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32화
제7장 본과(2)
결석이 존재하는 요관 위에 준후는 손바닥 중앙을 얹었다.
긴장할 필요 없어.
이치는 통배권을 펼칠 때와 똑같아.
단지 범위를 통배권보다 좁히고 내공을 실체화하는 시기를 조금 늦추면 되는 거야.
준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바닥 중앙으로 내공을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극히 미세한 양의 내공을 피부 안쪽으로 통과시킨 후.
내공이 피부와 근막층을 지났을 때.
그때가 바로 승부처였다.
준후는 순간적으로 쏟아붓던 내공의 양을 두 배로 늘렸다.
우우우웅.
기묘한 공명음.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어나듯 퍼져나가는 내공.
내공이 실체화되자 아버지의 복부가 한 차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어이쿠! 이건 뭐니?”
아버지가 화들짝 놀라서 물었다.
내공이 충격파로 전환되는 감각이 낯설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마사지 잘하는 거 아시죠? 이건 새로운 복부 마사지예요.”
준후는 당황하지 않고 둘러댔다.
“그…… 그러니? 그래도 너무 기분이 이상한걸?”
“저만 믿으세요. 아버지 아들이잖아요.”
아버지를 안심시킨 후.
준후는 방금 펼친 내공 체외충격파쇄술을 평가해 보았다.
오랜만에 고급 무공을 펼쳤지만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내공을 충분히 자신의 몸처럼 통제할 수 있었다.
충격파 형태의 내공은 정확하게 요관만을 강타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가자.
준후는 충격파 형태로 전환한 내공을 다섯 번 정도 더 쏘아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느라 진이 빠지고.
내공이 빠르게 소모되면서 아랫배가 욱신거렸지만 견뎌냈다.
아버지만 건강할 수 있다면.
이 정도 고생은 수천 번도 감당할 수 있었다.
성공했으려나?
헛고생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처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준후는 내공을 충격파가 아닌 초음파 형태로 다시 전환해서 방출했다.
곧 드러났던 놀라운 사실.
내공 체외충격파쇄석술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내공 반사에서 아무런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괴롭히던 요관은 충격파에 영향으로 잘게 바스러진 듯했다.
와! 해부학 지식과 내공이 만나니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비뇨기과 전문 의원.
또는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실시하는 처치를 직접 소화하다니…….
준후는 본인이 한 처치에 본인이 감탄했다.
이 정도라면 가히 신의 손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았다.
“이제 끝났니?”
아버지가 물었다.
“네. 근데 아프시니까 소주는 금지예요. 대신 물 많이 드시고요. 아마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혹시 아니라면 저랑 병원에 가시고요.”
“그러마. 고생했다. 우리 아들.”
“이 정도야 고생 축도 못 끼죠.”
처치를 마친 준후는 방으로 돌아와 생각에 빠졌다.
이쯤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내공으로 펼칠 수 있는 처치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그것들은 분명 먼 훗날 외과의가 된 준후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 * *
다음 날 오전.
형석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찾았다.
아들의 말대로 술 대신 물만 마셨더니 아랫배가 빵빵했다.
오죽하면 담벼락에 소변을 보는 꿈까지 꾸었을까.
“끄으으응.”
형석이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아들의 마사지 덕분일까.
어제 느꼈던,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통증의 강도가 약해진 것이다.
쏴아아아!
“휴우. 살겠네.”
형석은 시원하게 소변을 보던 중 무언가가 톡 하고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아들이 말한 결석이란 게 바로 저것인 듯했다.
결석은 꼭 감자탕의 뼈 부스러기처럼 생겼는데 저런 것이 소변 길을 막고 있었으니 통증이 심했던 모양이었다.
잔 소변까지 배출하고 나자 형석은 한결 홀가분했다.
지난 며칠간 형석을 괴롭혔던 복통 또한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마치 신기루였던 것처럼.
형석은 안방으로 돌아가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역시 우리 아들 손은 약손이라니까.”
* * *
사계절이 두 번 지나면서 준후의 예과 생활은 끝이 났다.
2년 동안 준후는 고3 수험생처럼 생활했다.
주된 스케줄이라면 1순위가 의학 지식 공부.
2순위가 영어 말하기·듣기·읽기·쓰기 공부였다.
나머지 시간에는 틈틈이 의료 에세이 읽거나 의학 드라마도 시청했다.
학점은 당연하게도 올 A+.
수정의 과외는 예과 1년 차에 끝났지만 소개를 받아 다른 과외도 꾸준히 했다.
과외비의 절반은 꼭 제트 코인에 투자했고.
2년이 지날 때까지도 제트 코인은 잡 코인 취급을 받았지만 준후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호의 판단을 믿기로 했으니까.
그사이 의료사고를 일으킨 태정병원의 판결도 나왔다.
수술을 집도했던 원장은 의사 면허 취소 처분과 함께 과태료 3억 원.
유가족에게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원장은 항소했지만 판결이 뒤집힐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죄를 덮기에 원장은 너무 많은 증거를 남겼다.
그리고 그 증거를 준후는 완벽하게 찾아냈었다.
또한 태정 병원은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배우 김태훈의 의료사고.
경태 아버지의 의료사고.
이 두 가지가 기폭제가 되어 수많은 유족들이 태정병원에게 줄줄이 의료 소송을 냈던 것이다.
평판이 나락까지 떨어진 태정병원을 찾을 환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총 4년 동안 진행되는 본과 수업의 막이 올랐다.
동기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받았다.
수업 시간표는 공강 없이 빡빡했다.
익혀야 하는 의학 지식들은 산더미처럼 쏟아졌고 하루를 건너 쪽지 시험도 쳐야 했다.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
하지만 준후에게는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의대에 입학하기 전부터 본과 공부까지 끝내놓지 않았던가.
준후에게 본과 수업이란 그저 익힌 지식을 복습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여름 방학이 지나고 본과 1년 차 2학기 수업의 막이 올랐다.
첫 수업은 준후가 손꼽아 기다렸던 해부학 실습 시간이었다.
* * *
“으…… 드디어 올 것이 왔네.”
성호가 교실에 걸린 벽시계를 쳐다보며 진저리를 쳤다.
현재 시각은 오전 9시 40분.
오전 10시 10분부터 해부학 실습이 있었다.
“난 외과 갈 생각도 없는데 꼭 해부까지 해야 하나?”
“형, 말 한번 잘했네.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
성호의 말에 정한이 맞장구를 쳤다.
겁에 질린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해부학 실습을 두려워하고, 꺼려 하고, 어려워했다.
교실 분위기는 아까 전부터 초상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체는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무서워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준후는 동기들과 달리 떨지도, 긴장하지도 않았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에게 죽음은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었다.
무림에서 무림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어디 그뿐이랴.
머리가 잘려나가고, 팔다리가 썰리고, 내장이 튀어나온 시신들도 부지기수로 목격했다.
심지어 무림에서 준후는 한 번 죽어보기까지 했다.
죽을 때 엄습하는 육체적인 고통.
삶을 되돌아보면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자책하며 느끼는 정신적인 고통까지 맛보았다.
그래서 준후는 알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그래서 준후는 외과의를 선택했다.
환자들이 질병이나 사고를 이겨내고 소중한 인생을 하루라도 더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후, 너도 무섭냐? 오늘은 유독 한 마디도 없네?”
성호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준후가 침묵하고 있는 것이 두려워서라고 착각한 듯했다.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에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형, 편한 대로 생각해. 아영아, 넌 괜찮아?”
준후는 오히려 아영을 걱정했다.
아영은 고3 수능 당일 과호흡 증후군을 앓았던 전적이 있었다.
긴장을 잘하는 아영이었기에 해부학 실습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나도 괜찮아. 어차피 이겨내야 하는 거니까.”
아영이 비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영은 아버지를 심장병으로 잃은 후 흉부외과의를 꿈꾸고 있었다.
외과의가 목표라면 더더욱 해부학 실습을 극복해야겠지.
그래서 준후는 아영에게 일부러 추궁과혈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는 혼자 이겨내야 하는 시련도 존재하는 법이니까.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교실을 벗어난 준후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
남학생 셋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셋은 동기 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승범 패거리였다.
우두머리 격인 승범은 재수해서 의대에 입학했는데 하는 행동이 껄렁껄렁했다.
마치 무림에서 종종 봤던 시정잡배 같았다.
수업 태도는 엉망이었고 대리출석도 서슴지 않았다.
아영을 비롯한 여학생들에게 치근덕거리는 건 기본이었고.
동기들이 한 살 어리다고 무례하게 굴기 일쑤였다.
도대체 어떻게 의대에 입학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들 여기서 뭐 해?”
준후가 까칠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등학교 일진도 아니고.
나이도 적당히 먹은 녀석들이 왜 이러나 싶어서 불쾌했다.
“보시다시피 담배 피우지. 왜 너도 한 대 태울래?”
승범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화장실이 언제부터 흡연구역이었지?”
“너도 흡연자 입장이 되어 봐. 담배 피우려면 10분 넘게 걸어야 한다고. 오늘만 그냥 넘어가라.”
“말 같지도 않은 변명 집어치우고 당장 담배 꺼.”
“서준후, 형한테 말이 좀 심하다?”
승범이 눈을 부라리며 준후에게 다가왔다.
“해부학 실습이 긴장돼서 그냥 한 대만 빨고 가려는 거라고. 응? 그것도 이해 못 해?”
“이해는 너희가 해야지. 사회 예절이 뭔지를.”
“하…… 이 새끼 공부 좀 한다고 기어오르네. 다들 떠받들어주니까 네가 정말 잘난 것 같지? 이 X만아.”
까부는 승범을 지켜보며 준후는 코웃음을 쳤다.
승범은 알고 있을까.
지금 자기가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 웃냐? 내가 우스워?”
얼굴을 와락 구긴 승범이 담배를 떨어뜨리고 대뜸 주먹을 날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주먹.
준후는 손바닥으로 승범의 주먹을 받아낸 후 악력으로 조였다.
“아으으윽!”
승범이 괴로워하며 꼴사납게 몸을 비틀어대길래 준후는 승범의 복부를 뻥 걷어찼다.
승범이 우당탕탕 화장실 바닥 위로 넘어졌다.
“왜? 껄렁껄렁하게 나오면 내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이라도 갈 줄 알았어? 이 X만아?”
준후는 승범이 했던 말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이런 쓰레기가 나중에 의사 면허증을 따서 자신과 같이 의사로 활동한다는 사실이 준후는 역겹기 짝이 없었다.
방금 같은 양아치 짓거리를 환자나 보호자에게도 고스란히 할 테니까.
마치 태정병원의 원장처럼.
그래서인지 몰라도.
준후는 의사 고시에 인·적성 평가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새끼, 너 나 쳤냐?”
“먼저 주먹 휘두른 건 생각도 못 하네. 역시 너답다. 정 꼬우면 셋이서 같이 덤비던가.”
준후는 승범에게 시선을 거두고 나머지 두 학생을 바라보았다.
두 학생은 이미 기가 질린 분위기였다.
알아서 담배를 끄고 준후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나머지 둘은 적어도 승범보다는 눈치가 있는 것 같았다.
“존나 재수 없네. X발, 오늘 일은 가만히 안 넘어간다.”
승범이 몸을 일으키고 준후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안 넘어가도 상관없는데 네가 떨어뜨린 꽁초는 가져가.”
“…….”
“맞고 가져갈래? 그냥 가져갈래?”
준후의 살벌한 눈빛을 이기지 못한 승범이 담배를 발로 비벼서 끄고 담배를 챙겨 화장실을 떠났다.
화장실은 그제야 평화를 되찾았다.
무림이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
무림이었으면 넌 내 손에 뼈도 못 추렸어.
준후는 볼일을 보고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때마침 해부학 실습실로 이동할 타이밍이었기에 동료들과 실습실로 이동했다.
입고 있는 옷 위에 가운을 걸치고 실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하기 무섭게 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인상을 찌푸렸다.
표정 변화가 없는 건 준후 뿐이었다.
포르말린 냄새는 아니더라도 시체 썩은 냄새를 많이 맡아본 준후였기 때문이다.
실습실에는 총 8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테이블 위로 하얀 방포에 덮인 카데바가 누워 있었다.
카데바 실습을 통해 준후는 자신의 해부학적 지식이 한층 발전할 것을 기대했다.
아무래도 신체를 교과서의 이미지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감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편이 효과적일 테니까.
“지금부터 호명하는 사람이 한 조야. 호명하는 대로 테이블로 이동해.”
동행한 조교가 카데바 실습 조원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준후는 승범 패거리와 같은 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