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23화
제5장 의대생(3)
띠리링~
수능 시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기다렸다는 듯 탄식이 터져 나왔다.
여러 가지의 입장과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탄식이었다.
누군가는 수능을 잘 마쳤다는 성취감에, 누군가는 제 실력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탄식을 흘려냈다.
사회생활의 큰 관문 중 하나인 수능을 마쳤음에도 준후의 표정은 덤덤하기만 했다.
책가방을 챙겨서 시험장 건물 1층 입구로 향했다.
잠깐 대기하고 있으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영이었다.
“와, 진짜 역대급 불수능이었다. 이번에는 눈치 전쟁이 치열하겠는데?”
아영의 소감을 듣고 준후는 피식 웃었다.
“또 또. 그러네. 내신 때 버릇이 수능에서도 가는구나?”
아영의 전매특허는 시험을 잘 쳤으면서 못 쳤다고 연막을 치는 것이었다.
-나 이번 시험 망한 것 같아.
올해 마지막 내신을 치렀을 때 아영이 한 말이었는데 그때 아영은 전교 2등을 했다.
그러니까 아영은 앓는 소리의 전문가였던 것이다.
“괜한 소리 아닌데? 솔직히 진짜 어렵긴 했잖아. 준후, 너한테는 아니었으려나?”
“조금 어렵긴 했는데 난 그저 그렇더라.”
준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학생들에겐 이번 수능이 불수능일 확률이 컸지만 준후는 아니었다.
가채점을 하지 않았음에도 만점을 확신했다.
일단 답을 모르는 문제가 없었고.
실수를 막기 위해 2-3번의 답안지 검토도 했기 때문이다.
수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준후는 아영과 함께 걸었다.
아영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과호흡 증후군이라는 난관을 겪었지만 시험을 잘 치른 것으로 보였다.
준후가 쉬는 시간마다 아영의 교실을 찾아가 말로 위로하고 점혈까지 펼쳤던 덕분이었다.
만약 아영이 시험을 망쳤다면 지금처럼 재잘재잘 떠들 수도 없었으리라.
수다와 함께 동네에 도착하자 준후는 비로소 실감이 났다.
수능이 끝났다는 것.
외과의를 위한 첫걸음인 의대 입학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왔다는 것이.
“괜찮으면 이야기 좀 더 할래? 네 덕분에 시험도 잘 치렀는데 뭔가 보답이라고 하고 싶고.”
헤어지기 전 아영이 제안했다.
준후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찾은 장소는 동네 베이커리 집으로 식사용 테이블을 갖추고 음료도 같이 파는 곳이었다.
“빵, 좋아하나 봐?”
테이블에 놓인 빵을 보며 준후가 물었다.
아영이 챙겨온 빵이 쟁반에 한가득이었다.
요새 유행한다는 먹방 BJ들이 먹을 만한 양이었다.
“응. 엄청 좋아해. 밥 없이는 살아도 빵 없이는 못 살 거든. 이 집은 에그 타르트가 맛있어. 타르트부터 먹어 봐.”
아영이 환하게 웃으며 타르트를 권했고 준후는 타르트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고소하고 진한 크림과 달걀의 향이 매력적이었다.
“맛있네.”
“그치? 많이 먹어.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빵집에서도 수능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마 당분간 매스컴은 물론이요 수험생까지 질리도록 수능 이야기를 하겠지.
수능 다음으로 이어진 화제는 준후의 처치였다.
아영은 준후의 해박한 의학 지식과 신묘한 처치법을 궁금해했다.
사실 난 무림이란 곳을 경험하고 있어.
그래서 남들은 가지지 못한 초능력 같은 것도 발휘할 수 있지.
……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준후는 대충 둘러냈다.
외과의가 꿈이라서 의학에 관련된 동영상을 평소에 챙겨봤다고.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금방 납득했다.
“아영이 너는 어디 의대 지원하게?”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아영의 목표도 준후처럼 의대라는 사실은 같은 반 학생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성적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신원대가 좋겠지? 신원대 의대가 국내 탑이니까.”
“이야, 잘하면 나랑 대학 생활 같이하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
“의대는 왜 가게?”
“아버님이 심장병으로 돌아가셨거든. 그때부터 막연하게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영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런 아영의 모습에서 준후는 자신을 발견했다.
준후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현대에서 소중한 사람을 잃지는 않았지만 무림에서는 수없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
그때의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외과의를 꿈꾸고 있었고.
“너희 아버님도 분명 하늘에서 널 응원하고 있을 거야. 아영이 네가 좋은 의사가 되기를.”
“…….”
“나도 응원할게.”
준후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영의 목표가 돈과 명예가 아니었기에, 돈과 목표를 위해 의사가 되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아영은 분명 환자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멋진 의사가 될 것이다.
“고마워.”
준후의 응원을 받은 아영이 애써 웃었다.
준후는 아영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수능을 무사히 마쳤고 뿌듯했고.
아영이 무사히 수능을 치를 수 있게 도와서 보람찼고.
아영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유익했던 하루였다.
준후는 석양의 배웅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수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곧 퇴근한 아버지와도 수능 이야기를 했다.
오늘 저녁은 모처럼 삼겹살 외식이 있었는데.
준후에겐 최고의 외식이었다.
수능을 잘 쳤다는 소식을 전하자 부모님이 지은 행복한 표정이 준후에게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학교에서 수능 성적표를 배포했다.
당연하게도 준후는 만점을 받았다.
이번 불수능의 유일한 만점자라는 영광의 타이틀도 획득했다.
* * *
한 해가 순식간에 지났고 그동안 많이 일들이 일어났다.
수능 만점을 받은 준후는 학교의 자랑이 되었고 부모님과 친척의 자랑이 되었다.
학교에는 준후의 현수막이 걸렸는데 준후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볼이 화끈거렸다.
[축! 3학년 서준후 수능 만점!]
수능을 잘 쳤다고 저렇게까지 요란을 떨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무림에 있을 때부터 겸손이 몸에 뱄던 준후는 현수막을 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주말에는 집에 놀러 온 친척들을 상대해야 했는데.
친척 식구들은 하나같이 준후를 우러러보았다.
어른들은 칭찬과 감탄을 아끼지 않았고 사촌들은 동경의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준후는 주변에서 떠는 요란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우선 수능 만점이 인생 만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고.
외과의로서의 삶은 의대를 졸업해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성적표 배포가 끝난 직후.
준후는 형태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예비 소집일에 준후가 수능을 망치도록 불량배들을 보냈던 악마 같은 녀석을.
알아본 바에 따르면 형태는 수능을 치르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이 고용한 불량배들에게 손가락이 아작 나서 마킹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업자득이었기에 준후는 형태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연민과 동정과 선의.
이것들은 평범한 사람과 선한 사람에게 발휘해도 모자라지 않는가.
그런 감정들을 악당인 형태에게 사용한다는 것은 심각한 과소비였다.
한 번은 우연히 동네에서 형태를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형태는 준후를 발견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골목길로 숨어버렸다.
무려 3번을 당하고 나서야 형태는 깨달은 듯했다.
준후에게 보복을 시도하면 할수록 피를 보는 것은 자신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의대에 지원서를 넣고 입학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준후는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수능 만점자는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물어보는 인터뷰 말이다.
준후는 총 세 곳의 매스컴과 인터뷰를 나눴다.
교과서와 EBS 위주로 공부했다는 다소 뻔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쯤에서 관심이 사그라졌으면 좋았으련만…….
세상은 준후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준후가 아영에게 실시했던 응급처치 영상이 인터넷에 풀린 것이다.
영상은 뉴튜브와 뉴스를 타고 넓게 넓게 퍼졌다.
덕분에 준후는 다시 한번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라야 했다.
준후의 선행에 감명받은 어떤 장학 재단에서는 준후에게 천만 원 상당의 장학금을 후원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후는 비닐봉투 남(男)이라는 영광스러운(?) 호칭도 얻게 되었다.
아영에게 비닐봉투를 건넸고.
그 비닐봉투가 아영을 진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쯤에서 준후는 세상의 뜨거운 관심에 물려 버렸다.
준후가 해온 행동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양심과 판단, 가치관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자신의 진심이 타인의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느낌이 싫었다.
다행히도 세상의 관심은 금방 식어버렸다.
준후 말고도 세상을 뜨겁게 할 이슈는 넘치고 넘쳤기에.
시간이 흘러 합격자 발표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학교를 가지 않고 아버지의 택배만 간간이 돕던 준후는 몇 가지 성취를 이뤄냈다.
하나는 운전면허 획득이었다.
생일이 1월이었기에 면허를 취득할 나이 조건을 만족해서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운전도 일종에 피지컬의 영역이었기에 면허 시험은 어렵지 않았다.
준후는 1종 면허자가 되었고.
가끔 아버지 대신 탑차를 몰기도 했다.
두 번째 성취는 의학에 관련된 것이었다.
아직 의대에 입학도 안 했거늘.
의대 본과 4년 차의 의학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한 것이다.
물론 그 배후에는 두뇌 영양제와 운기조식.
신경 자극술의 도움이 컸다.
본과 공부를 마친 준후는 시험 삼아 작년 의사 고시문제를 실전처럼 풀어보았다.
결과가 어땠냐고?
당연하게도 만점이 나왔다.
의사 면허증만 없을 뿐 준후는 이미 의사가 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선행학습도 이런 선행학습이 없네.’
시험지를 내려다보며 준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본인도 본인의 성취가 어이가 없어서였다.
이래서야 의대를 다니는 게 의미가 있겠냐 싶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의대에서는 앞으로 의사 생활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
자신에게 기대는 사람을 찾는 일 또한 충분히 보람 있을 테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교과서로는 배울 수 없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교수들에게 배울 테고.
해부학 실습을 통해 그림이 아닌 진짜 신체를 익히게 될 것이다.
여유 시간에는 영어 실력을 더 끌어올리고.
내공과 현대 의학을 좀 더 접목해 보고.
내친김에 논문 공부도 하면 좋으리라.
세상일이 그렇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었다.
의대 생활은 분명 준후에게 성장의 발판이 되어줄 게 분명했다.
얼마 후 신원대 의대 합격자 발표가 있었는데 준후는 당당하게 수석 입학을 차지했다.
꿈에 그리던 전 학기 장학금까지 타냈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준후의 값비싼 의대 등록금을 대느라 등골이 휠 필요가 없었다.
천만 원의 장학금을 이미 따로 받아서 용돈에 크게 구애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대망의 입학식이 있던 날.
준후는 신원대 입학생의 대표로 선출되어 선서를 했다.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자 사회인으로 첫걸음을 내디디게 된 것이다.
이날만큼은 준후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입학식이 끝난 후 준후는 부모님과 함께 캠퍼스를 걷고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가졌다.
세계 최고의 외과의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
그 꿈에 마침내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