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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3화 (3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3화

제7장 본과(3)

‘보면 볼수록 재수 없는 새끼네.’

승범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준후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승범은 준후가 싫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질투하고 있다는 게 가장 옳을 것이다.

외모면 외모.

학점이면 학점.

동기와 선배들의 평가면 평가.

준후는 모든 면에서 승범을 압도하고 있었다.

준후 때문에 승범은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한참 뒤처져 있다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다른 사람은 모를 것이다.

준후를 만나기 전까지 승범은 언제나 왕 대접을 받았다.

집에서는 잘 나고 사랑스러운 외동아들이었고.

바깥에서는 공부를 잘하며 대학병원 진료부원장 아버지와 대학 교수 어머니를 둔 엄친아로 부러움을 사 왔다.

그런데 의대에 와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승범이 받아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준후가 다 빼앗아가 버렸다.

승범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통곡할 노릇이었다.

‘X발 새끼, 설마 싸움까지 잘할 줄이야.’

승범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성실하고 인망이 두터운 인간은 보통 물리적인 위협이나 협박에 약했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준후와 시비가 붙었을 때.

승범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이 역겨운 놈을 손봐줄 기회가 왔구나 하고.

하지만 그것은 승범의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준후는 싸움도 잘했고 카리스마까지 갖췄다.

덕분에 승범은 꼴사납게 걷어차이고 화장실 바닥을 구르는 망신을 당했다.

이 새끼의 약점은 뭘까.

어떻게 해야 받은 굴욕을 갚아 줄 수 있을까.

승범의 머리는 아까부터 복수에 대한 집착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했다.

“머리 아프지 않아? 난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데?”

“난 눈물 나는 것 같아.”

승범과 같이 다니는 민준과 태현이 앓는 소리를 했다.

소갈머리 없는 놈들은 벌써 준후에게 당한 치욕을 잊은 모양이었다.

“벌써 징징대지 마. 실습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앞으로 3시간은 더 버텨야 돼.”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이딴 걸로 엄살은.”

민준의 말에 승범은 콧방귀를 꼈다. 앞에 서 있는 준후가 들으라는 듯 센 척을 했다.

잠시 후 해부학 실습 교수가 실습실로 들어왔다.

실습실에서 지켜야 하는 유의사항.

해부할 때 지켜야 하는 유의사항.

오늘 해부할 부위의 특징 등을 설명했다.

“지금부터 방포 걷고 실습을 시작한다. 해부는 한 명당 30분씩 진행하고 조원 한 명이 해부하는 사람을 보조하도록.”

드디어 해부학 실습의 막이 올랐다.

승범은 다짜고짜 카데바를 덮고 있는 방포부터 걷어냈다.

포르말린에 절여진 창백한 시체 한 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으로 마주한 사체에 조원들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누구는 눈을 질끈 감았고, 누구는 곁눈질을 했으며, 누구는 웩웩 구역질을 했다.

‘X발, 별거 아니잖아?’

승범은 속으로 키득거렸다.

다른 조원들과 달리 승범은 카데바가 두렵지 않았다.

좀비도 아니고 죽은 시체 따위가 왜 무섭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카데바란 의대생만이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란 생각까지 해보았다.

애초에 승범에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놀이었으니까.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을 조종하고, 부리고, 이용해 먹는 놀이 말이다.

카데바를 빤히 쳐다보던 승범이 준후의 표정을 살폈다.

준후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 잘난 놈도 카데바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크크크. 드디어 약점을 찾았네.

다른 애들 앞에서 망신 좀 당해봐라.

준후에게 엿 먹일 생각으로 들뜬 승범이 수술 도구가 올라가 있는 드레싱 카트 옆으로 이동했다.

준후에게 메스를 넘겼다.

“다들 무서워서 하니까 네가 1타로 해.”

* * *

‘이 새끼, 또 까불고 있네.’

준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승범은 화장실에서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듯했다.

메스를 내미는 태도에서 불순한 기색이 풍겼다.

하긴 단번에 고칠 수 있는 성격이면 애초에 화장실에서 담배도 안 피웠겠다지.

“…….”

준후는 말없이 승범이 내민 메스를 손에 쥐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카데바에게 묵념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망자가 되었지만 한 때 살아 숨 쉬었던 한 사람이 의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놓았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었다.

“왜? 쫄았냐? 내가 대신해 줄까?”

승범이 깐족거리며 물었다.

준후의 묵념을 두려움의 표시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해부로 우월감을 느끼려고 하는 승범의 태도에 준후는 지독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아니. 내가 먼저 해.”

준후는 차분하게 카데바를 훑었다.

카데바는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목에 푸른 빛 삭흔(끈의 흔적)이 선명하다는 점이었다.

스스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은 듯했다.

망자가 부디 내세에서 평안하게 살고 있기를 바라며 준후는 메스로 카데바의 가슴을 갈랐다.

해부학 실습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장기는 폐였다.

보통 실습은 손이나 발 같은 말단 부위를 먼저 해부하지만 교수는 이번 기수부터 가슴을 먼저 살피겠다고 했다.

스으으윽.

메스가 미끄러지면서 피부와 근막이 부드럽게 잘려나갔다.

‘확실히 느낌이 달라.’

무림에서 쓰는 검과 메스의 차이는 명확했다.

우선은 당연하게도 크기의 차이가 있었으며.

크기에서 파생되는 힘 조절 및 쥐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다.

처음 쥐는 메스의 촉감이 낯설었지만 준후는 말끔하게 가슴을 절개해 냈다.

한 번에 피부와 근막을 갈라놓았다.

절개창은 세로로 6센티미터 정도 되었으며 절단면은 자로 대고 그은 것처럼 깔끔했다.

마인들과 싸우면서 키운 대담한 정신.

무공을 연마하며 발달시킨 손놀림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었다.

준후는 처음 사용해 본 메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사람을 죽이는 검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검이 주는 촉감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외과의가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다른 동기들은 카데바에 손도 못 대고 다들 서로에게 메스를 떠넘기기 바쁜 상황이었지만.

“꾸물거리지 말고 절개해. 너희들이 나중에 진료할 사람들도 속은 다 이렇게 생겼단 말이다!”

교수가 호되게 학생들을 꾸짖었다.

그제야 학생들이 떠밀리듯 가슴 절개를 하기 시작했다.

무겁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수업.

교수는 학생들을 다그치며 해부를 지시했고 해부 중인 가슴의 구조와 기능 등을 설명했다.

그러던 도중.

교수의 눈에 1조의 카데바가 눈에 띄었다.

카데바의 가슴 절개창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깔끔했던 것이다.

절개창에 망설인 흔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대범하게 한 번에 절개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충분히 교수도 납득할 수도 있었다.

드물게 첫 수업부터 대담하게 절개하는 학생이 있기 마련이니까.

놀라운 사실은 절개창의 완성도였다.

1조의 절개창은 그 너비와 깊이마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마치 숙련된 외과의가 절개를 한 것처럼.

절개창을 자세히 보니 메스는 정확하게 피부와 근막층까지를 갈라냈다.

보통은 힘 조절을 못 해서 메스가 덜 들어가거나 더 들어가기 마련이거늘…….

“준후, 네가 절개했니?”

교수의 시선이 메스를 쥐고 있는 준후에게 머물렀다.

준후는 워낙 유명인사라서 교수도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네. 교수님.”

“솜씨가 제법이구나. 이번에는 좌폐 장측흉막(갈비뼈, 횡격막, 심장을 감싸고 있는 흉막)까지 갈라볼래?”

“알겠습니다.”

교수의 지시를 받은 준후가 메스로 카데바의 흉막을 갈랐다.

역시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준후는 정확하게 좌폐의 장측흉막만 갈라냈다.

메스는 횡격막을 건드리지도, 갈비뼈를 건드리지도 않았다.

완급 조절이 가히 예술이었다.

분명 메스를 처음 다뤄볼 텐데 이렇게까지 섬세할 수 있는 건가?

메스는 가뜩이나 날이 잘 들어서 힘 조절이 힘든데…….

이게 말이 되나?

교수는 하마터면 마음속에 맴돌던 말을 내뱉을 뻔했다.

“너희 조는 일단 대기해. 다른 조보다 진도가 빠르니까.”

“네. 교수님.”

교수는 일부러 준후를 칭찬하지 않고 다른 조로 이동했다.

섣부른 칭찬은 학생을 망칠 뿐이었다.

* * *

해부학 실습이 두 시간을 넘어간 시점이었다.

처음에는 동요하고 두려워하던 학생들도 차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젠 구역질을 하는 소리도, 학생들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며 나던 문소리도 줄어들었다.

다들 카데바에 적응한 채 실습을 하거나 실습을 참관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실습을 끝낸 준후 역시 같은 처지였다.

다른 조원들의 실습을 유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실습을 독식하고 싶었지만 그건 못된 욕심일 뿐이었다.

‘역시 아직 감당하기 힘든가 보네.’

준후는 조원들의 실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메스를 쥔 조원들의 손은 달달 떨렸다.

그 탓에 근육이나 신경, 혈관에 생긴 절개창이 고르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조원들의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시신을 목격하고 시신에 메스를 댄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고된 일이었다.

지금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준후야 무림을 경험했기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고.

어쨌거나 카데바를 보면서 교수의 설명을 들으니 신체에 대한 준후의 이해는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교과서로만 배웠던 신체를.

눈으로만 배웠던 신체를 오감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일까.

준후는 곁에 있는 조원을 보고도 그 속에 어떤 장기들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녀석인데…….’

준후의 시선이 문득 승범에게 머물렀다.

승범이 마지막으로 카데바를 해부 중이었는데 승범의 손속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무림에서 마주했던 사파인들처럼 거칠고 망설임이 없었다.

만약 조원들의 해부 솜씨를 줄 세운다면 준후 다음이 승범이 될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승범을 좋게 볼 수가 없었다.

똑같이 솜씨 좋은 검객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는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는 사람을 살린다.

승범의 실력이 어쩐지 전자에 사용될 것 같다는 불길함이 들었다.

“칼 쓰는 거 적성에 맞네. 어때? 너랑 비교해도 안 꿀리지?”

실습을 마친 승범이 준후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도발적인 시선이었다.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므로 준후는 침묵을 지켰다.

대신 카데바의 열린 가슴 사이로 보이는 폐를 응시했다.

카데바의 폐는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이제는 혈액이 돌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 특이하다고 할 만한 사항은 없었다.

준후가 폐를 주목했던 건 무림에서 폐와 심장에 부상을 당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불쑥 떠오른 옛 기억 때문일까.

준후는 괜히 가슴이 욱신거렸다.

마지막 조원들의 실습을 끝으로 해부학 실습의 막이 내렸다.

가운을 벗고 실습실을 나왔음에도 온몸은 이미 포르말린 냄새로 범벅이었다.

동기들은 자기 몸과 옷에서 나는 냄새를 킁킁 맡아본 후 기겁하기 바빴다.

“점심 먹어야 하는데 밥 생각 뚝 떨어지네.”

어느새 준후 곁으로 다가온 성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순대를 먹어도 허파는 못 먹을 것 같다.”

“금방 적응할 거야.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너 은근히 냉혈한이다?”

“가슴은 뜨겁더라도 머리는 차가워야지.”

준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던 중 실습 가운 주머니에 넣어놓고 온 식권이 떠올랐다.

“형. 나 잠깐 실습실 좀 갔다 올 게. 놓고 온 게 있어서.”

준후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실습실로 이동했다.

그런데 텅 비어 있어야 할 실습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뭐지?

누가 아직 남아 있나?

준후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실습실 문을 아주 살짝 열어젖혔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풍경에 경악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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