.

준후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마 앞으로는 수능 준비와 형태 패거리를 놀려주는 재미로 학교를 다니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 방학 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한테 비법 좀 알려주라.”

“모르는 게 좋을지도 몰라. 어쨌거나 걱정해 줘서 고맙다.”

준후는 영호를 데리고 후문 앞 분식집으로 향했다. 영호와 떡볶이와 튀김을 먹었다.

되찾은 일상이 행복했다.

형태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안 준후는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었다.

자도 자는 것이 아니었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야 모든 것이 제자리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준후는 드디어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럼 형태 문제는 완전히 해결한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한 번 정도 더 까불 것 같긴 한데 그래 봐야 내 손바닥 안이니까.”

준후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무림의 사파인들은 멍청하게도 멈춰야 할 때를 몰랐다.

사파인과 닮은 형태도 아마 한 번 더 수작을 부리겠지.

형태가 어떤 수작을 부리든 준후는 다 간파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림에서 상대한 마두만 100여 명이 넘었으니까.

“야, 든든하다. 든든해.”

“그래, 나만 믿어. 앞으로 일진들이 설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분식을 다 먹고 준후는 영호와 집으로 향했다.

중간 방향까지는 가는 길이 같았다.

그런데 걷던 도중 맞은편에서 외국인이 다가왔다.

영어로 길을 물었다.

영어 스피킹과 리스닝이 약했던 준후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서 있었다.

“직진하다 보면 육교가 나와요. 육교를 건너서 맞은편으로 이동한 다음 좌측으로 이동하세요.”

“…….”

“그럼 골프장이 보여요. 골프장이 있는 골목으로 가면 학원이 나와요.”

“고마워요, 학생. 영어를 참 잘하네요.”

영호가 끝내주는 스피킹 솜씨로 외국인에게 길을 안내했다.

발음과 문장이 모두 우수했다.

영호는 안내했던 내용을 준후에게 다시 번역해서 알려주기도 했다.

“영호, 너 이렇게 영어를 잘했어?”

준후가 감탄하며 물었다.

“초등학교 때까지 미국에서 살다 왔거든. 영어는 좀 해.”

영호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쑥스러워했다.

한 차례 헤프닝을 겪은 후, 준후는 집으로 돌아왔다.

식당에서 돌아온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에게 추궁과혈을 실시했다.

겸사겸사 진맥도 했는데 어머니는 무척 건강했다.

기(氣) 순환과 혈액 순환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얼마 전 뇌수술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을 회복한 어머니는 준후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오늘도 엄마 마사지하느라 고생했어. 아들.”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아 참, 식당에서 챙겨왔는데 먹을래?”

어머니가 가방에서 비타민 음료를 꺼내서 건넸다.

마침 떡볶이를 먹고 목이 말랐던 참이라 준후는 비타민 음료를 단번에 들이켰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가 공부하기 전 운기조식을 펼쳤다.

‘뭐지? 이 느낌은?’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보다 몸에 활력이 더 도는 느낌이랄까.

기억을 더듬고 거스른 끝에 준후는 낯선 감각의 원인을 밝혀냈다.

바로 비타민 C 음료!

그것 말고는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비타민 C를 먹고 운기조식을 하면 비타민 C의 효과가 증폭되는 것 같았다.

‘으음…….’

운기조식을 끝내고 준후는 가만히 턱을 쓸어내렸다.

조금 황당하긴 했지만 못 받아들일 사실은 아니었다.

총명탕도 비타민 C와 비슷한 역할을 했으니까.

단 총명탕은 피로 회복보다는 내공 축적량과 내공 축척 속도에 도움을 준다는 점이 달랐을 뿐.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서 준후는 곧바로 집을 나섰다.

가까운 약국을 방문했다.

영양제와 운기조식이 시너지를 발휘한다면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저기 두뇌 활동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가 있나요?”

“학생이 먹게?”

인자한 표정의 약사가 물었다.

“네. 좋은 걸로 추천해 주세요.”

“가만있어 보자.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약사가 추천한 영양제는 총 3가지였다.

RTG폼의 오메가3 영양제.

대두 레시틴.

은행잎 추출물.

준후는 총 7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영양제를 구입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영양제를 꿀꺽 삼킨 후 운기조식을 펼쳤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머릿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학교에서 들었던 수업 내용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내용과 관련해서 예습하고 복습했던 내용도 가지를 치듯 뻗어 나갔다.

뇌의 연산 속도가 2배 이상 빨리진 느낌이랄까.

마치 두뇌 속의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와, 정말 이런 것도 되는구나.’

준후는 경악했다.

두뇌 영양제와 운기조식의 시너지는 준후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층 날렵해진 두뇌로 준후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최소 세 시간은 예상했던 진도를 고작 1시간 만에 끝내고 말았다.

이런 속도와 집중력이라면…….

수능 만점을 받고 다른 공부를 해도 좋을 만큼 시간이 남겠는걸?

* * *

그 날 저녁.

거대한 택배가 집에 도착했다.

신경외과 의사 재현이 보낸 택배로 파란 플라스틱 이삿짐 상자 안에는 의학 서적이 한가득이었다.

“이 책은 다 뭐니?”

준후가 포장을 뜯는데 어머니가 놀라서 물었다.

“아는 분이 보내주셨어요. 의대에 간다니까 공부해 보라고요.”

“마음이야 고맙지만, 그분이 너무 멀리 가신 것 같은데? 수능 공부하기도 바쁠 텐데 의학서적 공부라니…….”

“여유 있을 때나 보려고요.”

준후는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사실 어머니의 말은 어제까지만 맞았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틀렸다.

두뇌 영양제와 운기조식의 조합으로 준후는 말도 안 되는 학습능력을 얻었다.

수능 만점을 받고도 이 책들을 공부할 만한 여유가 생겼다.

준후는 상자를 방안에 들여놓은 후 책장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의대에 들어가면 배울 게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시험 삼아 책을 하나 펼쳤더니 전부 의학 용어에 영어 투성이였다.

확실히 의사가 되는 길은 멀고 험난해 보였다.

책 정리를 마친 준후는 곧바로 재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개인적으로 바쁜 일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급한 수술에 들어갔기 때문일까.

재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보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문자로 전했다.

‘뿌듯하네.’

준후는 책장에 꽂힌 의학서적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의학서적을 진열해놓은 것만으로도 벌써 의사가 된 기분이었다.

바라던 외과의에 성큼 다가간 기분이었다.

영양제의 효과가 아직 남아 있었으므로.

오늘 분량의 학교 공부를 이미 마쳤으므로.

준후는 의학서적을 읽어보기로 했다.

준후의 간택을 받은 책은 해부학 서적.

무림 생활을 하면서 해부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펄럭. 펄럭.

책장을 넘기던 도중 준후는 우연히 뇌신경 파트를 살피게 되었다.

12쌍의 뇌신경은 뇌에서 시작해서 얼굴에 전체적으로 분포해 있었다.

무림을 경험했기에 준후는 여기서 재미있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일단 해부학책으로 후각 신경의 위치를 자신의 몸에서 찾았다.

후각 신경은 코 안쪽 윗부분에 위치해 있었다.

손가락에 내공을 담아 준후는 후각 신경을 자극해 보았다.

그러자 또다시 벌어진 놀라운 사건.

후각이 좀 전에 비해 말도 못 하게 예민해진 것이다.

의학 서적에서 전해지는 쿰쿰한 책 냄새.

옷장에 넣어둔 교복에서 나는 땀 냄새 같은 것이 선명해졌다.

그러니까 내공으로 뇌신경을 자극하면 해당 신경의 능력이 증폭되었던 것이다.

후각을 비롯해 시신경, 감각 신경, 운동 신경까지 자극해 보고 준후는 혀를 찼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뇌 영양제에 신경 자극술까지…….

나는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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