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16화
제4장 응급처치(1)
식당이 소란스러워졌다.
고통스러워하는 영호와 영호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준후.
두 사람을 식당에 있는 학생들이 일제히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부 학생은 준후 곁을 얼쩡거렸고.
일부 학생은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굴렀고.
일부 학생은 응급처치하는 준후를 휴대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학생이 목이 막힌 것 같다고요?”
영양사 정혜는 배식 일을 하던 명희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
“네. 아무래도 떡을 먹다가 떡이 목에 걸린 것 같아요.”
“119에 신고는 했대요?”
“네.”
대답을 듣고 정혜는 부리나케 현장으로 이동했다.
과연 출구와 가까운 쪽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컥컥거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안경 쓴 학생.
그리고 그 뒤에서 열심히 하임리히법을 하는 잘 생긴 학생.
내막을 모른다면 둘이 장난삼아 몸싸움을 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자세도 좋고 힘도 잘 쓰고 있는 것 같은데. 큰일이네.’
정혜는 초조한 나머지 손톱을 물어뜯었다.
기도가 막힌 환자에게 일반인이 해줄 수 있는 건 하임리히법뿐이었다.
하임리히가 통하지 않는다면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정혜가 환자에게 하임리히법을 실시한다고 해서 기도가 개방될까.
정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는 하임리히법을 배우기만 했을 뿐.
실전에서 사용한 적도 없으니까.
기도가 막힌 학생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 * *
하임리히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으므로 준후는 다음 단계을 준비했다.
바로 썩션이었다.
썩션이란 말 그대로 무언가를 흡입하는 처치를 일컬었다.
[기도 폐색 환자에게 하임리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진공청소기를 써볼 수 있습니다.]
[흡입판을 떼어내고 진공청소기의 노즐을 환자의 입속에 집어넣으세요. 혀가 말리지 않게 주의하고.]
[청소기의 강도는 약부터 강으로 천천히 올려주세요.]
얼마 전 준후가 본 응급처치 동영상은 진공청소기를 이용한 기도 폐색 대처법을 다루었다.
다만 아주 급할 때만 사용해라.
잘못하면 환자가 크게 다칠 수도 있다는 주의도 주었다.
준후는 그 처치를 살짝 변형할 예정이었다.
썩션은 하되 진공청소기 대신 무공을 사용할 작정이었다.
회심의 처치를 앞둔 준후는 침착하기만 했다.
위기일수록.
목숨이 오가는 사건이 벌어졌을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땅이 흔들리면 땅 위에 있는 사물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면 마음과 연결된 몸도 흔들리기 마련이었다.
‘가자!’
준후는 영호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깍지 낀 손 중 하나를 풀었다.
한 손은 압박을 계속하고 나머지 손으로 영호의 입을 막았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이 영호의 입을 막은 준후의 손바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준후는 곧바로 흡자결을 펼쳤다.
흡(吸, 빨아들일 흡)자 결이란 내공을 실체화하여 사물을 끌어당기는 힘으로 전환하는 수법이었다.
내가기공의 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 수법인데.
무림에서 화경의 경지에 접어들었던 준후는 흡자 결을 운용할 줄 알았다.
참고로 흡자결을 발전시키면 격공섭물도 사용 가능했다.
몇 미터 떨어진 물건을 내공으로 끌어당겨 손으로 쥐는 수법 말이다.
‘아직인가?’
준후의 이마에 생겨난 주름.
흡자 결이 영호의 입속에서 압력을 만들어 냈음에도 떡 조각은 쉬이 빠져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흡자 결을 한 단계 더 강화시켰다.
힘이 부족하다면 힘을 보태는 수밖에…….
준후는 영호를 포기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컥!
때마침 영호의 입에서 기이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소리가 난다는 것은 기도에 공간이 생겼다는 증거.
과연 영호의 입을 막고 있던 준후의 손바닥에 절반만 한 크기의 떡 조각이 흡착되었다.
‘어마어마한 녀석이었군.’
준후는 손바닥을 떼고 떡 조각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저런 게 기도를 막고 있었으니 일반적인 하임리힘법도 소용없는 게 당연했다.
“영호야 괜찮아?”
준후는 헉헉 숨을 몰아쉬는 영호를 바닥에 주저앉혔다.
영호의 상태를 살폈다.
영호의 눈동자는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퍼렇게 질렸던 낯은 차차 붉은 빛을 띠었으며 호흡도 차차 안정이 되었다.
오늘 일이 큰 충격이 되겠으나
다행히 생명의 지장은 없어 보였다.
준후도 그제야 한 시름을 덜었다.
친구의 목숨을 살렸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무공을 현대식으로 멋지게 재해석한 스스로를 대견해 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 어디에선가는 길이 나타나는 법이었다.
“와! 영호가 살았다.”
“준후가 영호를 살렸어. 대박!”
“서준후, 의사인 줄. 완전 멋있다.”
응급처치를 보고 있던 학생들이 일제히 준후를 치켜세웠다.
준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웅이 되어 있었다.
* * *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119대원들이 도착했다.
대원들은 영호의 상태를 살핀 뒤 영호를 구급차에 태웠다.
상태가 안정적이라도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저런 게 목에 걸렸을 줄이야.’
119대원 민식은 식당 바닥에 떨어진 떡 조각을 보고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기도 폐색 환자를 수차례 봤지만 저만한 크기의 이물질이 기도를 막은 건 처음 봤다.
“학생이 하임리히법 했다고 했죠?”
민식의 시선이 준후에게 머물렀다.
민식은 응급처치를 한 준후를 상대로 상황일지를 적고 있었다.
“네.”
“하임리히법으로 저게 빠져요? 안 될 것 같은데.”
“저는 되더라고요.”
준후가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믿기 힘들었으나 민식은 준후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하임리히법으로 저 떡 조각을 제거했으니까.
그 증거로 환자는 무사히 살아 있었으니까.
“잘했고 고마워요, 학생. 보통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 텐데.”
민식은 준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응급처치를 아는 것과 응급처치를 실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둘 사이에는 공포라는 막강한 감정이 벽처럼 놓여 있었으니까.
“친구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거든요. 근데 저 친구 따라서 병원에 가도 되나요?”
“왜요?”
“친구가 아직 불안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준후의 말에 민식은 한 번 더 감탄했다.
응급처치를 멋지게 성공한 것도 모자라 놀란 친구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있을 줄이야.
준후가 참 속 깊은 학생처럼 보였다.
“좋아요. 따라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준후는 근처에 있던 반 친구들에게 사정을 말하고 구급차 후방에 몸을 실었다.
후방 좌석에는 먼저 와 있던 영호가 있었는데 아직 겁에 질려 있었다.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으니 쉽게 마음을 추스를 수 없겠지.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준후는 지애에게 했던 것처럼 영호의 심중혈과 천중혈을 자극했다.
영호의 낯빛이 그제야 평소대로 돌아왔다.
점혈법은 준후가 가진 무공 중에서 가장 범용성이 높은 무공이었다.
앞으로도 신세를 톡톡히 지리라.
“학생들, 출발해요.”
구급차가 학교를 벗어났다.
15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동네에 하나뿐인 종합병원이었다.
웬만한 외과수술도 가능한 100병상짜리 병원이었다.
응급실 접수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소식을 들은 영호의 어머니가 응급실 대기실을 찾아왔다.
영호를 걱정하고 준후에게 감사를 표했다.
잠시 후 펼쳐진 진료 및 기도 내시경에서 영호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기도에 걸린 떡이었고.
떡이 제거되었으니 당연하게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앞으로 떡이나 젤리 같은 음식을 먹을 때 조심해요. 급하게 먹지 말고. 꼭꼭 씹어서 먹고.”
응급의학의의 조언은 지극히 교과서적이었다.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확실한 검증을 거쳤다는 뜻도 됐다.
매사에 성실해라.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마라.
과욕을 부리지 마라 등등.
인간에게 닥치는 문제란 지겨울 정도로 뻔한 말들을 지키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준후는 문득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고맙다는 말을 못 했네. 준후야, 진짜 고맙다. 네 덕분에 살았어.”
응급실을 나온 후 영호가 준후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준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영호는 알고 있을까.
형태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지난 6개월.
오직 영호만이 준후를 챙겨주고 말을 걸어주었던 것을.
그 때문에 준후가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을.
엄밀히 말해서 준후는 영호를 살렸다기보다는 지난 은혜를 갚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내가 너무 고마워서 그런데. 괜찮으면 혹시 나한테 영어 배워볼래?”
“영어?”
영호의 뜬금없는 제안에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그 정도밖에 없는 것 같아서. 너만 괜찮다면 일주일에 두 번, 4시간 정도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데.”
그러고 보니 영호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국 생활을 했다고 했다.
지나가던 외국인과 프리토킹을 할 정도로 영어 말하기 실력이 뛰어났고.
영호에게 영어 말하기를 배운다.
그리고 배움을 바탕으로 나중에 미국에 의학 연수를 간다.
생각해 보니 꽤 괜찮은 시나리오였다.
두뇌 영양제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기에.
준후는 수능 공부에 영어 말하기 공부를 추가해도 크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은데.”
“아냐, 난 좋아. 내가 좋으니까 너한테 먼저 제안했던 거지.”
“그럼…… 잘 부탁할게.”
“오케이. 그럼 이번 주부터 바로 공부 들어가자. 스케줄은 내일 학교에서 같이 짜고.”
“응. 알았어.”
택시를 타고 집 근처에 도착한 후 준후는 모자와 헤어졌다.
뭐랄까.
반나절 만에 엄청난 사건들에 휘말려 정신이 없는 기분이었다.
기도 폐색이었던 영호를 살렸고.
또 갑작스레 영어 말하기 공부 스케줄까지 잡혔고 말이다.
어찌 됐든 준후는 뿌듯했다.
무공을 멋지게 응용해 친구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으니까.
자신을 가해자로 만들려고 했던 형태의 녹음 계획을 산산이 박살 냈으니까.
앞으로는 오로지 학업에만 집중하면 되리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준후는 약국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췄다.
형태에게 돌려받은 50만 원으로 부모님께 영양제를 사드리면 좋을 것 같았다.
두 분 다 몸 건강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편이었다.
그런 부모님이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면 평소에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실제로 준후는, 운기조식 덕분이 컸지만, 영양제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으니까.
영양제를 사기 전.
준후는 다양한 뉴튜브 영상을 통해 중년에게 꼭 필요한 영양제를 알아보았다.
비타민 B 또는 종합 비타민.
비타민 D.
오메가 3.
유산균.
칼슘과 마그네슘의 혼합제제.
영상은 대체적으로 이 다섯 가지를 필수 영양제로 꼽았다.
그래서 약국에 들어가서 필요한 영양제만 두 세트 구입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영양제가 담긴 비닐봉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준후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그런데 이러다가 영양제 쇼핑에 중독되는 건 아닌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