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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5화 (15/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5화

제3장 학교에서(5)

다음날 새벽.

준후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두뇌 영양제를 먹고 운기조식을 한 직후이기 때문일까.

머리가 쌩쌩 돌아갔다.

공부하고 있는 영어 지문을 한글처럼 매끄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간혹 모르는 단어가 나왔지만 상관없었다.

문맥으로 충분히 유추가 가능했다.

놀랍게도 유추한 단어의 뜻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이래서 공부를 재밌다고 하는 건가?’

무림에서 복귀한 시점에서도 준후는 공부를 즐기지 못했다.

체력과 집중력이 좋아졌다고 해서 공부가 쉬운 건 아니었으니까.

재미있었던 건 더더욱 아니었었으니까.

하지만 두뇌 영양제의 효과를 100퍼센트 누리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공부가 재밌어요.

……따위의 헛소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본디 무언가를 이해하고 나면 그것이 즐겁고 쉬워지는 법이었다.

무림의 준후가 무공에 흠뻑 빠졌던 것처럼.

준후는 새벽 5시까지 공부로 달렸다.

공부를 마치고 보니 영어 문제집을 하루 만에 2할 가까이 풀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책을 너무 노려봤나? 눈이 쑤시네.’

안구의 통증을 느낀 준후는 관자놀이에 검지를 올렸다.

검지를 눈 쪽으로 조금 더 이동시켰다.

그곳에 제2뇌신경, 즉 시각 신경이 위치했다.

검지에 내공을 담아 해당 부위를 문지르자 눈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신경이 이완되면서 통증이 물러간 것이다.

해부학 서적을 보고 새롭게 터득한 신경 자극술.

이는 점혈술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우선 통증 감소에 효과가 있다는 점은 같았다.

하지만 신경을 배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 요소가 있었다.

저녁에 후각을 강화했던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러니까 준후는 내공을 이용해서 한 번.

또 신경을 자극해서 또 한 번.

즉 육체의 감각과 신경을 두 번이나 증폭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신경 자극술은 고난이도의 수술을 할 때 더 빛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할 경우.

디스크 환자의 통증을 감소시키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준후는 하루 공부량의 300퍼센트를 달성하고 남는 시간에 의학 서적을 읽었다.

어렵긴 했지만 읽는 맛이 좋았다.

외과 의사가 된 미래의 자신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컸다.

“준후야, 아침부터 공부하니?”

문 여는 소리와 어머니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네. 일찍 일어나서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아침 식사하렴.”

“네. 어머니.”

거실로 나간 준후는 부모님과 식사를 했다.

씻고 교복을 챙겨 입은 후 등굣길에 나섰다.

반에 도착하자 어제와는 분위기가 딴 판이었다.

준후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친구들이 준후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야, 어제 진짜 멋있더라. 형태 새끼 때릴 때 내 속이 다 후련했다.”

“방학 때 격투기 학원이라도 다녔어? 형태 개 발라 버리던데?”

“그동안 모르는 척해서 미안.”

반 친구들의 쏟아지는 말들을 준후는 흐뭇하게 듣기만 했다.

그동안 준후의 괴롭힘을 모른 척했던 친구들이지만 딱히 원망은 하지 않았다.

준후를 도왔다면 그 누구라도 형태에게 찍혔을 테니까.

준후처럼 지옥 같은 생활을 했을 테니까.

“어제 형태랑 옥상에서 보기로 했잖아. 옥상에서 어떻게 된 거야?”

한 친구가 화제를 돌렸다.

“내 얼굴이 가장 큰 증거 아닐까?”

준후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형태 패거리에 맞았다면 내 얼굴이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다’라고 간접적으로 사실을 전달한 것이다.

그러자 곁에 몰려든 친구들이 일제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잠시 후 형태 패거리가 우르르 교실로 진입했다.

준후와 준후 곁에 몰린 반 친구들을 보고 흠칫 몸을 떨었다.

“형태야, 넌 얼굴이 왜 그래? 누구랑 싸웠어?”

준후는 다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아…… 아니, 길가다가 넘어졌어.”

“뒤에 있는 친구들도?”

“어? 응.”

“돌이 많은 곳을 걸어 다녔나 보네. 너희들 얼굴이 단체로 작살 난 걸 보면.”

준후의 농담에 반 친구들이 깔깔깔 웃었다.

형태 패거리는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붉혔는데 준후의 조롱에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드르르륵.

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태에게 다가갔다.

그저 가까이 다가갔을 뿐인데도 형태는 잔뜩 몸을 움츠렸다.

“왜 잔뜩 쫄고 난리야. 내가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 친구잖아. 편하게 대해.”

“그…… 그래야지.”

“그런 의미에서 형태야 매점에서 빵 좀 사다 줄래?”

준후는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형태를 빵 셔틀로 전락시켰다.

이제 반의 왕이 누구인지 각인을 시키는 작업이었다.

“빠…… 빵?”

“그래. 빵. 친한 친구끼리 빵 심부름 정도는 부탁할 수 있잖아. 나도 예전에 많이 했고.”

“그거야 그런데…… 매점 갔더니 맛있는 빵이 별로 없더라고.”

“형태야. 혹시 지금…….”

준후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말대꾸?”

* * *

이제 학급의 무력관계는 완벽하게 바뀌어 있었다.

형태와 형태 패거리는 쉬는 시간마다 매점을 찾아야 했는데 준후의 빵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준후의 명령을 고분고분 따른다는 것.

그것은 그들이 준후의 발밑이라는 절대적인 근거였다.

“준후야, 잠깐 옥상으로 와줄래?”

3교시 쉬는 시간에 형태가 뜻밖에 준후를 호출했다.

‘이 녀석, 무슨 꿍꿍이지?’

준후는 흔쾌히 따랐지만 속으로는 형태를 의심하고 있었다.

사파인들은 순순히 갱생하는 법이 없으므로 형태는 무슨 수작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가장 의심이 가는 건 옥상에 다른 일진들을 불러들이는 걸 텐데.

옥상에 도착했음에도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옥상에는 오로지 준후와 형태, 둘 뿐이었다.

“준후야, 네가 진짜 잘못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너한테 맞을 짓만 했던 것 같아.”

형태가 갑자기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목소리에는 울먹이는 기색마저 담겨 있었다.

이 인간이 빵 심부를 하다 보니 정신줄을 놓았나?

“나는 맞아도 싼 놈이지. 앞으로 네 말 잘 들을게. 네 명령을 거역하지도 않을게.”

“…….”

“자, 여기 네가 준비해달라고 했던 50만 원.”

형태가 지갑을 꺼내 흔쾌히 50만 원을 건넸다.

“돈이 필요하면 더 줄 수도 있어.”

형태의 일방적인 고백을 듣던 준후는 이내 싸늘하게 웃었다.

형태의 구린내 나는 수법을 완벽하게 알아챈 것이다. 이 비슷한 방법을 준후는 무림에서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휘이이익!

준후는 형태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단번에 낚아챘다.

잠금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쉽게 화면을 열 수 있었는데 화면에 녹음기 앱이 켜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이 더러운 자식아.’

준후는 휴대폰의 유심칩을 빼서 조각내어 버린 후 휴대폰은 옥상 바닥에 패대기쳤다.

퍼어어억!

내공을 담아 던진 휴대폰이 처참하게 박살 났다.

“우리 형태, 귀엽네?”

준후의 말과 행동에 형태는 사색이 되었다.

본인의 야심 찬 계획이 물거품이 됐음을 직감한 것이다.

“녹음 파일만 들으면 내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처럼 보일 테고.”

“…….”

“녹음 파일을 들고 가서 담임한테 이르면 내가 엿 먹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수법이 너무 저급하다. 안 그래?”

“…….”

정곡을 찔린 형태는 입도 뻥긋 못했다.

감히 준후의 얼굴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준후는 50만 원을 돌려받은 후 형태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쿵!

“으으윽!”

엉덩방아를 찧은 형태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어제 그렇게 얻어맞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형태가 어리석게만 보이는 준후였다.

형태가 괘씸한 행동으로 매를 번다는 생각이 드는 준후였다.

이쯤 되면 훈계, 훈육은 필요 없었다.

최고의 가르침이란 무릇 뼈에 새기는 가르침이니까.

픽!

준후는 형태의 아혈(말과 관련된 혈)을 제압한 후 형태의 이마에 사정없이 딱밤을 날렸다.

형태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아혈을 점했던 터라 형태의 목소리는 조금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목에 애꿎은 핏대만 솟아오를 뿐.

이것이 바로 시 공부를 할 때 배웠던 소리 없는 아우성 아닐까.

* * *

“형태랑 또 무슨 일 있었어?”

점심 식사를 위해 급식실로 내려가는데 영호가 말을 걸었다.

형태 패거리가 준후에게 당한 후.

영호는 형태 패거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준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개수작을 떨어서 혼내줬지.”

준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리고 아까 옥상에서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전했다.

준후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준후를 챙겨주고 말을 걸어주었던 친구가 영호 아니던가.

배려를 받은 만큼 영호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준후였다.

“속 시원하네. 형태 그 새끼는 좀 맞아도 돼. 그동안 널 괴롭힌 걸 생각하면 어휴.”

영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여간 형태 새끼들 꼬랑지 말고 있는 모습 보니까 기분은 좋더라. 걔네 쉬는 시간에 네 눈치 보기 바쁘던데?”

“눈치 봐야지. 얻어맞기 싫으면.”

준후는 졸업할 때까지 형태 패거리를 관리할 예정이었다.

만약 준후 또는 다른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간 뼈도 못 추리게 만들 것이다.

준후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강해졌는지는 끝까지 말 안 해줄 거야?”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넌 이해 못 해.”

“영업 비밀이라 이거냐?”

영호가 키득키득 웃었다.

준후가 강해진 방법에 대해서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이래서 영호가 좋은 친구지.

식판에 음식을 받아 준후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메뉴는 떡볶이, 소시지 야채 볶음, 현미밥, 시금치 된장 무침, 북엇국이었다.

“천천히 먹어. 그러다 체하겠다.”

준후는 수저와 젓가락이 쉬지 않는 영호에게 한마디 했다.

영호는 개방 거지처럼 음식을 탐하고 있었다.

아까 형태가 사 온 빵을 먹고도 맛깔나게 급식을 먹는 걸 보면 원체 식탐이 있는 것 같았다.

“사나이 강영호. 체한다는 건 모르고 살아 왔…….”

말을 하다 말고 영호가 갑자기 목을 움켜쥐었다.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영호의 젓가락에 빨간 양념이 묻어 있는 걸 보면 방금 막 삼켰던 떡의 일부가 목에 걸린 모양이었다.

“영호야, 괜찮아?”

준후의 말에 영호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몸부림을 치다가 식판을 쳐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채애애앵.

날카로운 금속성이 식당에 울러 펴졌다.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단숨에 이쪽으로 쏠렸다.

“명진아, 119에 신고 좀 해줄래?”

“으응.”

준후는 근처에 있던 반 친구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림에서 샐 수 없을 만큼 생사결전을 치렀기에 준후의 표정은 침착하기만 했다.

준후는 영호의 등 뒤로 돌아가 영호의 배꼽과 명치 사이에 깍지 낀 손을 얹었다.

최근 뉴튜브 영상으로 본 하임리히 법.

또는 복부 밀쳐 올리기를 시도하기 위함이었다.

무공을 익힌 나라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준후는 깍지 낀 손으로 영호의 복부를 밀어 올렸다.

퍽! 퍽! 퍽!

충분한 압력을 주어 하임리히법을 실시했지만 영호는 여전히 괴로워했다.

슬쩍 얼굴을 살피니 영호의 낯빛이 창백했다.

떡 조각이 여전히 기도를 막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지?

하임리히법은 분명 완벽했는데?

복잡한 무공을 소화했던 내가 고작 하임리히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

준후는 재차 하임리히법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영호는 여전히 괴로워했다.

방금 막 119에 신고를 했으니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최소 10분은 걸릴 것이다.

그리고 10분이라면 한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즉 영호의 목숨은 이제 준후의 손에 달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상황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으나 준후는 부동심을 유지했다.

하임리히가 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할 수는 없는 법.

숨겨 둔 비장의 무기가 아직 하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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