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64화
제11장 수련(2)
“아니, 정답이다.”
동훈의 대답에 준후는 뿌듯함을 느꼈다.
국내 최고의 정형외과의 중 한 명인 동훈이 질문을 던졌고.
준후는 그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것도 오답이 아닌 정답으로.
이 정도면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확실히 선행학습을 하고 혼자서 고민을 한 보람이 있달까.
오늘과 같은 방법을 활용한다면 훌륭한 외과의가 되는 길도 멀지 않았으리라.
“대단해. 솔직히 인턴 같지가 않아.”
동훈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교수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에 비하면 아직 새파란 애송이죠.”
“그래. 애송이긴 하지만 큰 재목이 될 만한 애송이지. 잡담은 이만 하자꾸나.”
동훈이 수술 부위로 시선을 돌렸다.
준후도 동훈의 시선을 쫓았다.
집도의가 된 동석이 환자의 골절 부위에 금속판을 대고 있었다.
동석은 금속판을 고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금속판의 위치를 몇 번이고 수정했다.
동훈의 눈치를 보고.
금속판의 정확한 위치를 상의하기도 했다.
저쯤이면 좋을 것 같은데.
준후는 속으로 자신만의 금속판 위치를 가늠해 보았다.
실력을 키우는 데는 능동적인 자세만큼 중요한 것이 또 없었다.
멍하니 다른 사람의 처치를 지켜보는 것과.
내가 저 사람이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처치할까 하고 궁리하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후자는 그 자체로 공부이자 경험이 되었다.
‘경골 중심부에서 3센티미터 위쪽인 곳부터 시작해서 복사뼈 바로 위까지…….’
“경골 중심부에서 3센티미터 위쪽인 곳부터 시작해서 복사뼈 바로 위까지 연결하는 게 좋겠다.”
동석이 계속 헤매자 답답했던 걸까.
동훈은 아예 정답을 던져 주었다.
놀라운 사실은 동훈의 정답이 준후의 예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한번 벅차오르는 감격.
역시 외과가 재미있어.
난 천생 외과 체질이란 말이지.
“금속판, 제가 잡아드리겠습니다.”
“놓치면 안 된다. 네가 놓치면 환자 뼈 박살 나.”
“네.”
동석이 준후에게 경고를 주고 망치를 손에 쥐었다.
정형외과 수술에서 쓰이는 스텐인레스 재질의 뼈 망치였다.
은색의 망치가 무영등 불빛을 반사하며 보석처럼 빛났다.
준후는 수술 도구 중 하나인 홀더로 환자의 뼈와 금속판을 고정시켰다.
“시작하세요. 선생님.”
“알았어. 진짜 꽉 잡아라.”
까아아앙!
망치질이 시작되었다.
동석은 망치로 금속판 구멍에 삽입된 나사를 힘껏 두들겼다.
금속판 테두리에 위치한 나사는 드릴이 아닌 망치로 직접 박아야 했다.
까아아앙!
까아아앙!
까랑까랑한 쇳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동석은 목수가 된 것처럼 열정적으로 망치질을 했다.
의사 가운 소매 틈 사이로 비치는 동석의 팔에는 힘줄과 근육이 불끈불끈 돋아 있었다.
격정적인 망치질 때문일까.
순간 이곳이 수술방인지, 목공방인지 착각이 들 만한 광경이었다.
저 솜씨로는 어림도 없어.
준후는 동석이 하수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동석은 쓸데없이 동작만 클 뿐.
손목과 상체의 힘을 망치에 제대로 실지 못했다.
두려워하고 있구나.
나사가 아니라 환자의 뼈를 칠까 봐.
준후는 동석의 마음을 쉽게 읽어냈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는 타인의 행동 뒤에 숨은 감정까지 능숙하게 알아차렸다.
이십 년 동안 타인과 검을 겨루다 보면서 자연스레 깨닫는 것이었다.
“동석아. 그러다가 어느 세월에 나사를 다 박겠니?”
망치질을 지켜보고 있던 동훈이 답답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환자에게 부담이 간다는 건 알고 있지?”
“……네. 하지만 제가 망치질을 잘못했다가 혹시 환자의 뼈를 칠까 봐서…….”
동석이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준후가 금속판을 제대로 고정을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허! 준후, 핑계는 대지 마. 이 녀석, 어디서 못된 버릇을 배워 가지고.”
“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동훈이 따끔하게 꾸짖자 동석이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깨소금 맛이다.
어디, 핑계를 댈 걸 대야지.
준후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동훈 같은 고수 정형외과의 앞에서는 변명이 통하지 않았다.
“정 자신이 없으면 망치를 짧게 쥐어. 너무 위에서 내려치지도 말고.”
“알겠습니다.”
“그 전에…….”
동훈의 시선이 문득 준후에게 머물렀다.
“준후, 너도 한번 해볼래?”
동훈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인턴에게 정형외과 수술의 핵심 처치를 맡긴다?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동훈은 궁금했다.
준후가 외과의에게 필요한 피지컬까지 갖추고 있는지가.
“교수님. 정말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저를 가르쳐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준후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제 입장이…….”
“그럼 처음부터 똑바로 했어야지.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니?”
“아…….”
동석이 한숨 섞인 탄식을 뱉어냈다.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말아.”
“저는…… 꼭 해보고 싶습니다.”
준후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정형외과 처치를 직접 해볼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준후가 놓칠 리 없었다.
“장난감 아니다. 최대한 조심해서 다뤄.”
“네.”
동석이 준후를 찌릿 노려보며 망치를 건넸고 준후는 망치를 건네받았다.
정형외과 망치는 쥐는 느낌이 좋았다.
손에 쏙 들어왔다.
간만에 실력을 제대로 발휘해 볼까?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주겠어.
준후는 금속판 테두리에 위치한 나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발경의 수법으로 가볍게 발을 굴렀다.
쿵!
발경이란 하체를 지면에 단단히 고정함으로써 힘을 폭발적으로 분출한 준비를 하는 예비 동작이었다.
발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준후는 양손으로 쥔 망치를 벼락처럼 휘둘렀다.
눈으로 조준한 나사의 중심부를 망치로 정확하게 내리쳤다.
까아아앙!
“…….”
“…….”
망치질이 끝나자 수술방에 감도는 기묘한 침묵.
준후가 단 한 방의 망치질로 나사를 끝까지 박아 넣었던 것이다.
동석이 연신 헛방을 치거나.
대여섯 번씩 망치질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경이로운 성과였다.
“교수님.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어? 어. 그래. 아주 훌륭했다.”
막 마취에서 풀린 것처럼 동훈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
휴게실.
동훈, 동석, 준후가 캔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잠깐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총 3시간에 걸친 금속판 고정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열 받네, 진짜.’
동석은 힐끔힐끔 준후를 노려보았다.
오늘 수술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동석이 됐어야 했다.
금속판 고정술을 멋지게 성공해서 동훈에게 칭찬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웬걸?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준후가 가져가 버렸다.
실로 얄미운 놈이 아닐 수 없었다.
오전에 대들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엿을 먹여?
동석의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동석아 표정이 왜 그러니? 아직도 아까 일을 마음에 두고 있어?”
동훈이 동석을 보며 물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너도 첫 집도치고는 꽤 잘했어.”
“…….”
“도중에 긴장을 풀까 봐 말을 안 했던 것뿐이야.”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나저나 준후 너는 놀랍더구나. 처음 하는 망치질에 나사를 한 번에 박아버리다니.”
“제가 학생 때 목공하는 동아리에 있었습니다.”
“어쩐지 솜씨가 남다르다 했어.”
동훈과 준후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동석을 향했던 동훈의 관심은 금방 준후에게 넘어가 버렸다.
동석은 애초에 화젯거리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준후를 향한 시기와 질투 때문일까.
동석은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교수님.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말해보렴.”
“제가 틈틈이 뉴튜브 촬영을 하고 있는데 여유가 있을 때 뉴튜브 촬영을 해도 될까요?”
“업무에 지장이 안 간다면 막을 이유가 없지.”
“그럼 지장이 안 가는 선에서 촬영하겠습니다.”
준후는 동훈에게서 뉴튜브 촬영 허락을 받아냈다.
대박 채널을 키운다.
채널 수익금으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을 돕는다.
이는 준후의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니까.
“나는 잠깐 연구실에 들렀다가 다음 수술을 하러 가야겠구나. 너희 둘 다 고생 많았다. 동석이는 다음 수술에서 보자꾸나.”
“네. 교수님.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수님.”
동훈이 떠나면서 휴게실에는 동석과 준후만이 남았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워졌다.
“서준후, 너 좀 깝치더라? 인턴이면 인턴답게 찌그러져 있을 것이지.”
동석이 시비조로 말을 걸었다.
“교수님한테 알랑방귀 뀌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냐?”
“부러우면 부럽다고 솔직히 말하시죠.”
“야, 뭐라고? 다시 말해봐.”
동석이 도끼눈을 뜨고 준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준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준후는 동석이 두렵지 않았고.
동석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또한 느끼지 못했다.
-인턴은 오직 예, 아니오 로만 대답한다. 그게 이해가 안 되나?
오전에 했던 말에서 동석의 인성은 낱낱이 드러났다.
준후는 이런 쓰레기에게 고개를 숙이고 싶지도, 또 살갑게 굴고 싶지도 않았다.
“제가 부럽냐고 말했습니다.”
“미친 새끼. 망치질 몇 번 잘했다고 졸라 유세 떠네. 누가 보면 네가 수술한 줄 알겠다?”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분이 왜 저한테 시비를 겁니까? 열등감 때문 아닙니까?”
준후는 동석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준후의 혀는 검과 다를 바 없이 매섭고 날카로웠다.
“하…… 넌 진짜 눈에 뵈는 게 없구나? 인턴 따위가 3년 차한테 기어오르기나 하고.”
“대접받고 싶으면 대접받을 행동을 하세요.”
“또라이 새끼. 너 같은 건 흠씬 처맞아야 정신을 차리…….”
동석이 오른손을 한껏 치켜들었다가 손을 내렸다.
가운에 넣어두었던 콜폰에서 호출이 왔기 때문이다.
“하늘이 살린 줄 알아라. 하여간 넌 네 손에 죽은 목숨이니까. 그것만 기억해.”
동석이 쌩하니 휴게실을 떠났고.
준후는 멀어지는 동석의 등을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
하늘이 살린 건 준후가 아니라 동석이었다.
만약 동석이 손찌검을 했다면 배로 갚아줄 생각이었으니까.
준후는 동석과의 불쾌한 대화를 털어내고 첫 수술을 복기했다.
수술 과정과 순서.
수술 도중 주의사항.
명의인 동훈이 보여준 처치술과 손놀림.
다음번에 같은 수술을 어시스트한다면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등등.
무림에서의 대련도 그렇고.
현대에서의 수술도 그렇고.
복기는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머리나 가슴 속에 붙잡아두지 않은 것들은 사라지기 마련이기에.
복기를 하는 도중 준후는 두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하나는 정형외과 수술의 매력이었다.
강인한 피지컬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정형외과 수술은 준후와 궁합이 좋았다.
피지컬이야말로 준후가 가진 최고의 장기 중 하나였으니까.
금속판 나사를 한 번에 박아 넣었을 때의 쾌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나머지 하나는 양손 사용이었다.
오른손잡이인 준후는 양손으로 집도하던 동훈의 모습에 흠뻑 빠졌다.
수술 속도와 수술 정확도.
양손을 사용했을 때의 강점이 명확했으므로 준후도 양손 사용을 목표로 삼았다.
기왕이면 양손 사용에 빨리 능숙해졌으면 좋겠는데…….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동훈과 똑같은 방법으로 수련한다면 수련 시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은데 말이다.
딱!
준후는 무림에서의 기억을 필사적으로 되짚다가 손가락을 경쾌하게 튕겼다.
마침 기막힌 무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