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96화
제17장 사냥(1)
드르륵.
드르륵.
준후는 환자가 누운 침상을 끌고 수술실로 이동 중이었다.
침상이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마주 오던 사람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병원에서 홍해의 기적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광경이었다.
“몇 층 눌러 드릴까요?”
“4층이요.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때, 병원 스태프의 호의를 받았다.
잠시 생긴 여유 시간에 준후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환자의 이름은 손대철.
TNM 분류에 따르면.
(T: 종양의 크기, N: 림프절 전이, M: 다른 장기로의 전이)
환자는 T2N1M0의 위암 2기 A타입의 환자였다.
수술을 받고 관리를 잘한다면 생존율은 70퍼센트에 육박했다.
다만 준후가 걱정인 것은 환자의 나이였다.
환자는 70대의 노인이었다.
탄력을 잃은 피부는 쪼글쪼글했으며 검버섯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노년의 체력으로 수술을 잘 버틸 수 있을지 우려되었다.
뉴스 기사가 제대로 됐기를 바라는 수밖에…….
환자를 이동시키기 전.
준후는 과장에 대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기사에 따르면 과장은 실력이 뛰어난 소화기 외과의였다. 누적 로봇 수술 건수가 500건을 돌파했을 정도였다.
“선생님.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복도를 가로질러 환자를 수술실에 들여보내려고 할 때였다.
보호자가 갑자기 대화를 요구했다.
준후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환자만 먼저 수술방에 보냈다.
그리고 다시 대기실로 나왔다.
“아버님이 수술받을 때가 되니 긴장되시죠?”
“네. 괜히 제가 떨리네요. 근데 선생님…….”
보호자가 준후의 눈치를 보며 운을 뗐다.
“너무 속물 같아 보일지 모르겠는데, 혹시 수술비는 얼마나 나올까요?”
“수술비라…… 나중에 정산을 해봐야 정확하겠지만 천만 원 이상으로 생각하시면 좋을 겁니다.”
“처…… 천만 원이요?”
보호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고.
준후 또한 덩달아 놀랐다.
아직까지 수술비 안내를 못 받았단 말인가.
“로봇 수술은 보험 적용이 안 돼서 비쌉니다. 들으신 내용이 없으셨어요?”
“아…… 그게…… 교수님이 제일 좋은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제일 좋은 수술을 받는다고만 알고 있었어요.”
“…….”
“아무리 비싸도 500만 원은 안 넘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보호자의 얼굴에 낭패라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부모님의 목숨이 소중한 것과는 별개로 천만 원 이상의 수술비는 가볍게 볼 사항이 아니었다.
뭐지?
이거 설마 과장이 로봇 수술을 유도한 건가?
불길한 예감에 준후의 미간이 좁아졌다.
로봇 수술이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고는 해도 만능은 아니었다.
환자의 상태와 경제 여건에 따라서 충분히 복강경으로도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장은 로봇 수술이 가장 좋다는 미명 아래.
의료 지식이 없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로봇 수술을 강권한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일까.
준후는 벌써부터 과장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
만약 준후과 외래 교수였다면 환자와 보호자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해서 수술법을 선택했으리라.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환자와 보호자 아니던가.
그런 이들에게서 돈까지 뜯어내려고 하다니…….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수술을 바꿀 수는 없겠죠?”
보호자가 힘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불가능하긴 할 텐데. 제가 과장님께 말씀은 드려보겠습니다.”
“아니에요. 괜히 선생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걸요.”
“그 말씀은…….”
“대학 병원에 실력 있는 교수님이 추천한 수술인데 믿어야죠. 아버님만 건강해지실 수 있으면 돈은 많이 들어도 상관없어요.”
“그래도 말은 해볼 수 있겠죠. 제가 최대한 잘 돌려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그리고 저희 아버님 잘 부탁드립니다.”
보호자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고 준후도 고개를 숙였다.
지이이잉.
보호자와 헤어지고 수술방으로 복귀하면서 준후는 부전자전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다.
유승용과 유승범.
같은 핏줄로 이어진 부자.
승범과 사이가 안 좋았으므로 승용과도 좋은 인연을 맺기는 틀린 것 같았다.
* * *
지이이잉.
수술 복장을 착용한 후 준후는 수술방에 입장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찬란한 무영등 아래로 매끈하고 세련된 로봇 팔 한 무더기가 걸려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수술의 주인공이라고도 볼 수 있는 다비치 로봇이었다.
로봇 팔의 관절 부위에는 오염을 막기 위해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로봇을 조작할 수 있는 조종간(콘솔)이 위치해 있었다.
조종간에는 모니터, 페달, 양손으로 쥐고 움직일 수 있는 핸들 등이 달렸는데.
꼭 만화 영화 속 로봇을 조종하는 조종석 같기도 했다.
로봇 수술이라…….
준후는 한동안 물끄러미 조종간을 바라보았다.
로봇 수술이 정말 타 수술에 비해 효과적인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손 떨림이 없고(로봇 팔이니까).
복강경에 비해 입체적인 시야를 자랑하고.
수술 후 회복이 빠르다 등등.
다양한 이유를 들어 로봇 수술을 옹호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숙련된 외과의의 복강경 또는 흉강경 수술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준후의 의견이라면…… 후자에 가까웠다.
과연 로봇 수술이 1,000만 원 이상을 들여서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수술일까.
준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준후는 먼 미래에 자신이 로봇보다 수술을 더 잘할 자신이 있었다.
손 떨림?
가소로운 소리!
무림에서 생사결전을 수 없이 치른 준후는 손 떨림을 몰랐다.
답답한 수술 시야?
그쯤이야 내공을 이용한 시야 증강과 해부학적 지식을 토대로 극복할 수 있었다.
어디를 봐도 준후는 자신이 로봇보다 모자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의료기술이 더 발전해서 원격으로 로봇 수술이 가능해진다거나.
로봇 수술이 개복 수술이나 복강경 수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분야가 완벽하면 증명된다면.
그때는 반드시 로봇 수술을 제대로 배워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준후는 로봇 수술에 큰 미련이 없었다.
그래. 오늘 두 눈으로 구경 한 번 해보자. 네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 놈인지 아닌지.
로봇에서 시선을 거둔 후.
준후는 처치실로 이동해 수술을 준비했다.
* * *
수술 준비는 10분 만에 끝났다.
로봇 수술에 관련된 물품은 따로 정리가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과장님 수술 스크럽 할 때 주의할 사항이 있나요?”
준후가 같이 수술 준비를 한 소독 간호사에게 물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 아니겠는가.
준후는 과장에게 손톱만큼이라도 허점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주의사항이요? 으음…… 로봇 수술이라서 선생님이 딱히 할 건 없을 거예요. 그래도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꼽자면?”
“근무 태도요. 인턴 선생님 몇몇이 졸다가 과장님한테 걸려서 된통 깨졌거든요.”
“그거라면 문제없겠네요.”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로봇 수술의 A부터 Z까지를 낱낱이 분석하는 게 준후의 목표였다.
그래야만 로봇을 뛰어넘는 감각을 기를 수 있을 테니까.
“선생님. 수고하세요.”
“선생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소독 간호사가 수술방을 빠져나가고 그 바톤을 환자가 이어받았다.
대기 중이던 환자가 침상 채로 수술방에 입장한 것이다.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손대철이요.”
“로봇 위암 수술받으러 온 환자분 맞으시죠?”
“네.”
환자를 확인하는 타임아웃을 마치고서 준후는 환자에게 환자 감시 장치를 연결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
환자의 맥박과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등이 모니터에 떠올랐다.
심전도 그래프는 상하로 움직이기 바빴다.
잠시 후 퍼스트(제1보조)를 맡은 3년 차 레지던트와 마취의가 차례대로 수술방에 입장했다.
“수술 준비는 다 끝났어?”
“네. 선배.”
“어디 말만 잘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볼까?”
상혁은 수술대 주변과 드레싱 카트를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뭐라도 꼬투리를 잡아볼 생각이었다.
아까 전 휴게실에서 미호에게 들은 바가 있지 않던가.
준후가 선배 알기를 개똥 같이 알고 일 처리도 미지근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미호의 말과 달리 준후의 일 처리는 깔끔했다.
소화기 외과 스크럽은 오늘이 처음일 텐데.
로봇 수술 스크럽도 오늘이 처음일 텐데.
필요한 물품들이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심지어 이등병의 관물대처럼 물품들의 각까지 잡혀 있었다.
그래서 쓴소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
상혁은 한동안 준후를 말없이 빤히 쳐다보았다.
미호와 상혁 사이의 에피소드를 모르는 준후 역시 상혁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됐다.”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은 미호를 믿어보기로 했다.
미호는 레지던트 1년 차 에이스였으며 상혁과 알고 지낸 지도 몇 개월이 지났다.
아무래도 준후보다는 미호의 말에 무게감을 더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착한 척하고.
일 잘하는 척해도 소용없어.
같이 지내다 보면 언젠가 다 뽀록나는 법이니까.
상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집도의인 과장 승용이 수술방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과장님.”
“오셨습니까? 과장님.”
상혁과 준후가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인사를 했다. 승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물품도 다 준비하고 마취도 끝난 모양이군. 바로 수술 시작하지. 스케줄이 바쁘니까 말이야.”
“과장님. 죄송하지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준후가 맹랑하게 승용을 쳐다보며 말했다.
과장이 수술하기 전, 인턴이 발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다들 관심이 쏠렸다.
“뭐지?”
“오는 길에 보호자분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호자 분께서 로봇 수술비용에 대한 안내를 제대로 못 받은 모양입니다.”
“…….”
“수술비가 부담되시는 모양인데…… 그래서 혹시 복강경 수술로 변경이 가능한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준후의 말에 상혁은 아차 싶었다.
로봇 수술은 비보험이라 환자나 보호자가 예상한 것보다 수술비가 훨씬 많이 나온다.
그래서 수술 동의서를 받을 때.
이 사실을 확실히 언급을 해야 하거늘.
동의서를 받은 사람이 그 점을 대충 넘어간 모양이었다.
이 환자 동의서 받은 사람이 미호 아니었나?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동시에 상혁은 환자의 수술 비용까지 머릿속에 담아두고 과장에게 노티하는 준후의 용기를 높이 샀다.
“아. 그거라면 잘 해결했어. 신경 안 써도 돼.”
승용이 유쾌하게 대답했다.
“해결이라 하시면…….”
“보호자가 로봇 수술에 동의했다는 뜻이지. 내가 직접 설득했으니까 군소리 나올 일은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각자 위치에 서고 수술 준비합시다. 시간이 없어요.”
승용의 재촉에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10번.”
스으으윽.
순환 간호사에게 받은 메스로 승용은 환자의 복부 6곳에 1센티미터 크기의 절개창을 냈다.
그리고 각각의 절개창에 포트를 삽입했다.
포트란 일종의 깔때기로.
로봇팔에 달린 처치 도구들이나 카메라가 수술 부위에 오염 없이 잘 들어가도록 돕는 도구였다.
“CO2(이산화탄소) 주입.”
“네. 과장님.”
승용의 지시에 준후가 포트에 가스 튜브를 연결해서 이산화탄소를 주입했다.
로봇 수술과 복강경 수술은.
이산화탄소를 환자의 복부에 주입해서 복부를 팽창시키는 방법으로 시야를 확보하기 때문이다.
철컥. 철컥.
준후가 가스를 주입하는 사이.
상혁은 로봇팔과 처치 도구를 연결하는 도킹 작업을 실시했다.
“오늘은 수술 과정이 매끄럽구만. 다들 잘해주고 있어.”
승용의 독려 속에 진짜 수술 준비가 끝났다.
승용은 조종간으로 자리를 옮겼고 준후와 상혁은 수술대 옆을 지켰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로봇팔이 가동하면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준후는 마치 무림에서 무림인들의 초식을 견식하듯 기계 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두고 보면 알 것이다.
로봇 수술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천만 원을 호가하는지.
또 자신이 로봇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