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37화 (37/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37화

제7장 본과(7)

준후를 찾은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두 명은 형사였다.

어제 해부학 교수의 신고를 받고 사실 확인 차 준후를 찾아온 듯했다.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사람이 준후였으니까.

전후 사정을 묻는 형사들에게 준후는 또박또박 사실만을 전달했다.

자신이 본 것.

그리고 의학적인 진실이 가리키는 것만 이야기했다.

“본과 학생이 아는 것도 많네. 그것도 첫 실습 시간에 이상한 점을 찾아내고.”

안경 낀 형사가 감탄하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형사의 반응은 달랐다.

스포츠머리 형사는 준후의 주장이 미심쩍다는 듯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학생 제대로 본 거 맞아요? 폐에 그을림이 있었는데 못 본 건 아니고?”

스포츠머리가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솔직히 의대 측의 신고가 탐탁지 않았다.

실습 도중 카데바가 타살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어도 그의 경험과 지식상으로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대 측에서 뭔가 착오를 일으켰으리라 추정하고 있었다.

“제대로 봤습니다. 저만 사체를 확인한 것도 아니고 교수님도 함께 확인했고요.”

준후가 당당하게 말했다.

준후의 동체 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원체 시력이 좋았던 데다가 무림에서 안공(눈을 단련하는 무공)을 훈련했으며.

눈에 내공을 불어넣으면 루뻬(수술용 광학안경)를 끼지 않고도 루뻬를 낀 것처럼 시각 배율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이 착각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혹시 교수님까지 잘 못 본 건 아니고요?”

“이쯤 되면 저희 의대를 모욕하는 걸로 들리네요. 적당히 하시죠.”

준후의 목소리에 싸늘함이 묻어났다.

본과생인 자신이야 얕잡아 볼 수도 있다지만, 준후의 의학 지식이 의사급이라는 걸 모르니까, 교수까지 얕잡아 보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그쪽 형사님은 수사하는 게 귀찮습니까? 어째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를 바라는 말투네요.”

“어허. 학생 말이 너무 심한데?”

“형사님이 먼저 선을 넘었습니다. 저와 교수님을 싸잡아서 비하하셨잖아요.”

“선배, 그만합시다. 같이 내려가서 확인하면 되지.”

안경 낀 형사가 중재에 나섰다.

그제야 준후와 스포츠머리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이 끝났다.

대화를 마친 세 사람은 곧장 해부학 실습실로 이동했다.

가운을 걸치고 수술포를 열어젖혀 사체를 살폈다.

“아…….”

“아…….”

형사 두 명이 동시에 탄식을 흘렸다.

번개탄 연기 흡입으로 사망한 줄 알았던 고인의 폐는 깨끗했다.

그러니까 고인은 연기 질식사로 사망한 게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살 미수의 증거로 생각했던 목 부분의 상처가 고인의 진짜 사인(死人)이었다.

설골과 후두연골에 골절 소견이 있었던 것이다.

“잠깐, 근데 이거 학생이 해부하다가 이렇게 만든 거 아니야?”

스포츠머리 형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이 사람은 원래 의심이 많은 거야?

아니면 진짜 수사를 대충 끝내고 싶은 거야?

만약 후자라면 고인 사건을 덮은 건 스포츠머리일 것이다.

다만 준후는 이미 이런 그림을 예상하고 증거를 남겨 놓았다.

“사체를 조작해서 저희가 얻는 이득이 뭐가 있죠?”

“그거야 천천히 알아 볼 일이고.”

“뭐, 그럴 줄 알고 동영상을 찍어 놨습니다. 직접 확인하시죠.”

준후는 휴대폰에 있는 동영상을 형사들에게 보여주었다.

교수가 고인의 목을 해부하고 준후가 촬영했던 동영상이었다.

동영상이라는 완벽한 증거물을 확인하자 형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으리라.

고인이 자살이 아니라 원통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범인에게 죽음조차 능욕 당했다는 사실을.

“이제 속이 후련하십니까?”

“정말 학생 말이 맞네. 이건 명백한 살인사건이야. 그런 의미에서 이 카데바는 국과수에서 정밀 부검을 실시해야겠어.”

안경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서 절차대로 진행해 주세요.”

준후의 시선이 잠시 사체에 머물렀다.

고인이 명예를 회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준후는 그제야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 남은 건 진범이 잡혀서 죗값을 치르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선배, 유서는 어떻게 된 걸까요? 분명 현장에 자필 유서가 있었잖아요.”

안경 형사가 스포츠머리 형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유서 때문에 우리가 사건을 자살로 처리한 거잖아요. 유서는 아직도 설명이 안 되는데.”

안경 형사가 답답하다는 목소리로 화제를 돌렸다.

“내 말이 그 말이야. 강제로 유서를 쓰게 했다면 피해자는 두 손이 자유로웠고 그 손으로 피의자에게 저항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전 그 이유를 알 것 같네요.”

혼란에 빠진 형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준후가 나섰다.

무림맹에서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설마 이런 상황에서도 무림의 도움을 받을 줄이야.

“학생이 유서의 비밀을 안다고?”

“네.”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현장에 있던 건 유서가 아닐 겁니다. 아마 일기의 한 부분일 거예요.”

“…….”

“고인이 일기를 쓴다는 걸 아는 무척 친한 지인이 일기를 찢어서 유서처럼 위장한 거죠.”

준후는 형사들에게 유서 내용을 잘 상기해 보라고도 했다.

유서 치고는 내용이 좀 이상하지 않았었냐고.

“그리고 유가족분들에게 물어보세요. 고인이 일기를 쓰고 있었는지, 또 일기장에 찢긴 부분은 없는지.”

준후의 활약으로 사건의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일까.

형사들은 더 이상 준후를 의심하지 않았다.

곧바로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

유가족은 고인이 일기장으로 쓰던 다어어리를 보관 중이며.

다이어리를 꼼꼼히 확인하다 보니 한 장이 말끔하게 베인 채 누락됐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이번에도 준후 말이 맞았던 것이다.

“참 나, 학생은 전생에 탐정이었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고 살해방법까지 알아맞힐 줄이야.”

스포츠머리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본과 1학년생이면 고작 22살이었다.

의대에 다닌다고 해도 의학지식은 일반 형사보다 모자란 게 당연했다.

그런데 준후는 남달랐다.

카데바를 그냥 해부하지 않고 꼼꼼히 관찰하여 모순을 찾아냈고.

해부 동영상을 증거로 남겼으며.

유서의 비밀까지 밝혀냈다.

무늬만 20대고 속은 몇십 년 묵은 능구렁이 같았다.

“지식을 갖추고 의심하고 질문을 하다 보면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준후의 똑 부러진 대답에 스포츠머리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실로 완패였다.

“아까는 의심해서 미안했어요, 학생. 이것도 다 직업병이라…….”

준후에게 용서를 구한 스포츠머리는 후배와 함께 실습실을 빠져나왔다.

사실 고인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용의자가 한 명 있었다.

* * *

그 날 저녁.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준후는 해부학 교수 보성의 연구실을 찾았다.

그리고 형사를 만났던 일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보성이 준후에게 연락해 사건의 진행 사항을 듣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혹시나 사건이 다시 묻히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럴 염려는 없겠어.”

보성이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준후, 네 덕분이구나. 고인도, 유가족도 이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겠어.”

“교수님께서 제 말을 믿어주셨던 덕분도 크죠.”

준후는 공을 보성에게 돌렸다.

보성은 준후의 주장을 묵살할 수도 있었다.

본과 1년 차에 막 해부학 실습을 하는 녀석이 뭘 아냐며 준후를 꾸짖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준후의 말을 경청하고 그것을 확인하고자 발 벗고 나섰다.

보성의 탈권위적이고 개방적인 태도에 준후는 큰 감명을 받았는데.

그래서일까.

준후는 훗날 나이를 먹었을 때 보성처럼 열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역할은 아쉽게도 여기까지구나. 진범을 찾아 벌을 주는 건 형사들의 몫이니까.”

“네. 교수님. 그런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니?”

“교수님 밑에서 해부학과 법의학을 상세히 배우고 싶습니다.”

준후가 포부를 내비쳤다.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았다.

산 자를 치료하는 일 못지않은 게 죽은 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해부학을 파고들어 인체의 신비를 좀 더 깊게 탐구하고 싶다는 욕망을.

때마침 보성은 해부학과 법의학, 양쪽에 다 능통했으며 인성도 훌륭했다.

보성이라면 준후의 좋은 스승이 되리라.

“허허. 공부 욕심이 지나친 것 아니니?”

보성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본과 공부도 벅찬 시기인데 해부학과 법의학까지 따로 배우고 싶다고?”

“네. 전 할 수 있습니다.”

준후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의대 입학 전부터 이미 의사 면허를 딴 것이나 다름없는 의학지식을 갖춘 준후였다.

본과 공부만 하기에는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역시 저를 따로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실까요?”

“부족하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큰 상관이 없어. 너처럼 똘똘한 아이를 키우는 일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럼 받아주시는 건지…….”

“일단 테스트를 해보자꾸나. 네가 본과 공부와 내 개인 수업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싶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보성이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준후에게 내밀었다.

[해부학 전공자를 위한 기능 해부학.]

“이 책을 30페이지까지 암기해서 오거라.”

“기한은 언제까지죠?”

“내일. 자신 없으면 관두고.”

보성의 눈빛에 도발하는 기색이 또렷했다.

이 정도도 못하면 자신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꼭 무림맹의 입관 입학시험을 치르는 듯해서 준후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무림맹 입관 시험도 꽤 힘들었는데 말이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오전 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기대하고 있으마.”

연구실을 빠져 나온 준후는 곧바로 도서관을 찾았다.

휴게실에서 두뇌 영양제를 챙겨 먹은 뒤 열람실 의자에 앉아 30분 정도 운기조식을 했다.

영양제 효과가 발휘되면서 머릿속에 폭풍이 불어 닥치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

준후는 보성에게 받은 해부학 서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본과 해부학 교재의 내용을 참고하면서.

사실 근래에 대학 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있던 준후였다.

배워야 할 것을 미리 다 배우고 왔으니까.

하지만 심화 해부학과 법의학 공부라는 새로운 과제는 준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심화 해부학을 통해 인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법의학 지식을 통해 억울한 망자의 원한을 풀어준다.

그 열망으로 영혼이 뜨거워졌다.

준후는 자정까지 공부를 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보성이 낸 쪽지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하면서 보성의 비공식 제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 * *

본과에 올라오기 무섭게 준후는 다양한 사건을 맞닥뜨려왔다.

하나는 실습 중인 카데바가 자살이 아닌 타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걸 밝혀낸 사건이었고.

둘째는 승범이 카데바와 찍은 사진을 SNS로 올린 일을 응징하는 사건이었다.

준후의 맹활약 덕분에 두 사건 다 정의롭고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

우선 첫 번째 사건은 피의자가 일주일 만에 검거되었다.

피의자는 피해자의 직장동료였다.

피해자가 사내 비리를 폭로하려고 했고 피의자는 그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피의자는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했다.

경찰이 CCTV 영상과 전화 발신 기록으로 피의자를 몰아붙이자 직접 자백한 내용이었다.

승범을 혼내주는 일 역시 물 흐르듯이 흘렀다.

기자 태환이 승범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해당 소식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기사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승범을 손가락질했다.

비록 고인일지라도 사람을 존중하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의사가 될 수 있겠냐고.

사건이 커지자 이번 일을 무마하려던 학과장도 입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결국 학과장은 변명 같은 해명을 내놓은 뒤 승범에게 1개월 유기정학을 내렸다.

“너 이 새끼, 이거 다 네가 꾸민 짓이지?”

유기정학을 받던 날, 승범이 준후를 찾아와서 한 말이었다.

“난 모르겠는데?”

“거짓말하지 마. 이 뻔뻔한 새끼야. 너 말고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또 누가 있어?”

“난 진짜 모른다니까.”

준후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편이 승범을 놀려먹기 더 좋았기 때문이다.

화를 낼 일이 아니란다, 멍청아.

네가 뿌린 씨앗을 네가 고스란히 거둔 것뿐이라고.

준후는 속으로 승범을 조롱할 따름이었다.

“애꿎은 사람 의심하지 말고 꺼져줄래?”

“X발. 넌 진짜 내가 가만 안 둔다. 건수만 잡혀 봐. 박살을 내줄 테니까.

“그래. 이번에도 네 잘난 아버지한테 고자질하면 되겠다. 그치?”

승범에게 한 방 먹인 준후는 다시 평범한 학과 생활로 돌아갔다.

본과 쪽지 시험에서 매번 만점을 받았으며 보성의 해부학 및 법의학 개인 수업도 완벽하게 따라갔다.

그로부터 3년 하고도 9개월이 지났다.

마침내 졸업시즌이 다가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