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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53화 (5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3화

제9장 다음 행선지(3)

“이 환자, 심낭압전이네요.”

준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낭압전.

심장을 감싸고 있는 막에 혈액이 고여 심장을 압박하는 질환이었다.

이로 인해 심장에 가해지는 압력 증가.

심박출량 감소.

혈압 강하 등의 증상이 발생한다.

문제는 심낭압전이 대동맥 파열과 더불어 흉부외과 계통의 초응급 질환이라는 점이었다.

에피네프린으로 유지했던 혈압이 떨어지고.

심전도가 다시 불길하게 요동치는 것이 심낭압전의 큰 증거였다.

“아무래도 교통사고 났을 때 환자가 운전대에 가슴을 강하게 부딪쳤던 모양이에요.”

“…….”

“심낭압전은 외상으로도 생기니까요.”

“원인이라면 그게 맞겠지. 하…… 근데 하필이면 다른 질환도 아니고 심낭압전이냐. 일단 흉부외과 콜부터 해.”

“네. 선배.”

준후는 다급하게 스테이션으로 달려갔다.

상황이 상황이었기 때문일까.

신호음이 울리는 시간마저 엿 가락처럼 길게 느껴졌다.

응급처치가 늦는다면 환자는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시점부터 환자가 응급실에 실려 오고 처치를 받은 시간을 감안하면 말이다.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저승사자가 환자 등 뒤에 바짝 붙어 있다고 해야 할까.

준후가 문득 훑어본 응급실은 아비규환이었다.

“선생님. 이 환자 중심 정맥관 좀 잡아주세요.”

“거즈 덧대고 붕대 감아. 대퇴부 출혈이 아직 심해.”

“블러드 팩(수혈 팩) 아직 멀었어요?”

스태프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가운에는 핏물이 스며들거나 튀어 있었고 처치 동작은 하나하나 다급해 보였다.

총과 검이 난무하지 않을 뿐.

응급실은 삶과 죽음이 오가는 참혹한 전쟁터였다.

이러면…… 도움도 못 받겠는데?

응급실 풍경을 살피던 준후의 미간이 좁아졌다.

교통사고 환자를 처치하느라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와 교수들이 전부 투입된 상태였다.

그리고 다들 하나 같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도와달라고 말을 걸었다간 한 대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준후가 당장 의지할 곳은 흉부외과밖에 없었다.

빨리 좀 받아라.

환자 숨넘어가겠다.

준후답지 않게 초조해하던 중, 마침내 통화가 연결됐다.

“응급실입니다. 심낭압전 환자가 있는데 레지던트 선생님 한 분만 빨리 내려 보내주세요.”

준후의 말투가 속사포였다.

-뭐야, 서준후냐?

낯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준식이었다.

어제 흉막 삼출 환자를 두고 준후와 마찰을 빚었던 흉부외과 레지던트 1년 차 말이다.

순간 싸늘한 불길함이 준후의 등골을 스쳤다.

“네. 접니다.”

-환자가 심낭압전이라고?

“네. 한시가 급하니까 심낭천자 부탁드립니다.”

-그래?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지금 응급실에 내려갈 사람이 없는데?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준식의 말에는 미안함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불길함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한 2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20분이나요? 안 돼요! 그럼 환자가 죽을 수도 있어요.”

준후의 언성이 올라갔다.

지금까지 CPR과 약물, 내공 흉부압박으로 버텼던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그런데 무려 20분이나 기다리라고?

환자를 방치하다가 죽이라는 소리인가?

“환자 번호 불러 드릴 테니까 한 번 보세요. 그럼 그런 이야기 못 하실 거예요.”

-차트 번호고 자시고를 떠나서 말이다. 사람이 없는 걸 어떻게 해? 내가 없는 사람이라도 만들어내리?

준식이 이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정규 수술 스케줄 시간이라 일손이 달려. 나도 심낭천자는 못하고.

“…….”

-흉부외과 레지던트 부족한 건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20분 전에는 절대 못 온다는 말씀이죠?”

-그래. 20분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응급의학과 쪽에서 알아서 해결해. 너희 과에도 심낭천자 가능한 선생님이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준후는 착잡한 심정으로 통화를 끊었다.

우려했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흉부외과의는 당장 올 수 없고.

응급의학과 고년차 레지던트는 전부 교통사고 환자 응급처치를 하느라 바빴다.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최후의 수법을 쓰는 수밖에…….

드르륵.

드르륵.

준후는 드레싱 카트에 심낭천자 세트를 챙겨서 침상으로 달려갔다.

“흉부외과는 언제 온대?”

준후를 발견한 성민이 물었다.

“아니요. 20분은 걸린데요.”

“X발, 미치고 팔짝 뛰겠네. 환자 바이탈이 아까보다 더 떨어졌어. 20분은 절대 못 버텨.”

“선배. 혹시 심낭천자 가능하세요?”

“그게 가능하면 너한테 흉부외과 콜하라고 했겠니?”

성민은 레지던트 3-4년 차는 되어야 심낭 천자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은 3-4년 차조차 심낭 천자가 부담스러워서 흉부외과를 콜하는 편이라고도 말했다.

이윽고 준후의 시선이 환자에게 머물렀다.

이 환자를 살리지 못한다면 평생 악몽을 꿀 것 같았다.

아니, 현실이 악몽이 될 것 같았다.

이 환자를 눈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못 한다면 말이다.

과연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그런 질문에 가슴이 아려왔다.

“도움받을 곳이 없다면 제가 할게요. 심낭천자.”

* * *

“네가 심낭천자를? 미쳤니?”

성민이 혀를 차며 물었다.

준후의 발상은 아주 머저리 같은 발상이었다.

응급의학과 근무 2년 차도 아니고 2일 차가 심낭천자를 하겠다고?

이는 걸음마도 안 뗀 아이가 마라톤 대회에 나가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야! 심낭천자가 무슨 애들 땅 따먹기인 줄 알아? 잘못해서 심장 찌르면 뒷감당은 어떻게 할 건데?”

“잘하면 되겠죠.”

“말로는 뭔들 못 해?”

“그럼 선배가 하실래요? 아니면 이대로 20분 동안 손가락만 빠실래요?

준후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환자가 다시 쇼크에 빠지면 둘이서 못 살려요.”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다면 위험부담이 있더라도 근본적인 처치를 하는 게 맞겠죠.”

준후의 지적에 성민을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환자를 방치하자니 다시 찾아올 쇼크가 두려웠고.

심낭 천자를 펼치자니 문제가 생길 까 봐 두려웠다.

앞뒤에서 적군이 몰려오는 참담한 심정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심낭천자하자. 대신 나는 자신 없으니까 네가 해라.”

성민은 짧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준후가 심낭천자 하는 걸 보고만 있었어? 너는 대체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나중에 욕먹을 것이 무섭긴 했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처치를 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더 무서웠다.

아니야. 이게 오히려 기회일지도?

내가 못 본 사이에 준후가 독단적 심낭천자를 했다고 핑계를 대면 그만이잖아?

성민은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어시스트 할 테니까 어디 한 번 잘해 봐.”

“네. 선배.”

“내가 세팅하고 있을 테니까 넌 초음파 기기 가져와.”

잠시 후 초음파 기기를 가져온 준후가 병상으로 복귀했다.

2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도 환자의 바이탈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이제 정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내가 널 싫어하긴 하지만.

네가 천자에 실패하면 책임을 전부 다 너한테 돌릴 거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 잘난 솜씨로 환자 좀 살려봐라.

성민은 내색은 하지 않고 속으로 준후를 응원했다.

준후를 싫어하는 것과 환자를 소생하는 일은 별개였으니까.

“준비됐어?”

“네.”

“시작한다.”

성민은 환자의 왼쪽 가슴에 젤을 바르고 탐침으로 환자의 가슴을 문질렀다.

초음파 모니터에 환자의 심장 영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기다. 확인했어?”

성민이 턱짓으로 모니터를 가리켰다.

환자의 심장 우·하단에 새하얀 음영이 존재했다. 저곳에 혈액이 고여 있다는 뜻이었다.

“확인했습니다.”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술 장갑을 착용했다.

착!

피부에 달라붙는 수술 장갑의 촉감이 오늘따라 유독 쫀쫀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환자의 가슴을 포비돈 용액으로 넓게 소독하고 준후는 주사기를 손에 쥐었다.

환자가 의식이 없었으므로 마취는 하지 않았다.

사실 심낭압전의 처치인 심낭천자는 단순했다.

주삿바늘로 혈액이 고인 심낭을 찌른 후 그 혈액을 흡입해 주면 되었다.

다만 문제는 정확한 부위에 천자를 해야 한다는 점.

천자의 깊이가 너무 얕지도, 너무 깊지도 않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천자가 너무 깊을 경우 심장에 손상이 갈 수도 있었다.

긴장할 필요 없어.

무림에서 검을 쓰던 방식과 똑같으니까.

준후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향과 거리 조절.

이는 무림에서 펼친 검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수많은 전장을 경험한 준후는 방향과 거리 조절에 필요한 노하우를 세포 단위로 기억하고 있었다.

왜냐고?

검을 한 번만 잘못 놀려도.

사마외도에게 목숨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갑니다.”

푹!

말을 마치기 무섭게 주삿바늘이 환자의 6-7번 갈비뼈 사이를 관통했다.

서씨세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청운검법의 제2초식.

청운송침.

구름을 꿰뚫는 송곳이라는 초식의 이치를 사용해서 말이다.

바늘을 삽입한 상태에서.

준후는 손에 서서히 힘을 주어 바늘을 환자의 심낭 쪽으로 전진시켰다.

비록 피부 때문에 바늘이 전진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준후는 마음의 눈으로 바늘의 이동 경로를 보고 있었다.

해부학 교수 밑에서 해부학을 수련하는 동안.

준후는 3D 매핑(mapping) 기술을 익혔다.

즉 머릿속으로 환자의 뼈와 신경과 혈관을 이미지화해서 그려내는 기술을 익혔다.

일종의 투시 같은 느낌이랄까.

좋았어.

늑간 신경하고 혈관을 피해서 이동 중이고 폐도 잘 피했고.

조금 있으면 심낭이다.

이대로만 가자.

초응급 상황임에도 준후는 침착하기만 했다.

표정은 담담했으며 손은 기계처럼 떨림이 없었다.

외과의에게 필수적인 요소라고 손꼽히는 야수의 심장.

그것을 준후는 이미 무림에서 터득해왔다.

툭!

바늘 끝에서 이전과는 다른 낯선 감각이 전해졌다.

바늘이 심낭을 뚫었다는 신호였다.

“야, 잘되고 있는 거 맞아? 엄한 데 찌르면 진짜 뒈진다.”

성민의 불호령에도 준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주사기의 밀대를 후퇴할 뿐이었다.

쪼르르륵.

주사기 몸통으로 선홍색 혈액이 딸려 들어왔다. 피와 삼출액이 섞인 액체의 빛깔은 오묘했다.

이제 준후의 눈은 환자의 가슴이 아닌 초음파 모니터를 향했다.

심장 우·하단에 위치한 하얀 음영이 차차 사라지고 있었다.

심낭에 고였던 액체들이 주사기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준후의 심낭천자가 대성공했다는 증거였다.

“끝났습니다.”

준후는 주사기 뚜껑을 닫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CPR이 소생술이라면 심낭천자는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근본적인 처치였다.

그 때문일까.

심낭액을 제거하자 환자의 바이탈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가출한 탕자처럼 제멋대로였던 심전도도 본궤도를 되찾았다.

준후는 그제야 세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생생한 감각을 느꼈다.

다급한 응급실의 풍경.

코끝을 스치는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

스태프들의 시끄러운 함성 등등.

심낭천자를 하며 오롯이 자신의 감각에만 집중했던 때는 잠시 잊고 있었던 감각들이었다.

“이제 검사 오더 넣고 팔로우(Follow, 추척 관찰)만 잘하면 될 것 같네요.”

“그러게. 겨우 한시름 덜었어.”

성민이 가운 소매로 이마에 식은땀을 훔쳤다.

그리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근데 너도 진짜 어지간하다. 이걸 한 번에 성공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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