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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66화 (66/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66화

제11장 수련(4)

오전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내내.

준후는 현진의 걱정 담긴 눈빛을 받아야만 했다.

오늘 새벽.

준후가 양수호박 기술 익히는 장면을 현진이 목격해 버렸기 때문이다.

목격 당시 현진은 준후의 멘탈을 심하게 걱정했다.

너 정신과 진료를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 왜 속으로 삭이고 있었냐 등등.

준후는 할 말이 많았지만 정작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림과 무공에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면 진짜 미친놈 소리를 들을 테니까.

-야, 말을 그렇게 잘하는 놈이 왜 갑자기 말을 못 해? 응?

-그 정도로 정신이 나가버렸어?

-아이고. 다 내 탓이다. 내 탓.

준후가 대답이 없자 현진의 걱정 수위가 더 올라갔다.

깊어지는 오해를 풀기 위해 준후는 가까스로 변명했는데 그 변명이 오히려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그게…… 선배. 오른손하고 왼손하고 가위바위보를 하면 어느 쪽이 더 많이 이길까요? 선배는 궁금해 본 적 없어요?

-저런……. 네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구나. 당분간 일 안 시킬 테니까 좀 쉬어라.

사태는 그렇게 일단락이 되었다.

하지만 현진은 군대에서 분대장이 관심병사를 주목하듯 준후를 계속 주목하고 있었다.

하긴 오해를 사기 딱 좋은 수련 법이긴 해.

준후는 양수호박 기술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혼자 가위바위보를 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 사람의 정신을 의심하는 게 당연하긴 했다.

양수호박 기술 연마에 이런 단점이 존재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도 컨퍼런스 도중.

준후는 책상 밑에 양손을 집어넣고 양수호박을 갈고 닦았다.

양수호박 연마는 주변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단점만큼이나 큰 장점도 존재했다.

바로 언제 어디서나 수련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한다거나.

왼손으로 바느질을 한다거나 등등.

왼손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보통 특정한 도구가 필요하건만.

양수호박 연마는 도구에 의존하지 않았다. 필요한 건 짝궁이 되는 오른손뿐이었다.

역시 쉽지 않단 말이지.

승률이 처참한데?

왼손이 오른손을 이길 확률은 현재까지는 2할 정도였다.

그마저도 몇 시간 수련을 해서 승률을 올린 것이었다.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였다.

가위바위보 속도를 올리면 승률은 더 떨어지고 오른손까지 꼬인다는 점 또한 문제였고.

하지만 준후는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명의 이동훈 교수마저 왼손에 숙달하는 데 6년이 걸렸다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왼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일은 길게 봐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운영 중인 뉴튜브 채널의 덩치를 키우는 것처럼.

“이것으로 오전 컨퍼런스를 마치겠습니다. 스태프들은 병동 복도에 집합해 주세요.”

눈 깜짝할 사이에 오전 회의가 끝났다.

오전 회진을 돌기 위해 스태프들이 복도에 정렬하기 시작했다.

“너 정말 괜찮은 거지? 나 그만 걱정해도 되는 거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현진이 준후를 걱정했다.

“네. 선배. 저 멀쩡해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그럼 멀쩡한 놈이 새벽에는 왜 양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했던 건데?”

“하하하. 제가 원래 호기심이 좀 많아서요.”

준후는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다른 선배들한테 제 이야기한 건 아니죠?”

“아직은 안 했어. 너 오늘 하는 거 봐서 이야기할까 말까 고민 중이다. 진지하게.”

“제가 장담하는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준후는 멋쩍게 웃으며 결심했다.

다시는 양수호박 익히는 모습을 주변 사람에게 들키지 않겠다고.

* * *

오전 회진의 막이 올랐다.

회진이란 라운딩이라고도 불리는데 의사가 병실을 돌며 환자의 상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오전 정규 회진은 병동에서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과장과 교수, 레지던트, 인턴까지.

의국 스태프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여 환자를 보기 때문이다.

인턴인 준후는 먹이 사슬 가장 아래에 위치했으므로 바짝 긴장한 채 회진에 참석했다.

과장이 병실에 입장하기 전.

한 박자 빨리 병실 앞에 서서 문을 열었고.

-이 환자분은 경과를 보니 오늘 퇴원해도 되겠는데? 환자분도 원하시니까 퇴원 오더 내려요.

-이 선생. 이 환자분 비스테로이도 소염제 쓰고 있죠? 스테로이드 소염제로 바꿔 봅시다.

-이 환자분은 경과 학인 차, 오늘 오후에 MRI 한 번 더 찍어봅시다.

과장이나 교수들이 흘리듯이 한마디 하면 준후는 이를 부리나케 수첩에 적었다.

회진이 끝나는 즉시 오더를 입력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입력은 준후가 아닌 레지던트들이 하겠지만 말이다.

저벅. 저벅.

정형외과 병동을 다 돈 스태프들이 한층 아래에 위치한 소아 정형외과 병동을 찾았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문제의 병실에.

이번 병실은 건우가 머물고 있던 병실이었는데.

준후는 간호사들과 달리 건우의 보호자를 썩 좋게 보지 않았다.

자리를 자주 비웠던 데다가 어제 보호자의 외투에서 담배 찌든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제발 자신이 착각한 것이기를.

자신이 생각한 시나리오가 망상에 불과한 것이기를.

준후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일단 확인해 볼까?

스태프들 대열 후미에 있던 준후는 내공으로 시력을 증폭시켰다.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정형외과 스태프들이 우르르 몰려온 것이 부담스러웠을까.

건우는 스태프들과 눈을 마주지 못한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어머니인 보호자는 침대에 걸터앉았는데 환한 미소로 스태프들을 맞이했다.

“건우야 다리는 좀 어떠니? 아프지는 않고?”

“네.”

과장의 질문에 건우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디 보자. 어제 통깁스를 했구나. 다리가 너무 답답하거나 조여지는 느낌은 없고?”

“네.”

“근데 깁스에 만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네? 누가 그려줬니?”

“저 선생님이요.”

건우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준후가 있었다. 순간 준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건우야, 이 친구는 사실 선비가 아니야.

-그럼 누구인데요?

-선비 친구 산비라고 하는데 얘도 나쁜 요괴를 혼내줘.

-만화에 이런 요괴 없어요. 이름도 이상하고 너무 못생겼단 말이에요.

건우와 나눴던 대화가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다.

“얘는 못생긴 산비고요. 얘는 제가 좋아하는 선비예요. 못생긴 산비를 저 선생님이 그렸고요. 잘생긴 선비는 간호사 선생님이 그려줬어요.”

건우야 그렇게까지 솔직할 필요는 없잖니?

……라고 말할 뻔한 준후였다.

“서 선생. 그림 그리는 솜씨는 영 젬병인데. 어째 내 조카보다 엉망인걸?”

과장의 말에 스태프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동안 근무 내내 A턴 취급만 받던 준후가 한순간 웃음거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근데요. 저 선생님이 깁스는 안 아프게 잘해줬어요.”

“응? 저 선생님이 깁스를 해줬니?”

“네.”

건우의 대답에 과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형외과 근무를 한 지 이틀밖에 안 된 준후가 통깁스를 했다고 하니 당황한 것이다.

과장은 그제야 통깁스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건우의 발목은 석고 붕대로 단단히 고정되었으며.

발목의 각도는 정확하게 90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건우의 말에 따르면 심한 압박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니 통깁스는 성공적이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캐스트만 놓고 보면 정형외과 전문의 시험을 봐도 단번에 합격인 수준인데…….

인턴이 하루 만에 캐스트를 숙지한다고?

과장은 준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서 선생, 캐스트 혼자 했어요?”

“네. 혼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강 선생님이 꼼꼼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준후가 공손하게 공로를 현진에게 돌렸다.

“잘했습니다. 오늘 일은 기억해두겠어요.”

과장이 준후와 현진을 번갈아 응시한 뒤 보호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 * *

휴우.

다행히 잘 넘어갔네.

준후는 쪽팔렸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준후의 못난 그림에서 통깁스 실력으로 화제가 넘어가서 다행이었다.

스태프들이 조금만 더 놀렸다면.

준후는 쥐구멍을 찾아서 숨었을지도 몰랐다.

건우의 상태가 양호해 보여서 안심했던 걸까.

과장은 이제 보호자를 응시하며 보호자와 대화를 나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신, 제발 나를 실망시키지 말아줘.

내가 착각하고 오해한 거라고 말해줘.

준후는 귀를 쫑긋 열고 보호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건우는 병실에서 좀 어떤가요? 어린 친구가 병실에 갇혀 있으면 많이 답답할 텐데 말입니다.”

“제가 하루 종일 붙어 있었는데요.”

보호자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 건우가 휴대폰을 보면서 기특하게 잘 참아주더라고요. 저는 건우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답니다.”

보호자가 말을 마치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건우는 언제쯤 퇴원할까요?”

“사나흘 정도 경과를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퇴원하고 나면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 수 있겠죠?”

“몇 개월 동안은 무리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관리만 잘해주신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씀이네요. 저는 우리 건우밖에 없답니다. 건우는 제 삶의 낙이에요.”

보호자가 애정 넘치는 표정으로 건우를 응시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건우의 머릿결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아주 사소한 동작이었지만 준후는 놓치지 않았다.

보호자의 손이 닿는 순간.

건우의 몸이 흠칫 굳어버리고 얼굴에 공포가 떠오르는 것을.

역시 그렇게 되는 건가.

준후는 보호자에게 가지고 있던 의심을 심증으로 굳혔다.

보호자는 좋은 어머니가 아닌 게 분명했다.

입술을 혀로 핥거나.

코를 만지는 것은 거짓말을 할 때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제스처였다.

보호자의 손이 닿았을 때.

움찔하던 건우의 모습 또한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고.

“낮에 병실을 잠깐 비우셨던데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잠자코 있던 준후가 대화에 껴들었다.

인턴이 회진에 끼어드는 것은 금기 중의 하나였지만 준후의 질문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누구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 그게 갑자기 친구가 찾아와서요. 잠깐 커피숍에서 대화를 나눴어요.”

대답을 하면서 보호자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심지어 이것도 거짓말이었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을 한다는 것은 말을 지어낸다는 뜻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준후는 보호자의 외투에서 똑똑히 담배 찌든 냄새를 맡았다.

카페에서 친구와 대화를 나눴다면 어떻게 그런 지독한 냄새를 풍길 수 있었을까.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드러났기에 준후는 마음이 아팠다.

저 어린 건우가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싶었다.

아마 건우는 놀다가 무릎을 다친 게 아닐 것이다.

보호자의 폭력 때문에 골절을 입었으리라.

건우를 향한 안타까움.

보호자를 향한 분노로 준후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이제 준후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건우를 보호자의 손에서 건져내는 일.

보호자에게 법의 심판을 내리는 일이었다.

“건우가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대화는 이쯤 해도 될까요?”

“네. 그러시죠. 다들 다음 병실로 갑시다.”

과장의 지시와 함께 스태프들이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

준후는 가장 늦게 병실을 떠나며 보호자를 섬뜩하게 노려보았다.

이, 위선자야.

그 가면이 벗겨질 날도 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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