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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46화 (46/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46화

제8장 응급의학과(8)

준후는 흉부외과에 두 시간 가까이 더 머물렀다.

네 명의 입원 환자에게 추가로 내공 혈관 조영술을 펼쳤다.

결과가 어땠냐고 하면…….

대 성공이었다.

첫 번째 조영술은 단지 우연이 아니라 기적의 서막이었던 것이다.

준후는 내공 혈관 조영술로 환자의 심혈관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혈관에 직접 내공을 흘려보내서.

내공의 유속을 파악한 뒤.

혈관의 협착 정도, 그러니까 혈관이 막힌 정도를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혈관의 70퍼센트가 혈전(피떡)이나 죽상(지방)등으로 막히면 심장질환이 발생하는데.

준후는 신검사법을 통해 혈관이 50퍼센트 정도까지 막힌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즉 초기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응급실에 온다면 준후는 놓치래야 놓칠 수가 없었다.

‘노력한 보람이 있네.’

막 4번째 조영술을 마친 준후가 병실을 나왔다.

준후의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무림에서의 경험.

한 명의 환자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절실함.

마지막으로 해부학 지식이 합쳐져 오늘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특히 의대에서 해부학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 빛을 발했는데…….

해부학 교수 강호 밑에서 개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관상동맥의 위치를 오늘처럼 정확하게 찾지는 못했으리라.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준후는 내공 혈관 조영술의 단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내공 혈관 조영술의 첫 번째 단점.

그것은 막대한 내공 소모량이었다.

내공이 충분하다고 가정할 때.

하루에 펼칠 수 있는 내공 혈관 조영술의 횟수는 10회 정도였다.

혈관에 내공을 콸콸 때려 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공 혈관 조영술의 두 번째 단점.

그것은 검사 결과를 다른 의사들과 공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설령 준후가 다른 의사들에게 검사 결과를 전한다고 한들 누가 믿겠는가.

-제가 무림이라는 세계를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내공을 사용할 수 있는데 방금 내공으로 조영술을 펼쳤고 환자가 위독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미친놈 소리를 듣기 딱 좋았다.

그러니까 내공 혈관 조영술은 고독한 검사법이었다.

준후가 자체적으로 환자의 심장질환을 확진하더라도, 추가로 혈관 조영실에서 조여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공 혈관 조영술의 단점은 장점을 가릴 수 없었다.

준후는 이제 2분 안에 환자의 심장 혈관을 확인해서 환자가 응급인지. 비응급인지를 가려낼 수 있었는데.

이는 축복이자 기적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는걸?

준후는 의사 가운에 넣어둔 홍삼 2포를 꺼내 쪽쪽 빨아 먹었다.

앞으로 홍삼에게 자주 신세를 져야 할 듯 싶었다.

* * *

“와, 보면 볼수록 잘 생겼네요. 완전 조각상이에요. 조각상. 그것도 다비드상.”

곁에서 근무하는 유라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준후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때문일까.

혜진도 고개를 들어 준후를 쳐다보았다.

유라가 호들갑을 떨 만큼 준후의 외모는 출중했다.

그저 복도를 걷고 있을 뿐인데도 모델이 패션쇼에서 워킹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래도 혜진은 유라처럼 준후에게 호감 있는 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

“선생님, 그 반대죠. 오르지 못할 나무라면 쳐다보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혜진의 말에 유라가 반문했다.

혜진이 병동 근무 4년 차였고.

유라는 병동 근무 3년 차였는데 두 사람은 태움 없이 친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잘 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일도 잘하잖아요. 준후 쌤 오고 나서 밀린 오더 다 처리했는데.”

“그건 인정.”

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있으나 마나 한 승범보다 준후가 백 배쯤 나았다.

준후가 처치와 검사를 얼마나 야무지고 빠르게 하는지.

레지던트가 오더를 내리는 속도보다 준후가 오더를 처리하는 속도가 더 빨라 보일 지경이었다.

“준후 쌤이 우리 과 픽스(전공)했으면 좋겠어요. 그럼 살맛 날 것 같은데.”

“…….”

“오…… 온다!”

유라가 머리를 매만지더니 준후를 향해 씽긋 웃었다.

으이구, 이 여우.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오더 새로 나온 거 있나요?”

“아뇨. 선생님 덕분에 다 처리했어요.”

“그럼 저도 이제 슬슬 내려가 봐야겠네요. 원래 오프 날이기도 했고.”

“고생 많으셨어요. 자, 이거.”

유라가 준후에게 내민 것은 초콜릿이었다. 간호사들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집어 먹는 간식이었다.

“초콜릿도 간간이 먹으면 기분 전환이 되더라고요.”

“잘 먹을게요.”

준후가 포장을 벗기더니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다가 눈을 감은 채 바르르 몸을 떨었다.

“쌤 반응이 왜 그래요? 독 같은 거 안 탔는데?”

유라가 농담조로 물었다.

“제가 단 걸 잘 못 먹어서요. 근데 이건 단맛이 좀 특이한데요?”

“무설탕 스테비아 초콜릿이거든요. 그래서 일반 초콜릿보다 살 안 쪄요. 스테비아 모르세요?”

“제가 유행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준후가 멋쩍게 웃었다.

준후는 일편단심 외과의만 꿈꾸며 살아왔다.

요즘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즐겨 먹는지는 까막눈이었다.

“그럼 선생님 MBTI도 모르시겠네요?”

“MBTI요? 그건 뭐죠?”

“일종의 심리 검사예요. 한번 해보세요. 재미있어요.”

“글쎄요. 굳이 심리 검사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데.”

“말 그대로 재미로 하는 건데요, 뭐.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어요.”

유라의 제안에 준후는 휴대폰으로 MBTI 검사를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부터 쉴 계획이었고.

사람들이 왜 MBTI를 좋아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입니다.

…….

질문을 확인하고 항목들을 체크하다 보니 금방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은 무슨 형 나왔어요?”

유라가 눈을 빛내며 결과를 궁금해했다.

“ISTP, 만능 재주꾼이라고 하네요.”

“와, 선생님하고 잘 어울리네요. 딱이다. 딱.”

“김 선생님은 무슨 형인데요?”

“저는 ESFJ라고 사교적인 타입이에요. 지금 선생님하고 대화하는 거 보면 감이 오시죠?”

“확실히 재미있긴 하네요.”

“재미뿐만 아니라 유익하기도 하죠. 자기 성격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유라가 자신감 있게 말했다.

유라는 MBTI 신봉자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지구 상에 있는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MBTI는 사람의 성향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가을쯤에 흉부외과 배치받으니까 그때 또 뵙죠.”

“네. 선생님. 손꼽아 기다릴게요.”

준후가 떠난 후.

조용히 대화를 엿듣고 있던 혜진이 모니터에 MBTI 궁합을 검색했다.

준후가 속한 ISTP와 잘 맞는 유형 중에 혜진이 속한 INFJ가 있었다.

이거,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 * *

준후는 흉부외과 병동에 딸린 휴게실에서 잠깐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ISTP, 만능 재주꾼이라…….

아까 했던 MBTI 결과를 되뇌며 준후는 피식 웃었다.

성격 유형 검사는 별로 신뢰할 것이 못 되었다.

성장배경이나 자라면서 겪는 경험에 따라 수많은 성격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성격 또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다만 사람들이 왜 MBTI를 좋아하는지 준후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가십거리로 삼기 좋았던 데다가.

MBTI를 통해 자신의 성격이나 버릇, 취미 같은 것을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사이가 어색한 사람이 있을 때.

또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MBTI를 써먹으면 좋을 것 같았다.

‘내공 혈관 조영술 말고 다른 것도 배워가는군.’

준후는 휴게실을 벗어나 화장실을 찾았다.

정신을 깨울 겸 찬물로 세수하고 외모도 단정하게 가꿨다.

보통 인턴은 의사 가운을 걸친 거지나 다름없었다.

레지던트, 간호사, 환자나 보호자에게 시달리다 보니 씻을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후는 꾀죄죄하게 다닐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겉모습에 신경을 못 쓸 만큼 피곤하지도 않았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해야 환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이이잉.

휴게실을 벗어나는데 콜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흉부외과 스테이션 콜이었다.

“네. 선생님.”

-쌤 진짜 죄송해요. 혹시 숙직실 안 내려가셨으면 오더 하나만 처리해 주시면 안 될까요? 급하게 심전도를 해야 해서…….

“얼마든지요.”

준후는 흔쾌히 허락했다.

본래 스테이션은 일손이 모자랄 경우 타 병동 인턴에게도 손을 벌릴 때가 있었다.

통화를 끊고 준후는 흉부외과 병동으로 돌아가 포터블 심전도 기기로 환자의 심전도 검사를 뚝딱 처리했다.

드르르륵.

드르르륵.

심전도 기기를 끌고 병동 복도를 지나는데 한 병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이 생긴 준후는 해당 병실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창 너머로 바라보니 승범과 한 환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수술받으신 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지금은 흉통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알아요. 그건 아는데. 어제랑 느낌이 다르다니까요. 가슴이 엄청 결려요.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특히 그래요.”

“그러니까 수술을 하면 가슴을 째고 좌우로 벌립니다. 수술하신 분들은 다 환자분처럼 흉통을 호소해요.”

엿들은 대화를 토대로 준후는 상황을 정리했다.

환자는 가슴이 아프다며 승범에게 하소연 중이었고.

승범은 괜찮다며 환자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둘 중 누구의 말이 맞을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준후는 환자 쪽에 더 믿음이 갔다.

의대를 다녔던 동안, 준후는 승범의 못 된 품성을 전부 지켜봐 왔다.

1년 재수했다고 동기들을 나이로 깔아뭉개려고 하고.

여학생들에게 치근덕거리며.

심지어 카데바와 찍은 사진을 SNS로 올렸던 승범이었다.

그래서일까.

승범이 귀찮은 나머지 환자의 호소를 무시하고 있다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넌 뭔데 우리 과에 있냐?”

환자와 대화를 마친 승범이 복도로 나왔다.

준후를 발견하고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쪽이 일을 너무 잘해서 불려왔지.”

“새끼, 비꼬기는. 응급의학과는 편한가 보다? 남의 과 뒤치다꺼리도 할 정도면?”

“응급의학과 턴 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하긴 아버지가 진료 부원장이라서 꿀만 빠는 네가 뭘 알겠어.”

준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승범이 준후보다 1살 많았지만 준후는 승범을 형으로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이를 떠나서 승범은 쓰레기였다.

그리고 세상에 쓰레기를 존중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 어처구니없는 새끼. 말하는 꼬라지하고는.”

“나 상관하지 말고 방금 저 환자 진료나 제대로 봐. 수술하니까 아픈 게 당연하다고 어물쩍 넘기지 말고.”

“…….”

“최소한 레지던트한테 노티라도 하던가. 환자 말 무시하면 나중에 피눈물 흘린다?”

준후는 속사포로 승범을 꾸짖었다.

승범은 이렇게 해서라도 정신을 차릴 필요가 있었다.

“네가 뭔데 훈수야? 네가 흉부외과를 알아?”

승범이 팔짱을 낀 채 준후를 노려보았다.

당장 주먹이라도 오고 갈 것처럼 두 사람의 사이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알아도 너보단 많이 알겠지. 저 환자, 내가 다시 진료 본다.”

준후가 병실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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