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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63화 (6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63화

제11장 수련(1)

“수술 준비 다 끝냈니?”

동훈이 수술대 옆에 서서 주변을 훑으며 물었다.

“네. 교수님.”

“이 친구는 못 보던 친구인데? 이번 달에 근무하는 인턴인가?”

동훈의 시선이 준후에게 머물렀다.

“네. 원래 병동 잡 하는 인턴인데 잠깐 대타로 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서준후라고 합니다.”

“눈을 보니까 일 잘하게 생겼네. 환자 브리핑 한번 해볼래?”

“네. 브리핑 드리겠습니다.”

준후는 환자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막힘없이 대답했다.

환자는 45세.

이름은 최석호.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로 작업 도중 추락 사고로 응급실 내원.

CT 및 MRI 촬영 결과.

경골 원위부의 복합 골절 진단.

금일 진행하는 수술은 관혈적 정복 및 금속판 내고정술이라고 대답했다.

준후는 항상 환자에 진심이었다.

그래서 본인이 진료하는 환자에 관해서는 사전에 철저하게 차트를 읽고 암기해두었다.

과거력, 가족력, 아나필락시스 여부, 특이사항 등등.

사소한 정보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는 사실을 무림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련하는 상대가 대련 전에 누군가와 다퉜다고 치자.

이때 상대는 공격적으로 나올 확률이 높다.

준후는 맞불을 놓는 것보다 방어하면서 적의 약점을 찌르는 편이 더 효율적이었고.

이런 세세한 정보력은 의술에서도 중요했다.

오늘 수술받는 환자의 경우.

지병으로 고혈압과 당뇨가 존재했는데 수술 시 출혈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기특하네. 이 정도면 수술방 들어오기 전에 차트를 외웠다는 소리인데.”

동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요즘은 자기가 들어가는 수술이 어떤 수술인지 모르는 인턴도 많단 말이지.”

“…….”

“인턴 생활이 피곤해서 그렇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러면 안 돼. 의료사고는 의사의 마음가짐이 느슨해질 때 발생하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너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넋두리라고 생각해.”

동훈의 말에 준후는 100퍼센트 공감했다.

마음이 느슨해진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무림의 스승에게서도 들은 이야기였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동훈이 더 마음에 들었다.

동훈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에 뿌듯하기도 했다.

교수급에게 칭찬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각자 위치로.”

동훈의 지시에 스태프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집도의 자리에 동훈.

동훈의 곁에 소독 간호사.

그 맞은편에 퍼스트 어시스트 동석.

동석의 곁에 준후가 자리를 잡았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명등의 불빛이 환하게 수술대를 비추었다.

불빛을 받은 환자는 꼭 무대에 오른 배우 같기도 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 감시 장치의 기계음이 수술을 재촉하는 듯했다.

드디어 첫 수술 어시스트에 들어왔구나.

적어도 내가 수술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도록 하겠어.

준후는 속으로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자신이 해야 하는 어시스트들을 뼈에 새겼다.

“지금부터 경골 원위부의 복합 골절 진단에 대한 관혈적 정복 및 금속판 내고정술을 시작하겠습니다.”

수술방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동훈의 목소리.

수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스으으윽.

준후는 수술 부위인 환자의 왼쪽 다리의 무릎부터 발목까지를 넓게 소독했다.

그 위를 방포로 덮었다.

“10번 블레이드.”

간호사에게 메스를 건네받은 동훈이 절개를 시작했다.

환자의 왼쪽 다리 외측(바깥쪽)에 16센티미터 길이의 긴 절개창을 만들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준후는 동훈의 손놀림을 보며 감탄했다.

동훈의 손은 흔들림이 없었다.

망설임도 없었고.

자로 대고 자른 것처럼 수직의 형태로 절개창을 만들어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

그것은 동훈이 왼손을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왼손잡이인 건가?

수술 어시스트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

준후에게는 사실 그것 외에 다른 목표도 존재했다.

바로 동훈의 집도를 분석하고 수술 과정을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었다.

마치 초식을 암기하듯이.

외과 수술의 근본은 자르고 베어내고 떼어내고 봉합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 수술을 암기해두었다가 다른 수술에 응용할 수 있을지 몰랐다.

피부가 갈라지면서 하얀 근막이 드러났다.

준후는 양손에 리트렉터(견인기)를 들고 피부 절개창을 좌우로 벌렸다.

수술 시야를 넓혀주는 처치였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잘도 하네.”

동훈이 준후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괜히 나섰다면 죄송합니다.”

“말투가 좀 이상했나? 잘했다는 소리였어.”

“…….”

“해야 할 일을 할 때는 눈치 볼 필요 없어. 의사가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은 환자와 보호자밖에 없고.”

“네. 알겠습니다.”

근막을 절개하고 뼈를 드러내는 10분 동안.

준후는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절개창을 견인했다.

다른 인턴이라면 팔이 아파서 절개창을 제대로 벌리지 못했겠지만 준후는 달랐다.

이미 초인의 반열에 오르지 않았던가.

단순히 힘만 필요한 작업 아니던가.

준후의 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았다.

견인을 하면서도 동훈의 손놀림을 분석하고 수술 과정을 암기하는 작업도 놓치지 않았고 말이다.

뭐야?

양손잡이였어?

근막절개는 또 오른손으로 하네?

준후는 동훈을 지켜보다가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스으으윽.

동훈의 오른손이 신경과 정맥을 피해 근막만을 깔끔하게 베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

그것은 동훈이 처치하는 손을 바꿨는데 절개의 완성도가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양손을 저렇게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니…….

준후는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무림에서도, 현대에서도 준후는 오른손잡이였다.

왼손의 정확도는 오른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양손을 다 잘 쓸 때의 장점은 명확했다.

만약 한 손에 경미한 부상이 있거나.

정교한 수술을 할 때는 양손을 능숙하게 다루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됐다.

숙련도가 떨어지는 손을 다른 손이 커버할 수 있으니까.

역시 스승으로 삼을 만한 분이네.

환자와 수술을 대하는 태도.

수술의 완성도까지.

동훈에게 자극받은 준후는 왼손도 훈련해야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어쩌면 무림에서도 소화하지 못했던 이도류(二刀流)를 현대에서 소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뼈를 드러내는 단계까지 수술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동안 준후는 자잘한 처치를 도맡았다.

수술 부위를 견인하고.

울컥 쏟아지는 핏물을 거즈로 닦거나 썩션하고.

동석에게 수술 도구를 착착 건넸다.

인턴 신분이라서 수술에 직접 개입하지는 못했지만.

수술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준후는 만족했다.

환자를 살리는 일에 직접 힘을 보태고 있었으니까.

동훈의 솜씨를 감상 및 관찰하고.

수술 과정을 초식처럼 암기하는 일도 나름 즐거웠으니까.

준후에게 수술방이란 무림과는 또 다른 전장이자 훈련장이었다.

“잠깐 숨 좀 돌릴까?”

동훈의 제안에 스태프들의 눈빛이 밝아졌다.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가 휴식 시간을 얻으니 다들 다행이라는 눈치였다.

“준후, 너는 안 피곤하니?”

“저는 괜찮습니다. 힘든 처치는 교수님과 동석 선생님이 다했는데요.”

“녀석도.”

동훈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스크에 가려져 누구에게도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동훈이 본 준후는 야무진 친구였다.

환자를 충분히 공부하고 수술방에 들어왔으며.

처치를 지시하기도 전에 척척 해냈다.

어디 그뿐인가.

몸매가 호리호리한 것에 비해 체력도 무척 뛰어났다.

지금 휴식 중인 스태프들은 다 피곤해 죽겠다는 기색인데 준후만 멀쩡했다.

준후는 오전에 스크럽을 섰던 인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수했다.

“교수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래. 말해봐.”

“교수님은 원래 양손을 다 쓰셨습니까?”

준후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아니. 난 원래 오른손잡이였어. 꾸준히 왼손을 연습해서 오른손 수준으로 끌어올렸지.”

“왼손 연습은 어떻게 하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글쎄. 특별한 건 없고. 평소 오른손으로 하는 일을 왼손으로 하려고 노력했지.”

“…….”

“그건 왜 갑자기 궁금하니?”

“저도 교수님처럼 양손에 능숙해지고 싶어서 여쭤봤습니다.”

준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양손을 쓰는 의사가 되고 싶다라…….

보통은 이런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지 않기 마련이었다.

오른손만 잘 써도.

혹은 왼손만 잘 써도 처치나 수술에 아무런 하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양손을 잘 썼을 때의 장점은 명확하다만 그 과정은 말도 못 하게 험난했다.

당장 식사를 할 때부터 본인이 쓰던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젓가락질과 숟가락을 써보라.

그게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인지를.

그런데 식사도 아니고 사람의 생명을 다룰 때 다른 손을 쓰겠다?

이를 위해서는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했다.

결코 실수가 용납될 수 없기에.

“그러면 교수님께서는 언제부터 왼손을 익히셨습니까?”

“인턴 때니까 딱 너랑 비슷하지. 펠로우 끝날 때쯤 되니 수술할 때도 왼손을 쓸 수 있더구나.”

“조언 감사합니다.”

준후의 눈빛을 보고.

준후의 목소리를 듣고 동훈은 깨달았다.

준후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녀석, 너도 고생을 사서 하는 타입이구나.

동훈은 자신을 닮은 준후가 마음에 들었다.

고생을 사서 한다는 말을 사람들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곤 했다.

하지만 동훈은 생각이 달랐다.

고생은 스스로 사서 하는 것이 옮았다.

남이 떠넘긴 고생에서는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휴식은 여기까지. 동석이 넌 나랑 자리를 바꾸자.”

“네. 교수님.”

동훈의 제안에 동석이 집도의 자리로 이동하고.

동훈이 퍼스트 자리로 이동했다.

수술의 백미는 지금부터 진행하는 금속판 내고정술인데.

그 주인공은 동훈이 아닌 동석이었다.

오늘은 동훈이 동석을 트레이닝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긴장하지 말고. 배운 대로만 해.”

“네. 교수님.”

동석이 수술 모니터에 떠오른 MRI 영상을 한 번 보고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았다.

하얀 근막 사이로 드러난 경골의 바깥 부분이 부러져서 어긋나 있었다.

주변부에는 부러진 뼈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고.

“일단 주변의 뼛조각부터 제거하겠습니다.”

“그건 내가 하마. 넌 금속판 고정술에 집중해.”

“네.”

동훈이 뼛조각을 제거하려는데 준후는 벌써 동훈에게 썩션기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동훈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이쯤 되니 궁금한 것이 생겼다.

“준후야.”

“네. 교수님.”

“혹시 수술 과정까지 외워왔니?”

준후의 반 박자 빠른 동작을 보면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수술 과정까지는 못 외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교수님이라면 썩션기로 뼛조각을 흡입할 것 같았습니다.”

“그다음은?”

“썩션기의 부피 때문에 닿지 않는 부위에 위치한 뼛조각은 셈킨 핀셋으로 제거하실 것 같습니다.”

준후의 대답은 거침이 없었다.

마치 질문까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이 녀석 봐라?

거기까지 꿰뚫어 보고 있었다고?

동훈은 준후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더 궁금해졌다.

“그래. 핀셋을 쓰는 것까지도 좋아. 그런데 하필이면 왜 셈킨 핏센이지?”

“순환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교수님께서 셈킨 핀셋을 선호한다고.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

“아무래도 셈킨 핀셋이 주변 조직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가장 정교하게 처치를 할 수 있는 핀셋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이 선호하는 수술 도구를 간호사에게 먼저 물어봤다라…….

그리고 그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 봤다라…….

준후의 치밀함과 분석력에 동훈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이런 괴물 같은 인턴도 만나보고.

“혹시 제 생각이 틀렸을까요?”

조심스럽게 묻는 준후를 향해 동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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