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45화 (45/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5화

제8장 응급의학과(7)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을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던 준후는 다음 목표를 금방 찾아냈다.

터벅. 터벅.

숙직실을 벗어난 준후의 행선지는 바로 흉부외과였다.

흉부외과에서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응급의학과 근무에서 가장 큰 난관은 응급 환자와 비응급 환자를 가려내는 일인데.

그 업무 중 준후가 주목한 것은 흉부외과 환자의 중등도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급성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은 문진과 검사로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만약 환자가 해당 질병의 초기 상태라면 말이다.

응급실에서 멀쩡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한 뒤.

몇 시간이 지나서 초주검으로 돌아오는 비극도 종종 있었다.

비록 준후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하는 동안.

준후가 그런 환자를 진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미리 대비하고 싶었다.

다른 의사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심혈관 질환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보고 싶었다.

‘부디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흉부외과로 이동하는 내내.

가슴은 기대와 걱정이 수시로 교차했다.

처음 해보는 시도이자 도전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런데 흉부외과에 다다른 시점이었다.

등 뒤에서 누군가가 접근하는 것이, 상대방이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준후는 몸을 살짝 옆으로 틀어 상대의 손길을 피했다.

“서준후, 넌 등 뒤에도 눈이 달렸냐?”

“달렸지. 그걸 이제 알았어?”

준후는 뒤를 돌아보며 상대와 마주했다. 준후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성호였다.

의대 시절 단짝으로 지냈던 3수생 형.

“소름 끼치네. 조폭을 상대한 뭔가 달라도 달라.”

“뭐야? 흉부외과에도 벌써 소문이 퍼졌어?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파다하지. 네 소식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빠를걸?”

“본의 아니게 유명인이 됐네.”

준후는 멋쩍게 웃었다.

주목받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준후는 항상 주목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런저런 사건에 엮이고.

또 그 사건을 해결하면서 이름을 알려왔다.

“너 원래부터 관종이었잖아.”

“내가 관종이라고? 에이, 그건 좀 아니지.”

“관종 맞잖아. 비자발적 관종. 크크크크.”

준후는 복도에서 성호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성호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었는데 흉부외과 인턴인 성호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수술방 인턴으로 수술방에서 몇 시간 어시스트를 섰으며.

어시스트를 서고 난 후.

병동으로 복귀해 병동 잡을 하다 보면 육체와 영혼이 갈려 나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준후는 외과 인턴을 하고 있는 성호가 부러웠음에도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힘들어하는 성호 앞에서 할 소리가 아니었기에.

“시간 있으면 잠깐 앉아 봐.”

“설마 전설의 마사지를?”

“맞아. 눈치도 빠르네.”

의대생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준후는 성호의 목과 허리에 추궁과혈을 펼쳤다.

뭉치고 긴장한 근육을 풀어주었다.

방금 막 홍삼으로 얻은 내공을 담아 점혈도 펼쳤다.

정수리에 위치한 백회혈.

관자놀이 인근에 태양혈.

뒤통수 중 움푹 파인 천추혈을 차례대로 지그시 눌렀다.

해당 혈에는 굵은 뇌혈관이 지나갔는데 이를 자극하면 머리를 맑게 만들 수 있었다.

과연 그 효과는 대단했다.

피로에 찌들었던 성호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와! 푹 잔 것처럼 개운하네. 역시 네 마사지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응급의학과 선배들한테도 해줬어?”

“…….”

“마사지만 해줘도 듬뿍 사랑받을 것 같은데 말이야.”

“당연히 했지. 그래서 별명도 약손이야.”

지이이잉.

때마침 울리는 성호의 콜폰.

성호는 전화를 받고 ‘네네’하더니 한숨 쉬며 통화를 끊었다.

“스테이션?”

“응. 환자 ABGA 채혈 좀 해달라고. 짜증 나네, 진짜. 병동 잡은 승범이 몫인데 이 새끼가 도통 일을 안 한단 말이지.”

“유승범도 흉부외과 근무였어?”

뜻밖의 소식에 준후가 놀랐다.

“어. 이 새끼는 자기 아빠가 진료부원장이라고 벌써부터 레지던트 4년 차처럼 군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승범은 인턴이 되어서도 개차반으로 근무하는 모양이었다.

승범과의 지난 악연들을 떠올리며 준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형이 고생이 많네. 오더는 내가 처리할 테니까 형은 그냥 수술실로 가.”

“진짜 그래도 돼?”

“나 오프 날이야. 시간은 넉넉해.”

“진짜 고맙다, 네가 사람을 살렸어. 마사지 고마웠고 부탁할게.”

발길을 돌려 멀어지는 성호의 모습을 준후는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오늘따라 성호의 뒷모습이 유독 애잔해 보였다.

인턴은 미생이었다.

의사는 의사였지만 아직 의사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

레지던트들은 물론이요, 간호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또는 수동적으로 지시만 따라야 하는 반노예였다.

그래서 1년의 수련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인턴들도 꽤 많았다.

다들 잘 이겨내기를 응원하는 수밖에…….

준후는 흉부외과 스테이션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 * *

병동이 한창 바쁜 오후 2시부터.

준후는 흉부외과 병동 잡을 도맡았다.

‘응급의학과 인턴이 왜 흉부외과 병동 잡을 도와요?’라고 간호사들은 놀라서 물었다.

준후의 케이스가 지극히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 어떤 인턴이 황금 같은 오프 날 타과 병동 일을 돕는다는 말인가.

하지만 준후는 심장질환 선 진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이 목표는 오직 흉부외과에서만 이룰 수 있었다.

그런 준후에게 흉부외과 병동 잡은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구나.’

잡다한 처치와 검사를 처리하던 준후는 한 병실로 이동하며 눈을 빛냈다.

ABGA 채혈을 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는데.

때마침 환자가 협심증 환자였다.

협심증이란 쉽게 말해서 심장동맥이 막히는 질환으로.

제때 수술이나 처치를 받지 못하면 환자는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드르르륵.

병실로 들어간 준후는 환자 앞에 섰다.

환자의 이름은 강철수.

나이는 62세.

이틀 뒤에 CABG(관상동맥우회술)가 예정되어 있었다.

보호자는 잠깐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환자분, 피 검사 하러 왔습니다.”

“또? 그거 너무 아프던데?”

환자가 얼굴을 찌푸렸다.

“안 아프게 해드릴게요. 저만 믿으세요.”

“다들 말은 그렇게 하지. 그 뭐야, 족제비처럼 생긴 선생도 그렇게 말 하더구만.”

족제비처럼 생긴 인간이면 승범을 말하는 것 같았다.

대체 ABGA를 어떻게 했길래 환자가 이런 반응이지?

준후의 호기심은 금방 해결되었다.

환자가 스스로 환자복 소매를 걷어 올렸는데 팔이 엉망진창이었던 것이다.

거의 벌집 수준이었다.

주사기가 들어간 자리마다 퍼런 멍이 들었다.

환자의 혈관을 어지간히 쑤셔댄 모양이었다.

아무리 초짜 인턴이라도 이 정도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준후는 승범에게 분노를 느끼는 한편.

환자에게 안쓰러움도 느꼈다.

“속는 셈 치고 딱 한 번만 믿어보세요.”

환자를 안심시키고 준후는 단 번에 ABGA를 성공시켰다.

무림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검을 휘둘렀고.

또 정교한 검격을 펼쳤던 준후였다.

그래서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는 일 따위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다.

“허. 정말이네? 선생은 실력이 좋은 가봐?”

“족제비처럼 생긴 놈보다야 백 배 낫죠?”

준후가 승범 욕을 하자 환자는 유쾌하게 웃었다.

환자와 신뢰를 쌓은 것 같아서 준후는 다음 단계로 들어갔다.

“환자분, 혹시 가슴이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암, 불편하지. 그것 때문에 입원하고 수술도 받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가슴 마사지를 해드릴까요?”

“선생이 그런 것도 할 줄 아나?”

“병원에서 배운 건 아니고 집에서 배운 건데 효과가 좋습니다.”

“그럼 해봐요.”

환자가 흔쾌히 승낙했다.

허락을 얻어낸 준후는 환자의 상의를 걷고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드디어 대망의 신검사법을 시도해 보는구나.

이걸 해보려고 흉부외과에서 잡일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가보자.

우우우웅.

준후는 환자의 심장을 향해 내공을 쏘아냈다.

준후가 시험 중인 검사법은 일종의 내공으로 펼치는 혈관 조영술이었다.

혈관 조영술이란 심장마비, 협심증, 심근경색 등을 판단하는 주요한 검사인데.

환자의 혈관에 조영제를 투입하고 방사선 촬영을 해서 환자의 혈관에 막힌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였다.

그런데 준후는 이것을 내공으로 도전해 보고 있었다.

혈관 조영술이라는 검사가 존재한다면 굳이 왜 내공으로 혈관 조영술을 대체하지?

누군가는 의문을 가질 수 있었다.

당연하고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혈관 조영술의 경우 보통 심전도나 피 검사에서 이상 반응이 나왔을 때 실시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급성 심근경색, 급성 심장마비, 불안정성 협심증 등등.

이런 응급한 심 질환이 초기 단계일 경우.

심전도와 피 검사에서는 아무런 소견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이상 소견이 없으니 혈관 조영술은 생략되고.

따라서 마땅한 처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결과 환자는 나중에 상태가 악화되어 119에 실려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준후는 그런 불의의 사태를 미리 대비하고 싶었다.

내공으로 혈관 조영술을 펼칠 수 있다면 말이다.

진단 및 처치가 빨라지고.

돈 뜯어 먹으려고 비싼 검사를 하는 거냐며 환자에게 욕먹을 일도 없을 테니까.

“의사 선생, 손이 따뜻한데?”

“마음이 따뜻해서 그럴 겁니다.”

준후는 농담을 던진 후 내공의 파동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그런데 딱히 느껴지는 이상 징후가 없었다.

반사되어 오는 환자의 파동은 일반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내공으로 조영술을 펼치는 건 무리인 건가.

내가 너무 욕심을 냈던 건가.

준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내공 소모가 심해지면서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따뜻해서 좋긴 한데. 계속 이러고 있을 건 아니지?”

잠자코 있던 환자가 점잖게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준후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주시겠어요?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필요해서요.”

준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대로 포기할 수도,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환자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성과를 거둘 필요가 있었다.

내공 혈관 조영술을 펼치기에 적합한 환자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 되겠어.

방법을 바꿔보자.

내공을 파동 형태가 아니라 혈관에 직접 주입하는 방식으로 바꿔 보는 거야.

지금까지 환자의 심장과 심장 주위에 광범위하게 내공을 쏟았다면.

이번에는 환자의 혈관에 직접 내공을 투입하는 기법을 선택했다.

내공 소모야 심하겠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심장에 존재하는 큰 동맥 혈관은 크게 세 곳.

우(右) 관상동맥(RCA).

좌(左) 관상동맥(LCA)에서 갈라지는 좌전하행지(LAD)와 좌선회관상동맥(LCx).

준후는 내공으로 우 관상동맥과 좌전하행지를 훑고서.

대망의 좌선회관상동맥에 진입했다.

환자가 협심증을 앓고 있는 그 부위 말이다.

어라? 이건?

준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좌선회관상동맥으로 내공을 흘려보내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내공의 유속이 급격하게 빨라졌던 것이다.

지난 두 혈관을 통과했던 내공의 속도가 3 정도라면.

현재 두 혈관을 통과하는 내공의 속도는 7 정도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질문.

내공의 유속이 빨라졌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바로 혈관이 좁아졌다는 뜻이었다.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스를 일시적으로 좁아지게 만들면.

물줄기가 거세고 빨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내공이 막힌 혈관을 통과할 때는 내공의 유속이 빨라진다.]

준후는 지금 느끼는 감각을 기억한 후 마침내 환자의 가슴에서 손을 뗐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괜히 폐를 끼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나야 뭐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는데 뭐.”

“그럼 편히 쉬세요. 어르신.”

환자의 환자복 상의를 여며준 후 준후는 병실을 나왔다.

다행히 소득이 있었다.

내공으로 혈관 조영술을 펼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그러니까 준후는.

검사부터 진단까지 최소 30분이 걸리는 혈관 조영술을 단 2분 만에 펼칠 수 있었다.

조영제 대신 내공을 사용하면서 말이다.

내공 혈관 조영술을 완성한다면.

초기 응급 심질환 환자를 놓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엄청난 발견에 준후의 가슴은 흥분을 멈출 수 없었다.

좋았어.

몇 번만 더 해보면 완벽하게 감을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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