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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58화 (58/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8화

제10장 수술 체질(3)

정형외과 병동 컨퍼런스 룸.

준후는 우현과 함께 동기 인턴에게 정형외과 업무 인수인계를 받는 중이었다.

“여긴 지옥이고 너희는 X됐어.”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동기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평소 말랑말랑 성격의 친구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하니 더 실감이 났다.

이어지는 설명.

정형외과 병동 업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병동 잡.

입원 환자를 돌보는 일로 각종 검사, 처치, 검사를 실시하는 일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스크럽.

수술 보조를 뜻하는 일이었다.

동기의 말에 따르면 지옥인 쪽은 스크럽이었다.

환자의 체위(수술 자세)를 변경하고.

타 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술 도구를 암기하고 세팅해야 하며.

수술 중에는 절개창을 벌리고 있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레지던트를 도와 망치, 끌, 톱 등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나 여기서 5킬로그램이 빠졌다. 아주 볼이 홀쭉해졌어.”

동기가 실성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너무 허약해서 그런 거 아니야? 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현이 우쭐해 하며 한마디 했다.

순간 준후는 귀를 의심했다.

근무를 힘들어했던 친구한테 저게 할 소리인가 싶었던 것이다.

하긴 사고방식이 저렇게 썩었으니 카데바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겠지.

인간아, 너도 승범이 못지않게 구제불능이다.

그건 알고 있니?

“지금이야 너도 그렇게 입을 털겠지. 하지만 체력으로 버티는 것도 잠깐이야. 이게 없으면 말이다.”

동기 영태가 관자놀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근성이 없으면 다 소용없어.”

“영태야. 그건 그렇고 너 다리 다쳤어?”

잠자코 있던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영태가 아까부터 정강이 근처를 쓰다듬으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다.

“제일 중요한 걸 잊었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줄게.”

영태가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정형외과는 군기가 개 빡세서 레지던트들한테 잘해야 해. 특히 3년 차 고릴라한테.”

“고릴라?”

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응. 고릴라. 이름을 말할 필요도 없어. 보면 저 인간이 고릴라구나 하고 딱 감이 올 거야.”

영태가 말을 마치고 왼쪽 바지 단을 걷어 올렸다.

충격적이게도 정강이 부근에 새파란 멍이 들어 있었다. 피멍이 들 정도면 보통 힘으로 걷어찬 게 아닐 텐데…….

“고릴라란 사람이 걷어찼어?”

“역시 준후 너는 머리 회전이 빠르네. 바로 정답이야.”

영태의 말에 따르면.

고릴라는 정형외과의 군기반장으로 인턴과 레지던트에게 거리낌 없이 손찌검을 한다고 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의사 간의 폭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준후는 크게 놀랐다.

“그거야 안 맞게 잘하면 되겠지.”

“선우현, 적당히 해라. 인수인계해 주는 친구 앞에서 깝죽거리지 말고.”

우현의 예의 없는 화법에 결국 준후가 폭발했다.

“당사자도 아니면서 네가 왜 X랄인데?”

“X랄은 내가 아니라 네가 하고 있잖아. 동기가 정보를 알려주면 고맙게 들을 생각을 해야지. 왜 동기를 깔보는데?”

“난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그건 그렇고 뭐야, 이러다가 한 대 치겠다?”

우현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준후를 꼬나보았다.

마치 너 같은 건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는 듯.

하룻강아지 같은 우현의 행동에 준후는 기가 막혔다.

“둘 다 그만하고 빨리 당직실로 가 봐. 1년 차도 깐깐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영태의 재촉에 준후는 회의실을 벗어나 당직실로 이동했다.

정형외과 근무는 채 시작도 전에 삐걱거리고 있었다.

* * *

정형외과 당직실.

안경을 쓰고 빼빼 마른 청년이 준후와 우현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

청년의 이름은 강현진.

인턴인 준후와 가장 많이 접촉할 레지던트 1년 차였다.

눈매가 매섭고.

턱선이 날카로운 것이 외모에서부터 ‘나 깐깐해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수인계 제대로 받았지?”

“네.”

“저번 달 인턴들은 상태 안 좋았는데 너희는 제발 그러지 마라. 서로 피곤하고 짜증 날 일 만들지 말자고.”

“…….”

“병동 잡하고 스크럽을 나눠야 하는데 어떻게 할래?”

“제가 스크럽 서겠습니다.”

준후가 당당하게 나섰다.

외과의를 꿈꾸고 있는 준후 아니던가. 병동 잡보다 스크럽을 선호하는 게 당연했다.

비록 동기는 스크럽이 지옥이라고 했지만 초인인 준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너 진짜 특이하다. 다들 스크럽을 안 서려고 난리인데.”

“저는 잘 할 수 있습니다.”

“으음……. 근데 스크럽은 그냥 네가 서라.”

현진이 턱 짓으로 우현을 가리켰다.

운동선수처럼 우람한 체격을 가진 우현이 수술 보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한편 현진의 선택을 받고서 우현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면 안 되나요?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준후는 물러서지 않고 재청했다.

“엥? 그렇게 스크럽이 서고 싶어?”

“전공은 결정 못 했지만 외과의가 될 생각이라서요.”

“정 그러면 반반으로 하던가. 2주는 우현이가 스크럽 서고 남은 2주는 준후 네가 스크럽 서고.”

“감사합니다.”

준후는 기어이 원하던 스크럽을 절반 정도 쟁취해냈다.

기껏 외과에 배정을 받았는데 수술방에 못 들어간다니…….

그건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었다.

“그리고 선배님께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봐.”

“병동 잡을 하면 수술방에는 아예 못 들어가나요?”

“그건 아니야. 최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들어가.”

현진의 대답에 준후는 만족했고.

준후의 대답에 현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아주 그냥 수술에 미쳐 있구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해산. 자기 일들 봐.”

현진이 준후와 우현을 향해 휘휘 손을 저었고.

준후는 오더를 확인한 후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정형외과 근무의 막이 올랐다.

* * *

응급의학과에서 정형외과로 과가 바뀌었지만 업무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디를 가든 인턴이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ABGA 채혈, 심전도 검사, 상처 드레싱, 소변줄 연결, 검사 동의서 받기 등등.

인턴 업무에 도가 텄으므로.

준후는 레지던트가 내린 오더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처리했다.

간호사의 콜도 받는 즉시 해결했다.

일반적으로 인턴의 업무 처리가 느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결정적인 이유는 맡은 일이 많아서.

둘째는 익숙하지 않은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 소모가 많아서였고.

셋째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소한 준후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각종 처치는 무림에서 칼 밥을 먹던 정교한 손놀림으로 해결했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무림에서 만렙을 찍고 왔던 사회생활 짬밥으로 해결했다.

다른 인턴들이 업무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준후는 이미 업무를 마스터했던 것이다.

“쌤, 홍길동이에요?”

준후가 처치를 마치고 스테이션으로 복귀하던 순간이었다.

3년 차 간호사 희진이 준후에게 물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일하는 거 봤는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데요?”

희진이 감탄한 어투로 말했다.

희진이 보기에 준후는 일반적인 인턴과 차원이 달랐다.

일단 처치가 빠르고 정확했다.

업무 동선은 효율적이었으며.

심지어 업무 중간중간 환자 및 보호자와 대화하며 마사지 같은 것을 해주는 여유까지 보였다.

근무 두 달 차에 접어든 인턴이라면 어리바리하기 마련이거늘.

준후는 벌써 말턴(말년인 인턴)의 품격을 뽐냈다.

“그럼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는 건가요? 그건 싫은데.”

준후는 희진의 농담을 받아주는 센스까지 선보였다.

“혹시 추가로 오더난 거 있나요?”

“아니요. 방금 게 다예요. 선생님이 워낙 빨리 처리해서.”

희진이 모니터를 확인하고 대답했다.

오더가 밀리는 건 봤어도 오더가 사라지는 건 처음 봐서 황당한 희진이었다.

준후 정도면 A급 인턴이 아니라 SSS급 인턴이 아닐까.

“당직실에 있을 테니까 일 있으면 곧장 콜 주세요.”

준후는 스테이션을 벗어나 병동 복도를 걸었다.

그러면서 마주치는 환자, 병실에서 쉬고 있는 환자들을 관찰했다.

환자들은 중장년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부분 퇴행성 질환으로 입원한 것이다.

젊은 환자들의 경우 대부분 운동이나 사고 때문에 입원한 것이었고.

무림에 정형외과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준후는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봤다.

그랬다면 뼈가 부러지고.

부러진 뼈가 제대로 붙지 못해 재기에 실패하는 무사들이 없었을 텐데.

설령 팔과 다리, 손가락이 잘려도 무사 생활을 계속했을 텐데.

정형외과에는 수부외과라는 전공이 있어서 잘린 신체 부위를 수지접합수술로 붙여 주니까 말이다.

준후가 봤을 때는 정형외과도 충분히 매력적인 과였다.

그래서일까.

만약 근무 중에 뭔가 느낌이 팍 온다면 말이다.

정형외과를 전공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나저나 스크럽은 언제 들어가는 거지?

빨리 수술 보조를 경험하고 싶은데.

병동 일을 하면서도 준후의 머릿속은 온통 수술에 관한 것뿐이었다.

드르르륵.

준후가 당직실로 복귀하자 현진이 고깝다는 눈빛으로 준후를 쳐다보았다.

“뭐야? 왜 벌써 기어들어 와?”

“오더 다 처리했어요.”

“벌써?”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할 줄 알고?”

현진은 OCS(처방 전달 시스템)을 확인하고 혀를 찼다.

준후의 말대로 밀린 오더가 없었던 것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처치 대충했으면 죽는다.”

“그럼 다행이네요.”

“뭐가?”

“정형외과 근무 중에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요.”

“이 새끼 웃기는 놈일세? 어쨌거나 마침 잘 됐다. 캐스트랑 스플린트 해야 하는 환자 몇 명 있는데.”

“…….”

“처치 도구 챙겨서 403호실로 와.”

“네.”

준후는 스테이션에서 통깁스(cast)와 반깁스(splint) 도구를 챙겨 병실로 향했다.

환자와 대화를 나누던 현진이 준후에게 말했다.

“이 환자, 왼쪽 다리에 롱 레그 스플린트 할 거야. 인수인계받은 대로 세팅 해봐.”

“알겠습니다.”

준후는 석고 붕대를 환자의 발꿈치에 대고서 대략 허벅지까지 올렸다.

반깁스의 길이를 측정하는 작업이었다.

첨벙!

길이 측정을 마치고 준후는 물이 담긴 대야에 석고 붕대를 충분히 적신 후 물을 짜 주었다.

“여기 있습니다.”

“길이도 적당하고 물기도 잘 뺐네. 일하는 눈치는 좀 있나 보다?”

현진이 피식 웃으며 반깁스를 시작했다.

딱딱하게 굳어 가는 석고붕대를 환자의 발밑에 대고.

환자의 발 길이에 맞춰 석고 붕대를 한 번 더 자르고.

그 위에 일반 붕대를 감고.

환자의 발목 각도는 90도를 유지하고 등등.

준후는 현진이 반깁스하는 과정을 멍청하게 지켜보지 않았다.

세세한 과정들을 통째로 암기하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무림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준후는 반깁스하는 과정이 꼭 초식처럼 보였다.

초식이란 태권도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품새였다.

정해진 동작을 차례대로 소화하되.

그 안에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는 연속된 몸동작 말이다.

붕대는 발목 부근에 시작하는데 단단하게 2번 감고서 그다음 정강이 쪽으로 올라간다.

석고 붕대가 붕 뜨지 않도록.

한 손으로는 석고 붕대를 눌러주고 다른 손으로 붕대를 감는다 등등.

무림에서 워낙 복잡하고 정교한 초식들을 암기했던 준후 아닌가.

통깁스 과정을 암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한 번 봤음에도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배. 스플린트해야 하는 환자 한 명 더 있지 않나요?”

“있는데 왜?”

“그 환자는 제가 직접 처치해 봐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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