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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3화 (4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3화

제8장 응급의학과(5)

엘리베이터 안에서 보내는 찰나가 준후에게는 마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환자가 워낙 응급했던 탓이었다.

만약 외과의가 된다면 분명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시간에 쫓기게 되겠지.

층수를 확인하던 준후의 시선이 조폭 두목에게 머물렀다.

의식을 잃은 조폭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혈액팩과 수액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음에도 그랬다.

도덕적으로 큰 하자가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가.

내면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아까는 너무 다급해서 미처 떠올리지 못한 질문이었다.

사실 세상에는 죽어도 싼 인간이 존재한다고 준후는 믿고 있었다.

무림에서 만난 악인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 많았다.

멀쩡한 사람을 살아 있는 강시로 만든다거나.

고의적으로 사람의 팔다리를 잘라 불구로 만든다거나.

한 가족 또는 마을 사람을 무자비하게 몰살한다거나 등등.

무림의 죄인에 비해

현대의 죄인들은 비교적 얌전(?)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들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도덕적으로 큰 하자가 있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은가.

다시 한번 질문이 가슴을 울렸다.

의사로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반드시 답을 내려야 하는 질문이었기에 준후는 나름의 해답을 찾아냈다.

악인에게도 치료는 필요하다.

그것이 준후의 결론이었다.

악인도 다치면 환자고 환자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

……는 식의 인도주의적 입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준후는 그 반대였다.

악인이라면 치료를 받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를테면 갱생의 치료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인에게도 함부로 죽음을 허락해서는 안 됐다.

죗값을 치르려면 건강해야 할 테니까.

띵동!

때마침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알람 소리.

준후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열린 문틈으로 침상을 밀었다.

수술실을 향해 냅다 달렸다.

남들이 보기엔 무식해 보일지 몰라도 침상의 속도 조절 및 방향 조정을 기가 막히게 하고 있었다.

그러니 누군가와 충돌할 일은 없었다.

무공은 준후에게 크고 작은 영역에서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와, 벌써 왔네?”

수술실 앞에 도착하니 한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운을 보니 소화기 외과 레지던트 이영민이었다.

수술 준비를 마친 후 준후 일행을 돕기 위해 나온 모양새였다.

“비장 파열 그레이드 ⅲ(3등급) 환자입니다.”

“차트로 확인했어.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하던데…… 생긴 것도 엄청 살벌하네.”

영민이 환자를 훑더니 한 번 더 놀랐다.

“3등급 환자인데 이만하면 출혈도 엄청 잘 막았네. 보통은 시트가 피범벅이기 마련인데.”

“처치가 빨랐던 것 같습니다.”

준후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파열된 비장 혈관의 출혈을 점혈법으로 늦췄다는 말은 할 수 없었기에.

“그래. 고생했고 그만 들어가 봐. 나머지는 우리 과에 맡기고.”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준후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술방으로 들어가는 침상과 영민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할 일을 다했음에도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준후의 목표가 외과의라서 그럴까.

영민과 함께 수술방에 들어가서 수술을 돕고 싶었다.

검 대신 메스를 쥐고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

‘아쉽지만 외과 턴을 기다리는 수밖에…….’

걸음을 돌리던 중 준후는 동행했던 치프와 마주했다. 준후가 침상을 끌고도 치프보다 먼저 수술실까지 달렸기 때문이다.

“하아…… 하아……. 넌 헐크라도 되니? 어떻게 침상을 밀면서 나보다 빨라?”

“제가 원래 괴력의 사나이라서요.”

“참 나, 살다 살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치프는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다가 준후에게 휴게실에서 잠깐 쉬자고 제안했다.

휴게실에서 쉬는 동안.

치프는 준후에게 폭풍 질문을 던졌다.

조폭들을 어떻게 혼자 상대할 생각을 했냐.

두목에게 외상 초음파 검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냐 등등.

치프 입장에선 준후가 신기하기만 했을 것이다.

고작 인턴이, 그것도 근무 1일 차에 이만한 활약을 펼치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기에.

그 밑바탕에는 무림의 경험.

오래전부터 쌓아온 의학지식이 있었지만 준후는 이를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난한 가짜 대답을 지어냈다.

다행히 치프는 더 깊게 캐묻지는 않았다.

“응급실 근무하면 원래 저런 진상 환자가 많나요?”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병원에 있는 과 중에서 진상이 가장 많은 과가 응급의학과야. 일단 환자를 많이 보기도 하고. 알콜 환자(술 취한 환자)도 많고.”

“…….”

“무례한 노숙자도 많이 상대하니까.”

“…….”

“근데 나도 조폭은 처음 본다. 그 새끼들이 가위 들고 너한테 덤빌 때는 가슴이 벌렁벌렁했어.”

치프가 진저리치며 말했다.

아직도 그때만 떠올리면 식겁하는 모양이었다.

주변의 걱정과 달리 준후는 처음 마주할 때부터 조폭들이 귀여워 보였지만.

앞으로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수많은 진상을 만나겠으나 준후는 진상들이 두렵지 않았다.

준후가 두려운 것은 단 두 가지.

자신의 오진으로 응급 환자가 비응급 환자로 분류되는 것.

환자가 가야 하는 과를 잘못 연결시키는 것.

단 두 가지뿐이었다.

아직까지는 무난하네.

이 기세 대로 기본 처치를 배우고 환자를 진료·진단하는 실력을 키우자.

단독으로 진료 및 진단을 배울 수 있는 과는 응급의학과밖에 없으니까.

잠깐 대화가 끊긴 사이.

준후는 치프가 사준 커피를 들이켰다.

커피는 의사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마약이었다.

특히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은 물 대신 커피를 마셨다.

그러고 보면 커피는 의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에게 통용되는 마약이었다.

사회에서 살아남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리라.

“근무가 그렇게 힘든데 치프는 왜 응급의학과를 선택하셨어요?”

“솔직히 사명감 같은 건 없고 내 시간을 많이 갖고 싶어서. 하루 근무하면 하루 쉴 수 있잖아?”

“…….”

“휴가만 잘 붙이면 무려 3일도 쉴 수 있지.”

“쉴 때는 뭐하시는데요?”

“게임. 난 게임 좋아하거든.”

이게 바로 요즘 유행한다는 워라밸인가?

어쨌거나 준후는 치프의 대답이 솔직해서 마음에 들었다.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사실 얼마나 되겠는가.

일이란 원래 돈 벌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의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준후의 경우 워낙 특이한 케이스였고.

“그건 그렇고 준후 너.”

“네. 치프.”

“나중에 응급의학과 말뚝 박을 생각 없어? 내가 잘해줄게.”

치프가 준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근하게 말했다.

“글쎄요. 저는 외과를 전공할 계획이라서…….”

“외과? 네 실력으로 왜 사서 고생을 해?”

치프가 핀잔을 주듯이 물었다.

준후가 외과의가 되겠다고 말하면 한결같이 따라오는 반응이었다.

“고생한 만큼 보람도 있으니까요.”

“으음…… 구체적으로 어느 외과를 갈지는 생각해 봤어?”

“아니요, 아직. 인턴 돌면서 생각해 보려고요.”

“너도 알겠지만 기왕 외과 갈 거면 정형외과 가라. 의원 차리기도 편하고 수익성도 좋고.”

“…….”

“네 피지컬이면 레지던트들한테 사랑도 듬뿍 받을 테니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이이잉.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는 찰나, 가운에 넣어둔 휴대폰이 떨었다.

번호를 확인해 보니 응급실 콜이었다.

준후가 통화를 연결했다.

-쌤, 지금 응급실에 경찰 와 있거든요? 빨리 내려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 * *

응급실로 내려간 준후는 경찰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경찰들 곁에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조폭들이 찰떡처럼 붙어 있었다.

“저…… 저 새끼예요. 저 새끼가 우리를 때렸다니까요?”

“아이고, 의사가 사람 잡네.”

조폭들은 뻔뻔하게 사실을 왜곡했다. 본인들이 흉기를 들고 준후에게 달려들었던 사실은 입을 싹 닫은 채.

하지만 경찰도 바보는 아니었다.

응급실 스태프와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사정 청취를 했는데 조폭 편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조폭들을 욕하기 바빴다.

“저놈들 아주 나쁜 놈들이에요. 선생님한테 떼거지로 덤볐다니까요.”

“저 키 큰 사람은 가위도 들었어요.”

주변인에게 청취를 마친 경찰이 준후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억울하신 건 아는데 저 녀석들이 쌍방 폭행을 주장하면 저희도 조사가 필요해서요.”

안경 쓴 경찰이 엄지로 등 뒤의 조폭들을 가리켰다.

“괜찮습니다. 그럼 다 같이 CCTV를 확인하러 가실까요?”

준후는 먼저 당당하게 CCTV를 보러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조폭도 쌍수를 들며 환영했다. 어리석게도 자기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른 채.

준후와 조폭, 그리고 경찰.

일행들은 보안실로 내려가 CCTV 영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는 조폭들이 난동을 부린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드레싱 카트를 걷어차고.

가위를 든 채 준후에게 달려들었던 장면들이.

“당신들, 미쳤어? 애먼 선생님한테 죄를 뒤집어 씌어?”

영상을 확인한 경찰이 호통을 쳤다.

“아니! 맞은 건 저희들이라니까요. 저 의사 놈 보세요. 의사 놈은 멀쩡하잖아요.”

“멀쩡한 건 너희들도 똑같아. 그리고 선생님이 너희를 폭행했다고 했는데 그런 장면이 없잖아.”

“…….”

“그리고 의사 선생님 혼자서 너희들을 전부 제압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상황을 지켜보며 준후는 속으로 웃었다.

모두 준후의 계획대로였다.

조폭을 손봐줄 때 일부러 CCTV의 사각지대를 선택했다.

외상이 남지 않게 조폭들을 적당히 때려주었고.

준후는 힘뿐만이 아니라 지력에서도 조폭들을 한참 뛰어넘었다.

“이제 제가 무고하다는 걸 믿으시겠죠?”

“네. 확인 감사합니다. 이놈들, 완전 악질이네요.”

경찰이 조폭들을 노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반면 조폭들은 억울해서 미겠다는 표정이었다.

조폭의 입장에서는 답답(?)한 것이 먼저 난동을 부린 건 맞지만 결과적으로 얻어맞은 건 자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지구대로 갑시다.”

“하…… 미치겠네, 진짜.”

“너희들 미친 거 이제 알았어? 사람 치료하는 병원에서 난동이나 부리고 말이야.”

준후는 친히 조폭들이 경찰차에 타는 것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안경 쓴 경찰에게 물었다.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 있었다.

“선생님. 저 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

“저 사람들 처벌은 어떻게 되나요?”

준후의 질문에 경찰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처벌이 기대하신 것만큼 강하지는 않을 겁니다. 일단 업무상 업무 방해죄에 해당하는데…….”

“…….”

“집행유예에 벌금 정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고작 그 정도인가요?”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조폭을 상대했던 게 준후였길래 망정이지 다른 스태프가 조폭을 상대했다면 대형 사고가 터질 뻔했다.

떼거지로 난동을 부리고 가위를 든 채 설쳤는데 겨우 벌금만 받는다니…….

준후는 솜방망이 처벌에 부당함을 느꼈다.

“죄송합니다. 저희도 방법이 없어서요.”

“몇 년 전에, 응급실 의료진 폭행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이 통과되지 않았나요?”

준후가 알기론 환자가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면.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1억 원 이상의 벌금을 받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말한 처벌 수위는 너무 낮았다.

“그렇기는 한데…… 일단 다치신 분이 없기도 하고.”

“그럼 제가 저놈들한테 얻어맞고 가위에 찔렀어야 합니까?”

“아뇨. 절대 그런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법이 그렇게 제정이 돼서 어쩔 수가 없네요.”

경찰의 항변에 준후는 화를 누그러뜨렸다.

따지고 보면 경찰의 잘못은 없었다. 어차피 처벌은 사법부의 몫이니까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선생님께 화를 부렸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답답하실 테죠.”

경찰이 미안해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야말로 중요한 말씀을 못 드렸군요.”

“뭔가요?”

“지금 수술 중인 조폭 두목 말입니다. 신원을 조회해 보니 수배범이더군요.”

경찰의 설명이 그리 놀랍지 않은 준후였다.

접수 없이 진료를 받으려고 했을 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사실이니까.

“신고 포상금이 있는데 선생님께 신고 포상금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액은 2천만 원입니다.”

“…….”

“포상금 문제로 나중에 또 연락드릴 테니 알아두세요. 어쨌거나 고생 많으셨습니다.”

경찰이 깍듯하게 인사한 뒤 경찰차를 몰고 병원을 떠났다.

준후는 멀어지는 경찰차를 지켜보다가 문득 차가운 밤공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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