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공 쓰는 외과 의사-107화 (107/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07화

제19장 대회(2)

‘미쳤네. 미쳤어.’

유정은 댄스 챌린지를 소화하는 준후를 지켜보며 감탄했다.

준후가 춤에 일가견이 있다는 건 의대 시절에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내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사실 유정의 제안은 이랬다.

최근 가장 핫한 댄스 챌린지 영상을 단 ‘한 개’만 만드는 것이었다.

쇼츠 영상은 짧지만 가볍게 촬영할 수는 없었다.

짧은 영상 속에 나름 알찬 댄스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완전히 코믹으로 가거나.

준후의 컨셉은 전자였고.

따라서 적당한 안무 연습이 필요했다.

그런데 웬걸?

준후는 챌린지 안무 영상을 고작 한 번 봤는데도 완벽하게 따라 했다.

팔다리를 시원시원하게 뻗었고.

동작은 절도가 있었으며.

리듬감과 박자감 또한 결코 아이돌에게 뒤지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후의 외모는 탑배우급이었다.

매끈하고 고운 피부.

강인한 눈빛과 짙은 눈썹.

오뚝한 콧날에 생기가 도는 입술.

그런 외모와 댄스가 만나자 멋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마치 남자 아이돌이 수술복과 가운을 착용하고 춤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 더 당혹스러운 점.

그것은 한 번 불이 붙은 준후가 댄스 챌린지 영상을 한 번에 20개 연속으로 소화했다는 점이었다.

“어때? 이 정도면 된 것 같지?”

“…….”

“유정아? 유정아?”

“어? 어. 다 촬영했어.”

유정은 외출했던 넋을 되찾고서 간신히 대답했다.

아직도 얼떨떨했다.

구름 위를 디디고 선 기분이었다.

“준후 너, 이제 보니까 댄스 머신이었구나. 어떻게 영상을 한 번 보고 그대로 따라 해?”

“기억력이 좋거든. 예전에 몸도 많이 썼고.”

준후가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심지어 준후는 그리 지친 기색도 아니었다.

의술에 댄스까지.

준후는 정말 못 하는 게 없었다.

완전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근데 이런 게 진짜 먹힐까?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럴 것 같은데.”

“나를 믿어. 분명 승산 있어.”

유정이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뭐든지 ‘잘’하면 먹히는 시대야. ‘잘’ 생기거나 ‘잘’ 추거나 ‘잘’ 먹거나.”

“…….”

“준후 네 채널도 ‘잘’ 생긴 외모를 밀어붙이고 있잖아?”

유정은 ‘잘’을 강조해서 말했다.

유정이 보기에.

준후의 쇼츠 챌린지 영상은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에 충분했다.

[잘생긴 의사의 화려한 댄스.]

뉴튜브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이보다 더 좋은 콘텐츠가 있을까.

사람들은 의사가 춤을 잘 못 춘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준후는 그런 편견을 멋지게 깰 수 있을 것이다.

“잘 됐으면 좋겠다. 아이디어도 주고 촬영도 도와줘서 고맙다.”

“말로만 고마우면 쓰나. 나중에 떴을 때 맨입으로 넘어가지만 마.”

“뭘 원하는데?”

“방탄 커피 좀 넉넉하게 사줘.”

“아…… 그 느끼한 커피?”

“어허, 위험한 소리를…… 10만 방탄 커피 소비자가 들고 일어난다?”

드르르륵.

준후와 잡담을 나누는데.

1년 차 대진이 컨퍼런스 룸으로 들어왔다.

“둘 다 여기 있었구나. 준후야, 혹시 바쁘니?”

“아니요. 괜찮아요.”

“사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거든.”

대진의 말에 유정은 살짝 놀랐다.

대진은 항상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만 했다.

도움을 청한 적은 없었다.

그런 대진이 부탁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부탁하는 모습 아주 멋있습니다. 선배.”

준후도 유정과 같은 생각인지 너스레를 떨었다.

“하하하. 그래? 다름이 아니라…….”

* * *

주말 오전.

모처럼 황금 같은 오프를 맞이한 준후는 운동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5월의 봄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하늘은 높고 푸르렀으며 햇살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등 뒤에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준후의 머리카락을 희롱하고 살갗을 어루만지곤 도망쳤다.

아파트 단지에 화단에 심어 놓은 유채꽃은 만발해 있었다.

노란 천국 같았다.

봄 날씨를 만끽하며 준후는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자동차 한 대가 횡단보도 앞에 섰다.

빵! 빵! 빵!

클락션을 울린 차를 바라보았다.

위이이잉, 차창이 내려갔다.

차창 너머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성호였다.

의대 시절 단짝으로 붙어 다녔던 3수생 형 말이다.

“형. 오랜만.”

준후는 조수석에 타며 인사를 건넸다.

성호 역시 준후처럼 운동복으로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인턴 되니까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하필이면 과도 안 겹치고 말이야.”

“아무래도 우린 인연이 아닌가 봐.”

“느끼하게 무슨 인연씩이나.”

준후의 농담에 성호가 진저리를 쳤다.

부르르릉.

두 사람이 탄 차량은 목동으로 달려나갔다.

오프인 준후가 집에서 쉬지 않고 운동복 차림으로 성호와 합류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신원대 병원 축구 동호회의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미안한데. 이번 주말에 나 대신 축구 좀 해주면 안 될까? 심정지로 쓰러지고 나서 곧바로 축구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며칠 전 대진이 준후에게 부탁을 했고.

준후는 흔쾌히 수락했다.

남의 부탁만 들어주던 대진이 용기를 내서 부탁했는데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때마침 벌써 축구 동호회 소속이었던 성호에게 연락이 오면서 준후는 성호와 함께 이동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형, 뭐야? 안 보는 사이에 애인 생겼어?”

준후는 휠에 얹은 성호의 손에 껴진 반지를 발견하고 물었다.

“뭐, 그렇게 됐다.”

성호가 쑥스러워했다.

“연애를 시작했으면 재깍재깍 노티부터 해야지. 우리 사이에 이러기야?”

“사귄 지는 열흘도 안 됐어. 계속 어정쩡하게 썸만 탔거든. 어차피 조만간 이야기할 생각이었고.”

“누구랑 사귀는데?”

“혜진이.”

“아…… 혜진이?”

준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혜진은 의대 동기 중 한 명이었다.

말수가 적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타입이었지만.

성호는 혜진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좋다고 몇 번 연급했다.

“듣고 보니 궁합이 잘 맞는 것 같네. 형이 먼저 고백했어?”

“당연하지.”

목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준후는 성호의 연애 성공담을 즐겁게 들었다.

불구경, 싸움 구경.

그다음으로 재미있는 것이 남의 연애 구경 아니던가.

“준후, 넌 아직까지 연애 안 하고 뭐 하냐? 네 얼굴이면 어휴…… 지나가다가 모르는 여자한테 고백해도 성공하겠구먼.”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준후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랑이 주고받는 것이라면 준후는 상대방에게 사랑을 줄 자신이 없었다.

목표로 하는 과가 휴일에도 병원에 불려가는 외과였고.

심지어 준후의 최종 목표는 세계 최고의 외과의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투리 시간이라도 연애를 할 수 없었다.

그 시간마저 수련에 힘써야 할 테니까.

무림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더 강해지기 위해.

적일도에게 복수하기 위해.

준후는 교제하고 있던 천 소저에게도 제대로 된 관심과 애정을 주지 못했다.

천 소저에게 몹쓸 짓을 한 것이다.

같은 실수를 현대에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가까이서 찾아보면 짝궁이 있을지 모르잖아?”

“가까이서?”

“뭐…… 아영이라든가…….”

성호가 아영의 이름을 얼버무렸다.

“아영이는 나한테 관심 없어. 형은 아직 그것도 몰라?”

“으이그. 답답이. 말을 말자. 말을. 너야말로 환자는 그렇게 잘 보면서 여자 마음은 왜 그렇게 못 보는데?”

“이상한 소리하지 마. 이러다가 괜히 아영이하고 어색해질라.”

“내 속 터지면 다 네 책임이니까 그것만 알아 둬라.”

대화가 잠시 끊겼을 때.

준후는 휴대폰으로 뉴튜브 채널을 확인했다.

댄스 챌린지 쇼츠 영상을 올린 후.

채널의 구독자가 수직상승했다.

쇼츠 영상의 조회수는 전부 80만 에 육박했다.

덩달아 구독자는 5만 명.

일반 동영상 조회수는 2만에 다다랐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상승세였다.

-와! 반전 매력이 있으시네요. 이렇게 잘 생기고 얌전한 분이 어떻게 춤을 그렇게 잘 추시지?

-본업이 의사예요? 아이돌이에요?

-눈 호강하고 합니다. 거의 눈캉스 수준이네요.

동영상에는 감탄과 장난 섞인 댓글들이 넘쳐흘렀다.

그래서 요즘 준후는 예전처럼 일일이 댓글에 코멘트를 달아주지 못했다.

쑥쑥 자라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준후의 입가에는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 * *

목동에 위치한 한 축구장.

신원대 로고가 그려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원무과 직원, 인사팀 직원, 남자 간호사, 인턴, 레지던트, 교수 등등.

준후가 성호에게 듣기로는.

이 중 외과 스태프는 준후가 유일하다고 들었다.

“오늘 경기는 꼭 이겨야 해요. 다른 병원이면 몰라도 고전대에 질 수는 없으니까.”

동호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호흡기 내과 최훈 교수가 팀원들을 훑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고전대에 질 바에는 차라리 축구 코트에서 쓰러지겠어요. 심지어 회식비 내기까지 걸렸는데.”

“다들 잘해봅시다. 파이팅!”

같은 팀원들이 반대편에 몸을 푸는 상대 선수들을 바라보며 사기를 충전했다.

신원대와 고전대.

이 둘은 오래전부터 라이벌 대학이었다.

병원에서도 이 앙숙 관계는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경기에서 지는 쪽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리라.

“그쪽은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최훈이 준후를 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준후고 소화기 외과 대진 선배 대타로 나왔습니다. 선배가 얼마 전에 심정지로 쓰러졌거든요.”

“저런…… 애석하게 그런 일이…….”

“축구는 잘해요?”

최훈 옆에 있던 민철이 물었다.

“어, 음…… 적당히 합니다.”

“적당한 수준으로는 안 되는데. 일단 골키퍼 볼래요?”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을 사용하면 동네 축구는 물론이요 세계적인 무대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준후였다.

준후가 치달.

흔히 말하는 ‘치고 달리기’만 해도 그 누구도 준후를 쫓아올 수 없었다.

준후는 단순 달리기가 아니라 보법을 사용할 테니까.

다른 사람은 까맣게 몰랐지만.

준후는 존재 자체가 반칙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준후는 오늘 경기에 적당히 어울릴 생각이었고.

골키퍼는 딱 좋은 포지션이었다.

“신원. 신원. 파이팅!”

팀원들이 손을 모아 파이팅을 한 후 각자의 포지션으로 흩어졌다.

성호는 공격수였으므로 최전방에.

준후는 골키퍼였으므로 최후방 골대를 지켰다.

“하아아암.”

준후는 하품을 해가며 경기를 지켜보았다.

솔직히 긴장을 하고 싶어도 긴장할 수가 없었다.

준후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상대 팀에게 한 골이라도 먹힐 자신이.

그런데 센터에서 공이 몇 번 오가던 중.

휘이이이익!

날카로운 패스가 수비수 사이를 통과했다.

패스를 받은 고전대 공격수가 매섭게 골대로 쇄도했다.

뻥!

모든 수비수를 따돌리고 준후와 5미터 남짓한 거리에 힘껏 때린 공격수의 슈팅.

“…….”

“…….”

순간 신원대 수비수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초보 골키퍼가 어떻게 저 상황에서 슈팅을 막는단 말인가.

선제골은 양보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실제로 초보 키퍼인 준후는 몸이 굳은 듯 미동도 없었고 말이었다.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순순히 1골을 내줄 줄 알았건만.

상대 공격수의 공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벗어난 것이다.

“에이 씨!”

공격수는 혀를 차며 뒤로 돌았고 수비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다 살았네. 그대로 들어가는 줄 알았잖아.”

“확실히 운이 좋았지. 준후 씨가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는데.”

“오늘은 하늘이 돕는 건가?”

수비수들이 하는 이야기를 멀리서 듣고 준후는 피식 웃었다.

다들 몰랐지만.

준후는 슈팅을 못 막은 게 아니라 안 막은 것이었다.

내공으로 시야를 증폭한 순간.

공격수의 발이 공에 빗맞았던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준후의 골키퍼 실력이 운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증명이 되었다.

전반전.

고전대 공격수들이 파상공세를 펼쳤음에도.

신원대 수비의 구멍이 뻥뻥 뚫렸음에도.

신원대는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