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77화
제13장 미래(2)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일을 너무 크게 벌이는 것 아니야?”
아영은 환자와 보호자가 엿듣지 못하도록 작은 목소리로 준후에게 말했다.
환자는 이미 타 정형외과에서 진단 및 치료, 처방까지 받았다.
진통이 심하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건 진통제를 추가 처방하는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굳이 캐스트를 해체할 필요가 있을까.
캐스트를 해체했다가 이상이 없으면 다시 캐스트를 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깁스 비용을 더 받으려고 수작을 부린다며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아영이 보기에 준후의 행동은 득보다 실이 더 많아 보였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만약을 대비해서.”
준후 역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준후의 눈빛에선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영이 수능을 치르던 날.
준후가 아영을 치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때 보여주었던 그 눈빛이었다.
이 눈빛을 한 준후는 막을 수 없었다.
“알았어. 준후, 너도 생각하는 게 있겠지.”
“이해해 줘서 고마워. 자세한 건 캐스트를 해체한 다음에 말해줄게.”
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스테이션으로 이동했다.
처치실에서 정형외과용 그라인더를 찾기 시작했다.
아영의 의문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어째서 준후는 필사적으로 캐스트를 해체하려는 걸까.
캐스트를 해체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환자는 그저 단순한 골절 환자일 뿐인데.
“쌤. 정형외과 당직 콜 왔는데 잠깐 받아주실래요?”
아영이 그라인더를 찾아 돌아가려던 도중.
간호사가 말을 걸었다.
아영은 알겠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대신 받았다.
“응급실입니다.”
-정형외과 당직의예요. 거기 준후 있어요?
“네. 환자 진료 보고 있습니다.”
-아직도요? 진통제만 처방하고 올라오면 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끌지?
정형외과 당직의 역시 아영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준후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었다.
굳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자면 비정상인 쪽은 준후 쪽인 것처럼 보였다.
-준후, 지금 뭐 하고 있어요?
“캐스트 해체하고 뭔가를 확인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와우, 스펙터클하네. 잘못하면 환자한테 욕먹을 텐데. 깁스 비용 받으려고 일부러 해체한 거 아니냐고.
“저도 그게 걱정인데 말릴 수가 있어야죠.”
-일단 알았습니다. 준후한테 진료 끝나는 대로 곧장 당직실로 와 달라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내고 아영은 준후에게 돌아갔다.
준후에게 그라인더를 건넸다.
당직의의 전갈은 일부러 건네지 않았다.
준후의 마음이 심란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땡큐.”
아영이 건넨 그라인더를 준후가 건네받았다.
“선생님.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설마 깁스 제거하시려고요?”
아영이 묻고 싶었던 질문을 보호자가 먼저 꺼냈다.
보호자도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듯했다.
“캐스트, 그러니까 통 깁스를 제거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뭐를요?”
“불안해하실 수도 있으니 확인하고 말씀드리죠.”
준후가 보호자를 설득하며 그라인더를 사용했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이곳이 응급실인지 목공소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굉음이 주변으로 퍼졌다.
고속 회전하는 톱날이 깁스를 갈라내기 시작했다.
톱날 지나가는 방향에 따라 깁스에 선명한 금이 생겨났다. 깁스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도 했다.
캐스트 해체 작업을 지켜보며 아영은 잔뜩 긴장했다.
혹시라도 준후가 톱날을 깊게 넣어 환자를 다치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라인더는 워낙 파괴력이 강력해 잘못했다간 살점이 찢겨 나갈 테니까.
하지만 전부 기우였다.
그라인더를 다루는 준후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의심도 없어 보였다.
준후의 성격처럼 곧고 올바르게 직진할 뿐이었다.
정형외과에 근무한 지 며칠 안 됐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능숙하지?
애초에 인턴이 그라인더를 쓰는 게 말이 되나?
준후는 오늘도 본인의 직급을 뛰어넘는 처치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긴 그게 준후의 매력이긴 했다.
곁에 있지만 항상 자신보다 더 멀리 더 높은 곳에 있는 듯한 든든함을 주는 것.
해체가 무난히 진행되는 도중.
아영은 문득 환자의 얼굴을 살폈다.
착각인지 몰라도 환자의 얼굴이 처음보다 많이 창백해 보였다.
핏기가 싹 가신 느낌이랄까.
얼핏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기색도 보였다.
그라인더가 무서워서 이러는 건 아닌 듯한데…….
정말 준후는 아영이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쩌저저적.
환자의 다리를 감싸고 있던 캐스트가 수박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준후는 그라인더를 사용해 적당히 캐스트의 틈을 벌리고.
그 틈으로 손을 넣어 캐스트를 좌우로 뜯어내 버렸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준후만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턱!
묵직한 캐스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준후는 환자의 다리를 감고 있던 붕대마저 제거했다.
그러자 퉁퉁 부어 있는 환자의 왼쪽 정강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반응이 별로네.
준후는 환자, 보호자의 표정을 차례대로 살피고 쓰게 웃었다.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지?
……라고 두 사람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준후라고 해서 모를 리 없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원하는 건 진통제라는 걸.
골절 부위에 별 이상이 없다는 확답이라는 것을.
하지만 불길한 징조를 읽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무림의 준후는 그런 무관심으로 소중한 동료를 잃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양천운.
양씨 세가의 서자로 무림맹 무관에서 인연을 맺었던 지기였다.
당시 양천운은 남궁세가의 인물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준후가 자주 둘 사이에 껴들어서 괴롭힘을 막아주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활동하는 조가 달랐던 것이다.
-오늘도 그놈들이 널 괴롭혔어? 내가 따지고 올까?
-아니, 괜찮아. 잘 해결된 것 같아.
양천운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떻게? 그 악질인 놈들이 쉽게 개과천선했을 리 없는데?
준후가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 그동안 왜 이렇게 힘들어했는지 몰라.
양천운의 대답에 준후는 내심 안심했다.
구체적인 방법이야 몰랐지만 양천운이 스스로 문제를 잘 해결한 것 같아서.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양천운을 순순히 떠나보내선 안 되었던 것이었다.
괴롭힘을 이겨낸 방법이 무엇인지 준후는 한 번 더 물어야 했다.
다음 날 오전.
양천운은 무림맹 수련장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되었다.
괴롭힘을 막는 방법은 다름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던 것이다.
아…….
양천운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비극을 막았을 텐데…….
자신의 손으로 지기를 살릴 수 있었는데…….
준후는 후회와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서준후, 네 탓이 아니야. 그나마 네 덕분에 천운이가 지금까지 버텼던 거라고.
-맞아. 죄를 묻는다면 남궁세가 망나니들에게 물어야지.
동기들이 위로는 준후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으나 준후의 행동에 따라 양천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준후가 타인의 사소한 행동이나 말투, 감정 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
그래야만 양천운처럼 자신의 손으로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을 놓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있는 환자도 양천운과 케이스가 비슷했다.
주변 동료들은 환자가 단순 골절에 예민한 통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준후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환자에게서 과거 양천운에게서 느꼈던 불길한 징조를 몇 가지 읽었다.
만약 준후의 예상이 맞다면.
환자는 응급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물론 준후의 예측이 틀릴 수도 있었다.
단순히 준후가 예민하게 구는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환자가 무사하다면 그 나름대로 마음을 편히 놓을 수 있을 테니까.
과잉 진료라고 욕먹는 일 따위도 두렵지 않았다.
준후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위급한 환자를 눈앞에서 놓치는 것이었다.
환자를 놓치고 후회와 자책감에 몸서리치는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 확인해 보자.
내 추측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어차피 어느 쪽이든 내가 이기는 싸움이겠지만.
준후의 추측이 맞다면 환자는 응급 수술로 다리를 구할 수 있을 테고.
준후의 추측이 틀렸다면 환자는 건강한 상태일 것이다.
준후 입장에선 어느 쪽이라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환자분. 왼쪽 다리를 살짝 움직여보실래요?”
“네. 어라?”
환자가 준후의 지시를 따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 불편하세요?”
“다리가 잘 움직여지는 것 같아요. 뭔가 굳어 있는 느낌?”
“이번에는 느낌이 어떠세요?”
준후는 검지로 환자의 정강이 부근을 살살 찔러보았다.
“잘 모르겠어요. 감각이 둔해진 것 같기도 하고.”
환자의 반응이 이전과는 180도 달라졌다. 환자도 그런 자신이 이상하다는 눈치였다.
“선생님. 저 갑자기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해요. 아까는 안 그랬는데 왜 이러지?”
“CT나 MRI 찍어 봐도 되나요? 동네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만 찍었는데.”
잠자코 있던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준후에게 물었다.
“아니요. 환자분은 CT나 MRI로 확인 불가능한 질환을 앓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게 뭔가요?”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죠.”
대답을 마친 준후는 환자의 정강이 부종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불어넣었다.
의학적인 검사에 앞서 내공으로 검사를 시도한 것이다.
차라리 정상 소견이 나오면 좋으련만.
과잉 진료를 했다고 욕먹는 편이 좋으련만.
준후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지만 상황은 준후의 걱정이 옳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손바닥에서 뻗어 나간 내공이 환자의 골절 부위로 스며들었다.
준후가 내공으로 펼치는 수술은 일종의 압력 검사였다.
다친 부위 주변에 신경과 혈관 조직들이 얼마나 압력을 받는지 확인하는 검사였다.
일반적으로는 바늘을 찔러서 압력을 측정하지만 준후는 내공 검사를 먼저 시도했다.
하…….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준후의 미간이 좁아지고 이마에는 주름이 잡혔다.
골절 부근에 스며든 내공에서 타이트한 압력이 느껴졌다.
무언가가 내공을 꽉 조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영아. 휴대용 구획압 측정기 좀 가져다줄래?”
“……구획압 측정기? 설마…….”
아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구획압 측정기의 용도를 통해 환자의 질환을 추측한 것이다.
“그거 맞아.”
“……알았어. 금방 가져다줄게.”
아영이 번개처럼 자리를 비웠다가 번개처럼 돌아왔다.
구획압 측정기와 드레싱 카트를 챙겨 복귀했다.
준후는 환자의 정강이 부근을 소독한 후 구획압 측정기의 바늘을 찔러 넣었다.
푸우우욱.
구식 카세트테이프처럼 생긴 구획압 측정기의 눈금이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환자의 정강이 구획압은 무려 50mmHg였다.
보호자와 환자는 그 의미를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준후와 아영은 그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정형외과에 노티 좀 해줄래?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대답할 여유도 없었는지 아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번 자리를 비웠다.
이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보호자가 물었다.
“선생님. 대체 무슨 일인데 우리 아들이 수술까지 해야 하나요?”
“…….”
“그냥 축구 하다가 무릎을 다쳤을 뿐인데요. 뼈가 부러져서 아픈 것 아닌가요?”
보호자가 억울하다는 듯이 물었다.
슬슬 진실을 밝혀야 할 타이밍.
준후는 힘겹게 입술을 뗐다.
“환자분이 앓고 있는 질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