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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25화 (25/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25화

제5장 의대생(5)

자리에서 일어난 준후는 휴대폰으로 음악 앱을 재생했다.

최근 음악 차트를 씹어 먹고 있는 옵티멈의 이 흘러나왔다.

준후는 박자와 멜로디에 맞춰 안무를 선보였다.

준후의 몸동작은 남자 아이돌처럼 박력이 넘쳤다. 절도가 있었으며 동작 간의 연결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수준급 안무에 준후가 속한 조원들은 물론이요.

다른 조원들까지 넋을 잃고 준후를 쳐다보았다.

준후는 어느새 강당의 시선과 관심을 먹어치우는 블랙홀이 되었다.

‘이 정도쯤이야.’

준후는 남몰래 웃었다.

사실 준후의 가장 큰 무기는 피지컬이었다.

내공으로 뒷받침되는 준후의 육체 능력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런 준후에게 아이돌 안무를 소화하는 일은 껌 씹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일단 외모부터 눈에 띄잖아. 아이돌 해도 되겠는데?

준후가 장기자랑에서 춤을 춰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

그 이유는 아까 전 성호와 나눈 대화 덕분이었다.

장기자랑이 신원대 OT의 적폐라고 했으니 아이돌 안무로 정면 돌파하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30분 전.

제일 잘 나가는 남자 아이돌의 안무 동영상을 재생했다.

네다섯 번 정도 봤을까.

준후는 안무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통째로 암기할 수 있었다.

안무는 무공의 초식과 비슷했는데.

일정한 규칙에 따라서 몸을 움직이면 됐다.

그 규칙을 이해한다면 동작을 억지로 머릿속에 구겨 넣지 않아도 됐다.

“선배, 이 정도면 될까요?”

안무를 마치고 준후가 2학년 선배 윤기에게 물었다.

준후의 물음에 윤기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어? 어. 근데 너 춤 잘 춘다? 고등학생 때 댄스 동아리였니?”

“그런 거 아니고 춤추는 걸 좋아해서요.”

“좋기는 한데…….”

윤기가 뭔가 아쉽다는 듯 턱을 쓸어내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조원들이 너무 들러리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 말이야. 그거 한 가지가 걱정이네.”

“그거라면 제가 해결할게요.”

“무슨 수로?”

“제 뒤에서 조원들도 간단한 안무를 소화하고 있으면 되잖아요. 벌써 다 짜 놨어요.”

준후의 지시에 따라 조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후가 미리 짜놓은 안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조원들이 따라 하고 있는 안무는 청운권법의 제1초식 청산유수였다.

그 난이도가 현대의 체조와 비슷한 수준이라서 누구나 쉽게 익히고 배울 수 있었다.

잘 따라 하면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온다는 장점도 존재했다.

조원 중에서는 아영이 몸치였다.

그래서 준후는 아영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잘못된 동작을 바로 잡아주고 동작이 더 멋있게 보여줄 수 있는 비법까지 알려주었다.

그 덕분일까.

준후가 속한 조는 고작 40분 만에 장기자랑 준비를 마쳤다.

다른 조는 아직 장기자랑 거리조차 찾지 못했거늘.

“이야, 준후 네 덕에 한결 편해졌다?”

윤기가 준후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본래 장기자랑 준비에 90분이 필요하건만 준후 덕분에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골머리를 썩을 필요가 없었던 것은 덤이었다.

준후가 장기자랑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진두지휘했으니까.

역시 전교 수석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그냥 평소에 관심이 많던 분야라서요.”

“이만하면 1등은 무조건 우리 거고. 다들 푹 쉬고 있어. 나도 바람 좀 쐬고 올 테니까.”

윤기가 후련한 표정으로 자리를 비웠고 조원들도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선배가 앞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상황에 따라 행동과 말투는 다를 수밖에 없었기에.

이윽고 아영과 성호, 다른 조원들의 질문이 준후에게 쏟아졌다.

춤은 언제 배웠냐.

어떻게 그렇게 춤을 잘 출 수 있냐 등등.

무림 경험을 솔직하게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준후는 대충 그럴듯한 말로 답변했다.

‘가만있어 보자.’

신원대 OT의 첫 번째 적폐인 장기자랑을 무사히 해결했으니 남은 적폐는 하나뿐이었다.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남은 적폐가 장기자랑보다 한 수 위이긴 했다.

자칫하다간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준후는 오히려 남은 적폐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첫 번째 적폐를 수동적으로 해결했다면 남은 적폐는 능동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허물을 뒤집어쓴 가혹 행위를 오늘 개 박살 내리라.

준후는 속으로 다짐했다.

* * *

조 편성이 끝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창밖은 어두워졌으며 간간이 밤벌레 울음도 들려왔다.

드디어 시작된 장기자랑.

진행자의 진행에 따라 1조부터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갔다.

준비한 장기자랑을 펼치기 시작했다.

급조된 장기자랑인 만큼 대부분 노래와 춤, 콩트 같은 것을 펼쳤다.

당연하게도 퀄리티가 좋지 않았다.

장기자랑의 대다수가 어색하고 조잡했으며 실수도 자주 터져 나왔다.

하는 사람도 부끄럽고.

보는 사람도 민망한 이런 장기자랑을 왜 해야 하는지 준후는 역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도 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봐라.

그런 심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5조,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진행자의 말에 따라 준후가 속한 5조가 무대에 섰다.

준후가 무대 중앙을 독차지했고 그 뒤를 조원들이 열 맞춰서 늘어섰다.

[넌 부메랑. 결국 내게 다시 돌아올 운명.]

전주가 끝나고 시작된 첫 소절.

준후가 본격적인 안무를 펼쳤다.

뒤에 있던 조원들은 준후가 알려준 안무를 소화하기 시작했다.

‘대단해, 진짜.’

아영은 준후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감탄하기 바빴다. 말은 안 했지만 아영은 남자 아이돌 옵티멈의 팬이었다.

무대 영상과 직캠을 일일이 찾아볼 정도였다.

그런데 준후의 춤선은 옵티멈의 멤버와 판박이였다.

박력과 유연함.

두 가지 상반된 매력을 소화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는 혼자서 무대를 꽉 채운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수능 만점을 받으려면 하루 종일 공부해도 모자랄 텐데.

준후가 어떻게 짬을 내서 저런 수준급의 춤 실력을 갖출 수 있었는지 아영은 의문이었다.

아영이 문득 무대를 살피자 청중들은 하나같이 준후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준후의 외모가 아이돌 뺨치는 수준이었고 준후의 안무도 아이돌 뺨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즉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현역 아이돌 무대를 공짜로 관람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윽고 30초 같았던 3분의 시간이 지났다.

“…….”

“…….”

노래가 끝나자 찾아온 무거운 정적.

그 정적을 환호와 박수갈채가 밀어내기 시작했다.

장기자랑이 끝난 후, 5조는 이견 없이 장기자랑 1위를 거머쥐고 상품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전부 준후 덕분이었다.

* * *

“준후야. 너 진짜 개 멋있었다. 이러다가 네 팬 되겠어.”

“아이돌 빙의한 줄. 크크크.”

“의대 말고 소속사에 들어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

주변에서 쏟아지는 칭찬 세례를 준후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치켜세워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준후의 가슴은 언제부터인가 의학 지식을 공부할 때만.

또는 아픈 사람을 치료할 때만 뛰기 시작했다.

다른 일로는 아무리 칭찬받아도 무덤덤할 뿐이었다.

장기자랑이 끝나고 조원들과의 대화도 곧 끝났다.

신입생들은 하나둘 강당에서 펜션으로 복귀했다.

한 시름을 덜었다는 표정의 다른 신입생과 달리 준후의 표정은 비장하기만 했다.

성호에게 들은 신원대 OT의 마지막 적폐가 남았기 때문이다.

바로 술 문화.

성호의 말에 따르면 신원대 OT는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기로 악명이 높다고 했다.

개인의 주량은 아랑곳하지 않고.

선배가 주는 술은 무조건 받아 마셔야 한다고 한다.

만약 못 마신다고 하면 다른 신입생이 그 술을 대신 마셔야 한다고도 했다.

알콜을 해독하는 능력에는 개인차가 있으므로.

그 한계를 넘어서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의대에서 이토록 어이없는 악습이 존재하다는 사실이 준후는 믿기지 않았다.

괜찮아.

내 기수에서 이 악습을 끊어버리면 될 테니까.

준후가 각오를 다지는 사이, 펜션에 술상이 마련되었다.

소주와 맥주는 궤짝으로 쌓였고 과자와 마른안주들이 지천에 널렸다.

술상을 두고 신입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기 시작했다.

조별 활동을 하면서 서로 친해졌기에 대부분 조 단위로 앉게 되었다.

“올 것이 왔구나. X됐네. 나 알콜 쓰레기인데.”

곁에 앉아 있는 성호가 준후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내가 죽으면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라. 내 죽음은 적들에게 알리지 말고.”

“걱정 마. 형 안 죽게 만들어 줄 테니까.”

“뭐야? 흑기사라도 해주려고?”

“기사로는 성이 안 차지. 황제 정도?”

준후가 성호의 농담을 받아쳤다.

선배들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술자리의 막이 올랐다.

신입생들의 평화를 위해.

또 썩어빠진 술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준후가 나섰다.

준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선배들을 도발하기 시작했다.

“혹시 술 잘 마시는 선배님들 계십니까? 제가 취해본 적이 없는데 술 잘 마시는 선배님들과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시고 싶습니다.”

“저 새끼가 뭐라는 거야?”

“취해 본 적이 없다고?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 거겠지. 크크크.”

“주제도 모르고 까부네.”

준후의 광역 도발은 효과적이었다.

자리에 있던 술꾼 선배들이 한마디씩 하며 준후를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본 것이다.

자고로 게임 부심과 더불어 술 부심은 못 참는 법이었다.

“야, 서준후 이리 와 봐. 네가 그렇게 술을 잘 마셔?”

3학년 선배이자 이 자리에서 가장 짬이 높은 정석이 준후를 불렀다.

준후의 계획대로였다.

광역 도발로 술 잘 마시는 선배들을 한 자리에 모은다면 말이다.

다른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사람이 없어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오늘 술자리는 평화롭게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배를 술로 제압한 준후가 내년 OT에 참가해 신입생들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다면.

OT의 지저분한 술 문화가 대물림 되는 것도 막을 수 있으리라.

“네. 선배님. 부르셨어요?”

준후는 순진한 척하며 정석의 곁으로 다가갔다.

정석의 곁에는 어느새 술을 잘 마시는 선배들이 포진해 있었다.

준후를 골탕 먹일 생각에 벌써부터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응, 그래.

웃을 수 있을 때 실컷 웃어 둬.

“술을 아예 입에도 못 대봤을 것 같은데 술을 잘 마신다고?”

“네. 최소한 선배님들보다는 잘 마실 것 같습니다.”

“당돌한 거야? 멍청한 거야? 한잔해.”

정석이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준후에게 건넸다.

준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을 비웠다.

그러자 몇몇 선배들이 놀랐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신입생이 선배님들께도 한 잔 올리겠습니다.”

준후는 주변에 있는 선배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라주었다.

기 싸움에서 밀릴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다들 준후가 채운 잔을 꿀떡꿀떡 넘겼다.

소주 3병이 순식간에 거덜 났다.

“진짜 술 잘 마시는 사람은 안주도 안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안주로 채울 배를 술로 채워야 하니까요. 맥주도 마찬가지고요. 이참에 다 치워 버릴게요.”

준후는 당돌하게 안주와 맥주를 술상에서 싹 제거했다.

준후의 기습 공격에 선배들은 어버버거릴 뿐 대처를 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술자리.

준후는 선배들과 함께 맥주잔에 채운 소주를 물처럼 넘겼다.

원래 무림에서부터 술을 잘 마셨던 데다가 준후에게는 필살의 무기가 있었다.

바로 내공이었다.

내공을 사용하면 혈관에 있는 알콜을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알콜이 증발한 술은 물에 불과할 뿐.

즉 준후는 다른 선배들과 달리 소주가 아닌 물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쿵!

쿵!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선배들이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누구는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고.

누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었다.

정석이 제일 오래 버텼지만 당연하게도 준후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소주 4병을 마신 직후.

정석은 고주망태가 되어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술 빌런들에게 악몽을 선사하고 준후는 조원들 곁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이제 누가 진정한 술꾼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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