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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75화 (75/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75화

제12장 미련(8)

“어쭈, 이 새끼 봐라? 이거 안 놔?”

동석은 인상을 확 구기며 준후의 손길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무슨 쇳덩이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손목에 가해지는 압력이 강해졌다.

문득 마주친 준후의 눈은 맹수처럼 포악했는데.

동석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눈빛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순간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솟아올랐지만 여기서 물러서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얼굴만 반반한 말라깽이한테 쫄아 버린다고?

절대 그럴 수 없지!

동석이 봤을 때 준후는 단순히 악력만 좋은 게 분명했다.

체격으로 보나 완력으로 보나.

육탄전을 펼치면 동석의 승리가 불 보듯 뻔했다.

“세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이거 놓으라고 분명히 말했다.”

“소원이라면 놔주지.”

준후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동석을 놓아주었다.

동석은 얼얼한 통증에 손목을 확인했는데 손목에 준후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런, 개 X발 새끼를 봤나.

“서준후, X나 막 나간다? 이젠 반말까지 하네?”

“이젠 너한테 존댓말 쓰는 것도 아까워.”

“그러세요? 무서워 죽겠네.”

동석은 빈정거리며 현진을 쳐다보았다.

준후만큼은 아니었지만 현진에게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현진이 언젠가부터 준후에게 찰싹 달라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현진이 존경하고 따라야 하는 사람은 준후가 아니라 자신인데 말이다.

“야, 강현진.”

“네. 선배.”

“서준후, 좀 붙잡고 있어. 도망 못 치게.”

“선배…… 그건 좀…….”

현진이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강현진, 너도 많이 컸네. 이젠 내 말이 말 같지 않지? 왜? 준후 새끼가 계속 널 보호해 줄 것 같아?”

“…….”

“이 빡통아. 네가 계속 보는 건 나야. 준후 새끼가 아니고. 아직도 이해가 안 가니?”

동석은 현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현진은 준후가 방금 귀싸대기를 막아줘서 준후에게 마음이 쏠린 듯했다.

하지만 그건 지독하게도 머저리 같은 발상이었다.

오늘 하루만 보는 하루살이 같은 판단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한다. 준후 새끼 꼭 붙잡고 있어.”

“선배. 그냥 나가 있으세요.”

잠자코 있던 준후가 모처럼 대화에 껴들었다.

“나가면 넌 뒤져.”

“나가세요.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서로 충돌하는 지시에,

회색지대가 없는 지시에 현진은 어찌할 줄 몰랐다. 현진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훗. 현진이가 너 따위 인턴의 말을 들을 리가 없지.

……라고 동석은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현진은 고개를 숙인 채 쌩하니 당직실을 떠나버렸다.

현진이 준후 놈을 선택한 것이다.

레지던트 3년 차이자 군기반장인 자신을 두고 말이다.

동석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혀를 찼다.

뒤늦게 찾아온 배신감과 분노.

준후를 손봐주고 다음 차례는 너야.

정강이가 까이는 걸로는 안 끝날걸? 모처럼 야구 방망이로 기강을 잡아주마.

동석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덩치만 믿고 설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네가 다시는 후배들을 괴롭히지 못하게 손봐줄게.”

준후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누구나 너처럼 생각하지. 나한테 처맞기 전까지는.”

“해봐. 할 수 있으면.”

도발에 응수하지 않고 동석은 성큼 준후에게 다가갔다.

이젠 말이 필요 없었다.

필요한 건 몸의 대화였다.

쎄에에엑.

동석은 준후의 안면을 향해 우락부락한 주먹을 날렸다.

그 반반한 얼굴이 망가지면 정신이 번쩍 들겠지.

내가 사람을 잘못 건드렸구나, 하고 후회가 되겠지.

그런데 웬걸?

준후는 고개만 살짝 움직여 동석의 주먹을 피했다.

동석의 주먹이 가소롭다는 듯.

이…… 이 자식이?

동석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공격을 계속했다.

두 주먹을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하지만 준후는 상체만 움직여가며 어렵지 않게 주먹을 피했다.

학창 시절에 권투라도 배운 것처럼 몸놀림이 가벼웠다.

“크으으윽.”

쿵!

순식간에 하체의 균형이 무너졌다. 준후가 동석의 발목 뒤쪽을 걷어찬 것이다.

동석은 형편없이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자신이 너무나 쉽게 쓰러졌다는 사실을 동석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렇게 싱겁게 끝낼 거야? 일어나서 계속해 봐.”

“개자식이.”

동석은 몸을 일으킨 후 럭비선수처럼 준후에게 달려갔다.

왕년에 운동을 좀 했던 모양인데 그래도 상관없었다.

압도적인 체구로 깔아뭉갠다면 준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덥석!

호기롭게 태클을 시도했지만.

허리를 낮춘 자세에서 준후의 허리를 양손으로 끌어안은 후 준후를 넘어트리려 했지만.

준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 단단함이 마치 쇠기둥 같았다.

“너랑 스킨십 할 생각 없다. 놔.”

퍼어어억!

준후의 팔꿈치가 동석의 등허리를 내리찍었다.

순간 등허리에 찌르르한 통증을 느끼며 동석은 그 자리에 쓰러져 눕고 말았다.

뭐야, 정말 사람 맞아?

이건 괴물이잖아.

준후를 시종일관 얕잡아보던 동석은 처음으로 준후에게 공포를 느꼈다.

무슨 수를 써도 준후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안 돼.

포기할 순 없어.

내가 수련 받는 동안 맞고 살았으면 너도 맞고 살아야지.

우리 정형외과의 기강이 여기서 무너지게 둘 순 없어.

동석의 눈깔이 뒤집혔다.

광기의 흰자위가 눈동자를 독차지했다.

후배들을 먼지 나도록 때릴 때 가끔 보여주던 광견 모드로 전환한 것이다.

동석은 이성이 완전히 나간 상태에서 다시 몸을 일으켰다.

준후에게서 도망치듯 멀어지다가.

침대 밑에 숨겨 두었던 야구 방망이를 꺼내 손에 쥐었다.

“서준후, 넌 오늘 제삿날이야.”

“넌 진짜 구제 불능이구나?”

준후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동석을 노려보았다.

“지금부터 널 짐승, 아니 쓰레기라고 판단하고 대접하지.”

“크크크. X병 떠네. X신이.”

타다다닥.

선공에 나선 건 의외로 동석이 아닌 준후였다. 준후가 순식간에 동석과 거리를 좁혔다.

후우우웅.

동석은 준후의 머리를 향해 야구 방망이를 힘껏 휘둘렀으나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때는 준후가 이미 코앞에 나타난 상황이었다.

마…… 말도 안 돼.

쿵!

동석은 또다시 엉덩방아를 찧었다. 충격으로 야구 방망이를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파바바밧.

동석이 몸을 가눌 틈도 없이.

준후의 검지가 동석의 몸 구석구석을 찔렀다.

그러자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동석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새끼 너 뭐 하는 건데!

분명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목소리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목이 수도꼭지처럼 잠겨 버린 느낌이었다.

“후배들을 괴롭힌 죗값. 달게 받아라.”

파바바밧.

준후의 검지가 또 사정없이 동석의 몸을 찔렀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근육이 뒤틀리고.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고.

뼈가 탈구되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던 것이다.

동석의 몸은 어느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얼굴에는 비 오듯 땀이 흘렀고.

전신의 핏줄은 선명하게 돋아났다.

결코 참을 수 없는 고통.

동석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렸다.

* * *

정형외과 당직실.

준후는 현진을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와. 진짜 동석 선배를 손봐준 거야? 난 네가 꼼짝없이 당할까 봐 걱정했는데.”

현진이 감탄한 기색으로 말했다.

현진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준후와 동석이 몸싸움을 한다면 사람들은 백이면 백, 동석의 승리를 점쳤을 테니까.

하지만 준후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림을 경험하고 나서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사람이었다.

무림을 기준으로 하면.

동석은 삼류잡배도 안 되는 수준이었고.

“고등학교 때 운동을 좀 했거든요. 동석 선배 정도야 가뿐하죠.”

준후는 대충 둘러대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동석과의 싸움은 사실 복기할 것도 없을 만큼 싱거웠다.

굳이 회상하자면 천근추를 사용한 것 정도?

그것도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던 동석을 피하면 당직실 집기가 망가질까 봐 일부러 받아준 것이었다.

특이사항을 굳이 더 꼽아보자면 분근착골술을 사용한 것 정도?

분근착골술이란 사파에서 쓰는 일종의 고문술이었다.

혈맥을 자극해 근육과 뼈가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맛보게 하는 술법이었다.

준후는 사파인을 상대하던 도중.

분근착골술을 배웠는데 이를 사파인에게 고스란히 돌려주곤 했다.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당해도 싼 놈이었지.

동석에게 사용한 분근착골술을 준후는 손톱만큼도 후회하지 않았다.

자리를 가리지 않고 후배에게 거침없이 날리는 손속.

야구 방망이를 흉기로 사용하는 난폭함.

동석이 그동안 저질렀을 악행들의 깊이를 감안하면 분근착골술도 모자랐다.

“그건 그렇고 아까는 미안했어.”

“뭐가요?”

“널 돕지 못해서. 너랑 같이 동석 선배랑 싸웠어야 했는데 그냥 자리를 피해버렸잖아. 나중에 비겁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현진이 고개를 숙인 채 고백했다.

“아니에요. 선배는 용감했어요.”

“응? 내가? 난 도망쳤는데?”

“끝까지 동석 선배의 말을 듣지 않았잖아요. 전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라고 생각해요.”

준후는 사실 현진이 동석의 편을 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동석에게 당한 두려움.

앞으로 동석과 함께 보낼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을 테니까.

그래서 현진이 동석의 편을 든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현진은 의외로 준후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가.

그만하면 현진의 용맹함은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솔직히 기왕 엎어진 물, 될 대로 되라 싶었어.”

“…….”

“준후 네게 동석 선배를 이겨주면 잘된 일이고. 아니면 그냥 평소처럼 죽도록 맞고 말자 싶었지.”

“근데 선배. 동석 선배 말고 또 때리는 선배 있어요?”

준후가 화제를 돌리자 현진이 설명에 나섰다.

정형외과가 타 과에 비해 연차별, 직급별 군기가 센 건 맞았다.

하지만 군기를 가장한 폭행은 차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문제는 폭행이라는 악습을 동석이 부활시켰다는 점이라고 했다.

“야구 배트로 때리는 건 치프 때부터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그걸 동석 선배가 다시 써먹더라고.”

현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동석 선배. 좀 이상하긴 했어. 후배들을 때리면서 흥분하는 것 같더라고.”

“세상에 그런 변태 같은 놈, 많죠.”

준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를 무력으로 제압하면서 쾌감, 우월감을 느끼는 부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무림에서 준후는 줄곧 그런 인간들을 상대해 왔고 말이다.

“아 참, 동석 선배는 어때?”

“기절해서 숙직실에 눕혀 놨어요. 한 시간은 되어야 깰걸요?”

“화끈하네. 서준후. 아까 치프랑 마주치지 않았어? 그때는 뭐라고 말했는데?”

“몸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하고 둘러댔죠.”

준후는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동석을 손봐준 일이 큰 문제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을 대비해 외상의 흔적은 티끌만큼도 남겨두지 않았다.

즉 동석이 준후에게 맞았다고 주장한들 증거는 없었다.

애초에 동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쪽팔려서 그런 말을 꺼내지도 못할 테고.

“속이 후련하긴 한데. 한편으로 걱정이다.”

“뭐가요?”

“준후 네 수련이 끝나면 말이야. 그땐 선배가 또 나를 죽어라 괴롭힐 것 같단 말이지.”

현진의 걱정 섞인 말에 준후는 그저 웃어 보였다.

“걱정 마세요. 동석 선배는 앞으로 선배 손가락 하나도 못 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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