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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73화 (7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73화

제12장 미련(6)

2층 의사 휴게실.

“에구구.”

수부외과 부 교수 동휘는 소파에 앉아 편하게 등을 기댔다.

다른 수술과 달리 수부외과 수술은 앉아서 진행했다.

하지만 장시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있다 보니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심했다.

그래서일까.

지금처럼 편하게 앉는 순간이 동휘에게는 축복이었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이야. 손가락 접합 수술로 곤죽이 되어버리다니.”

“부 교수님이 그런 말씀하실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여기 받으시죠.”

함께 수술을 했던 수부외과 교수 준석이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동휘에게 건넸다.

동휘가 음료를 받았다.

“고맙네. 잘 마시지.”

“별말씀을. 목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직은 견딜 만해.”

동휘가 한 손으로 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동휘는 목 디스크가 있었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심해지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수술 스케줄이 워낙 빡빡해서 치료받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빨리 똘똘한 친구들이 지원을 해야 할 텐데. 참 걱정입니다.”

“올해 수부외과 지원자가 아마 없었지?”

“네. 없었죠. 작년부터.”

준석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부외과는 정형외과 또는 신경외과에서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한 후.

펠로우 수련 1년.

수부외과 전문의 수련 1년.

총 2년의 경력이 더해져야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과의들은 수부외과를 외면했다.

살인적인 수술 난이도.

난이도와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턱 없이 부족한 보상.

그로 인해 외과의들은 수부외과 세부 전공을 기피하는 추세였다.

잘린 신체 부위를 접합하는 동안.

다른 수술을 여러 개 집도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이러다가 수부외과 전공자의 씨가 마르는 게 아닐까 걱정입니다.”

“그러면 자네랑 내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수술해야지.”

“어휴. 또 무서운 말씀을.”

준석이 진저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아까 수술 보조하던 인턴을 칭찬하시던데…… 무슨 이유라도 있으셨습니까?”

“아, 준후. 그 친구?”

“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칭찬을 하시길래 놀랐습니다.”

“자네야 내막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동휘는 지금도 그 당시를 떠올리면 감탄이 나왔다.

준후가 혈관 문합을 방해하지 않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자신을 호출한 것.

또 인턴답지 않은 눈썰미로 자신의 땀을 닦아준 것 말이다.

이는 극찬을 받아 마땅했다.

손가락 접합 수술에 들어오는 인턴은 대개 정신이 느슨했다.

본인의 업무가 적어서 졸거나 서서 자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준후는 달랐다.

어시스트 하는 내내 날카로운 집중력을 유지했다. 눈은 초롱초롱 빛났으며 손은 빠릿빠릿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동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서야 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친구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있다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수부외과 전공을 하면 틀림없이 대성할 녀석이야.”

동휘는 준후의 싹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

가능하다면 자신이 은퇴하기 전에 준후를 후계자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친구가 수부외과 전공을 할지 모르겠군요.”

“내 말이 그 말이네. 인연이 있다면 다시 볼 수 있겠지. 인연이 있다면.”

동휘는 음료수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쓸쓸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 * *

접합 수술이 끝난 후.

준후는 응급실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환자를 보러 가는 것은 아니었고 다른 볼일이 있어서였다.

이동 중 준후는 양수호박 기술을 열심히 갈고 닦았다.

주변에서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손가락 접합 수술을 어시스트하고 난 후부터 준후의 의욕은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수부외과의만큼 양손을 능숙하게 쓰고 싶다.

또 수부외과의만큼 양손을 세밀하게 쓰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된 것이다.

[목표는 이번 달 안으로 왼손 ABGA 채혈에 성공하기]

준후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양수호박에 열중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나흘째.

아직 왼손의 숙련도는 밑바닥이었지만 손이 엉키는 횟수가 희미하게나마 줄어들고 있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준후는 성장 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정형외과도 참 매력적이란 말이지.

일반 수술에서는 목수처럼 우직하고 강인한 면모가 필요하고.

접합 수술에서는 한층 섬세하면서도 꼼꼼한 기술이 요구되고.

요즘 말로 하면 준후는 정형외과에 정며들고 있었다.

응급실로 내려가던 도중.

준후는 문득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만약 현대에서 필요한 의술을 다 익히고 다시 무림을 경험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맥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동료들의 죽음과 부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경지를 높여서 이기어검으로 수술까지 집도할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하고.

아니.

미련은 접어두자.

망상도 접어두자.

준후는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집중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고 현대의 삶이었다.

준후는 응급실에 도착해 주변을 훑었다.

응급실은 여전히 정신없을 정도로 분주했다.

진료 대기 환자는 무려 30여 명이 넘었고 스태프들은 병상과 스테이션을 바쁘게 오가는 중이었다.

정형외과에서 근무한 시간보다.

응급실에서 근무한 시간이 더 많아서 그럴까.

분위기가 정겨운 쪽은 오히려 응급실 쪽이었다.

“아영아, 바빠?”

“어? 준후구나.”

준후가 말을 걸자 스테이션에서 차트를 입력하던 아영이 준후를 돌아보았다.

“지금 좀 바쁘기는 한데.”

“그래? 나도 지금 아니면 시간 빼기 애매한데. 소진 선배. 아영이 잠깐 빌려도 될까요?”

준후는 지나가던 소진에게 부탁을 했다.

소진은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3년 차로 준후를 예뻐하던 선배였다.

“뭐야? 이렇게 공개적으로 연애하는 티를 내도 되는 거야?”

“저희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부탁 좀 드릴게요. 10분이면 됩니다.”

“준후 너라서 봐준다. 아영아, 준후랑 잠깐 나가 봐.”

“감사합니다. 선배.”

준후의 인맥 빨(?)로 두 사람은 휴게실에서 잠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응급의학과 근무는 어때?”

“뭐랄까? 정신없이 쫓기는 느낌? 진료도 보고 처치도 하려니까 다 꼬이는 것 같아.”

“나도 처음엔 그랬어. 근데 아영이 너라면 야무지게 잘해낼 거야.”

준후는 아영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하지만 절대 빈말을 한 건 아니었다.

아영이는 의대 시절부터 똑순이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일 처리가 빠르고 꼼꼼했다.

고교 시절에는 수능 시험장에서 과호흡 증후군을 일으킬 만큼 긴장을 잘했지만.

흉부외과의를 꿈꾼 다음부터는 그마저도 없었다.

카데바 실습마저 꿋꿋하게 이겨냈으니까.

“정형외과는 어때?”

아영이 준후에게 물었다.

“아주 만족스럽지. 난 역시 외과 체질인가 봐. 수술 스크럽 설 때가 가장 행복해.”

“정말 그런 것 같네. 너 지금 웃고 있거든.”

“너무 티 났나? 그건 그렇고 부탁한 건 혹시…….”

“당연히 사 왔지. 잠깐만 기다려.”

휴게실을 나갔다가 돌아온 아영의 손에는 포장지에 쌓인 물건이 들려 있었다.

물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 선비 인형이었다.

어제저녁 준후는 오프인 아영에게 선비 인형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이유라면 간단했다.

건우에게 인형을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이라도 안고 있으면 건우의 쓸쓸한 병실 생활에 작은 위안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준후 너도 참 대단해. 환자들 선물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아영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사정을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순 없지. 내가 건우 입장이라고 생각해 봐. 지금 얼마나 괴롭겠어. 그 어린 것이.”

준후는 말을 마치고 아영을 쳐다보았다.

너무 감정적이었던 것 같아서 괜히 쑥스러웠다.

“내가 너무 오지랖을 떠는 것처럼 보이려나?”

“아니. 난 준후, 너의 그런 모습이 좋아. 다른 사람을 상냥하게 배려하는 모습.”

아영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너한테 크게 신세를 졌는걸? 수능 때 네가 날 도와주지 않았으면 아마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뭐.”

준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준후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무림에서는 악인을 베어내는 일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것 밖에 할 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말이다.

백 명의 악인을 베어낸다고 한들 소중한 사람 한 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지금의 준후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귀중한 오프를 내서 부탁을 들어줬으니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준후는 의사 가운을 걷어 올리며 말을 계속했다.

“오랜만에 특별 마사지 간다.”

“병동에 빨리 올라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겠어?”

“아직 콜도 없는데 뭐. 원래 인턴은 요령껏 쉬는 거지.”

준후는 아영의 머리와 어깨, 허리에 집중적으로 추궁과혈을 실시했다.

의대 시절부터 준후의 마사지를 종종 받았던 아영은 준후의 손길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 * *

소아과 병동에 도착한 준후는 곧바로 건우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병실을 바라보니.

건우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건우 맞은편에는 날렵한 인상의 사내가 건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 건우 아버지인 듯했다.

아버지와는 오전 중에 한 번 통화를 나눴었다. 건우 어머니의 학대 사실을 미리 알렸던 것이다.

건우도 건우지만.

지금 건우 아버지가 느끼고 있을 괴로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내가 자식을 학대했다니.

자식이 학대당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되어서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그 자책감과 참담함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드르르륵.

준후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 건우 아버지 곁에 섰다.

“보호자분, 잠깐 이야기 좀 괜찮을까요?”

“혹시 오전에 전화 주셨던 선생님 맞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건우가 깰 수도 있으니까 이쪽으로.”

준후는 복도 창가 쪽으로 이동해 건우 아버지 기석과 대화를 나눴다.

기석의 말로는 건우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많이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다시 나타나서 해코지를 할까 봐 두려워하고.

그동안 쌓인 설움에 엉엉 울었지만 곧 차분해졌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준후는 새로운 정보도 얻었다.

건우의 어머니가 사실은 계모였다는 것.

기석은 유명 레스토랑 셰프로 귀가가 늦어 건우를 잘 보살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럼 레스토랑 업무는…….”

“건우가 건강해질 때까지 그만둬야죠. 이제부터는 건우가 제 인생의 1순위입니다.”

“…….”

“모아둔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기석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그 당당한 태도가 준후는 좋았다.

드디어 건우에게 선비 말고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났으니까.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우리 건우는 아직도 지옥에 있었겠죠.”

기석이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건우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당연한 말씀을 하시네요. 오늘 빚은 톡톡히 갚으셔야죠.”

“소정의 보상금이라도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휴. 그까짓 돈으로 되겠습니까?”

준후가 미소 띤 채 말을 이었다.

“은혜를 갚고 싶다면 그만큼 건우에게 잘해주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뿐입니다.”

“아…… 선생님…….”

“그리고 이건 건우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아버님이 사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주세요.”

준후는 포장지에 쌓인 인형을 기석에게 내밀었다.

“선생님이 사신 걸 왜 제가 샀다고 해야 하죠?”

기석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버님이 선물을 하셔야 건우가 아버님을 더 믿고 따를 테니까요.”

“그렇게 깊은 뜻이…… 그래도 선생님의 마음을 건우가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석의 지적에 준후는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검지로 천장을 가리켰다.

“제가 알고 아버님이 알고 하늘이 알고 있잖아요. 이만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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