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84화 (84/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84화

제14장 구원(4)

‘거참, 희한하단 말이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형석은 자신의 허리를 만져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확히 아들이 도수 치료를 해준 다음부터였다.

바늘로 콕콕 쑤시는 듯한 허리 통증이 씻은 듯 가셨다.

시험 삼아 허리를 좌우로 돌려보고.

뒤로 젖혀보아도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초기 디스크의 비수술적인 치료는 긴 마라톤과 같다.

꾸준히 약물 치료와 도수 치료를 받아야만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의사의 경고가 무색할 정도로.

형석의 허리는 멀쩡해졌다.

생각해 보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어.

요로결석이란 병을 앓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지.

배가 찌르르 울리더니.

그다음부터는 소변도 잘 봤고.

아들 손에는 정말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아.

아들 손은 약손.

이 공식을 이제는 진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석이었다.

띠리리~

별안간 문 열리는 소리에 형석은 현관을 쳐다보았다.

산책하러 간 아들이 돌아왔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잠시 다른 생각에 팔린 사이.

아내가 택배로 도착한 생수 2LX12개 묶음을 양손에 쥐고 현관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힘도 없는 사람이.”

형석이 현관으로 뛰어나가며 말했다.

“괜찮아요. 허리도 아픈 사람한테 무거운 걸 들게 하면 안 되죠.”

“지금은 멀쩡한걸?”

“무리하지 말고 쉴 때 푹 쉬어요. 디스크가 하루아침에 낫는 병도 아니고.”

“고작 생수 두 묶음도 못 들면 택배를 접어야지.”

형석은 아내 손에 들린 생수를 부리나케 빼앗아 부엌으로 이동했다.

허리 통증은 평소에는 괜찮다가도 무거운 물건을 들 때면 심하게 도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날개가 달린 것처럼 허리가 가벼웠다.

심각하게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허리 상태가 악화될 것 같지도 않았다.

“간단하구먼.”

형석은 생수를 내려놓고 손을 탁탁 털었다.

“당신, 정말 괜찮죠? 안 아픈 척하는 거 아니죠?”

“물론이지. 내 연기력이 형편없는 거 당신도 알잖아.”

형석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의사 아들내미가 좋긴 좋네. 안 그래? 아빠 허리 아픈 것도 척척 고쳐주고 말이야.”

* * *

그 시각.

준후는 똘똘이와 인근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아무래도 줄곧 병원 생활(실내 생활)을 하다 보니 바깥바람이 쐬고 싶었던 것이다.

시야가 탁 트인 곳을 걷고.

보드랍고 따스한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 일은 즐거웠다.

앞서 걸어가는, 식빵처럼 투실투실한 똘똘이의 엉덩이를 지켜보는 일은 또 다른 재미였고 말이다.

다행이네.

디스크 치료가 성공해서.

준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우려와 달리 내공을 활용한 디스크 감압술은 대성공이었다.

디스크 손상도 없었고.

신경 손상도 없었다.

내공은 정확하게 볼록 튀어나온 디스크만 밀어냈다.

현대 의학과 접목된 내공 치료는 그 효과가 탁월했다.

이전에는 아버지에게 체외충격파 시술까지 직접 했으니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무림맹주도 디스크였던 것 같은데.

준후는 무림에서 만났던 무림맹주를 떠올렸다.

무림맹주 천태룡.

천태룡은 말년에 허리 통증으로 큰 부침을 겪었다.

무림맹 의원에게 침도 맞고 부항도 떴지만, 상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허리에서 시작된 방사통이 다리까지 퍼졌던 것이다.

현대 의학을 익힌 지금의 준후가 돌이켜 보건대.

그것은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요통의 근원인 디스크를 모른 채 계속 허리 주변 혈관과 뼈만 자극했으니 치료가 될 턱이 있나.

현대에서 충분한 의료지식을 쌓고 난 다음.

무림에도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준후는 문득 생각했다.

각종 부상과 질환으로 고통받는 무림 동포들에게 현대 의학은 한 줄기 빛이 될 테니까.

깜빡.

준후는 눈을 오랫동안 감았다가 떠보았다.

당연하게도 변한 건 없었다.

현대의 준후가 무림의 준후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무림에서 죽었기 때문일까.

이것도 다 미련이지.

현재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자.

마음을 고쳐먹은 준후는 가까운 벤치에 앉았다. 휴대폰으로 반려견에 대해 검색해 봤다.

똘똘이가 새 식구가 된 탓일까.

반려견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준후는 수많은 견종과 특성을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그런 것처럼 반려견들도 견종이나 성장 배경에 따라 성격이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끄으으응.”

똘똘이가 애처로운 신음을 흘렸다.

다급하게 벤치 아래로 몸을 숨겼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주변을 살피니 검은 피부의 덩치 큰 대형견이 보였다.

대형견이 보호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있었다.

보호자는 대형견의 힘을 감당 못 했는데 쩔쩔매는 것이 금방이라도 목줄을 놓칠 것 같았다.

준후는 불길함을 느끼고 똘똘이의 목줄을 벤치에 묶었다.

“꺄아아악! 랄프!”

대형견 보호자의 비명이 터졌다.

결국 목줄을 놓치고 만 것이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를 않는 건지.

파바바팟!

준후는 보법을 밟아가며 대형견의 뒤를 쫓았다.

사태는 최악이었다.

대형견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유치원생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사납고 큰 주둥이가 쩍 벌어지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유치원생을 덮치기 직전.

준후는 대형견을 따라잡아 오른손으로 대형견의 주둥이를 꽉 붙잡았다.

맹사수(猛蛇手).

뱀이 먹이를 움켜쥐는 모습을 형상화한 무공에 대형견은 꼼짝을 못했다.

주둥이를 흔들며 발버둥을 쳤지만 헛수고였다.

휴, 큰일 날 뻔했잖아.

준후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준후가 현장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큰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꼬마야, 괜찮니?”

“으아아아앙!”

놀란 아이는 대답 대신 울음으로 화답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아이의 어머니도 화들짝 놀라 현장으로 다가왔다.

아이를 끌어안고 아이를 안정시키기 바빴다.

다만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므로 준후는 내공을 뿜어내 대형견을 휘감았다.

투기라 불리는 것이었다.

기를 형상화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인데 내공 소모가 심해 무림에서도 자주 사용하지는 않았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투기에 제압당한 대형견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 자리에서 오줌을 갈기고 다리를 휘청거렸다.

충격이 몇 시간은 갈 테니 그동안은 얌전하리라.

준후는 그제야 대형견의 주둥이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저기요. 저희 랄프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애가 지금 다 죽어가잖아요!”

대형견의 보호자가 준후에게 다가와 오히려 따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조아려도 모자란 상황에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왔던 것이다.

준후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를 찼다.

“그쪽 개가 아이를 물 뻔했습니다. 사과를 해야 하는 건 그쪽 아닙니까?”

“아니! 우리 랄프가 애를 물었냐고요. 아직 안 물었잖아요.”

“당신 미쳤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보호자의 억지 논리에 준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상황에서도 본인 반려견을 두둔하다니.

본인 반려견이 타인의 목숨보다 우선이란 말인가.

“우리 랄프는 사람 안 물어요. 그냥 사람이 좋아서 격하게 반겼던 것뿐이라고요.”

“됐으니까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꺼져.”

준후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보호자와 대형견의 사진을 찍었다.

“어머머?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보면 몰라 사진 찍었지. 당신 신고할 거야. 견종이 로트 와일러던데 입마개 의무화인 것도 몰랐나?”

준후는 아까 검색했던 반려견 정보를 그대로 써먹었다.

“아휴. 재수 없어, 정말. 신고해요. 누가 겁나는 줄 아나?”

보호자는 비틀거리는 대형견을 데리고 공원에서 사라졌다.

그제야 공원에 평화가 찾아왔다.

아직 겁먹은 아이에게 다가가 준후는 은근슬쩍 점혈을 해주었다.

아이가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면서.

“고마워요. 학생. 덕분에 우리 아이가 무사했어요. 학생 아니었으면 세린이한테 큰일이 일어날 뻔했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더 산책할 기분이 들지 않았기에.

준후는 똘똘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넓고 쓰레기는 많았다.

* * *

그날 저녁.

준후는 졸업했던 중학교 근처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지애를 만나기로 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서 준후는 지애에 대해 검색했다.

준후가 착실하게 의료 지식을 쌓았던 것처럼.

지애도 착실하게 배우 경험을 쌓고 있었다.

제법 굵직굵직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아 열연 중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 촬영했던 드라마에서 연기력 논란에 휩싸이며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우리 집 개도 저거보다는 연기를 잘하겠다. 연기를 대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얼굴이 못생기면 연기라도 잘해야지. 앞으로 캐스팅되기는 글렀네. 쯧쯧쯧.

-비중 늘어나니까 실력, 바로 뽀록나죠? ㅋㅋㅋㅋ

악플들은 검보다 매서웠다.

당사자가 아닌 준후가 악플에 상처를 받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런 악플까지 견뎌내야 하는 지애가 준후는 안쓰러웠다.

동시에 이런 악플을 쓰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궁금하기도 했다.

건전한 비평이면 모를까.

다른 사람을 악담하고 저주하는 일이 즐겁단 말인가.

무림에서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사파는 존재하고 있었다.

부우우웅.

때마침 준후 옆에 멈춰선 한 대의 자동차.

“서준후. 타!”

차창이 열리면서 지애의 모습이 보였다. 준후는 보조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

“역시 배우라서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건가?”

“이젠 제법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지애가 수줍게 웃었다.

“괜히 나랑 만났다가 이상한 스캔들 나는 거 아니야? 괜찮겠어?”

“걱정도 팔자네. 배우라고 이성 친구도 못 만나는 건 오버잖아. 이 정도는 괜찮아.”

“네가 괜찮다면 다행이고.”

“휴대폰 보고 있던데 설마 나 검색했어?”

“어.”

준후는 짧게 대답했다.

방금 검색했던 기사들과 악플이 떠오르자 지애를 대하는 일이 어려워졌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위로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준후조차 감을 잡기 힘들었다.

“기사랑 악플 같은 건 신경 쓰지 마. 다들 날 모르고 하는 소리니까.”

의외로 기사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지애였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하나 배우는 거 아니겠어? 이번에 촬영하면서 느낀 건데 나는 악역하고는 안 어울리나 봐.”

“…….”

“표독스러운 연기를 하려니까 너무 부자연스러워지더라.”

“드라마는 못 봤지만 너랑 악역은 안 어울리긴 해.”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없는 성격을 연기할 수는 없는 거겠지.”

“뭐야? 지금 나 가르치는 거?”

“대배우님을 내가 감히 어떻게 가르치겠어. 그냥 하는 소리지.”

준후의 우스갯소리에 지애가 피식 웃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지애가 씩씩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준후는 생각했다.

하긴 지애도 배우의 고충을 해결하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으리라.

부우우웅.

차가 학교를 벗어났다.

준후는 모처럼 지애와 번화가에 있는 레스토랑 룸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해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지애의 배우 생활에 대해 듣고.

자신의 의사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머리가 크기 전부터 만났던 친구라서 그럴까.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이 쉽고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왜일까.

완전히 걷어낸 줄 알았던 지애에 대한 걱정이 드문드문 되살아나는 것은.

함께하는 내내.

지애는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밝았다. 너무 쾌활하고, 너무 들떠 있고, 너무 자주 웃었다.

세상만사에 아예 고민이 없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역시 옛 친구가 좋긴 좋네. 회사 사람들하고는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 못 하거든.”

식사를 마치고 동네로 돌아오는 길에 지애가 말문을 열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 고맙다. 시간 내줘서.”

“나야말로 고맙지. 네 덕분에 기분 전환 제대로 했으니까. 근데 지애야.”

준후는 분위기를 잡으며 말을 이었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엥?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안 괜찮은데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거 아니냐고. 오늘 행동이 지나치게 밝아.”

“밝아도 문제고 우울해도 문제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순간 지애의 목소리에 냉랭한 칼바람이 담겼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모습이었다.

“말해 봐.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사실은 말이야. 밝아도 문제없고 우울해도 문제없어. 네가 네 감정에 솔직한 상태라면.”

준후는 차분하게 말을 계속했다.

“난 네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이젠 의학 말고 심리학까지 손대는 거야? 난 그냥 나답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할 말이 많았지만 준후는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흥분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대화가 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내가 널 너무 걱정해서 그랬나 봐. 미안하다.”

“아니야. 나도 미안해. 화낼 것까지는 없었는데.”

“저기서 내려줄래?”

준후는 검지로 가까운 횡단보도를 가리켰다.

“집은 더 가야 하잖아. 집까지 데려다줄게.”

“뭐 좀 사 가지고 들어가려고.”

차에서 내린 준후는 손을 흔들며 지애와 헤어졌다.

그리고 뒤 따라 오는 택시에 곧바로 몸을 실었다.

“선생님. 저기 앞에 가는 자동차 좀 따라가 주세요. 애인 차인데 따라가서 깜짝 이벤트 좀 해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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