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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2화 (4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2화

제8장 응급의학과(4)

“양 선생님, 나오세요. 저분들은 제가 응대할게요.”

준후는 양미라 간호사를 뒤로 물리고 응급실에 난입한 5명의 사내를 마주했다.

가까이서 보니 사내들의 외모는 훨씬 더 험상궂었다.

문신과 흉터는 기본이었고.

짜증, 난폭함,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표정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옷도 지저분했는데 어디서 다툼을 벌이고 온 조폭처럼 보였다.

가소롭군.

조폭들을 마주하고도 준후는 당당했다.

현대의 조폭 따위는 무림의 마두들과 비교하기에는 실례가 될 정도로 저급하고 약했다.

“서…… 선생님. 정말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일단 지켜보세요.”

준후는 미라를 안심시킨 뒤 자신과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조폭의 등장으로 응급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었다.

준후 말고는 어떤 스태프들도 조폭과 마주할 생각을 못 했다.

그저 겁에 질린 눈동자로 상황을 주시할 따름이었다.

“거기 가운데 있는 환자분이 다쳤죠?”

포문을 연 것은 준후였다.

“이 새끼, 눈치 한번 빠르네. 그래. 우리 형님이시다. 과도에 실수로 배를 찔렸는데 몇 바늘 꿰매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러니까 빨리 꿰매 봐.”

노란 머리의 설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누가 실수로 과도에 배를 찔린단 말인가.

준후는 벌써 짚이는 바가 있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치료를 받기 전에 접수부터 하고 오세요.”

“X발 새끼가 돌았어? 형님 얼굴 하얗게 질린 거 안 보여? 빨랑빨랑 치료부터 하라고!”

“그쪽이야말로 병원에 왔으면 병원 규칙을 지키세요. 설령 대통령이 와도 접수는 해야 합니다.”

“그래? 정말이야?”

노랑머리가 준후에게 다가와 거칠게 멱살을 잡았다.

“그럼 오늘부로 우리가 대통령보다 윗사람이네?”

“환자 대접해 줄 때, 좋을 말로 할 때 들어.”

“싸가지 없는 새끼. 머리에 피도 안 마르게 어디서 반말을.”

“웃기는 놈일세. 넌 반말을 해도 되고 난 안 되나?”

준후는 멱살을 잡고 있던 노랑머리를 손을 자신의 손으로 잡았다.

타인의 신체를 낚아채서 쥐는 금나수의 수법이었다.

으드드득!

“아아아악!”

준후가 악력으로 노랑머리의 손목을 움켜쥐자 노랑머리가 신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마 다른 사람 눈에는 이 광경이 신기하게 보이리라.

준후가 노랑머리의 손목을 비튼 것도 아니고.

단지 노랑머리의 손목에 자신의 손목을 얹었을 뿐인데 노랑머리가 자지러졌으니까.

이 녀석들, 운 좋은 줄 알아.

CCTV가 있고.

환자와 보호자, 스태프들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으니 이 정도지.

아니었으면 너희들은 개 박살 났어.

“너 이 새끼! 방금 무슨 짓을 했냐?”

“건방지게 우리 막둥이를 건드려?”

“의사라고 봐 줄줄 알았으면 오산이다.”

노랑머리가 제압당하자 다른 조폭들의 눈동자가 광기로 물들었는데.

준후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말을 곱게 한다고 해서 처먹을 놈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피지컬로 확실하게 제압하는 편이 나았다.

“아무도 제 쪽으로 오지 마세요. 절대요!”

준후는 주변 사람에게 경고한 후 응급실 북쪽으로 달렸다.

응급실 북쪽에 본관과 이어지는 긴 통로가 존재했는데 이곳에만 CCTV가 없었다.

환자들과 보호자, 스태프들의 시선도 그곳까지는 닿지 않았다.

“X새끼. 어딜 튀어?”

“넌 오늘부로 죽은 목숨이다!”

조폭 3명이 우르르 준후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아악!”

“빨리 경찰에 신고해!”

조폭들의 행동에 응급실 스태프들과 보호자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준후에게 접근하는 조폭들이 가위와 메스 따위를 손에 쥐었던 것이다.

꼭 살인사건이라도 벌어질 것 같은 끔찍한 분위기였다.

타다다다닥.

준후는 응급실 북쪽 통로에 도착한 뒤에야 걸음을 멈추고 조폭들과 마주했다.

“X새끼야, 이제 도망갈 때가 없지?”

한 조폭이 준후를 노려보며 이죽거렸다.

“유감이네. 내가 도망친 걸로 보인다니. 여기라면 너희들을 맘 편히 손봐줄 수 있거든.”

“X랄하고 자빠졌네. 네 상판을 가위로 쭉 찢어줄 테니까 어디 그 잘난 손으로 치료 좀 해 보시라고.”

쎄에에엑.

조폭 한 명이 가위로 준후의 얼굴을 푹푹 찔러왔다.

하지만 동작이 느리고 둔해 준후는 손톱만큼도 긴장하지 않았다.

빠아아악!

조폭의 가위를 피한 준후는 조폭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적당한 힘을 줘서.

너무 심하게 때리면 귀찮게 진료를 봐야 하니까 말이다.

“크으으윽.”

형편없이 엉덩방아를 찧는 조폭.

이 녀석의 꼴 사나운 최후는 준후에게 덤벼들었을 때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X발, X만 한 게 까불어?”

멸치처럼 호리호리한 사내가 다가와 준후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턱!

하지만 준후는 고개를 숙여 간단히 발차기를 피했다.

“뭐래? 까부는 건 너희들이구요.”

준후는 사내가 균형을 잡고 있는 왼쪽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쿵!

“아으으으윽.”

마지막으로 세 번째 조폭이 준후에게 달려들었다.

왕년에 복싱을 배웠는지 두 팔로 단단하게 얼굴을 가드하고 민첩하게 준후와 거리를 좁혔다.

후우우웅.

후우우웅.

복싱을 제대로 배웠는지 조폭의 주먹이 매서…… 울 리가 없었다.

역대 최고의 복싱 챔피언이 이 자리에서 다 같이 준후에게 덤빈다고 해도 준후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무림을 경험하고 내공을 갖춘 준후는 이미 초인 아니던가.

복싱을 조금 배운 걸로는 준후에게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시시하고 하찮은 잽을 몇 번 피해 주고.

준후는 주먹으로 조폭의 아래턱을 적당한 힘으로 올려쳤다.

퍼어어억!

가드를 뚫고 들어간 주먹은 정타였다.

서씨세가의 몇 안 되는 권법 중 하나인 풍신권이었다.

턱을 얻어맞은 조폭은 허공에 잠시 붕 떴다가 바닥에 떨어졌다.

준후는 조폭 3인을 단번에 제압한 후 조폭들의 혈을 짚었다.

잠시 말을 못 하게 아혈을.

난동을 부리지 못하면 운혈을 제압했다.

마음 같아서야 더 따끔한 맛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 할 일이 하나 남아 있었다.

“선생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조폭들이 벌써 뻗어 있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가드들이 현장을 확인하고 놀란 부엉이 눈을 했다.

조폭들이 난동을 부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가드들이었다.

메스와 가위까지 챙겼다고 해서 잔뜩 긴장했는데…….

이게 웬걸.

조폭들은 벌써 뻗어 있었다.

“갑자기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더라고요. 저도 황당해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준후는 가드들에게 대충 둘러대고 응급실로 복귀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어디 안 다치셨어요?

-야, 너 죽는 줄 알고 식겁했잖아.

-너무 무모했어요. 선생님.

주변에서 쏟아지는 걱정에 적당히 대꾸하고 준후는 조폭 두목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었다.

“너 수배 중이지? 수배 중이니까 떳떳하게 접수를 못 하는 거잖아.”

“크으으으.”

조폭 두목이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준후의 예상이 완벽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내가 무사히 돌아온 걸 보면 알겠지만 네 똘마니들, 다 쓰러졌어. 이제 어떻게 할래?”

“…….”

“얌전히 치료받고 감방 갈래? 아니면 감방 대신 저승 갈래? 선택은 네 몫이야.”

한참 침묵을 지키던 두목이 힘겹게 운을 뗐다.

“치료를…… 받지.”

“진작 그럴 것이지. 이봐, 노란머리 너희 형님 빨리 접수해. 근데 넌 도망치면 죽는다.”

“히이익! 아…… 알겠습니다.”

노란머리의 접수를 확인하고 준후는 두목을 침상에 눕혔다.

아직 2차전이 남아 있었다.

* * *

두목을 침상에 눕힌 준후는 두목이 걸치고 있는 재킷과 상의부터 벗겼다.

이런…….

두목이 한 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누르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약국에서 구입한 것으로 보이는 거즈가 존재했다. 거즈는 당연하게도 피로 흥건했다.

병원에 오기 전 나름 응급처치는 했던 건가.

“양 선생님, 지혈 도구 좀 챙겨주세요.”

“네. 선생님.”

처치 도구가 오기 전 준후는 두목의 옆구리를 유심히 살폈다.

거즈로 덮여서 정확한 상처 부위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해부학적 위치로 봤을 때 비장이 파열됐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이날을 위해 갈고 닦았지.

준후는 강호에게 배운 해부학 지식을 떠올렸다.

비장과 연결된 주요 혈관들을 떠올리고 해당 부위를 점혈했다.

팟. 팟. 팟.

내공이 담긴 손가락이 두목의 비장 혈관들을 짚자 출혈량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예상되는 출혈점을 실체화한 내공으로 막아버린 덕분이었다.

“선생님. 뭐 필요하세요?”

드레싱 카트를 끌고 온 미라가 다급하게 물었다.

“일단 거즈부터 주세요.”

“네.”

준후는 미라에게 받은 거즈를 기존에 있던 거즈 위에 올린 후 양 손바닥으로 눌렀다.

거즈가 피에 젖었다고 해서 교체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그랬다간 출혈이 더 심해지니까.

“명훈아. 이리 와서 환자 바이탈 체크 좀 해줘. 치프, 이 환자 어떻게 할까요?”

준후는 명훈과 치프에게 신속히 도움을 청했다.

응급 자상(뾰족한 물체에 찔린 상처) 환자를 혼자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어. 알았어.”

“지금 간다.”

명훈과 치프가 헐레벌떡 준후 쪽으로 달려왔다.

방금까지 벌어진 일이 너무 영화 같아서.

너무 꿈만 같아서.

넋을 잃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이다.

‘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환자의 바이탈을 체크하며 명훈은 준후를 힐끗 훔쳐보았다.

준후는 명훈과 마찬가지로 병원 근무 생초짜였다.

인턴 근무 첫날이고 응급의학과 근무도 첫날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준후는 조폭들을 슬기롭게 다뤘으며 조폭 두목 앞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했다.

실로 강심장이었다.

혈압: 100mmhg/70mmhg.

맥박: 140.

체온: 36.3도.

호흡수: 분당 14회.

명훈은 환자의 바이탈을 확인하고 기겁했다.

환자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음이 수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환자 감시 장치까지 연결하고 심전도 그래프를 확인하자 그래프는 널뛰고 있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하필이면 근무 첫날부터 이런 초응급 환자라니…….

하늘은 가혹해도 너무 가혹했다.

“치프, 외상 초음파하고 소화기 외과 콜 할까요?”

“초음파? 차라리 CT를 찍는 게 낫지 않겠어?”

준후의 의견에 명훈은 반대 의견을 냈다.

명훈의 생각에는 초음파보다 CT 검사가 훨씬 간편하고 정확해 보였다.

“준후 말이 맞아. 환자 상태가 불안정할 경우에는 CT보다 초음파가 더 안정적이야. 초음파는 검사랑 처치를 같이할 수 있으니까.”

놀랍게도 치프는 준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준후는 단순히 강심장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상황에 어울리는 의료지식까지 똑 부러지게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명훈이 너 ABGA 잘할 수 있어?”

“그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치프의 질문에 명훈이 더듬거렸다.

“그럼 혈액팩 몇 개 챙겨오고 저기 노란머리한테 수술 동의서 받아와.”

“네. 치프.”

“준후, 너는 ABGA 채혈하고 포터블 초음파 챙겨오고.”

“네. 치프.”

치프의 오더에 따라 준후와 명훈이 바쁘게 움직였다.

동의서 작성, ABGA 채혈, 수액팩과 혈액팩의 연결 등등.

수술 전에 필요한 처치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져 갔다.

그런데도 환자의 상태는 갈수록 악화될 뿐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실시할 무렵에는 까무룩 의식을 잃고 말았다.

환자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수술이 필요한데 아직 수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X발. 일 났네. 비장 파열이다. 그것도 그레이드 ⅲ(3등급)야. 혈종파열에 기둥 혈관 손상까지 겹쳤어.”

초음파 검사를 끝낸 치프가 낭패라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비장 파열은 중등도를 총 4등급으로 평가하는데 3등급부터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이었다.

수술방에 들어가는 시간이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다.

“서준후, 소화기 외과 콜한 거 맞지?”

“네. 제일 먼저 콜부터 했습니다. 그쪽도 수술 준비 중일 테니 차라리 저희가 먼저 수술방으로 올라가죠.”

“그래. 그편이 낫겠다. 나랑 같이 가자.”

치프는 준후와 함께 침상을 끌고 수술방으로 향했다.

‘뭐지?’

그런데 준후가 침상을 끄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환자 무게가 더해진 침상을 끌고 이동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중 노동에 가까웠다.

그런데 준후는 침상을 자전거처럼 끌고 다녔다.

속도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이러다가 자칫하면 다른 과 스태프나 환자·보호자와 충돌할까 봐 주의를 주려고 했거늘.

무슨 감지 센서라도 있는지.

준후는 복도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차리고 귀신같이 피해갔다.

“너 무슨 침상 운전면허라도 따고 들어왔니?”

준후가 행동이 워낙 신출귀몰해서 치프는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본관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까지 딱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준후가 멋쩍게 웃으며 환자의 왼쪽 옆구리 부근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그러자 두꺼운 거즈 위에 감아 놓은 붕대.

그 붕대 위로 퍼져나가고 있던 출혈이 다소나마 줄어들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겠지?

치프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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