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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34화 (34/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4화

제7장 본과(4)

준후는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승범 패거리가 카데바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있었던 것이다.

승범은 엄지를 척 치켜세웠고 나머지는 둘은 팔짱을 낀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저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

고인 앞에서 예의를 밥 말아 먹어도 유분수지.

어떻게 타인의 죽음을 SNS 과시용 사진으로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승범 패거리는 준후의 예상보다 훨씬 질이 훨씬 나빴다.

‘그냥 넘어갈 순 없지.’

가슴은 뜨거웠지만 이성은 차가웠다.

준후는 휴대폰을 꺼내 승범 패거리가 하고 있는 짓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혹시라도 나중에 발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본인들의 업보를 잊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드르르륵.

“야, 너희들 진짜 인간적으로 너무하다는 생각 안 들어?”

증거 영상을 확보한 준후는 곧바로 실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는 사파인들을 처단하기 위해 사파인들 만큼이나 치밀하고 집요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뭐…… 뭐야?”

“형, 저 새끼 다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준후의 등장에 승범 패거리가 술렁거렸다.

실습이 끝난 지 10분이 지난 시점.

설마 누가 실습실을 다시 찾아올 거라곤 생각 못 했던 듯했다.

포르말린 냄새를 또 맡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승범이 오히려 뻔뻔한 태도로 나왔다.

본인의 잘못을 인정 못 하는 걸까.

아니면 본인이 잘못을 했다는 자각조차 없는 걸까.

두렵게도 준후는 후자가 진실인 것만 같았다.

“사진 좀 찍는 게 죄야?”

“당연하지. 사진 촬영은 안 된다고 실습실 규칙에 쓰여 있으니까.”

“아이쿠, 대단한 정의의 사도 납셨네.”

승범이 준후를 비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야, 카데바 전신을 찍은 것도 아니고 발바닥만 나왔다. 발바닥만. 이게 문제라고?”

승범은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촬영 범위가 아닌 촬영 자체가 문제라는 것을 망각한 듯했다.

“고인의 시체를 SNS 과시용으로 쓰는 게 문제라고. 너는 상식이 없니?”

준후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참 나 내가 카데바 앞에서 사진을 찍든, 춤을 추든 네가 뭔 상관인데?”

“너 때문에 우리 의대 사람들이 욕먹고 평판까지 떨어지면 상관이 있지.”

“너도 참 인생 답답하게 산다.”

승범이 쯧쯧쯧 혀를 찼다.

본인이 SNS에 사진을 올리며 댓글이 주르륵 달릴 거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의대생이 해부학 실습실에서 고생한다는 댓글이.

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저런 발상이 가능하지?

준후는 문득 승범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네가 X랄해도 소용없어. 이미 찍은 사진 올렸거든.”

승범이 씽긋 웃으며 휴대폰 액정을 내밀었다.

승범의 SNS 계정에 방금 찍었던 사진 중 하나가 올라간 것이다.

돌 아이인가.

시대가 현대가 아닌 무림이었다면 승범은 사파에서 탐냈을 인재였으리라.

하지만 준후는 차라리 잘 됐다 싶었다.

승범은 자기 무덤을 팠다.

설령 욕을 처먹고 게시글을 내린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다.

준후가 획득한 동영상과 녹음 파일은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을 테니.

“이야, 너 진짜 부럽네.”

준후가 빈정거리며 한마디 했다.

“무슨 뜻인데?”

“욕먹고 오래오래 살 것 같아서 부럽다고.”

준후는 녹음을 중지하고 식권을 챙겨 실습실을 떠났다.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았다.

* * *

“이야. 이 새끼들 완전히 미쳤네? 제정신이 아닌가 봐?”

“와,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상종을 말아야겠다.”

준후가 승범의 SNS 게시글을 보여준 후 성호, 아영, 정한이 보인 반응이었다.

네 사람은 점심 식사를 거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화제라면 당연히 승범이 실습실에서 보여준 망나니 같은 행동이었다.

동료들의 반응은 준후와 똑같았다.

그러니까 승범을 규탄한 준후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것이다.

준후는 찬찬히 승범의 게시글을 살폈다.

승범이 고생한다는 댓글을 달았던 사람은 다 승범의 친구로 보였는데.

나머지는 전부 타인으로 댓글창이 욕으로 도배가 되었다.

네가 사람 새끼냐.

너 같은 놈은 의대생 자격이 없다.

정신이 가출했냐 등등.

그런데 준후가 새로운 댓글을 확인하려고 리프레시 버튼을 누르자 게시글이 사라져 있었다.

둔한 승범은 이제야 알아차린 듯했다.

본인이 한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방금 게시글 지웠다.”

“어, 정말이네? 나도 욕 한 사발 적고 있었는데. 이렇게 빨리 내릴 줄 알았으면 캡쳐라도 해둘걸.”

아영의 말에 성호가 아쉬움을 내비쳤다.

하지만 하등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준후는 이미 게시글을 캡쳐했고 동영상과 녹음 파일까지 확보한 상태였으니까.

승범 패거리의 나락행 티켓은 예약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아영아, 너 해부 잘하더라?”

준후가 해부학 실습으로 화제를 돌렸다.

여린 성품의 아영이 해부학 실습에서 큰 고초를 겪을까 봐 걱정했는데 웬걸이었다.

준후가 간간이 훔쳐본 아영은 야무지게 실습을 소화했다.

카데바와 눈을 피하지 않았고.

헛구역질을 하지 않았고.

해부하는 손놀림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의외의 활약이었다.

“어제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있었거든. 난 흉부외과 전공할 거니까 실습을 더 잘해야 할 책임감도 있고.”

“나도 깜짝 놀랐다니까. 아영이가 1타로 해부할 줄은 몰랐어.”

아영과 같은 조였던 성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근데 진짜 흉부외과 가게?”

“응. 이제 다들 알잖아. 내 동생 사연.”

“알기야 아는데 고생할 게 눈에 훤히 보여서 그렇지. 형은 전공 정했어?”

정한의 시선이 성호에게 머물렀다.

“전공이야 성적 따라서 가는 거 아니겠냐. 마음 같아서야 피부과에 가고 싶긴 한데.”

성호가 언급한 피부과는 의대생들이 가장 탐내는 전공 중 하나였다.

입원 환자가 적으며.

타 과에 비해 입원 환자 관리도 무난한 편이었고.

설령 대학병원에 취직하지 않더라도 의원을 차리기 좋았으며.

의원을 차리면 비보험 치료가 많아서 수익도 좋았다.

“준후, 너는 무조건 외과 간다 그랬지? 지금도 변함없어?”

“물론.”

성호의 질문에 준후는 짧게 대답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준후는 외과의가 될 생각이었다.

무림에서는 사마외도를 처단하는 검객이었지만 현대에서는 각종 질환을 처단하는 검객으로 거듭날 계획이었다.

외과야말로 준후의 잠재력과 능력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럼 아영이 따라서 흉부외과 어때? 서로 알콩달콩 도우면서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도 생각 중이야.”

현재는 신경외과에 가장 마음이 갔지만 인턴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었다.

사실 준후는 외과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던 준후는 잠시 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요하게 처리할 일이 남아 있었다.

* * *

똑. 똑. 똑.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학과 사무실로 들어가니 조교 강하나가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준후구나? 무슨 일이야?”

“승범이 형 문제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그 사고뭉치가 또 왜?”

“대형사고 터뜨렸거든요. 놀랄 준비나 하세요.”

준후는 하나에게 다가가 그동안 모은 자료를 보여주었다.

SNS 게시글 캡쳐본.

승범 패거리가 실습실에서 사진을 찍던 당시의 동영상.

심지어 녹음 파일까지.

증거를 확인하는 하나의 이마에 주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머! 진짜 미쳤나 봐, 얘네들. 사람도 아니네?”

하나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진저리를 쳤다. 준후가 기대하고 원했던 반응이었다.

“이 정도 자료면 충분히 징계 먹일 수 있겠죠?”

“으음…… 내 소관이 아니긴 하지만 얼렁뚱땅 넘어가진 않을 거야. 학과장님이 이런 부분에서 되게 엄격하시거든.”

“…….”

“오늘 학과장님 수업 있으니까 내가 말씀드릴게.”

“감사합니다.”

준후는 승범에게 닥칠 징계를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암, 잘못을 했으면 달게 벌을 받아야지.

징계를 받는다고 승범이 제정신을 차리진 않겠지만.

앞으로는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은 하게 될 것이다.

이만해도 충분히 괜찮은 소득이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탐정 같네.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자료 모을 생각을 했어?”

하나가 감탄하며 물었다.

보통 사람은 준후처럼 판단하고 행동하기 힘들었다.

만약 하나가 현장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저놈들 또 머저리 같은 짓을 하는구나’하고 속으로 생각만 했을 것이다.

준후처럼 자료를 모아서 승범 패거리를 혼내 줄 생각은 못 했을 것이다.

그런데 준후는 반사적으로 멋진 활약을 했다.

하나가 탐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오래전부터 지켜봤지만 준후는 의대생 중에서도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나쁜 놈을 혼내줄 때는 나쁜 놈만큼 독해야 하거든요. 저 이래 봐도 엄청 독한 놈이에요.”

“하긴 수석 입학에 2년 내내 올 A+면 충분히 독하지.”

하나가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고 해부학 교수님도 네 칭찬하더라.”

“해부학 교수님이요?”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습 시간에 교수님께 칭찬받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가 차분하고 손놀림이 좋다고 하셨어요. 교수님이 지금까지 실습한 학생 중에 제일 솜씨가 좋았다고.”

“저는 못 들었는데…….”

“원래 대놓고 칭찬하는 분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나한테 들었다고도 하지 마.”

“네.”

준후는 입가에 가져간 손으로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그 무뚝뚝한 해부학 교수가 자신을 칭찬했다고 하니 기쁘긴 했다.

의과의의 자질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왕 학과 사무실에 온 김에.

준후는 하나와 좀 더 대화를 나누었다.

화제는 카데바에 관한 것이었다.

고인의 목에 남아 있던 푸른 삭흔(끈의 흔적)이 아무래도 신경 쓰였던 것이다.

“혹시 1조 카데바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나요?”

“있지. 안타깝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인데 가족분이 직접 사무실까지 와서 고인을 기증하셨어.”

“정말 실례지만 목을 매달아서 돌아가셨나요?”

“목을 매달긴 하셨는데 실패했고 돌아가신 건 결국 번개탄 때문이라고 들었어.”

하나가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하나의 대답은 거대한 망치가 되어 준후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 탓에 머리가 얼얼하게 울려왔다.

준후가 해부하며 확인한 카데바.

하나가 알려준 정보.

이 두 가지가 모순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인이 번개탄으로 목숨을 잃었다면 폐에 그을림이 존재해야 했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번개탄 연기를 들이마셨을 테니까.

하지만 준후가 기억하는 바에 따르면 고인의 폐에 그을림은 없었다.

준후가 잘못 봤을 리도 없었다.

오늘 실습 부위가 폐라서 2시간 동안 폐만 보고 있었으니까.

폐에 그을림이 없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

환자는 밧줄이나 끈으로 인한 경부압박 질식사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치에 어긋났다.

고인이 경부압박 질식으로 사망했다면 어떻게 스스로 번개탄을 피울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

고인은 자살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끈으로 고인의 목을 졸라 살해한 후.

번개탄으로 자살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현장을 조작했다는 뜻이었다.

문득 전신을 덮쳐오는 섬뜩한 기운.

준후는 자신의 추리가 맞는지 확인할 필요를 느꼈다.

“조교님. 고인에 대한 이야기,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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