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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79화 (79/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79화

제13장 미래(4)

마취의가 전신 마취를 하는 동안, 명호는 준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인턴 2개월 차에 정형외과 근무 6일 차.

업무 경력에 비해 준후의 실력은 월등했다.

다른 건 다 젖혀두고 오늘만 보자.

첫째로 놓치기 쉬운 급성구획증후군 환자를 진단해냈다.

깁스한 환자는 이미 타 병원에서 진단 및 처치를 받고 온 환자 아닌가.

그래서 진찰 시 아무래도 긴장이 풀리기 마련인데 준후는 깁스까지 해체한 후 꼼꼼하게 환자를 살폈다.

덕분에 환자의 다리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둘째로 수술방 세팅 속도와 정확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순환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심지어 세팅을 준후 혼자 했다고 하는데…….

덕분에 명호는 골든타임 15분을 벌었다.

만약 준후가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환자의 다리에 영구 장애가 남지 않았을까.

진단 미흡으로 나중에 의료 소송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실로 아찔했던 순간.

의국에 희망으로 떠오른 건 준후였다.

“치프,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명호의 시선을 의식한 준후가 물었다.

“아까부터 놀라기만 하고 칭찬을 못 한 것 같아서. 진찰부터 세팅까지, 아주 훌륭했다.”

“감사합니다. 근데 치프,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왜?”

“원래 집도는 당직 펠로우 선생님이 하지 않나요? 치프가 어째서…….”

“그게 일이 좀 꼬였다. 펠로우 선생님하고 교수님이 바깥에서 만난 모양이야.”

명호는 준후가 모르는 속사정을 설명했다.

두 사람이 지금 수술방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왜? 내가 집도한다니까 겁나냐?”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 평소랑 상황이 달라서요.”

“하긴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

“치프.”

준후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퍼스트를 서던 태웅이 수술대로 돌아왔다.

수술방 콜을 받고 복귀하는 길이었다.

“교수님하고 펠로우 선생님. 조금 늦는다는데요?”

충격적인 소식에 수술방 공기가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늦게 도착한다니 이건 또 무슨 악재란 말인가.

명호는 갑자기 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무슨 일 있으시데?”

“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다고 하세요. 도로가 꽉 막혀서 이동이 느리다고…….”

“하…… 액운 낀 날인가? 언제쯤 도착할 수 있대?”

“현장이 수습되는 속도에 달렸는데 최소 90분은 봐야 한다고…….”

태웅이 명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비보를 전하는 태웅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우리끼리 지지고 볶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명호는 태웅과 준후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전과 달리 명호의 표정이 비장했다.

“둘 다 정신 똑바로 차려. 이번 수술 만만치 않겠다.”

* * *

전신 마취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환자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최악의 사태는 면했어.

준후는 벽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진에게는 아직 황금 같은 10분이 남아 있었다. 1차 감압을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비록 교수 일행이 늦는다는 소식은 안타까웠지만.

치프가 수술 경험이 있다면 셋만의 힘으로도 그럭저럭 수술을 완성할 수 있으리라.

“수술 준비하겠습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준후는 베타틴 용액에 젖은 커튼 볼로 환자의 왼쪽 정강이 부근을 넓게 소독했다.

그 위를 하얀 수술포로 덮었다.

제1목표인 수술 세팅에 성공했기에 이제는 제2목표로 넘어갈 차례였다.

명호와 태웅이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어시스트하는 일 말이다.

준후의 역량에 따라 수술 결과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준후는 평범한 인턴이 아니었으니까.

“10번 블레이드.”

소독 간호사에게 메스를 건네받은 명호가 피부 절개를 시작했다.

메스를 세로로 내리그었다.

메스의 동선을 따라 피부가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보통 절개창은 2-5센티미터를 넘지 않는데 근막 절개술의 절개창은 무려 17센티미터에 달했다.

구획 내 압력을 감압하기 위해서는 넓은 절개가 필요했던 것이다.

긴장한 것처럼 보였지만 명호의 절개는 의외로 깔끔했다.

손 떨림은 없었고.

절개창은 자를 댄 것처럼 깔끔했다.

그래서일까.

의외로 수술이 순조로울지 모르겠다고 준후는 기대했다.

절개가 끝나자 갈라진 피부 틈으로 꿀렁꿀렁 새어 나오는 피.

준후는 기다렸다는 듯 거즈로 피를 닦았다.

견인기를 이용해 절개창을 좌우로 벌려주었다.

준후의 민첩한 행동에 허연 피하 근막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준후는 견인 잘해주고 태웅이는 나랑 같이 근막 가른다.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진행할 거야.”

“네. 치프.”

“네. 치프.”

1차 감압 속도에 환자의 경과가 달려 있었으므로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메이요 시저요.”

명호가 태웅과 준후의 도움을 받아 피하지방과 근막을 절개하기 시작했다.

서걱. 서걱.

가위가 움직일 때마다 두껍고 지방과 질긴 근막이 잘려나갔다.

얼핏 보기에 명호의 가위질은 투박해 보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혈관과 신경을 피해가며 가위질을 했던 것이다.

의대 시절 해부학 교수 밑에서 해부학을 파고들었던 준후의 눈에는 그 점이 보였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볼까?

손이 하나 비는데?

수술 시간도 아슬아슬하고.

양수 호박 기술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에 준후는 견인하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바꿨다.

자유를 찾은 오른손으로 에디슨 핀셋을 잡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준후는 명호가 근막을 쉽게 자를 수 있도록 근막 옆에 있는 조직을 팽팽하게 당겨주었다.

“견인하면서 어시스트까지 해도 되겠어? 정신 사나울 텐데?”

명호가 우려를 표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상황을 염려했던 것이다.

“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견인만 하겠습니다.”

“하긴 지금 물불 가릴 때가 아니긴 하지. 잘해 봐.”

명호의 컨펌을 받은 준후는 오른손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종횡무진 수술 부위를 누볐다.

피가 흐르는 곳이 있으면 거즈로 닦아 수술 시야를 확보하고.

근막 절개술을 도왔으며.

그 와중에도 명호의 수술 도구와 동선이 꼬여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예방했다.

검객이었던 준후는 검을 맞대는 방법은 물론이요 검을 피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그 이치를 수술에 응용한 것이다.

처음으로 해보는 적극적인 어시스트에 준후는 환희를 느꼈다.

그동안은 인턴이라서 구경꾼 같은 느낌으로 수술을 도왔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엄연한 스태프로 수술에 참여하는 느낌이 들었다.

준후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감각이 바로 이 감각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일.

살인검이 아닌 활인검의 길.

“넌 전생부터 의사였냐? 손이 왜 이렇게 야무져?”

명호가 감탄조로 말했다.

세팅뿐만 아니라 어시스트에서도 준후의 활약은 눈부셨다.

준후 덕분에 근막 절개가 한층 쉽고 빨라졌다.

지금 페이스라면 골든타임 전에 1차 감압을 마칠 수 있을 듯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정강이 좌측 근육도 절개하실 거죠? 전경골근 잡아드릴게요.”

“오냐. 제대로 잡아봐라.”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수술방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 덕분일까.

교수와 펠로우가 없음에도 근막 절개술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 * *

“휴~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한 시름 덜었네”

명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숙였던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골든타임 5분을 남겨 놓고 근막 절개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육안으로 확인한 결과.

괴사된 조직이 보이지도 않았다.

근막 절개술의 원리는 풍선에 비유할 수 있었다.

풍선 안에 공기가 꽉 차면 터지지 않는가.

근막 절개술은 이를테면 풍선 표면에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수술이었다.

근막을 절개해 놓으면 구획 내 압력이 감소해 혈관 괴사를 막는 원리였다.

이 정도면 훌륭한데?

준후도 안심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스태프들은 신경이나 혈관 손상 없이 정확하게 근막만 잘라냈다.

출혈량도 대략 400CC.

피부 절개 하면서 흘린 혈액.

또는 피치 못할 부위의 출혈을 제외하면 출혈은 적은 수준이었다.

레지던트와 인턴 조합으로 수술을 여기까지 끌고 오다니…….

확실히 대단한 업적이긴 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준후 네가 제일 많이 했지. 오늘 수술의 일등 공신은 너다.”

“치프 말이 맞아. 진단에, 세팅에, 어시스트까지 완벽했지.”

명호와 태웅의 칭찬에 준후는 머쓱하게 웃었다.

“두 분이 처치하는 걸 거들었을 뿐인데요, 구획압 측정기 가져올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시험을 쳤으면 시험 성적도 확인해야 하니까.”

준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물품실을 찾았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지금쯤이면 구획압도 많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선생님. 저 혹시 수술받다가 죽는 건 아니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스태프들이 환자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니까.

수술방에 입장하기 전.

환자와 이런 대화를 나눴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준후는 기뻤다.

환자는 무사했으며 다리에 후유증이 남는 일도 없을 테니까.

구획압 측정기를 챙겨 복귀한 준후는 측정기의 바늘을 수술 부위에 찔러 넣었다.

푸우우욱.

시간이 지나자 측정계의 바늘이 좌측에서 우측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측정기 바늘을 따라갔다.

“…….”

“…….”

바늘이 멈춘 순간, 수술방 분위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결과가 뜻밖이었다.

“뭐야? 생각보다 감압이 안 됐는데? 이럴 리가 없는데?”

명호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환자의 구획압은 35mmHg.

수술 전 구획압이 50mmHg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많이 감소하긴 했다.

응급 상황을 벗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감소한 구획압 수치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정상 범위가 30mmHg 이하고.

보통 수술 후에는 20mmHg 아래로 떨어지는 게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치프. 구획압이 떨어지는 속도도 계산해야 하잖아요.”

태웅이 안심하라는 듯 말을 이었다.

“수술 직후라서 높게 나온 거 아닐까요? 조금만 기다리면 분명 떨어져 있을 거예요.”

“그러면 다행인데. 어쩐지 느낌이 안 좋아서 말이지. 오늘은 어째 일이 계속 꼬인다?”

“설마 그렇게 재수가 없으려고요.”

태웅이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근막 절개술을 마친 지 10분이 지났다.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가운데.

스태프들은 다시 한번 측정기 눈금을 살폈다.

“아…… X발 돌겠네. 뭘 어쩌라는 거야?”

그동안 차분하게 수술을 이끌던 명호의 입에서 거친 말이 쏟아져 나왔다.

성질을 못 이겨 발을 쿵쿵 구르기도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럴 리가 없는데?

태웅은 눈을 깜빡거리며 측정기를 툭툭 건드렸다.

측정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감정이 흔들린 건 준후 역시 마찬가지.

준후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환자의 구획압은 여전히 35mmHg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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