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 쓰는 외과 의사 97화
제17장 사냥(2)
로봇 수술은 정적이었다.
스태프끼리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주고받는 것도 아니었고 정교한 어시스트가 오고 가는 것도 아니었다.
수술 과정 대부분은 조종간에 앉은 승용이 처리했다.
퍼스트를 서고 있는 상혁만 간간이 승용을 도울 뿐.
준후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준후는 꿀을 빨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랐다.
절개창을 견인한다거나.
썩션이나 이리게이션(세척)을 한다거나.
출혈 부위에 거즈를 덧댄다거나 등등.
평소 하던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수술 초반만 빼면 거의 병풍으로 서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심각한 오해였다.
준후는 집도 중인 승용만큼이나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위장을 비추고 있는 모니터.
작동 중인 로봇팔.
마지막으로 조종간을 움직이고 있는 승용까지.
이 세 가지를 무공 초식 분석하듯 낱낱이 분석하고 있었다.
우선 로봇 팔에 대해 말하자면.
움직임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으며 수술 부위 곳곳에 닿을 수 있는 긴 리치를 가졌다.
손목의 회전 각도 또한 유연했다.
사람이라면 버티기 힘들어했을 손목 각도에서 장시간 처치를 하곤 했다.
수술 시야 또한 마찬가지였다.
복강경 수술보다는 좀 더 넓고 탁 트인 시야를 제공했다.
입체적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준후는 자신이 로봇팔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수술 경험만 충분히 쌓는다면.
로봇팔을 가뿐하게 초월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준후에게는 수술에서 사용 가능한 내공이 있었고.
수술에 응용 가능한 다양한 초식이 있었기에.
로봇 수술을 무림 식으로 비유했을 때.
로봇 수술은 무인(武人)이 선택하는 일종의 병장기에 가까웠다.
검, 도, 창, 곤봉, 암기와 같은.
같은 맥락에서 로봇 수술은 명검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수술보다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로봇 수술이 비싼 이유는.
명검은 돈으로도 구하기 힘들다는 논리로도 어느 정도 치환할 수 있을 듯했고 말이다.
그래도 과장은 선 넘었지.
이번 수술은 복강경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단지 소화기 외과에 수익을 위해 로봇 수술을 택했을 뿐이고.
준후의 시선이 문득 승용에게 머물렀다.
승용은 야무진 손길로 콘솔을 조작 중이었다.
승용의 손길에는 망설임도 초조함도 없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라는 당당함이 묻어났다.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를 이룬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무림으로 비유했을 때.
승용의 집도 스타일은 곤륜파의 무공과 닮아 있었다.
곤륜파는 9파 1방의 속한 단체로. 시원시원하고 호방한 무공을 펼친 곤 했다.
실제 승용의 집도도 시원시원했다.
암 조직이 침윤된 장간막을 거침없이 잘라냈고.
침윤된 림프 조직도 유창하게 제거했다.
승용의 인품은 의심할 만했지만 승용의 실력만큼은 의심할 거리가 못 되었다.
승범과는 비교도 안 돼.
만만치 않은 상대다.
준후에게 승용은 상대하기 까다로운 스타일이었다.
실력 좋고.
평판과 명성을 갖췄으며.
욕심은 많지만 본인의 욕심을 선의인 것처럼 포장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소화기 외과 전공을 선택한다면.
승용과는 원수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준후는 승용과 같은 사람과 상극이었으니까.
“상혁아. 4번 포트에 내시경 카메라 추가로 삽입해 봐. 시야 확보 좀 더 해야겠다.”
“…….”
“2번 로봇 팔은 전기 소작기로 변경해서 도킹하고. 그리고 서준후.”
승용이 준후의 이름을 불렀다.
과장인 승용이 소화기 외과 근무 2일 차 인턴인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 사실에 준후는 적잖이 놀랐다.
준후가 동요한 기색을 알아챘는지 승용이 피식 웃었다.
“얼마 전 코드 블루가 떴을 때, 자네가 우심증 환자에게 CPR을 했잖아. 그때 내가 자네 이름을 기억해둔다고 했지?”
“아. 네. 맞습니다.”
“난 한 번 기억하기로 한 건 절대 안 잊어.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말이야.”
승용의 대답이 의미심장했다.
“준후, 넌 내시경 도구로 그동안 박리한 림프절을 꺼내 봐.”
“…….”
“난 잠깐 손을 쉬어야겠다.”
“네. 과장님.”
준후는 손에 쥔 내시경 포셉을 포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시선은 정면에 있는 모니터에서 떼지 않았다.
일반적인 개복 수술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면서 수술을 진행한다.
하지만 로봇 수술과 복강경 수술은 시선 처리가 좀 달랐다.
시종일관 모니터를 보면서 손을 움직여야 했다.
그러니까 시야와 처치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길이가 긴 내시경 도구를 이용하면 아무래도 손의 감각이 무뎌지기 마련이었다.
수술 부위를 직접 만질 수도 없었기에.
하지만 그것은 준후에게는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준후는 맹조공이라는 안공을 사용해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을 손에 담아 촉각을 극대화했다.
그러자 내시경 포셉이 자신의 팔처럼 느껴졌다.
포셉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과 감촉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이다.
안 그래도 지루하던 참이었는데.
모처럼 실력 발휘 좀 해볼까.
스으으윽.
내시경 포셉이 매끈하게 포트를 통과했다.
포셉이 조각난 림프절로 이동하는 동안, 포셉은 혈관이나 신경은 털 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턱. 턱. 턱.
준후는 위 주변에 산개해 있는 림프절을 포셉으로 쥔 후 포트 바깥쪽으로 하나둘 빼냈다.
텅. 텅. 텅.
곡반으로 떨어져 내리는 림프절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손길이 조심스러웠던 것은 초반뿐이었다.
처치에 필요한 이치를 터득하고.
그 이치를 초식으로 만들어 정형화하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휙. 휙. 휙.
준후의 손속은 갈수록 빠르고 대담해졌다.
그러면서도 포셉이 림프절을 쥐지 못해 허공에서 헛도는 경우조차 없었다.
준후는 백발백중의 사수였다.
처치에 무공을 녹여내면서.
준후는 로봇팔로 절제한 림프절을 삽시간에 제거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고작 3분 만의 일이었다.
텅 비었던 곡반에는 이제 림프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처치 끝났습니다.”
임무를 완수하고서 준후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내시경 전용 포셉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런데 수술방 분위기가 어딘지 이상했다.
스태프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준후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지?
이 싸늘한 분위기는?
당황한 준후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실수라도 했습니까??”
* * *
“아니. 아주 잘했다. 네 덕분에 시간을 벌었구나.”
승용이 흡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리한 림프절들을 체외로 빼내는 일은 육체노동에 가까웠다.
이를테면 긴 젓가락으로 콩을 쥐어서 쟁반에 담는 일 같은 것이었다.
어찌 보면 쓰잘머리 없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작업.
다른 의사들은 이 작업에 썩션기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승용은 아니었다.
박리한 림프절들의 숫자를 세서 일일이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야 수술이 완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다음 수술에 필요한 체력을 안배하기 위해서.
승용은 준후에게 림프절 제거 업무를 맡겼다.
그런데 웬걸?
결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승용이 로봇으로 제거해도 10분 가까이 걸리는 작업을 고작 3분 만에 끝내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처치가 미흡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해.
승용은 준후의 처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준후의 처치에는 하등 문제가 없었다.
꼬투리를 잡을 것도 없었다.
천생 타고난 외과의인 건가.
고작 인턴일 뿐인데 이만한 솜씨라니…….
승용은 준후에게 감탄했지만 크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속내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하수였다.
무릇 관리자란 잘해도 못 했다고 하고 못 해도 잘했다고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바로 승용이 사람을 관리하는 법이었다.
“제일 번거로운 절차는 잘 넘겼어. 이제 미주 신경을 보존하면서 대망을 절제하고 암 조직만 제거하면 되겠어.”
“…….”
“지금부터는 속도를 올릴 테니 다들 바짝 정신 차리도록.”
“네. 과장님.”
“네. 과장님.”
그런데 승용이 손목을 풀며 조종간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준후가 질문을 던졌다.
“과장님.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말해 봐.”
“제가 소화기 외과 전공을 할 수도 있어서 여쭈는 질문입니다만…….”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위암 환자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수술은 무엇입니까?”
“…….”
“물론 암의 진행 정도나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수술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야, 너 그런 걸 수술 중에 과장님한테 물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상혁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준후에게 핀잔을 주었다.
승용은 이미 다 들었지만 말이다.
“괜찮아. 인턴 때면 한참 호기심이 많을 때지. 그리고 우리 과 식구가 될 수도 있는데 그리 박하게 굴면 되겠어?”
승용이 점잖게 상혁을 타이르자 상혁이 고개를 숙였다.
“그전에 내가 자네한테 묻지. 자네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위암 수술은 뭔가?”
“수술 비용과 수술 후 회복 속도를 감안하면 대체적으로 복강경 수술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준후의 대답은 똑 부러졌다.
이미 이 주제에 대해서 본인이 깊게 생각해 본 듯했다.
손놀림만 좋은 게 아니라 생각도 할 줄 아는 녀석인 건가?
흥미롭군.
승용은 준후를 빤히 쳐다보며 대답에 나섰다.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답변이야. 대한민국이 어떤 사회인 줄 아나?”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라 어떻게 답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아주 단순해.”
승용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라네. 돈이 모든 사물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지.”
“…….”
“수술이라고 다를 거 없어. 자본주의의 잣대를 들이밀면 돼. 가장 비싼 물건이 가장 훌륭한 가치를 지닌 것 아니겠나?”
“…….”
“그런 점에서 최고의 수술은 가장 비싼 수술이지. 바로 로봇 수술 말이야. 내가 로봇 수술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 이제 답변이 됐나?”
승용은 히포크라테스 선서 따위는 믿지 않았다.
환자에게 헌신?
인류에게 봉사?
그딴 건 위선으로 포장한 허울에 불과하다는 것이 승용의 신념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질문에 성의 있게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후가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눈빛. 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눈빛이군.”
승용이 먼저 준후의 허를 찔렀다.
마스크를 썼다고 해도 준후의 감정을 읽어내는 것쯤은 승용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가치관인 것 같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많이 잃어 본 입장에서는.”
준후가 무언가 사연이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럼 자네는 환자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을 좋아하는 편이겠군.”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을까요?”
“당연히 문제가 있지. 외과를 전공하면 앞으로 자네 손에 죽어 갈 환자가 몇백 명은 될 텐데.”
“…….”
“가족 몇백 명을 잃는 고통을 짊어지고 싶단 말이야?”
승용이 어처구니없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환자를 가족처럼 여기라는 사고방식은 의사에게 짐만 될 따름이었다.
이득은 없고 손해만 있을 따름이었다.
한편 승용의 도발적인 시선을 받고도 준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 짊어질 겁니다. 짊어진 환자들의 목숨의 무게만큼 저는 강해질 테니까요.”
“…….”
“강해진 만큼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을 테니까요.
대답하는 준후의 눈빛에 섬뜩함마저 깃들어 있었다.
호오, 이 녀석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