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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59화 (59/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59화

제10장 수술 체질(4)

준후는 반깁스를 직접 해보고 싶었다.

의술에 관한 것이라면 닥치는 대로 익히고 싶었다.

설령 정형외과 전공을 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반깁스를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군의관이 되었을 때.

해외에 의료 봉사를 가게 되었을 때.

또는 정형외과에서 컨설팅(협진)을 오지 못할 때 등등.

변수는 언제든지 존재했고.

준후는 그 어떤 변수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원했다.

“쉽게 하니까 쉬워 보이지? 네가 직접 해도 그럴 것 같아?”

현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선 넘지 말고 보조나 잘해.”

“하지만 제가 캐스트와 스플린트를 잘하면 선배님도 편하지 않을까요?”

“뭐, 그거야 그렇긴 한데…….”

현진은 준후의 제안이 솔깃했다.

그렇다고 준후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캐스트와 스플린트는 만만치 않았다.

정형외과 전문의 시험에 포함된 과정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현진도 한 달 동안 맞아가면서 배웠다.

그런 처치를 풋내기 인턴인 준후가 소화한다고?

옆에서 딱 한 번 구경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걸음마 배웠다고 마라톤을 뛸 수 있겠어? 네가 딱 그 꼴이라고.”

“그래도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안 될까요?”

“이 새끼, 포기를 모르네. 그럼 딱 한 번만 해봐. 대신 실패하면 앞으로 까불지 말고.”

“감사합니다.”

현진은 준후와 옆 병실로 이동했다.

이번에 반깁스를 할 환자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대학 동아리에서 축구를 하다가 족부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에이, 설마.

아무리 일 처리가 야무져도 스플린트를 한 번에 성공하는 건 오버지.

현진은 반깁스를 준비하는 준후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준후가 반깁스에 실패하는 순간.

속사포로 쏟아놓을 꾸중과 꾸지람도 준비해 놓았다.

어쩌면 이 상황은 오히려 현진에게 호재일 수 있었다.

철없이 나대는 준후에게 군기를 잡을 수 있는 합법적인 기회가 온 것일 수도 있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난 지켜보고만 있을 테니까 알아서 해.”

현진은 팔짱을 낀 채 감독을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현진은 시작부터 경악하고 말았다.

아까 현진이 했던 반깁스 방법을 준후가 판박이로 따라 했기 때문이다.

석고 붕대가 뜨지 않게 한 손으로 발목을 고정해 주고.

발목의 각도는 90도로 유지하고.

일반 붕대를 발목 접합부에 2번 감아주고 나선형으로 붕대를 감아올리는 것까지!

처치만 보면 준후가 반깁스를 하는지.

아니면 현진이 반깁스를 하는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이게 사람이야? 복사기야?

현진이 기겁하는 사이.

준후가 게 눈 감추듯 반깁스를 끝내 버렸는데 현진은 뭐라고 꼬투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준후의 꼬투리를 잡는다는 건 자신의 꼬투리를 잡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기에.

분명 헛것을 본 건 아닌데…….

현진은 손으로 눈을 비비고 준후의 반깁스를 유심히 살폈다.

붕대가 끝나는 위치.

반창고가 붙은 위치까지도 준후는 완벽하게 흡수해 버렸다.

이게 무슨 경우람?

“제 스플린트, 선배가 보기엔 어때요?”

“어? 어. 잘했네. 넌 뭔데 스플린트를 한 번만 보고 따라 하냐?”

현진이 혀를 차며 물었다.

“제가 암기력이 좋은 편이라서요.”

“암기력이 좋다라……. 뭔가 상황에 안 어울리는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알겠어.”

현진의 시선이 환자에게 옮겨졌다.

준후의 반깁스를 아직 완벽하게 인정할 수 없는 현진이었다.

“환자분, 다리는 좀 어떠세요? 고정이 잘 된 것 같나요? 너무 심하게 조여지는 느낌은 없고요?”

“네. 아주 좋은데요?”

환자마저 준후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무래도 준후는 현진의 겉모습만 따라 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붕대의 고정력과 압력마저도 고스란히 재현한 듯했다.

하…… 자괴감 드네.

나는 뒤통수를 동네북처럼 얻어맞아 가며 배웠는데.

상황이 이쯤 되자 현진은 오기가 들었다.

준후가 과연 자신을 어디까지 복사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것이다.

“서준후.”

현진은 병실을 나와 준후의 이름을 불렀다.

“네. 선배.”

“처치는 좀 하는 것 같다?”

“아직 선배에 비하면 멀었죠.”

“알면 다행이고. 다음은 통깁스(cast)를 할 거야. 이번에도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일 테니까 네가 따라 해봐.”

“알겠습니다.”

현진은 준후를 데리고 병실 4곳을 돌았다.

환자들의 팔과 다리에 각각 통깁스(cast)와 반깁스(splint)를 실시하고.

준후가 이를 소화할 수 있는지 살폈다.

한 번에 성공하면 우연이고.

두 번 연속 성공하면 실력이고.

세 번 연속 성공하면 운명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준후는 아무래도 통깁스와 반깁스 솜씨를 선천적으로 타고난 모양이었다.

팔이 됐든, 다리가 됐든.

통깁스가 됐든, 반깁스가 됐든.

그 어떤 것도 상관없었다.

준후는 한 번 본 것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 1시간 만에 깁스 처치에 통달해 버린 것이다.

실로 경이로운 습득력.

현진은 준후가 잠시나마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와…… 살다 살다가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칭찬이면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이건 칭찬이 아니고 경악이야.”

준후의 재능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현진은 질투조차 느끼지 못했다.

뭐 어떻게 비벼볼 수라도 있어야 시기나 질투를 하지.

“근데 너 크게 실수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

현진이 화제를 돌렸다.

“어떤 점에서요?”

“네가 이렇게 처치를 잘하면 내가 너한테 일을 떠넘길 텐데?”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선배 일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요.”

준후의 대답이 곱고 예뻐서.

현진은 자신도 모르게 흐뭇하게 웃었다.

이게 얼마만의 A턴이야.

적어도 이번 달은 한숨 돌리겠어.

“당직실로 가자. 내가 특별히 맛있는 커피 한 잔 타 준다.”

병동 복도를 가로지르는 현진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 * *

“잘 먹겠습니다.”

준후는 현진이 내민 머그컵을 받아들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분명 믹스 커피 봉지에 뜨거운 물만 부었던 것 같은데.

커피에 특별한 풍미가 하나 더 첨가되어 있었다.

“뭐, 따로 넣으신 거 있어요?”

“비밀. 나중에 맞춰 봐.”

현진이 씽긋 웃으며 준후의 맞은편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준후는 방금 캐스트와 스플린트를 배우던 때를 떠올렸다.

고맙게도 무림에서의 경험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

각종 초식들을 익히고 배우고 응용했던 버릇들.

그것이 처치를 익힐 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던 것이다.

잘하면 명의라고 불리는 서전들의 수술 방법도 암기하고 응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생각이 그쯤 뻗어나가자.

준후는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당장에라도 수술방에 들어가고 싶었다.

“네가 보기에 정형외과 분위기는 어떤 것 같아?”

잠자코 있던 현진이 물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가짜로 말해도 돼.”

“으음…… 응급의학과에 비하면 훨씬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에요. 환자들도 그렇고 보호자들도 그렇고.”

“그게 정형외과의 장점이지.”

현진이 말을 덧붙였다.

정형외과 다루는 질환의 특성상 응급 환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따라서 응급실 콜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도 했다.

“선배님 말씀이 맞는 것 같네요. 응급의학과 근무 설 때 정형외과 콜은 많이 안 했던 것 같아요.”

“…….”

“T.A(교통사고) 환자만 빼면요.”

“응급실 콜 없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른 과 가면 뼈저리게 느낄 거다.”

“근데 선배는 왜 정형외과를 전공으로 택하셨어요?”

준후가 화제를 돌렸다.

외과의를 꿈꾸고 있으나 아직 전공은 정하지 못한 준후였다.

그래서 현진이 어떤 생각으로 정형외과를 택했는지 궁금했다.

“너야말로 내가 왜 정형외과를 골랐을 것 같은데?”

“글쎄요. 전망이 좋아서?”

“그런 것도 없다고는 볼 수 없지만 마음에 쏙 드는 문구가 있었어.”

현진이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정형외과 의사는 사람의 육신을 고치는 목수라는 문구. 수술 도구도 막 망치에 나사, 톱에 장난 아니잖아?”

“네. 정형외과 수술 도구야 무지막지한 걸로 정평이 나 있죠.”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도구들이 실제 수술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몹시 궁금하던 참이었고.

“내가 사실 기독교인이야.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목수셨으니까 나는 사람의 육신을 고치는 목수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낭만적이시네요.”

현진의 속내를 듣고 준후는 동질감을 느꼈다.

준후 마음도 깊숙이 들어가면 현진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무림에서 직접 다쳐보고.

무림에서 직접 죽어보니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기 힘들었다.

“아휴. 이런 이야기 낯부끄럽다. 그만하자.”

말을 마치 현진이 손목으로 원을 그렸다.

나름 스트레칭을 하는 것 같았다.

“선배, 손목 안 좋으시면 제가 봐 드릴까요?”

“네가 날 진료한다고? 이번에도 선 넘는 거야?”

현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 진료가 아니고요. 제가 마사지를 기가 막히게 해서요.”

준후는 현진에게 다가가 양 손목에 차례대로 추궁과혈을 실시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일시적으로 좁아진 혈맥을 넓혀주고 압박되어 있는 신경을 이완시켰다.

의대 시절 해부학 교수의 해부학 특강을 들으면서 준후의 추궁과혈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했다.

웬만한 물리치료보다 몇 배는 나은 수준이었다.

“대박! 미친 거 아니야?”

현진이 다시 양 손목을 움직여보고 눈을 치켜떴다.

추궁과혈을 받기 전과 후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낀 것이다.

“통증도 사라지고 관절도 훨씬 유연해진 느낌인데?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그냥 혼자 하다 보니 되더라고요. 가만히 계세요. 어깨랑 목도 풀어드릴게요.”

준후는 현진의 어깨와 목에도 추궁과혈을 펼쳤다.

꾹. 꾹. 꾹.

내공을 담은 손가락으로 혈맥과 신경과 근육을 지압해 주고.

원을 그리면서 뭉친 부분을 풀어주고 등등.

예전부터 느꼈는데 추궁과혈은 동료들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동료들의 호감도를 올리는데도 특효약이었다.

현진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들뜬 목소리로 아까 준후가 펼쳤던 캐스트와 스플린트가 대단했다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드르르륵.

문이 열리고 체구가 건장한 레지던트가 당직실로 들어왔다.

짝턴인 우현도 덩치가 좋은 편인데 이 레지던트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다.

이 사람이 고릴라구나.

이름은 김동석.

3년 차에 군기 반장이자 동기 인턴의 정강이를 발로 차서 멍을 만들었던 그 악한.

“아. 오셨어요?”

당황한 현진이 준후의 손길을 뿌리치고 자세를 똑바로 했다.

속사포로 변명을 시작했다.

“잠깐 쉬고 있었는데 준후가 마사지를 해준다고 해서.”

“팔자 좋네. 1년 차 주제에 인턴한테 마사지나 받고. 나 때는 1년 차 때 숨도 못 쉬었는데.”

“죄…… 죄송합니다.”

“현진 선배 말이 맞습니다. 제가 먼저 마사지를 해드리겠다고 했어요.”

“응? 네가 너한테 발언권을 줬었나?”

동석의 눈썹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준후를 마치 벌레 보듯 쳐다보기도 했다.

“강현진, 인턴 교육 제대로 안할래? 내가 전에 뭐라고 했지?”

“인턴은 오직 예와 아니오로만 대답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현진의 대답에 동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준후를 쳐다보았다.

“인턴. 이제 감이 오나?”

동석의 질문에 준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두 귀의 청력을 의심했다.

저게 사람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맞나 싶었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군기가 센 게 아니라 끔찍한 가혹행위였다.

노예 취급받으며 한 달 동안 수련하라고?

준후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

툭. 툭. 툭.

준후가 대답이 없자 현진이 팔꿈치로 준후를 건드렸다.

빨리 대답하라는 신호였다.

그래서 준후는 빠르게 대답했다.

“감이 오냐고요? 하나도 안 오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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