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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72화 (72/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72화

제12장 미련(5)

저벅. 저벅.

밀린 오더를 순식간에 처리하고 준후는 수술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금 왜 나를 도와줬어? 그냥 모른 척했어도 되잖아.

이동하는 도중 떠오르는 우현의 질문에 준후는 피식 웃어버렸다.

분명 우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으리라.

싫어하는 사람을 돕는다는 행위를.

하지만 준후는 우현과 사고방식이 달랐다.

준후가 주목한 것은 환자였다.

우현을 골탕 먹이고 싶어서 환자의 고통을 모른 척한다?

준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외과의를 마음먹은 순간부터.

준후의 마음속 1순위는 언제나 환자였다.

심지어 환자의 고통을 덜 수 있다면 악마와도 손잡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겠어.

수술방이 가까워질수록 기대와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번 스크럽은 무려 수지접합 수술이었다.

준후가 꼭 참관하고 싶었던 수술이었다.

30분 전 응급실을 통해 응급 환자가 들어왔는데.

목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환자로.

전기톱을 사용하다가 왼손 검지의 3분의 2가 절단되었다.

무림에서 신체 부위가 절단된 환자는 별수 없이 절단된 신체를 포기해야만 했다.

그 잘나고 대단한 내공으로도 절단된 신체 부위는 붙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한 현대는 달랐다.

내공이 없어도 절단된 신체를 기적적으로 붙일 수 있었다.

수술방에 도착한 준후는 갱의실에서 수술 가운을 챙겨 입었다.

벅. 벅. 벅. 벅.

포비돈 용액이 묻은 솔로 손과 손가락, 팔뚝을 문질렀으며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장갑과 가운 등도 착용했다.

위이이잉.

에어 샤워를 마치고 진입한 수술실.

준후는 순환 간호사와 함께 수술 도구들을 준비했다.

“선생님. 미세 접합 수술은 보통 몇 시간이 걸려요?”

준후가 순환 간호사에게 물었다.

“오늘 같은 환자면 6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쌤 입장에서는 엄청 지루할 거예요.”

“…….”

“졸지 않게 조심하세요.”

“왜죠?”

“간단해요. 선생님이 할 게 없거든요.”

순환 간호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른 수술과 달리 수지접합 수술은 인턴이 할 일이 없다고 한다.

“썩션이나 견인, 이리게이션(생리 식염수 세척) 정도는 하지 않나요?”

“아니요. 그 정도도 안 해요. 워낙 미세한 처치로도 영향을 크게 받는 수술이라서요.”

“음. 수술 도구만 건네면 시간이 안 가긴 하겠네요.”

준후는 조금 실망했다.

뭔가 의욕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술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인턴은 다 좋은데 업무 범위가 너무 좁아서 탈이었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는 이미 인턴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말이다.

달그락. 달그락.

수술 도구를 준비할 때마다 경쾌한 쇳소리가 수술실에 울려 퍼졌다.

준후는 수술 준비 역시 허투루 하지 않았다.

세팅 중인 수술 도구의 용도를 생각하고.

왜 이 도구가 필요한지 의도를 질문하고.

수술 도구를 쥐며 감촉을 느꼈다.

마치 무림에서 무인들이 병장기를 고를 때 심사숙고하는 것처럼.

공부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관심 있는 분야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탐구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손가락 도착했다는데 받아주실래요?”

“네.”

간호사의 부탁에 준후는 수술실 문 앞으로 이동했다.

지이이잉.

문이 열리고 수술방 간호사가 주인공에게 봉투를 건넸다.

봉투는 이중 밀봉이 되어 있었다.

손가락이 들어 있는 비닐을.

얼음물이 차 있는 비닐이 한 번 더 감싸고 있는 형태였다.

환자보다 환자의 손가락이 먼저 도착했다라…….

준후는 이 상황이 참 기묘하다고 생각했다.

수지접합 수술만의 특징이리라.

“선생님. 여기…… 앗!”

수술방 간호사가 준후에게 비닐을 내밀다가 화들짝 놀랐다.

물기가 맺힌 비닐 봉투에 수술 장갑이 미끄러졌던 것이다.

실수록 비닐을 놓쳐 버린 것이다.

이대로라면 손가락에 2차 손상이 가해질 수도 있는 상황.

이렇게 허무하게 수술을 망칠 순 없어!

휘이이익.

무림에서 갈고 닦은 반사 신경으로 준후는 낙하하는 비닐 봉투를 공중에서 낚아챘다.

금나수의 수법을 응용해서.

“휴~ 죽다 살았네. 쌤 고마워요. 비닐이 조금 미끄러워서요.”

“조심하셔야죠. 떨어뜨렸으면 큰일 났습니다.”

“그러게요. 앞으로는 정신 바짝 차릴 요. 죄송해요.”

수술방 간호사가 사과를 하고 자리로 돌아갔으며 준후는 손가락이 든 비닐을 드레싱 카트 위에 고이 모셨다.

이걸로 수술 준비는 끝이었다.

* * *

수지접합 수술은 확실히 일반 수술과는 달랐다.

우선 집도의가 나이 지긋한 교수였고 퍼스트를 서는 의사 역시 교수였다.

수술 자체가 워낙 고난이도인 데다가 수부외과 의사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자 역시 일반 수술과 달랐다.

보통 수술은 환자에게 전신 마취를 하기 마련인데 수지접합 수술은 절단 부위만 부분 마취를 했다.

그래서 수술실에서도 환자의 의식은 멀쩡했다.

-선생님. 제 손가락이 붙을 수 있을까요?

-환자분 정도면 손상이 심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접합하겠습니다.

-지루한 건 알겠지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이따금 환자와 집도의가 대화를 나누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수지 접한 수술은 정적이었다.

다른 정형외과 수술이 망치, 톱, 드릴을 사용해 요란하고 박력 있게 수술한다면.

수지접합 수술은 의사들이 다소곳이 앉아서 공부하듯 수술을 펼쳤다.

또한 의사들의 눈은 수술 부위를 향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체를 25배 확대하는 미세 현미경만 쳐다보며 집도를 이어나갔다.

대단해.

두 교수님 모두 양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어.

손놀림도 정교한 게 나보다 훨씬 위야.

준후는 수술을 지켜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본래라면 감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인턴은 미세 현미경을 볼 짬이 안 되었으니까, 준후는 감탄할 수 있었다.

내공으로 시력을 증폭해서 부족한 시야를 일부 보완했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환자의 손가락뼈와 힘줄, 근육을 차례대로 복원 중이었는데 그 광경에서 준후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봉합의 매력에 관해서였다.

무림에서 검을 다뤘기 때문일까.

준후는 절개(신체 부위를 단순히 가르는 것)와 절제(신체 부위를 잘라서 제거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메스로 문제의 부위를 가르고 제거하면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지접합 수술 어시스트를 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봉합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제 기능을 못 하는 신체 기관을 연결해서 다시 정상으로 만드는 일.

그 일은 절개나 절개보다 집중력이 필요했고 또 정교한 솜씨를 요구했다.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도 분명 이런 부분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양수호박부터 빨리 익혀야겠어.

절개와 절제라면 오른손만으로 충분하겠지만 봉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미세 수술을 위해선 양손 사용이 필수다.

수지접합의들의 뛰어난 손놀림은 준후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준후는 모처럼 도전 정신에 불타올랐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눈앞에 있는 교수들을 능가하는 솜씨를 갖추고 싶었다.

“이 선생, 지금부터 혈관 문합합니다. 정신 바짝 차려요.”

“네. 교수님.”

“위에서 아래로. 지동맥부터 천장동맥궁 문합하고 그다음으로 정맥으로 가요.”

집도의의 지시와 함께 수지접합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혈관 문합이 시작되었다.

문합이란 끊어진 두 신체 부위의 양 끝을 서로 묶어주는 처치였다.

단순히 갈라진 신체 부위를 묶는 것은 봉합이라고 하는데.

당연하게도 문합은 봉합보다 난이도가 더 높았다.

“…….”

준후는 숨죽여 가며 혈관 문합 과정을 지켜보았다.

-오늘 같은 환자면 6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쌤 입장에서는 엄청 지루할 거예요. 선생님이 할 게 없으니까요.

같이 수술 준비를 했던 순환 간호사의 말은 틀렸다.

준후는 이미 수술에 흠뻑 빠져 있었다.

현 상황을 무림에 비유하자면 이랬다.

자신보다 경지 높은 고수들이 펼치는 초식을 눈앞에서 직관하는 느낌이랄까.

이런 좋은 기회를 언제 또 맞을 수 있을까.

감탄하고 또 감탄하며.

흥미진진하게 수술을 지켜보던 준후는 문득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었다.

눈이 아프고 쑤셨다.

미세 현미경으로 봐야 할 수술 부위를 내공을 이용해 억지로 관찰했더니 후유증이 찾아온 것이다.

‘이거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잠깐 한숨을 돌리던 준후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집도의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문제는 눈썹 근처에 맺힌 굵은 땀방울이 집도의의 눈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것이다.

집도의는 가뜩이나 중요하고 어려운 미세 혈관을 문합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눈에 눈물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쓰라린 통증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손이 엇나갈 것이다.

그 결과 문합 중인 혈관에 손상이 가해질 확률이 높았고.

언제 껴들어야 하지?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는데.

준후는 초조하게 수술 부위와 집도의의 땀을 번갈아 응시했다.

수술 중인 집도의를 부르자니 집도의의 집중력이 흩어질 것 같고.

가만히 있자니 땀이 집도의의 눈에 떨어져 사고가 날 것 같았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

준후는 집중력을 발휘해 수술의 진행사항과 땀의 이동 거리를 면밀하게 체크했다.

스으으윽.

지금이다!

봉합사의 니들이 혈관으로 향하는 순간.

집중력을 발휘하기 전 집도의가 잠깐 호흡을 멈추는 순간.

지금 이 순간이 준후가 끼어들 최적의 타이밍이었다.

“교수님.”

“하…… 무슨 일이에요?”

집도의가 참았던 숨을 내쉬며 준후를 쳐다보았다.

마스크에 가려져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집도의의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 미쳤니?’라고.

환자가 전신마취였다면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얻어먹었으리라.

중요한 수술을 하는데 어디 인턴이 끼어드냐면서.

“잠깐 땀 좀 닦아드리겠습니다.

준후는 거즈를 이용해 집도의의 눈에 다다른 땀방울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땀에 젖은 거즈를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거즈에는 땀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집도의는 거즈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준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말도 안 돼.

이 친구가 내 땀을 보고 있었다고? 게다가 나를 호출한 타이밍도 절묘했어.

문합 전 내가 숨을 멈추고 손을 가다듬는 타이밍이었단 말이지.

설마 이 모든 걸 계산한 건가?

집도의는 준후의 활약에 깜짝 놀랐다.

무슨 대단하지도 않은 일로 호들갑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뭘 모르는 사람이었다.

준후는 문합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혈관 하나를 망칠 수도 있었던 땀을 제거해 주었다.

쉽게 말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집도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놀라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선생님 재치 덕에 위기를 넘겼어요.”

“아닙니다. 거즈로 땀을 닦아드린 것뿐인데요.”

“본래 작은 일이 모여서 큰일을 만드는 거랍니다. 아주 잘했어요.”

집도의가 준후를 극찬하자 수술실 분위기가 묘해졌다.

퍼스트를 서던 교수.

소독 간호사.

수술을 받고 있던 환자.

이 셋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집도의와 준후를 번갈아 쳐다본 것이다.

세 사람은 준후와 집도의 사이에 이뤄진 교감과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순간을 알지 못했으니까.

“인턴 선생님. 이름이 어떻게 되죠?”

“서준후라고 합니다.”

“그 이름 석 자, 잊지 않고 기억하죠.”

집도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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