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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08화 (108/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08화

제19장 대회(3)

“준후 씨 후반전에도 잘 부탁해요.”

“대진이 녀석 기특하기도 하지.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엄청난 골키퍼를 대타로 보내고 말이야.”

“거미 손 플레이 기대합니다.”

전반전 휴식이 끝나고 코트로 입장하던 도중.

팀원들이 준후에게 한 말이었다.

준후를 향한 팀원들의 의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의 준후는 팀원들의 굳건한 믿음의 대상이었다.

골을 먹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골을 먹혀야만 하는 상황.

다양한 위기 상황 속에서 준후의 활약은 눈이 부셨다.

상대 팀에게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기는 건 확정이고.

이기려면 골을 넣어야 할 텐데.

골대를 지키고 있던 준후는 필드를 넓게 둘러보았다.

신원대 팀의 공격은 지지부진했다.

패스는 중간에 잘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공격수들은 자주 수비수들에게 공을 빼앗겼다.

그나마 분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성호였다.

성호는 종종 빠른 발로 상대팀 골대까지 쇄도하며 상대 선수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내가 나서는 건 반칙이니까.

준후는 포지션 변경을 요청하지 않았다.

유치원생들 싸움에 특전사가 나서는 건 과하지 않는가.

하지만 준후 스스로 정한 불문율을 깨지는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으니…….

“크으으으윽!”

필드 위로 퍼지는 신음 소리.

그 뒤를 따르는 ‘삐이익’ 호루라기 소리.

성호가 상대 팀 선수와 힘 싸움을 하던 도중 쓰러지고 말았다.

발목을 부여잡으며 통증을 호소했다.

경기는 일시중단.

신원대 선수들이 성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파바바밧.

준후는 보법까지 밟아가며 성호에게 달려갔다.

“형. 괜찮아?”

“발목을 다친 것 같은데. 뛰지는 못할 것 같아.”

준후는 성호를 부축해서 일으킨 뒤 필드 바깥으로 이동시켰다.

“성호야 많이 다쳤어?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발목이 부은 것 같은데?”

“정형외과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팀원들이 걱정과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동시에 사기까지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성호가 신원대 공격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성호 형은 제가 살피겠습니다.”

준후는 호기롭게 나섰다.

지난 정형외과에서의 수련 경험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정형외과에서 준후는 인턴 일만 한 것이 아니었다.

레지던트들의 업무를 지켜보며.

레지던트 업무 영역까지 습득해두었다.

왜냐고?

바로 이런 순간을 대비해서!

유비무환은 준후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였다.

“준후 씨가 본다고 알겠어? 내가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래요. 병현이한테 맡겨요.”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못마땅하면 그때 선생님이 다시 봐주세요.”

준후가 물러서지 않자 팀원들은 못마땅해하면서도 준후의 진찰을 지켜보았다.

“형. 아프면 바로 이야기해.”

“알았어.”

준후는 손가락으로 성호의 왼쪽 복숭아뼈, 엄지발가락 인근의 중족골, 발목 안쪽의 경골, 발목 안쪽의 주상골을 차례대로 지그시 눌렀다.

“압통 있어?”

“으음…… 그렇게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네 발자국 정도만 걸어 봐.”

“알았어.”

자리에서 일어난 성호가 얼굴을 찌푸리며 네 발자국을 걸었다.

“쯧쯧쯧. 아픈 사람한테 걸으라고 하다니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이러다가 사람 잡겠어.”

주변에서 은근한 질책이 쏟아졌다.

준후가 뭣도 모르면서 설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정작 뭘 모르는 건 다른 의사들이었지만.

“방금 제가 한 진찰법은 오타와 룰입니다. 발목 염좌를 진단하는 가장 간단하면서 뛰어난 방법이죠.”

“오타와 룰? 아, 듣고 보니 기억이 나는 것도 같은데?”

“저도 정형외과 인턴 수련할 때 들어본 것 같아요.”

“자신이 있어서 나섰을 텐데 한 번 믿고 맡겨보죠. 아직까지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진찰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 의사들이 하나둘 준후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준후에게는 호재였다.

“형 다시 앉아 볼래?”

준후는 다시 성호를 앉힌 후 이번에는 성호의 왼쪽 발목에 손바닥을 얻었다.

우우우웅.

손바닥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내공.

내공은 근육과 신경, 뼈를 차례대로 스쳐 지나갔다. 성호의 발목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준후에게 알려주었다.

오타와 룰에도 이상 없고.

내공으로도 큰 이상이 없다라…….

굳어 있던 준후의 표정이 그제야 풀렸다.

팟! 팟! 팟!

준후는 내친김에 검지로 성호의 발목 주변을 점혈했다.

발목 신경에 ‘진통’ 점혈을 펼쳤던 것이다.

“지금은 좀 어때?”

“와! 한결 나은데? 이 정도면 바로 뛰어도 되지 않나?”

“무슨 소리야. 발목 부었잖아. 오버하지 말고 쉬어.”

“으…… 잔소리.”

한편 팀원들은 귀신에게 홀린 듯이 준후를 지켜보고 있었다.

진료하는 준후가 진지했던 데다가.

꽤 전문적인 모습을 보였다.

비록 준후가 인턴이라도 준후만큼 대처할 자신이 없었기에.

다들 준후의 진료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성호 발목은 어때요? 병원 안 가 봐도 되겠어요?”

병헌이 조심스레 물었다.

“네. 단순한 Sprain(염좌, 삐끗함)으로 보입니다. 굳이 병원까지는 안 가도 되겠네요.”

준후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구급함 좀 가져다주실래요?”

“여기요.”

준후는 구급함을 열고 스프레이형 파스를 성호의 발목에 뿌렸다.

치이이익!

마침 부목이 있었기에.

성호의 발목 뒤에 부목을 대고 그 위를 붕대로 칭칭 감았다.

정형외과에서 스플린트(반깁스)와 캐스트(통깁스)를 밥 먹듯이 해본 덕분일까.

준후의 붕대 감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붕대는 탄탄한 압력을 자랑하며 성호의 발목을 지탱해 주었다.

나선형으로 회전해서 올라가는 붕대의 간격은 자로 잰 것처럼 정확했다.

팀원들은 이제 준후를 인턴이라고 무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정형외과 분야에 관해서는.

“준후 씨, 뭐야? 진찰을 왜 이렇게 잘해? 정형외과 레지던트인 줄 알았잖아?”

병현이 준후에게 감탄하며 물었다.

“얼마 전까지 정형외과에서 수련했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제가 조금 나을 겁니다.”

“정형외과에서 수련했다고 해서 오타와 룰을 알아? 붕대도 이렇게 잘 감고?”

“하하하. 엄청 빡세게 굴렀거든요. 형 발목은 좀 어때?

준후의 시선이 성호에게 머물렀다.

“덕분에 말짱해. 땡큐. 근데 이제부터 어쩌지? 내가 빠지면 공격이 안 될 텐데.”

준후의 야무진 진단과 처치로 성호의 부상은 일단락 지어졌다.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신원대는 최고의 공격수를 잃어버렸다.

준후는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공격수로 뛰면 돼.”

* * *

인저리(부상) 타임이 끝나가는 시점.

준후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제 골키퍼가 아닌 최전방 공격수를 맡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준후 씨는 골키퍼를 잘하니까 계속 골키퍼를 맡는 게 낫지 않겠어?”

“공격수, 쉽지 않아. 평소에 볼을 못 만져봤으면 흘리기 바쁠 텐데.”

“축구 경험 별로 없다고 하지 않았어? 공격은 무리라고.”

팀원들은 준후를 뜯어말렸다.

준후가 훌륭한 골키퍼라고 해서.

훌륭한 공격수가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골키퍼와 공격수.

두 포지션은 아예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간격이 컸다.

하지만 이는 다들 준후를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고전대와의 라이벌전에서 지고 싶으신가요?”

“…….”

“져서 상대 팀에게 회식비를 헌납하고 싶으신가요?”

준후의 잇따른 질문에 팀원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패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원무과 선생님.”

준후가 지그시 호영을 바라보았다.

호영은 성호와 더불어 최전방 공격수 중 한 명이었다.

“아. 네.”

“체력이 많이 떨어지신 것 같더라고요. 특히 후반에.”

“…….”

“달려나가서 포지션을 잡기보다는 가만히 서서 패스를 받아먹으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던데요?”

“아…… 네.”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숙이는 호영.

준후는 골키퍼였지만 코트 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전부 꿰뚫었다.

내공으로 시야를 증폭해 선수들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게…… 전반에 너무 무리했나 봐요.”

“지친 선생님이 공격을 하는 것보다는 제가 공격에 나서는 게 차라리 나을 겁니다.”

“…….”

“다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준후가 팀원들을 훑으며 동의를 구했다.

의견은 금방 모였다.

준후는 호영을 대신해서 공격수로 들어가게 되었다.

골키퍼는 다른 예비 선수가 맡았다.

준후는 비록 오늘 처음 팀에 합류한 새내기였지만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팀의 중심에 섰다.

하는 말이 다 맞는 말이고.

자기 포지션에서 누구보다 빛났기에.

아무도 준후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삐이이익!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우렁차게 퍼져 나갔다.

인저리 타임이 끝났다.

양 팀 선수들이 코트로 쏟아져 나왔다.

저벅. 저벅.

준후는 아까와 달리 코트를 등지고 하프 라인 쪽으로 걸어나갔다.

반대편 코트를 살피던 준후의 눈동자가 상대 팀 한 선수에게 머물렀다.

고전대 34번.

우락부락한 덩치에 스포츠머리를 한 청년.

34번을 향한 준후의 눈빛은 잘 벼른 검처럼 날카로웠다.

두고 봐.

너는 절대 용서 못 하니까.

34번은 성호를 악의적으로 공격했다.

볼을 경합하는 과정에서.

어깨에 체중을 실어 차징을 하는가 하면.

팔꿈치까지 써서 성호의 옆구리를 떠밀었다.

속된 말로 성호를 담가 버린 것이다.

호영의 체력이 바닥이니.

성호만 못 뛰게 하면 자기들이 반드시 이길 거라 생각했겠지.

실로 치사하고 구린내 나는 전략이었다.

라이벌 대전이면 더 공정하게 경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경기 결과에 더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것 아닌가.

34번의 의도적인 반칙.

그리고 성호의 부상.

이 두 가지는 경기에 미지근한 태도를 취하던 준후를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준후는 고전대를 자근자근 밟아줄 생각이었다.

“저기요. 아까 반칙이 좀 심하던데요?”

준후는 조금 떨어져 있는 34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거 참. 축구를 하다 보면 몸싸움도 좀 할 수 있고 좀 다칠 수도 있지.”

34번의 싸가지 없는 화법에 준후는 혀를 찼다.

진심으로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저게 할 소리인가 싶었다.

“말이 심하시네. 원래 성격이 뻔뻔한가?”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봐요, 나보고 뭘 더 어쩌라고요.”

“당신이 방금 했던 말. 그대로 돌려줄 테니까 딱 기다려요.”

준후는 일부러 말을 아꼈다.

쓸데없는 감정소모는 원치 않았다.

중요한 건 결과 경기였으니까.

한참 공방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턱!

코트 중앙에 있던 준후에게 공이 넘어왔다.

준후는 발 안쪽으로 공을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순간 번뜩이는 시야.

준후의 눈에는 보였다.

수비수 사이사이에 뚫린 싱크홀처럼 드넓은 공간이.

준후는 공을 앞으로 차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청풍보.

속도라면 무림의 이십대 보법 안에 들 정도로 쾌속을 자랑하는 보법을 밟기 시작했다.

쎄에에엑!

준후는 한 줄기 바람이 되어 수비수 사이를 가로 질렀다.

“어…… 어엇!”

“야! 막아!”

고전대 수비수들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때는 늦었다.

준후는 이미 수비수들을 전부 제친 상황이었다.

누구도 준후를 막을 수 없었고.

누구도 준후를 뒤쫓을 수 없었다.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닥뜨린 상황.

뻥!

준후는 각법 중 하나인 청룡각을 활용해 공을 힘차게 걷어찼다.

빠르고 강력한 슈팅!

무지개처럼 유려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공은 골대의 사각지대 중 하나인 좌상단에 꽂혔다.

일명 야신존.

그물이 신나게 출렁거리고.

상대 팀 골키퍼와 수비수들은 하나같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 첫 골이다 첫 골!”

“준후 씨 미쳤는데? 방금 무회전 슈팅 아니었어?”

“미친. 혼자서 수비수를 다 젖히고 골을 넣는다고?”

팀원들이 준후에게 한걸음에 달려와 기쁨을 나눴다.

준후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하지만 아직 준후의 표정은 독기가 흘러넘쳤다.

본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진짜 반칙이 뭔지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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