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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03화 (103/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03화

제18장 임계점(3)

서걱. 서걱.

준후는 붕대 가위로 피에 젖은 붕대부터 잘라냈다.

붕대를 걷어내자 환자 복부 곳곳에 단도에 찔린 자상들이 한 눈에 펼쳐졌다.

압박 붕대를 통한 지혈.

준후의 점혈 덕분에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어우야. 생각보다 심한데? 칼부림한 놈, 미친놈 아니야?”

“그러게요.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끔찍한 광경에 영환과 재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준후는 오히려 냉정하게 상처들을 분석하고 있었다.

복부 자상은 6개.

상처의 길이와 깊이를 보면 환자의 장기 및 혈관까지 닿아 치명상을 일으킨 상처는 2개였다.

배꼽 위에 있는 자상.

이것은 복부 대동맥의 분지를 침범했다.

왼쪽 옆구리에 위치한 자상.

이것은 췌장 인근을 침범했다.

과도가 꽂혀 있는 부위는 간 근처였으니 수술해야 할 부위만 무려 3곳이었다.

오늘 수술은 길고 험난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준후라고 했나? 너 의외로 침착해 보인다? 이런 외상 환자는 처음 봤을 텐데.”

“현실감이 안 느껴져서 그런가 봅니다.”

영환의 질문에 준후는 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사실 준후는 이런 자상 환자를 질릴 정도로 많이 봤다.

무림에서 30여 년을 살았으니까.

그동안 사파 및 마인들과 샐 수 없을 만큼 검을 주고받았으니까.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다행이네. 쫄아서 어버버했으면 곤란했을 텐데. 개복술 하기 전에 과도부터 제거하자. 재석아, 준비해라.”

“근데 선배.”

“왜?”

“과도 제거하는 일, 준후한테 시켜 봐도 돼요?”

“인턴한테?”

재석의 제안에 영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도를 제거하는 일은 단순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처치기도 했다.

손을 떨거나.

과도를 뽑는 각도가 엇나간다면.

과도를 뽑는 과정에서 혈관이나 신경이 다쳐서 후유증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네가 할 일을 왜 인턴한테 떠넘기는데? 자신 없냐?”

“일 잘한다고 하도 소문이 자자해서요. 한 번 맡겨 봐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으음…….”

영환이 준후를 빤히 쳐다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뭐, 인턴이라고 못할 처치가 아니긴 한데…… 서준후, 잘할 수 있겠어?”

“네. 자신 있습니다.”

준후의 대답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준후는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자신 있었다.

“대답은 잘하네. 대신 사고 치면 죽는다. 환자도 죽고 너도 죽고 재석이도 죽는 거야.”

“…….”

“그래도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준후는 복부에 꽂힌 단도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가볍게 쥐었다.

망설임도.

두려움도.

떨림도.

초조함도 준후에게는 없었다.

수많은 전장에서 다져온 침착함과 냉정함.

환자를 살려내겠다는 의지.

보호자와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열의로 불타오를 따름이었다.

마음가짐만 놓고 보면.

준후는 이미 명의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과도 뽑는 요령이 있는데 말이다. 뭐냐면 수직으로 과도를 뽑아낸다는 느낌…….”

영환이 요령을 다 설명하기도 전에.

준후는 과도를 쑥 뽑아냈다.

풍류운산.

천씨세가의 초식 중 하나로.

검으로 찌르기를 한 후 검을 빠르게 거둬들이는 이치를 사용해 과도를 제거했던 것이다.

준후의 동작은 그야말로 번개 같았다.

스태프들이 눈을 깜빡거렸을 때는 과도가 이미 뽑혀 나간 뒤였다.

과도를 뽑는 과정에서 혈관을 건드렸다면.

그 즉시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을 텐데.

상처는 멀쩡했다.

상처 주변에 고여 있던 혈액이 상처 사이로 찔끔 흘러내렸을 따름이었다.

이에 준후는 거즈 세 장을 손에 쥐고 피가 흐르는 환자의 복부를 지그시 압박했다.

“이 정도면 됐을까요?”

준후가 영환을 바라보며 물었고.

영환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잘했네.”

* * *

과도를 제거한 부위의 출혈이 멎으면서 본격적인 수술의 막이 올랐다.

시작은 개복술이었다.

영환은 환자의 명치부터 배꼽 아래 부근까지 7센티미터 길이의 세로 절개창을 만들어냈다.

피부가 갈라지고.

피하지방층이 갈라지고.

근막이 갈라지고.

복막이 차례대로 갈라지면서 환자의 복강 내 장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

싸늘한 적막이 수술대를 사로잡았다.

환자의 복부 내부는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복강에 고인 혈액들이 파도가 일렁이듯 철썩거렸다.

비릿한 혈향은 코를 찔렀다.

예상보다 참혹한 상황에 스태프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시야부터 확보하겠습니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깨뜨린 이는 준후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건만.

준후는 고정형 견인기로 절개창을 넓게 벌렸다. 덕분에 수술 시야가 한결 넓어졌다.

치이이익.

양손에 쥔 썩션기를 쥐고.

준후는 복강내 혈액을 흡입했다.

손놀림과 처치가 야무졌다.

수술방에 들어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해 둔 덕분이었다.

“뭐야? 서준후, A턴이었어?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저도 소문만 듣고 수술 같이 들어온 건 처음이에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이 정도면 제대로 키워 봐도 되겠는데?”

“그러게요.”

재석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하는데.

준후는 정반대였다.

소문난 것 이상의 활약을 선보였다.

과도를 제거했던 솜씨부터 일품이었다.

손이 어찌나 빠르고 정확했던지.

재석의 눈과 머리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비록 내색은 안 했지만 재석이 과도를 제거한다고 해도.

준후만큼 깔끔하게 제거할 자신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과도를 제거한 후 곧장 거즈로 지혈에 들어가는 센스.

견인기를 사용하는 시기적절한 타이밍.

썩션에 들어간 센스 등등.

그동안 보여준 활약만 놓고 보면.

준후를 인턴이 아니라 레지던트 3-4년 차라고 해도 수긍이 갈 정도였다.

“아닙니다. 두 분에 비하면 저야 아직 멀었죠.”

“겸손한 태도도 마음에 드네.”

여유를 되찾은 영환이 말을 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서 쭉쭉 나가보자. 내가 혈관을 잠글 테니까 너희 둘은 세부 지혈에 집중해. 모스키토.”

딸칵. 딸칵.

영환이 혈관 겸자로 출혈이 발생한 혈관의 윗부분을 잠갔다.

혈관에 혈액이 유입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추가적인 출혈을 예방하는 처치였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그사이 재석과 준후는 썩션기로 복강 내 혈액들을 빨아들였다.

찢어진 혈관과 장기 인근에 지혈 거즈를 덧대기도 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속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복강 내 혈액들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혈액에 잠겨 있던 장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얘, 사람 맞아?

함께 처치하면서 재석은 준후에게 한 번 더 놀랐다.

준후가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던 것이다.

한 손으로는 썩션을 하고.

다른 손으로는 지혈 거즈로 복강 내 상처들을 지혈했다.

동시에 영환과 재석의 처치를 중간중간 거들기까지 했다.

필요한 물품을 건넨다거나.

혈관을 잡아서 고정한다거나.

혈액이 묻은 혈관이나 장기들을 이리게이션(세척)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준후는 어느 순간부터 수술의 전 과정에 개입하고 있었다.

마치 컨트롤 타워처럼.

심지어 스태프들 누구도 준후에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말이다.

준후의 은근한 활약 덕분일까.

복강 및 장기 출혈을 생각보다 빨리 정리할 수 있었다.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복강 내 장기들은 이제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환자의 바이탈은 안정세를 되찾았다.

심전도 그래프도 규칙적으로 변했다.

“서준후.”

“네. 치프.”

“너 전생에 외과의였냐? 이건 도저히 인턴의 어시스트가 아닌데?”

“하하하. 그런가요?”

문득 재석과 눈이 마주친 준후가 어색하게 웃었다.

“어시스트 잘하는 요령이 따로 있냐?”

“치프 앞에서 감히 그런 걸 이야기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듣고 싶으니까 물어봤지.”

“저는…….”

준후가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어시스트 할 때 최대한 다른 분들의 시점에서 보려고 노력합니다.”

“다른 사람 시점?”

“네. 지금 집도의 선생님은 무엇이 필요할까, 퍼스트 선생님은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합니다.”

“…….”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계속해 봐.”

“포켓북을 공부하면서 수술 과정을 일일이 다 머릿속으로 그려봤습니다. 그게 의외로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무림의 무인들은 무공서를 읽기만 해도 해당 무공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다.

준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포켓북을 단순히 텍스트가 아닌 움직이는 동영상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수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징하다. 너도.”

재석은 졌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수술에 임하는 자세.

공부를 하는 자세에서.

준후는 이미 평범한 인턴들과 궤를 달리했다.

남다른 활약 뒤에는 남다른 노력과 마음가짐이 있었던 것이다.

“자. 자. 지방 방송 끄고 내 말에 집중!”

집도의 영환이 모처럼 스태프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출혈 잡고 나니까 의외로 상태가 나쁘지 않네. 수술방도 꽤 빨리 들어왔고 과도가 주요 혈관은 벗어났어.”

영환이 한숨 돌렸다는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일단 복부 대동맥 인근에 미세혈관부터 정리하고. 그다음에 췌장, 간 순서대로 처치하면 되겠다. 지금처럼만 진행하면 아무 문제 없겠어.”

“네. 선배.”

“알겠습니다.”

스태프들의 씩씩한 대답과 함께 수술은 제2막을 향했다.

* * *

수술은 순풍을 만난 범선처럼 순조로웠다.

복부 대동맥에 파열된 미세 혈관들을 봉합 또는 소작하고.

일부 괴사된 췌장 조직을 제거하거나 배액하고.

간 문맥과 주변 혈관을 복구하고 등등.

수술은 어느새 안정세를 되찾았다. 수술 초기의 숨넘어갈 듯한 긴장감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준후가 보기에 집도의 영환은 실력이 뛰어난 서전이었다.

수술 초반만 해도 영환의 성격이 진중하지 못해서 집도 솜씨까지 못 미더웠지만.

그것은 준후의 선입견이었다.

외상 외과 2년 차 펠로우답게.

영환은 수술 내내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환자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스태프들을 적재적소에 부릴 줄 알았다.

재석 역시 뛰어난 퍼스트였다.

영환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술을 도왔다.

수술방에 유일한 구멍이라면…….

준후 맞은편에 위치한 소독 간호사였다.

경험이 적은 신규라서 그럴까.

소독 간호사는 종종 수술 도구를 잘못 건네거나, 한참 뜸을 들이다가 건네곤 했다.

“선생님. 저라서 가만히 있는 거예요. 교수님들 어시스트 할 때도 저랑 할 때처럼 하면 큰일 나요.”

소독 간호사 가연이 시저 대신 보비(Bovie, 전기 소작기)를 건네자 영환이 한마디 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단.”

영환이 단서를 달았다.

“실력은 빨리 키우시는 게 좋을 거예요. 수술방에서는 다들 예민하니까.”

“알겠습니다. 선생님.”

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수술이 무난하게 끝나갈 무렵이었다.

찰칵.

찰칵.

가위로 봉합의 매듭을 자르는 간단한 역할만 맡게 된 준후의 시선이 비장에 머물렀다.

비장은 지라라고도 불리는데.

인간의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림프기관 중 하나였다.

문제는 수술 도중.

비장이 한층 비대해졌다는 느낌을 준후가 받은 것이었다.

시력을 증폭시키는 맹조공이라는 안공까지 써가면서.

준후는 수술 내내 장기들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왔다.

혹시라도 모를 2차 출혈에 대비해서 말이다.

그러니 지금 느낀 위화감을 단순한 감이나 착각이나 오해로 치부하긴 힘들었다.

돌연 엄습하는 불안감.

스멀스멀 피어나는 긴장감.

무림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을 때.

준후는 여지없이 안 좋은 사건에 휘말리곤 했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

준후의 질문에 영환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화장실 문제는 아니고 아무래도 환자의 비…….”

준후는 채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띠리리링~

때마침 수술방 출입구에 위치한 전화기가 울렸던 것이다.

“전화부터 받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준후는 서둘러 수술대를 벗어나 전화를 받았다.

간호사의 노티를 듣던 준후의 표정이 차차 굳어갔다.

“네? 하필이면 지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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