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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01화 (10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01화

제18장 임계점(1)

미호를 혼내줄 준후의 묘책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미호가 실력이 없다는 걸 2-3년 차에게 까발리는 것이었다.

대진에게 업무를 떠넘기면서 미호는 줄곧 에이스 취급을 받고 있었다.

엄청난 착각과 오해였다.

준후의 관찰에 따르면 미호의 업무 능력은 형편없었으니까.

그 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대진을 이용해 왔으니까.

문제는 그런 착각과 오해가 대진이 쓰러졌음에도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왜냐면 말이다.

-대진의 업무를 미호가 대신하고 있다. 업무 부담이 가중되다 보니 미호가 평소보다 일을 못한다.

……라고 선배들이 미호를 옹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깨부수기 위해 준후는 일부러 대진의 업무를 자처했다.

미호가 일이 많아서 일을 못 한다고 핑계 댈 상황을 원천 봉쇄해 버렸다.

그 결과 펼쳐진 것이 조금 전 상황이었다.

미호는 상혁에게 말로 두드려 맞았다.

일 처리가 너무 느리다고.

일의 우선순위를 지킬 줄 모른다고.

준후와 비교당하면서 모멸감을 느낀 것은 덤이었다.

앞으로 고생 좀 해야 할걸?

준후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라질 줄 몰랐다.

미호는 대진이 쓰러져서 일을 맡길 사람이 없었고.

준후는 절대 미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며.

미호는 인턴인 준후와 비교당하면서 자신감이 땅바닥까지 추락할 것이다.

악순환이 반복되면 선배들도 미호를 다시 보게 되리라.

의국의 참 일꾼은 미호가 아니라 대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드르르륵.

때마침 당직실 문이 열리고 짝턴(짝궁 인턴) 유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진 선배 대신 1년 차 업무 맡기로 했다면서? 벅차지는 않아?”

“정형외과 수련할 때 거의 다 배웠어. 문제없어.”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거지? 괜히 센 척하는 건 아니지?”

유정이 준후를 걱정했다.

차트 작성 및 오더 입력.

이는 겉으로는 쉬워 보여도 안으로 파고들수록 무척 어렵다는 걸 유정은 알고 있었다.

진단명, 질병 코드, 환자 상태 입력.

라운딩을 통한 추가 오더 입력.

간호사 노티를 받고 입력하는 추가 오더 입력 등등.

환자 하나만 해도 신경 쓸 게 수십 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환자가 또 수십 명이 더해진다고 하면 없던 두통도 생길 지경이었다.

의사 수련 과정 중 레지던트 1년 차가 가장 빡세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허세 부려서 얻을 게 뭐가 있겠어. 다 할 만해서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일 못했으면 당장 쫓겨났을걸?”

“하긴 그것도 그러네.”

유정의 목소리에 수긍한다는 기색이 담겼다.

“그래도 선행학습이 너무 빠른 거 아니야? 벌써 1년 차 업무까지 마스터하고?”

“배워서 남 주고 또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의사니까.”

“우리 준후, 멋쟁이 의사네.”

유정이 웃으며 말했다.

준후는 의대 다닐 때부터 남다른 구석이 많긴 했다.

의대 수석 입학에 수석 졸업.

의사 국가고시 만점 등등.

또한 준후는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동기들을 배려할 줄도 알았다.

“그래도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럼 네 몸도 편하고 얄미운 미호 선배도 고생할 텐데.”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내가 대진 선배 업무를 맡는 게 미호 선배를 괴롭히는 일이야.”

“엥?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

“알기 싫어도 곧 알게 될걸?”

준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한데 잠깐 당직실 좀 봐줄래?”

“그거야 어렵지 않지. 근데 화장실? 아니면 라운딩?”

“불구경.”

준후는 당직실을 벗어나 병동 복도를 가로 질렀다.

좌우로 병실을 살피며 걷다 보니.

먼저 나간 상혁과 미호가 함께 있는 병실이 보였다.

미호는 손에 주사기를 들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죄인처럼 서 있었다.

복수 천자에 실패해서 주눅 든 게 분명했다.

정작 복수 천자를 하고 있는 사람은 상혁이었으니까.

대진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형편없는 실력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준후의 계획이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준후, 넌 여기서 뭐 해?”

처치가 끝난 후 복도로 나온 상혁이 준후에게 물었다.

“화장실 가는 도중에 선배가 처치하는 게 보여서요. 근데 왜 미호 선배가 아니라 선배가 처치하셨어요?”

준후는 속사정을 빤히 다 알면서도 일부러 물었다.

미호를 약 올리기 위해서였다.

“미호, 얘 3개월 차인데 아직 파라(복수 천자)도 제대로 못 하더라. 답답해 뒈지는 줄 알았다.”

상혁이 한심하다는 눈길로 미호를 쳐다보았고.

미호는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아, 그렇구나. 시간 괜찮으시면 휴게실에서 커피라도 한잔하실래요?”

“나야 좋지. 가자. 미호, 넌 하늘이 두 쪽 나도 정오까지 회진 오더 다 입력해 놔. 알았어?”

“……네, 선배.”

준후는 상혁과 휴게실로 이동했다.

캔 커피를 마시며 미호의 험담을 했다.

만약 무림의 정파인이 이런 준후를 봤다면 준후가 정당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고 비판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준후의 생각은 달랐다.

먼저 협잡질을 한 건 미호였다.

미호는 상혁에게 자신에 대한 악담을 쏟아내서 편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준후 입장에서 험담이란 받은 것을 돌려주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어르고 달랜다고 해서 잡초가 성장을 멈출 일은 없다.

잡초는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

그것은 잡초를 뿌리째 뽑는 것이다.

준후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정파에 몸을 담았었지만, 악인의 처분에 관해서 준후는 항상 강경파였다.

준후는 자신이 백의(白衣)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옷으로 비유하자면.

준후는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가 교차하는 옷일 것이다.

정의로울 때는 정의롭고.

악인을 벌할 때는 악인만큼 독하고.

지금의 준후는 후자의 준후였다.

그리고 독기를 품은 준후는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 * *

‘하, X발. 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 거야? 완전 엉망진창이잖아.’

당직실에 돌아온 미호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은 가짜인 게 분명했다.

애써 쌓아온 미호의 똑순이 이미지는 오늘 오전 만에 박살 나고 말았다.

상혁은 3년 차 레지던트로 레지던트의 실세였다.

군대로 비유하자면 일 잘하는 실세 상병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상혁에게 단단히 찍히고 말았다.

회진 오더 입력이 너무 느리다고.

복수 천자 하나 제대로 못 한다고.

‘대진이, 걔는 왜 갑자기 쓰러지고 난리람.’

미호는 괜히 애꿎은 대진을 탓했다. 이 모든 사단을 대진에게 돌렸다.

“야! 넌 처치 안 하고 당직실에 뭐해? 인턴이 한가할 수 있어?”

미호의 앙칼진 시선이 유정에게 향했다.

“아…… 아니요. 준후가 잠깐 당직실 좀 봐달라고 해서.”

“준후가 네 상관이라도 돼? 이제 내가 왔으니까 네 일 봐. 빈둥거리면서 농땡이 피우지 말고.”

“……네.”

유정이 물러가자 당직실에는 미호만 남았다.

씩씩거리던 미호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꺼내 마셨다.

그제야 천불이 일던 속이 가라앉았다.

미호는 더듬더듬 차트를 입력하면서 준후를 떠올렸다.

쓰러진 대진도 문제였지만 준후는 더 큰 문제였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사단은 준후 때문에 일어난 것 같기도 했다.

준후가 대진의 업무를 맡지 않았다면 미호가 지금처럼 쥐 잡히듯 잡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설령 일 처리를 잘 못 하더라도.

일이 많아서 그랬다고 핑계를 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기분 나쁜 사실.

준후가 인턴답지 않게 야무지게 일을 처리하게 되면서 자신이 준후와 비교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미호는 준후와 비교를 당하면서 계속 손해를 보고 있었다.

인턴보다 일을 못한다는.

자존심 상하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서준후. 이 자식.

나를 고의로 물 먹이고 있는 게 분명해.

지금은 웃고 있는지 몰라도 어디 두고 봐.

대진이가 복귀하는 대로 상황은 180도 뒤바뀔 테니까.

미호는 빠드드득- 이를 갈며 업무에 집중했다.

미호도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 * *

“귀가 자꾸 간지럽네. 누가 내 욕을 하나?”

당직실에서 업무 중이던 준후가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물론 곁에서 일하는 미호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아닌 척하면서 미호의 표정을 살폈더니 역시나 미호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욕먹을 짓을 했나 보지.”

“하긴 그렇겠죠? 그럼 욕하는 사람한테 고마워해야겠네요.”

“무슨 소리야?”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저 오래 살라고 욕해주는 거 아니겠어요? 당연히 고마워해야죠.”

준후의 익살에 미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띠리리링~

전화기가 울렸기에 가까운 자리에 있던 준후가 전화를 받았다.

“네. 소화기 외과입니다.”

-선생님. 응급실이고요. 복부 자상 환자인데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전화를 건 응급의학의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이어지는 노티 또한 충격이었다.

환자의 복부에는 칼에 찔린 흔적이 다섯 곳 정도 있으며 심지어 LUQ(복부를 사분면으로 나눴을 때 왼쪽 윗부분)에 아직 과도가 꽂혀 있다고 했다.

응급 CT 결과 복부 대동맥 출혈, 하대정맥, 간 출혈 소견이 있고.

혈압은 수축기 90mmHg에.

이완기 60mmHg.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생사가 위태롭다고 했다.

“일단 제가 내려가서 확인해 볼게요.”

준후는 환자의 차트를 쓱 훑고서 통화를 끊었다.

무림에서 검과 도에 당한 수많은 동료를 지켜보았고.

또 본인 역시 검상으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일까.

칼에 찔린 응급환자가 있다고 하니 더 마음이 급해지는 준후였다.

“과도에 찔린 복부 자상 환자 있대요. 응급실 내려갔다고 올게요.”

준후는 미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원래라면 1년 차인 미호가 내려가는 게 맞았지만.

미호의 업무 능력을 생각하면.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직접 나선 준후였다.

당직실을 나온 준후는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구 계단을 활용했다.

무공을 익힌 준후에게는 그쪽이 더 빨랐다.

휘이이익. 쿵!

휘이이익. 쿵!

준후는 20개 가까이 되는 계단 반개 층을 단번에 뛰어내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발목이 부러졌겠지만 준후에게는 털끝만큼의 충격도 없었다.

내공으로 발목을 보호하고 천근추로 무게 중심을 잡았다.

사람들로 넘쳐나는 복도는 천운보를 밟으며 질주했다.

“소화기 외과입니다. 복부 자상 환자분 어디 있나요?”

준후가 응급실 스테이션으로 이동해 물었다.

“A1 구역 3번 베드요. 근데 엄청 빨리 오셨네요? 방금 막 통화를 끊은 것 같은데.”

“마침 근처에 있었거든요.”

준후는 황급히 환자가 있는 구역으로 이동했다.

아…….

환자를 보자마자 탄식이 흘러나왔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복부에는 피에 젖은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으며 노티 받은 대로 왼쪽 상복부에 과도가 꽂혀 있었다.

환자 감시 장치의 모니터를 살펴보니 혈압과 맥박이 엉망이었다.

심전도도 덩달아 불안정했다.

삼각뿔처럼 뾰족한 파동이 불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1초라도 빨리 수술이 필요한 상황.

그래서일까.

삐이이이.

삐이이이.

환자와 연결된 환자 감시 장치의 기계음이 마치 응급 수술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환자분은 어쩌다가 이런 부상을 당하셨습니까?”

준후는 환자 곁을 지키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성 보호자에게 물었다.

“그게 이 친구가 아는 친구한테 빚을 받으러 같이 가달라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빚진 사람 집에 갔는데 대화 중에 언성이 높아지더니 그 사람이 갑자기 과도를 빼 들고 형석이를 막…….”

보호자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시에 느꼈던 참담함과 끔찍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진수, 살 수 있겠죠? 이대로 죽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요.”

“완치는 장담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준후는 침상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다른 의사들은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응급처치를 시도했다.

파바바밧!

준후는 보호자가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환자의 복부를 점혈했다.

응급실에 내려오기 전 CT를 통해 이미 출혈 부위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래서 출혈이 발생한 혈관을 동그란 환 형태로 가공한 내공으로 막아버렸다.

이러면 잠깐의 시간은 벌 수 있으리라.

“한시라도 빨리 수술에 들어가는 게 최선의 치료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보호자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보호자의 불안한 시선은.

아까부터 환자의 복부에 꽂힌 과도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잠시만 대기해 주세요.”

상태가 워낙 심각했으므로 환자를 더 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준후는 그래도 스테이션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화기 외과에 콜을 했다.

전화를 받은 미호에게 수술 스케줄을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줄곧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을 향했다.

수술 전 문제가 생길 것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

준후의 눈에 보호자의 이상한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보호자는 뭔가 결심했다는 표정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환자의 좌측 상복부에 꽂힌 과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준후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 돌겠네.

설마 과도를 자기 손으로 뽑으려는 거야.

그럼 오히려 출혈이 심해질 텐데?

아무래도 보호자 딴에는 본인이 환자를 위해서 무언가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저러는 것 같은데…….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저 행동이야말로 환자를 죽이는 지름길이었다.

순간 시린 오한이 준후의 등줄기를 훑고 내려갔다.

안 돼.

보법을 밟더라도 보호자를 막을 수 없어.

거리가 멀고 장해물도 너무 많아.

안 돼.

사자후를 썼다간 처치 중인 다른 의사와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서 실수를 할 거야.

그럼 대체 무슨 수를 써야 하지?

준후가 고민에 빠진 순간에도.

보호자의 손은 시시각각 과도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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