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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13화 (14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13화

제20장 대결(3)

대회에서 1등을 할 수도 없다는 불안이 준후에게도 조금은 있었다.

불안 요소는 승범이었다.

승범은 성격이 못났을 뿐 실력이 못난 것은 아니었다.

또 성형외과에서 준후가 모르는 비법을 전수받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거슬리는 점.

그것은 승범의 아버지 승용이 심사위원이라는 점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준후의 실력이 월등함에도 승범을 1등으로 꼽을 확률은 존재했다.

‘잘한다’라는 단어는 결코 절대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상대적인 단어였다.

상대적이라 함은…….

기준에 따라서 평가를 완전히 뒤엎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무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무 대회에 참가했던 준후는 화산파의 후기지수와 호각을 다투었지만 판정으로 패한 적이 있었다.

준후의 검술이 더 무디고.

준후의 보법이 화산파의 후기지수보다 더 둔하다는 이유로.

당연히 개소리였다.

심사위원 중에 화산파의 장로가 있었으니까.

끼기기긱.

니들홀더로 봉합침을 조이면서.

준후는 일말의 불안을 날려 버렸다.

현재에 집중하고.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승범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면 전부 해결될 일이었다.

그것이 준후의 목적이었다.

절대적으로 상대적으로 초월하는 압도적인 솜씨 말이다.

1등은 반드시 내 거다.

상금도 얻고.

연차도 얻어서 부모님과 해외여행을 간다.

인턴 기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효도를 한다.

준후는 양 손목과 손가락에 내공을 담아 정(定)자 결을 펼쳤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손의 잔떨림이 멎었다.

정(定)자 결은 손떨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자주 사용하는 또 봉합에 중심이 되는 오른손에는 유(定)자 결을 추가했다.

유(定)자 결은 손의 움직임을 유연하게 만들어주었다.

모형의 절개창을 포셉으로 잡고 있던 왼손에는 지(支)자 결을 더했다.

왼손은 상처를 지탱하고 오른손을 보조할 것이다.

봉합에 무공의 이치를 더하자.

준후의 손은 모형 위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준후는 한 마리의 새였다.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바늘을 절개창에 삽입하는 운침 단계.

봉합사로 상처에 팽팽한 장력을 남기는 평행 단계.

마지막으로.

가장 손이 많이 가고 까다로운 매듭짓기까지.

준후는 화려하고 우아한 손놀림으로 매듭을 완성해 나갔다.

찰칵!

찰칵!

찰칵!

다른 지원자들이 첫 번째 매듭도 짓지 못했을 때.

준후는 무려 세 개의 매듭을 짓고 가위질까지 해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운침을 한 장소는 수평.

매듭은 상하로 수직.

매듭 간의 간격은 자로 잰 것처럼 균일.

이것이 바로 절대적인 것도 아닌, 상대적인 것도 아닌, 압도적인 퍼포먼스였다.

손이 확실하게 풀린 후.

준후는 양손에 쾌(快)자 결까지 더했다.

봉합에 가속도가 붙었다.

비유하자면 남들은 걸어갈 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준후가 이제는 심지어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다.

그렇다고 기존에 비해 봉합의 정확도가 떨어졌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준후에게는.

정확도와 속도가 반비례의 대상이 아니었다.

능히 공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봉합에 몰입하면서 준후는 무아지경에 돌입했다.

1등을 해야겠다는 욕망이 서서히 지워졌다.

자아마저 사라졌다.

준후는 어느새 봉합이라는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버렸다.

이젠 누구도 준후를 막을 수 없었다.

* * *

승범은 이번 봉합 대회에서 1등 할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손재주가 있었고.

그동안 피나는 특훈까지 해왔다.

물론 준후가 걸림돌이 되겠지만.

큰 걱정은 안 했다.

-지금 너 정도면 안면 봉합술을 해도 되겠다.

대회에 참여하기 전날.

레지던트 선배들은 승범이 봉합한 모형을 확인하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자신이 진료부원장의 아들이라서 칭찬한 건 아니었다.

선배들은 진짜 칭찬을 하고 있었다.

승범도 알랑방귀와 칭찬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그래서 준후를 찍어 누를 오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건만…….

찰칵!

찰칵!

대회가 시작되고.

옆에서 들려오는 가위질 소리에 불안함이 커졌다.

이런, X발 새끼를 봤나.

이게 말이 돼?

준후의 봉합 과정을 확인하고.

승범은 반사적으로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승범은 첫 번째 운침도 다 못 끝냈건만.

준후는 벌써 매듭을 세 개나 완성하고 잇달아 가위질을 했다.

속도만 빠르고 완성도가 낮았다면 코웃음을 쳤을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준후의 봉합은 완벽했다.

자동 봉합기 기계를 사용한 것처럼 깔끔했다.

준후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충격을 받은 건 승범만이 아니었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테이블을 거닐던 진행자.

성형외과 치프 민성도 어느새 준후 앞에 서 있었다. 준후의 봉합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마주친 승범과 민성의 시선.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준후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빨리해.

멍 때리지 말고.

민성이 속삭이듯 말하고 다급하게 손짓했다.

승범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준후보다 모자랄 뿐.

승범 역시 다른 지원자들이 비할 바 못 되는 솜씨를 갖추고 있었다.

끼기기긱. 찰칵.

끼기기긱. 찰칵.

승범은 순식간에 첫 번째 단계인 단순단속 봉합을 마쳤다.

모형에는 어느새 10개의 매듭이 가지런히 자리 잡았다.

빌어먹을.

차이가 더 벌어졌잖아. 어떻게 이 새끼는 봉합이 갈수록 빨라지지?

승범은 준후의 경과를 살피며 미간을 찌푸렸다.

곧바로 또 다른 지원자들의 경과도 살폈다. 준후를 제외하면 속도는 승범이 제일 빨랐다.

하…….

이 새끼만 없으면 될 것 같은데.

순간 뱃속 깊은 곳에서 흑심이 솟구쳤다.

승범은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카페에서 만났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셨다.

-부자지간을 떠나서 넌 내게 청탁을 하고 있어. 그리고 청탁을 하려면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준후를 손 보고 싶으면 내게 무언가를 내와라. 그럼 들어주마.

승범은 대회에서 1등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아버지에게 청탁을 할 계획이었다.

소화기 외과에서 근무 중인 준후를 손봐달라고.

승범은 그동안 준후에게 당한 치욕을 몇 배로 되갚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대로라면 복수는 물거품이 된다는 것인데…….

어림도 없지.

오늘의 주인공은 반드시 나야.

승범은 일부러 책상 위에 있던 포셉 하나를 팔꿈치로 쳤다.

툭!

포셉이 바닥에 떨어졌다.

승범은 어쩔 수 없다는 시늉을 하며 봉합을 중단했다.

허리를 굽혀 포셉을 줍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승범이 손에 쥔 것은 놀랍게도 포셉이 아니었다.

준후가 앉은 의자의 다리였다.

승범은 손에 잔뜩 힘을 주고.

준후가 앉은 의자 다리를 치켜들어 올렸다.

준후를 뒤로 넘어뜨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뒤로 넘어져서 다치면.

준후를 따라잡을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치사하고 구차한 방법이었지만 승범은 손톱만큼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과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결과였다.

결과가 좋으면 장땡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다른 사람 눈에 뜨일 염려도 없었다.

책상은 승범의 모든 범죄를 가려주고 있었다.

서준후, 잘 가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힘을 더하는 승범.

그런데 승범의 얼굴이 차차 딱딱하게 굳어갔다.

안간힘을 써도 준후의 의자가 뒤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묵직한 철근이 의자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

승범이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준후와 정통으로 눈이 맞았다.

승범을 내려다보고 있는 준후의 눈빛이 호랑이처럼 매서웠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가며 목젖이 요동쳤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머리카락은 삐죽삐죽 솟아올랐다.

X됐다.

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그…… 그게…… 떨어진 포셉을 줍다 보니. 아아아악!”

승범의 입에서 터져 나온 고통스러운 단말마.

준후가 발로 승범의 손목을 자근자근 밟아댔다.

* * *

“소란은 대충 정리된 모양이군요.”

정형외과 교수 이동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회 도중 승범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진행자가 다가가서 이유를 물으니 승범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부인했다.

요란을 떨었던 것에 비해 사태는 금방 진정되었다.

“그럼 심사를 시작할까요?”

“좋습니다. 그런데 벌써 봉합을 끝낸 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러게 말이야.”

심사위원들의 시선이 테이블에 놓인 모형에 머물렀다.

가장 먼저 봉합을 끝낸 참가자는 바로 준후였다.

동훈은 준후를 익히 알았다.

저번 달에 정형외과에서 수련했기 때문이다.

수술 중 단 한 번의 망치질로 나사를 박았던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준후가 범상치 않다는 걸 알았지만 설마 이번에도 두각을 나타낼 줄이야.

“허허. 이거 말이 안 되는데요? 이 속도에 이만한 정교함이 나올 수 있나?”

흉부외과 교수 김환성이 감탄했다.

“교과서에 실어도 될 만큼 깔끔하군요. 이럴 줄 알았으면 봉합하는 모습까지 제대로 봐둘 걸 그랬습니다.”

“과연 단순단속 봉합뿐만 아니라 매트릭스 봉합과 연속 봉합까지. 기본기를 두루 갖췄어.”

환성의 말에 승용이 한마디 덧붙였다.

동훈도 두 사람과 생각이 같았다.

장기가 아닌 모형에 봉합을 펼쳤다고 감안해도.

준후의 봉합술은 범상치 않았다.

속도와 완성도가 미쳐 있었다.

뇌신경 수술과 뇌혈관 수술.

흉부외과 혈관 수술.

수지 접합 수술 정도를 제외한다면.

준후는 당장 실전에서 봉합해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갈수록 탐나는군.

후계자로 삼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동훈의 시선이 문득 준후에게 머물렀다.

가장 먼저 봉합을 마친 준후는 처치 도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이제 시험 2단계인 수직 매트릭스 봉합에 접어들었는데 말이다.

10분 정도 지나자 참가자들의 모형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하지만 준후의 봉합술을 가장 먼저 심사한 후유증은 컸다.

눈에 차는 모형이 없었다.

그나마 봐줄 만한 모형이라면.

성형외과 수련 중인 연습생들이 제출한 모형이었다.

한 명은 이름이 아영이었고.

다른 한 명은 승범이었다.

“중간에 손목을 다친 것치고는 훌륭한데요? 손목만 안 다쳤으면 서준후 인턴보다 잘했을 것 같은데.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봅니다.”

환성이 승범의 모형을 살피고 알랑방귀를 뀌었다.

승범이 승용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르는 교수는 병원에 없었다.

즉 환성은 아부를 한 것이다.

“봉합 중에 손을 관리하는 것도 엄연히 외과의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동훈이 냉정하게 지적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승범이의 봉합은 좌우 대칭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습니다. 봉합사를 너무 짧게 잘라서 매듭이 풀릴 위험도 있고요.”

“…….”

“1등은 서준후 인턴이 되는 게 마땅하다고 봅니다”

“그래요? 제 생각은 다른데.”

환성이 반대 의견을 냈다.

“아까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놓고 갑자기 의견을 바꾼 이유가 뭡니까?”

“서준후 인턴은 너무 경솔해요.”

“경솔이요?”

얼토당토 않는 지적에 동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비록 대회라도 봉합은 경건해야 합니다. 환자에게 봉합한다는 마음을 가져야죠. 근데 이게 뭡니까?”

“…….”

“이런 퍼포먼스라면 자기를 뽐내고 싶다는 소리밖에 더 됩니까? 대회에 자랑하려고 나왔어요?”

“김 교수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왜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환성이 이죽거리며 되물었다.

“대회 요강을 기억하세요. 이 자리는 인턴의 봉합 솜씨를 가리는 자리지. 마음가짐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동훈의 언성이 차차 높아졌다.

환성은 진료부원장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양심을 팔고 있었다.

이런 한심한 인간에게 동조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동훈이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평가 기준을 만들지 마시라고요.”

“…….”

“김 교수님 말대로라면 봉합 솜씨가 모자란 건 겸손한 겁니까? 그게 말이 돼요?”

“흠흠. 어쨌거나 난 승범 인턴에게 한 표를 던지겠어요.”

“진심이십니까?”

“손목을 다치고도 끝내 봉합을 완성했다는 점을 높이 샀을 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군요. 어쩐지 김 교수님은 승범 인턴이 대회에 참석을 안 했어도 1등을 줬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정작 말이 지나친 건 이 교수 아닙니까?”

“두 사람 다 그만.”

동훈과 환성이 얼굴을 붉혀가며 갈등하던 바로 그때.

잠자코 있던 진료부원장 승용이 나섰다.

승용의 카리스마에 두 사람은 양처럼 온순해졌다.

“지금 내 앞에서 싸우는 건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인턴들이 다 이쪽을 보고 있는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부원장님.”

“죄송합니다.”

사태를 진정시킨 승용이 말을 계속했다.

“심사위원은 각자 자기 기준에 맞게 심사할 자격이 있어. 상대방의 판단 기준에 토를 달아선 안 돼.”

“하지만 부 원장님. 최소한의 상식은 필요한 것 아닙니까?”

동훈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이 교수. 내 앞에서 함부로 상식을 들먹이지 마. 상식을 판단하는 건 나니까.”

승용이 싸늘하게 말하고서는 모형 하나를 손에 쥐었다.

“2 대 1로 이번 대회 우승자는 이 사람으로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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