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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1화 (3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1화

제7장 본과(1)

오후 4시 오늘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준후는 성호와 아영, 정한과 함께 교실을 빠져나와 교정을 걸었다.

평소라면 도서관 직행이었지만 오늘은 바로 집에 갈 예정이었다.

어머니가 저녁으로 갈비를 구울 건데, 세 가족이 같이 먹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큼은 생각 없이 푹 쉬기로 했다.

“형, 무슨 좋은 일 있어?”

준후가 곁에서 걷는 성호에게 물었다. 아까부터 성호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이야, 역시 서준후 눈은 못 속인단 말이지. 내가 오늘 애프터가 있거든.”

“애프터? 소개팅 애프터?”

“그래, 짜샤. 내 대학 생활에도 드디어 꽃이 피려나 보다.”

성호가 준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형님이 잘 풀리면 너한테도 소개시켜줄게. 저번에 사진 봤는데 친구들도 다 예쁘더라.”

“착실하게 생활하는 준후한테 괜히 바람 넣지 마.”

잠자코 있던 아영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성호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반박했다.

지금 준후에게 애인 생기는 게 불편한 거냐고.

혹시 질투하는 거냐고.

아영은 아니라고 극구 부인했다.

연애라…….

두 사람이 툭탁거리는 동안.

준후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연애라면 무림에서 딱 한 번 해봤었다.

협객행 중 만난 천씨세가의 천 소자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혼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준후는 천 소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마두 적일도에게 당한 아버지의 복수.

그리고 세가 무인들의 복수.

이를 위해 무공에 매진하느라 천 소저를 항상 뒷전에 두었다.

사정이 현대라고 해서 달라질까.

준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준후는 환자들을 위하는 참 외과의가 되기 위해 오래전부터 전력을 다해왔다.

연애를 한다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게 분명해 보였다.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항상 응급 콜을 대기하다가 응급 수술을 해야 할 테니까.

아무래도 연애는 준후와 인연이 아닌 듯했다.

“나 근처 쇼핑몰에서 옷 살 생각인데 같이 갈래?”

성호가 먼저 떠난 후 아영이 제안했다.

정한은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으며 준후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시간에 맞춰서 집에 가기만 하면 됐다.

중간에 비는 시간은 모처럼 친구들과 보내도 좋을 듯했다.

“아영아. 이 기회에 우리 둘이 준후, 옷 좀 챙겨주자.”

“그거 좋은 생각이네.”

“너희 둘, 이상한 작당 모의 하네. 내 옷이 뭐가 어때서?”

성한과 아영의 태도에 준후가 퉁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네 패션 센스 너만 인정 못 하는 거 알지? 이제 좀 받아들여라. 얼굴로 옷 커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성한이 쯧쯧쯧 혀를 찼다.

동료들 사이에서 준후는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놀림을 받는 중이었다.

한 마디로 옷을 더럽게 못 입는다는 뜻이었다.

물론 준후는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발이 편한 형광색 신발.

통기성이 좋은 펑퍼짐한 바지.

어디서든 눈에 띄는 화려한 체크무늬 셔츠(다른 사람이 도움을 청하기 쉬우니까).

준후는 자신의 패션에 나름의 자부심과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준후가 자신의 패션을 설명하자 성한과 아영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맞아. 맞아. 옷을 잘 입으면 훨씬 더 눈에 띌걸?”

성한의 말에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돈 쓸 각오해.”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쇼핑몰.

준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두 사람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가지각색의 옷을 살폈는데 준후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태도였다.

그 옷이 그 옷처럼 보였으니까.

생각해 보면 무림은 옷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서 참 편했다.

장포나 무복을 걸치면 끝이었기에.

쇼핑몰에 입성한 후 1시간.

준후는 성한과 아영의 마네킹 신세로 전락했다.

탈의실을 뻔질나게 돌아다니며 이 옷 저 옷을 입어봐야 했다.

하지만 좀 피곤하긴 해도 오늘만큼은 친구들의 장단을 맞춰줄 생각이었다.

내심 두 사람의 패션 센스가 궁금하기도 했고.

쇼핑이 끝난 후 준후의 두 손은 무거워져 있었다.

바지 2벌.

상의 2벌.

운동화 2켤레가 쇼핑 봉투 안에 들려 있었다.

심지어 향수까지!

무려 30만 원가량 되는 거금을 써야 했지만 부담되는 액수는 아니었다.

모아둔 장학금도 있고 과외비도 받고 있으니까.

“크. 완전 딴 사람 같네. 배우라고 해도 믿겠다.”

“진짜 멋있어. 내가 알던 준후가 아닌 것 같아.”

준후는 둘이 바람을 잡는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실제로 두 사람이 챙겨준 대로 입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준후를 훔쳐보기 바빴다.

특히 여성들의 시선이 따가울 정도였다.

준후는 분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패션 센스가 두 사람의 패션 센스에 한참 못 미친다는 사실을.

피지컬을 발휘하는 일.

또는 의학 지식과 처치에 관련된 일.

이 두 가지를 제외한 일상적인 부분에서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준후는 쇼핑몰을 나와 근처 카페에서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정한은 곧 떠났고 사는 동네가 같은 아영과는 집 근처까지 동행했다.

“향수도 잘 산 것 같아. 향수 냄새 참 좋다.”

아영이 문득 향수를 화제로 꺼냈다.

“이런 냄새 좋아해?”

“응. 청량한 과일 향이랑 스킨 냄새 나는 거. 여자들은 그런 향수 쓰기 힘들 거든.”

“뭐야, 그럼 향수 취향은 아영이 네 취향이었네? 어쩐지 대뜸 이 향수부터 추천하더라.”

준후의 지적에 아영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꼬…… 꼭 그런 건 아니야. 여자들이 좋아하는 남자 향수로 검색해 봐. 그 순위에 있는 향수야.”

“…….”

“나 그만 갈게. 내일 보자.”

허겁지겁 떠나는 아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준후는 휴대폰 앱에 해당 검색어를 입력했다.

준후가 쓰는 향수는 그 어떤 순위에도 없었다.

순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

아영이도 은근히 귀엽단 말이지.

* * *

집에 돌아온 준후는 오랜만에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보통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밤 11시쯤 귀가해 혼자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건강했다.

준후가 꾸준히 진맥하며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추궁과혈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사업 빚을 다 갚고 마음이 편해진 것.

두 분이 일을 대폭 줄인 것도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은 좀 이상하시네?’

식사를 하던 도중 준후는 아버지에게서 불길한 낌새를 발견했다.

아버지는 자주 얼굴을 찌푸렸다.

아랫배에 손을 올리기도 했다.

평소라면 보여주지 않았을 행동들이었다.

“배가 불편하세요? 체하신 거예요?”

식사가 끝난 후 준후는 안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아버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버지의 고통은 준후의 고통이나 다름없었다.

눈에 흙이 들어와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별일 아니란다. 뭘 잘 못 먹었나 봐.”

“저녁은 저랑 같이 드셨잖아요. 점심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드셨고요.”

준후는 음식에는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날씨도 아직 쌀쌀해서 음식이 상했을 염려도 없을 테니…….

그렇다면 아버지를 괴롭히고 있는 복통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그것을 밝혀내야 했다.

이미 의사 면허를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는 준후라면 충분히 그 이유를 밝혀낼 수 있으리라.

“하긴 그것도 그렇지? 요 며칠 전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프더니 오늘은 유독 심하구나.”

아버지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간헐적인 복통이 또 일어난 모양이었다.

준후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문진을 이어나갔다.

복통의 형태와 주기.

언제 복통이 가장 심한지, 또 언제 가장 버틸 만한지 등등을 상세하게 물었다.

아쉽게도 건진 것은 없었다.

“잠깐 누워보실래요?”

“눕기까지 해야 하니?”

“네. 예비 의사 말 안 들으실 거예요?”

준후가 의사라는 단어를 꺼내자 아버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누웠다.

준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버지의 우측 하 복부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렀다가 떼는 것이었다.

충수돌기염을 진단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어떠세요? 손가락을 눌렀다가 땔 때 더 아프지는 않아요?”

“아니. 별 차이 없는걸?”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버지.

반사통이 없는 걸 보면 충수돌기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대체 아버지는 왜 복통을 호소하는 걸까.

섭취한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면.

충수돌기염이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아구구구.”

아버지가 신음을 내며 왼쪽 옆구리에 손을 얹었다.

말은 복통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옆구리 쪽 통증이 복부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자세한 검사를 할 수 있는 병원에 가는 게 가장 확실하겠지만 준후는 그 전에 한 가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잠깐, 가만히 계세요.”

준후의 아버지의 왼쪽 옆구리에 손을 올린 뒤 내공을 흘려보냈다.

내공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파동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초음파 검사를 내공으로 대신한 것이다.

예전에는 해부학적 지식을 갖추지 못해서 상상만 했던 일을 지금은 해낼 수 있었다.

준후는 손의 위치를 바꿔가며 아버지의 왼쪽 옆구리를 전반적으로 살펴나갔다.

여기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준후는 문제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배꼽에서 왼쪽으로 3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곳.

그곳에서 특이한 내공 반사가 느껴졌다.

일직선으로 쏘아낸 내공은 혈관과 신경을 반사하며 다시 준후의 손바닥으로 되돌아와야 하는데.

반사 파동이 왜곡된 장소가 있었다.

그리고 해당 장소의 위치는 요관이었다.

드디어 풀린 수수께끼.

아버지는 요로 결석을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로결석이란 소변이 나오는 통로에 돌이 생기는 질환이었다.

응급질환은 아닌 편이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오죽하면 환자들이 칼로 배를 찢는 듯한 아픔이 느껴진다고 표현할까.

“아버지, 요새 소변볼 때 많이 힘드셨죠?”

“그건 어떻게 알았니?”

“저 의대생이잖아요.”

준후는 일부러 센 척을 했다.

사실 예과생은 일반 대학생과 차이가 없었지만 아버지의 신뢰를 얻기 위함이었다.

아버지가 소변볼 때도 힘들다고 말했다면 좀 더 일찍 요로 결석을 알아차렸을 텐데.

소변 쪽이라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건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병명을 알아서 다행이었다.

“아버지, 지금 병원 가셔야 해요.”

“무슨 병인데 병원씩이나 가야 하니?”

“요로결석이라는 질환이 있어요.”

준후는 요로결석에 대해 설명했고 아버지는 이를 진지하게 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은 준후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까짓거 진통제 먹고 버티지 뭐. 내일 일도 나가야 하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몸이 최우선이에요.”

“괜찮아. 왜 아프고 어디가 아픈지 알았으면 됐어. 주말에 시간을 내보마.”

아버지는 단호하게 병원행을 거절했다.

병원 가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또는 쓰러질 때까지 고통을 참는 사람이 있는데 아버지가 그런 타입이었다.

아버지. 왜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십니까?

준후는 그렇게 따져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요로결석이 자연적으로 배출되는 경우도 있으나 아버지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복통이 너무 심했으니까.

요로결석의 가장 대중적인 치료법이라면 ESWL(체외충격파쇄석술)이긴 한데…….

이맛살을 찌푸리던 준후는 기가 막힌 묘수를 떠올렸다.

ESWL(체외충격파쇄석술).

내 손으로 직접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기공 중 하나인 통배권의 이치를 응용해서.

그러니까 내공을 정밀하게 조종해서 결석만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

화경까지 도달해 봤던 준후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 까짓거 해보자.

아버지가 고통스러워하는 걸 눈 뜨고 지켜볼 수만은 없어.

준후는 각오를 굳히고 아버지의 옆구리에 다시 손을 얹었다.

“금방 끝날 거니까 가만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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