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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7화 (17/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7화

제4장 응급처치(2)

영호에게 하임리히법을 실시한 후, 준후는 잠시나마 스타가 되었다.

현장을 촬영했던 동영상이 뉴튜브와 커뮤니티 등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동영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하게도 호의적이었다.

친구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감동이다.

준후의 용기가 대견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개 중에서는 현직 119대원이라고 밝힌 사람의 댓글도 있었다.

그는 준후의 하임리히법이 완벽했다고 말했다.

환자 뒤에 자리를 잡은 모습이나 깍지 낀 손을 두는 위치.

복부 밀쳐 올리기를 하는 압력이나 리듬이 119대원 못지않다고 칭찬했다.

주변의 반응이 너무 뜨거웠기에 준후는 그저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외과의를 목표로 하는 준후였다.

위태로운 환자를 살리는 일은 준후에겐 너무나 당연했기에.

동영상이 퍼진 후.

준후는 모처럼 방송사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의사 용진에게 CPR를 한 후 거의 두 달 만이었는데.

인터뷰 도중 예전 선행까지 밝혀지면서 준후의 주가는 더더욱 올라갔다.

몇몇 사람들은 준후를 농담 삼아 의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학교에서는 준후를 위해 특별한 상장을 만들고 상금을 모아 전달하기도 했다.

이제 전교에서 준후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주변의 찬사에 준후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결코 우쭐해 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만과 오만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준후는 무림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겸손하기 위해 최선을 했다.

‘그래도 좋긴 좋네.’

요즘 준후의 기쁨은 부모님이었다.

주변에서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보다 부모님이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는 것이 준후는 더 즐거웠다.

부모님의 퍽퍽한 삶에 스스로가 윤활유가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준후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그것은 뜻밖의 영양제였다.

준후가 거금을 들려 사 온 영양제를 부모님이 잘 먹지 않으려고 들었던 것이다.

굳이 영양제까지 챙겨 먹을 필요 없다.

끼니마다 챙겨 먹는 게 귀찮다 등등.

준후가 어렸을 때나 했던 반찬 투정을 부모님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준후는 부모님이 영양제를 잘 챙겨 먹도록 감시하고 숙제 검사(?)까지 했다.

물론 영양제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었다.

질병 예방에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검증이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준후는 영양제의 효과를 믿는 쪽에 속했다.

운기조식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영양제가 몸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고 있었기에.

부모님도 초반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영양제를 먹었지만 나중에는 알아서 잘 챙겨 먹기 시작했다.

영양제를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차이.

그것을 조금씩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준후 입장에서는 다행인 일이랄까.

폭풍 같았던 한 주가 지나고 찾아온 주말.

준후는 영호의 집으로 놀러, 아니, 공부하러 갔다.

준후 덕분에 목숨을 건진 영호가 영어 말하기와 듣기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준후에게는 나름 찬스였다.

미리 영어 공부를 해둔다면 말이다.

외과의가 되고 언젠가 외국에서 수련할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 테니까.

공부하러 가기 전.

준후는 학습을 극대화하기 위해 뇌 영양제를 챙겨 먹고 운기조식을 했다.

두뇌의 잠재력을 300퍼센트 끌어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틈틈이 의학서적을 읽어 획득한 해부학적 지식과 무공을 응용하기도 했다.

베르니케 영역.

언어 영역이라고 불리는 좌측 측두엽 부근에 추궁과혈을 펼친 것이다.

‘와, 미쳤네.’

내공이 언어 중추를 자극하자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 평소에 쓰지 않던 어휘 등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영호가 무얼 가르쳐주던지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만약 무림에서 뇌 영역에 따른 뇌신경의 역할을 이해하고.

해당 영역을 자극할 수 있었다면.

적일도도 쉽게 물리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뇌의 운동신경을 자극하면 반사 신경이 훨씬 좋아졌을 테니까.

현대의 나는 무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무림의 나는 왜 현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퍽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영호의 집에 도착한 준후는 영호에게 2시간가량 개인 과외를 받았다.

회화에 필요한 적극적인 마음가짐.

회화에 꼭 필요한 필수 동사와 문장을 구성하는 방법까지 배웠다.

두뇌 영양제.

베르니케 영역의 추궁과혈.

이 두 가지는 준후의 학습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오죽하면 영호가 공부하는 내내 준후를 천재라고 치켜세웠을까.

준후는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영호의 추천대로 미국 드라마를 시청했다.

외과의를 목표로 했으므로 의학 드라마를 시청했다.

다양한 분야의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들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과장된 세상이니.

준후가 곧 마주할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리라.

드라마는 보는 내내 준후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루라도 빨리 외과의가 되고 싶다고.

* * *

스으으윽.

스으으윽.

불쾌한 마음과 달리 빗질 소리는 경쾌하기만 했다.

오전 8시.

형태는 일진들과 학교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마음에서 우러난 청소는 당연히 아니었고.

그렇다고 담임이 시켜서 하는 청소도 아니었다.

빌어먹을 준후 놈이 강제로 떠넘긴 청소였다.

“앞으로 매일 아침·저녁으로 학교 주변 청소해라. 니들이 핀 담배꽁초도 줍고 쓰레기도 치우고.”

“하루에 두 번이면 너무 빡세지 않아?”

“형태야, 진짜 빡센 게 뭔지 가르쳐줄까?”

준후가 뿜어내는 살벌한 눈빛에 형태를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성껏 청소를 하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준후의 명령에 따라 형태 패거리가 학교 청소를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째였다.

“X발,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냐? 설마 졸업할 때까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승호가 툴툴거리며 말을 이었다.

“김형태.”

“왜?”

“준후 새끼 꼼짝 못 하게 만들겠다며? 우리가 왜 이 꼴인데?”

“X발, 작전이 안 먹혔으니까 그렇지.”

형태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신경질적으로 내팽개쳤다.

무력으로는 준후를 상대할 길이 없으니.

휴대폰 녹음으로 준후를 학교 폭력 가해자로 만든다.

다시는 자신들에게 폭력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 회심의 작전은 얼마 전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무슨 눈치가 그렇게 빠른지 준후가 형태의 계획을 손금 보듯 꿰뚫어 보고 있었다.

덕분에 애꿎은 휴대폰만 박살 났다.

“괴물 같은 새끼네. 그건 또 어떻게 눈치를 까 가지고.”

“내 말이 그 말이야. 짜증 나는데 담배나 한 대 빨자.”

형태는 패거리와 함께 학교 후문의 인적 드문 골목가로 이동했다.

그런데 골목에 먼저 자리를 잡은 학생들이 있었다.

바로 2학년 일진 무리였다.

그들에게서 찬란한 빛무리가 보였던 것은 단지 착각일까.

“호진이 형.”

“X발, 너네 아침부터 뭐하냐? 청소?”

2학년 일진의 우두머리인 호진이 형태 패거리의 행색을 훑더니 깔깔거렸다.

“형, 저희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아니.”

구체적인 사연은 들어보지도 않고 호진은 거절부터 했다.

“너무 야박하신 거 아니에요. 말은 들어봐 주셔야죠.”

“안 들어도 무슨 말 할지 다 아니까.”

“못 본 사이에 텔레파시라도 익혔어요?”

형태는 기분이 상한 나머지 살짝 빈정거렸다.

형태를 일진으로 만든 사람이 호진인데 호진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준후라는 애 손봐달라고 할 거잖아. 내 말 맞지?”

“그걸 어떻게…….”

“그러니까 다 안다고 했잖아.”

호진이 인상을 확 찡그리며 피우던 꽁초를 형태 쪽으로 던졌다.

그리고 새로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쓰으으읍.

후우우우.

이어지는 호진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얼마 전 준후가 홀몸으로 찾아와 2학년 일진 스무 명을 다 때려눕혔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3학년 일진도 준후에게 떡이 되도록 맞았다고 한다.

“악마 같은 새끼. 얼마나 잘 때리는지 뒤지게 맞았는데도 겉으로는 티도 안 나더라.”

“아…….”

“그 새끼가 앞으로 동급생이나 후배들 괴롭히면 우릴 죽여 버린다고 엄포를 놓고 갔다.”

준후 이야기를 꺼내는 호진은 퍽 두려워 보였다.

평소 호진답지 않은 약한 모습이었다.

준후 새끼는 대체 뭐하는 새끼란 말인가.

벌써 2, 3학년 일진까지 박살을 내놓다니.

“형님들하고 저희가 힘을 합치면 그놈 하나 못 조질까요?”

“응. 안 돼. 이건 쪽수의 문제가 아니야. 그 새끼는 그냥 어나더 레벨이라고.”

호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어. 그 새끼한테 개기다가 처맞든가, 아니면 그 새끼가 시키는 대로 하든가.”

“…….”

“선택은 니 자유다.”

호진이 패거리와 냉정하게 자리를 떠났다.

자리에 남은 것은 호진이 두고 떠난 담배 연기뿐이었다.

호진의 말에 충격을 받은 형태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남은 고등학교 생활이 말도 안 되게 꼬여 버렸음을 직감하면서.

* * *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준후는 평소처럼 밤샘 공부를 하고 등굣길에 나섰다.

무림에서의 삶을 각성한 후 준후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부모님은 준후를 대견해 했으며.

준후는 무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똑똑해지고 또 강해지고 있었다.

또한 외과의라는 목표를 향해 똑바로 직진 중이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이 충만할 따름이었다.

“선배들, 담배 피우고 오나 봐요?”

후문에 들어섰던 준후는 때마침 마주친 2학년 일진에게 아는 체를 했다.

2학년의 얼굴은 단숨에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어? 어. 그렇지, 뭐.”

2학년 일진 우두머리인 호진이 어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며칠 전 손을 봐줬더니 시골 강아지처럼 고분고분한 모습이었다.

준후는 형태 패거리를 손봐준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과거 자신과 같은 괴롭힘을 겪고 있을 2, 3학년생이 존재할 게 분명했으므로.

2, 3학년 일진도 개 박살을 내주었다.

“담배 피우는 건 저랑 상관없는데. 꽁초는 잘 처리하셨죠?”

“형태가 청소 잘하더라.”

“그럼 다행이고요. 우리 졸업할 때까지 잘 지내봐요.”

준후는 상사가 부하를 다루듯 호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폭군이었던 형태의 권좌가 무너지면서 교실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반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준후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일까.

요즘 준후는 영호 말고도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 대여섯 명이 더 생겼다.

준후의 일상이 평범함을 되찾은 것이다.

악인이 없으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준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한편 형태 패거리가 교실에 들어온 건 조례 직전이었다.

그들의 손에는 빗자루와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야, 아침부터 청소를 다 했어? 김형태, 진짜 멋있네.”

청소를 시킨 것은 자신이었지만 준후는 시치미를 뗐다.

“내가 원래 지저분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앞으로 환경미화는 너한테 맡기면 되겠다.”

“어? 그…… 그래.”

형태가 떨떠름하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담임의 조례가 끝나고 1교시 수학 수업이 시작되었다.

‘이 녀석 봐라?’

수업을 진행하던 수학 선생 동식은 준후의 태도에 짐짓 놀랐다.

수학을 싫어하고.

수학을 잘 못 하던 준후의 눈동자가 수업 내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별일이라면 별일이었다.

“김형태. 나와서 여기 이차방정식 좀 풀어 봐.”

“네.”

교단에 선 형태는 힘겹게 문제를 풀다가 손에서 분필을 놓았다.

우등생인 형태조차 풀기 힘든 고난이도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긴 여기까지 기대하는 건 내 욕심이지.’

동식이 문제 풀이를 하려던 찰나, 뜻밖에 준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제가 풀어보겠습니다.”

“엥? 준후, 네가? 너 수포자 아니었니?”

“앞으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준후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동식은 교단에 올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런데 웬걸?

형태조차 더듬거렸던 공식을 준후는 빠르게 풀어냈다.

동식이 무언가를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이 녀석, 방학 때 수학 교재라도 씹어 먹고 왔나?

“자…… 잘했다. 다들 봤지? 풀이 적어둬라.”

“네. 선생님.”

자리로 돌아가면서 준후는 형태를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그 의미는 명확했다.

자신이 힘뿐만 아니라 머리에서도 형태를 앞섰다는 사실.

그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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