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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22화 (121/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22화

제22장 레지던트(2)

“선배. 뇌압 측정기 제가 삽입해도 될까요?”

삭두를 마친 준후가 민경에게 물었다.

“네가? 너무 이르지 않아? 다른 처치에 익숙해지고 나서 배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민경이 우려를 표했다.

뇌압 측정기 삽입은 결코 만만한 처치가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처치가 아닌 소(小)수술로 분류하기도 했다.

다양한 수술 도구를 다루며.

환자의 뇌와 직접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좋은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저번 달에 선배가 하는 걸 지켜보기도 했고요.”

“몇 번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으면 나도 벌써 뇌수술했지.”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휴, 난감하네. 내 업무를 너한테 떠넘기려 한다고 선배들이 오해할 수도 있거든.”

“그런 생각은 아무도 안 할 걸요?”

“왜?”

“선배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는 건 다른 선배도 다 알잖아요. 아마 다들 제가 졸랐다고 알 겁니다.”

준후는 끈질기게 민경을 붙들고 늘어졌다.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의학지식을 쌓고.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처치와 수술 어시스트를 배우고 싶은 준후였다.

의술에 대한 준후의 욕심은 하늘을 찔렀다.

응급환자와 응급 상황은 자신의 성장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림에서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소중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준후에게 지옥이었다.

“짱구는 말려도 우리 준후는 못 말리겠네. 좋아, 해봐.”

“감사합니다. 선배.”

집도의 자리에 서서.

준후는 가볍게 손목을 돌리고 목을 돌렸다.

간단한 스트레칭이었다.

“처치 순서 설명해 줄까? 곧바로 하긴 힘들 것 같은데.”

“괜찮아요. 머릿속에 이미 다 있거든요.”

“자신감이 하늘을 뚫겠네. 그럼 나는 수술 도구 건네주면서 실수할 때만 지적해 줄게. 중간에 막히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네.”

준후는 민경이 건넨 10번 블레이드를 손에 쥐었다.

모처럼 쥔 메스의 촉감이 선명했다.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무영등 불빛에 칼날 끝이 시리도록 반짝였다.

소독된 환자의 머리 중.

준후는 Kocher’s point를 내려다보았다.

Kocher’s point는 뇌압 측정을 실시하는 장소로.

정수리를 기준으로 우로 3센티미터.

위로 1센티미터 위에 위치했다.

“자 줄까?”

“아니요. 여기면 되겠네요.”

준후는 펜으로 Kocher’s point에 점을 찍어두었다.

“눈대중으로 하면 곤란해. 제대로 측정을 해야지.”

준후의 처치가 못마땅했는지.

민경이 자를 사용해 Kocher’s point를 측정했다.

그런데 자로 측정한 Kocher’s point와 준후가 눈대중으로 측정한 Kocher’s point가 정확히 일치했다.

순간 넋이 나간 민경의 표정.

“……준후야, 넌 눈에 자가 달렸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준후는 피식 웃고 말았다.

검객에게 있어서 거리조절은 생명이었다.

1센티미터 아니.

몇 밀리미터 단위로 검이 상대에게 닿고, 닿지 않고가 결정되며.

그에 따라 생사가 오가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장을 겪어온 탓에.

마치 측량기를 사용한 것처럼 정확하게.

준후는 눈으로 거리를 잴 수 있었다.

“점찍은 부위가 관상면(신체를 앞뒤로 나누는 가상의 선)하고 시상면(신체를 좌우로 나누는 가상의 선)하고도 일치하네요.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긴장하지 말고.”

“걱정 마세요. 저는 긴장이라는 걸 모르니까요.”

준후가 씨익 웃었다.

스으으윽.

번뜩이는 메스의 칼날이 환자의 두피를 갈라놓았다.

* * *

두피와 골막 절개가 끝나자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경이 절개창을 좌우로 벌리는 동안.

준후는 의료용 드릴을 손에 쥐었다.

정형외과 말고도 드릴을 사용하는 과가 바로 신경외과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잉.

스위치를 켜자 드릴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요란한 소음이 수술방을 뒤흔들었다.

준후는 환자의 머리에 burr hole을 만들어 나갔다.

일종의 머리 구멍이었다.

뇌압 감시 장치를 삽입하기 위해서 굳이 두개골의 넓은 단면을 다 절개할 필요는 없었다.

두개골의 두께는 평균 5-10밀리미터.

두개골의 두께를 감안하면서.

준후는 섬세하게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냈다.

준후는 눈뿐만 아니라 손으로도 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드릴의 길이.

드릴의 절삭력.

드릴을 밀어 넣고 있는 본인 손의 강도와 감도를 통해서.

무림에서 검객으로 산다는 것은 매번 이런 계산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윽고 드릴이 멎었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 준후는 드릴을 드레싱 카트에 내려놓았다.

두개골에 뚫린 구멍 안으로.

하얀 경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뇌는 경막, 지주막, 연막, 이렇게 차례대로 3중막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었다.

준후가 과감하게 경막을 열자 투명한 막에 쌓인 뇌가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준후의 전쟁터가 될 뇌였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

아직 그 비밀의 베일이 다 벗겨지지 않은 미지의 땅.

“와. 괜히 나선다고 한 게 아니었네. 지금까지 흠잡을 곳이 없다.”

지켜보고 있던 민경이 감탄조로 한마디 했다.

“당연히 흠잡을 곳이 없어야죠. 선배가 처치하는 걸 보고 배웠는데.”

“뭐야? 아부는 또 언제 배웠어?”

“아부가 아니라 사실이에요.”

과거 준후는 민경이 ICP 모니터링 하는 모습을 어시스트 하며.

민경의 처치를 초식으로 만들어 암기해두었다.

Kocher’s point 측정.

섬세한 거리 조절.

수술 도구 사용법 및 사용 순서 등등.

선배 집도의들의 치료를 카피해서 초식으로 정형화하는 능력.

이 능력은 준후가 처음 하는 처치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자, 받아. 마무리 지어야지.”

“네. 선배.”

준후는 민경이 건넨 16게이지 카테터를 손에 쥐었다.

ICP 모니터링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푸우우욱!

카테터가 지주막과 연막을 꿰뚫었다.

카테터의 목적지는 뇌실.

뇌실은 뇌 안에 서로 연결된 빈 공간으로 뇌척수액을 만들어냈다.

이곳에 도관을 연결하면 뇌압을 측정하고.

또 뇌 안에 과도하게 흐르는 뇌척수액을 배액해서 뇌압을 조절할 수도 있었다.

뇌실과의 거리는 5센티미터.

손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준후는 카테터를 정확히 뇌실까지 침투시켰다.

실패란 단어는 있을 수 없었다.

카테터를 손에 쥔 순간부터.

준후는 이미 삽관에 성공할 것임을 예감했다.

“카테터 제대로 들어갔어?”

“네. 선배.”

“그럼 감시 장치 연결한다.”

민경이 바쁘게 카테터와 감시 장치를 연결했다.

측정기 눈금은 빠르게 상승하다가 22mmHg를 가리켰다.

정상 뇌압이 5-15mmHg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였다.

그러니까.

환자를 순전히 약물로 치료했다면 경과가 악화되거나 회복이 더뎠을 확률이 컸던 것이다.

“민망하고 부끄럽네. 이런 환자를 내버려 두라고 했으니.”

뇌압을 확인한 민경이 혀를 찼다.

“그래도 희준 선배한테 노티하셨잖아요. 결국 환자 뇌압도 측정했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지. 일단 뇌척수액 빼내면서 뇌압 감시하자.”

“네. 선배.”

준후는 민경을 도와 처치를 마무리 짓고 수술방을 나왔다.

신경외과 술기의 핵심 중 하나인 ICP 모니터링과 EVD(뇌실내 배액관) 삽관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준후의 데뷔 성적은 만점이었다.

* * *

일이 바쁜 준후가 먼저 병동으로 올라갔다.

30분 후 수술 어시스트가 있는 민경은 그 길로 휴게실을 찾았는데.

3년 차 희준이 먼저 와서 쉬고 있었다.

“ICP랑 EVD는 잘 끝냈어?”

희준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민경에게 건넸다.

“잘 마실게요, 선배. 근데 잘 끝내고 자시고 말 것도 없었어요. 저 대신 준후가 했거든요. 실수 한 번 없이.”

조금 전의 준후를 떠올리며 민경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ICP와 EVD는 2년 차쯤은 되어야 손에 익는 술기였다.

그런데 준후는 첫 시도 만에 술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실력이랄까.

준후가 남다르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ICP와 EVD까지 단번에 성공시킬 줄은 까맣게 몰랐다.

“준후는 천재라고 봐야지. 나도 여러 번 감탄했거든.”

“그러게요. 환자가 마약했다는 사실도 파악하고 진료도 정석으로 보고. 오늘은 솔직히 준후한테 많이 부끄러웠어요.”

“괜찮아. 자괴감 느낄 필요 없어.”

희준이 위로하듯 민경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준후가 남다른 거지, 네가 못난 건 아니야.”

“그런…… 거겠죠?”

민경은 음료수를 마시며 착잡한 속을 달랬다.

“그리고 해석에 따라서는 준후가 일 잘하는 게 너한테는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어째서요?”

“일을 맡겨도 든든하잖아. 두 번, 세 번씩 확인할 필요도 없고.”

“그거야 그렇죠.”

“앞으로 준후한테 적극적으로 일을 맡겨 봐. 그 녀석 오히려 좋아할 테니까.”

희준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희준은 어쩐지 준후를 엄청나게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선배도 준후랑 엄청 친한 편은 아니지 않나요?”

“뭐, 친해지고 있는 중이지. 그건 왜? 갑자기 아는 척하니까 이상해?”

“네.”

“준후랑 성격이 비슷한 사람을 알고 있거든.”

희준의 시선이 문득 천장을 향했다. ‘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이 혹시 선배 동기예요?”

“맞아.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슬슬 일어날까?”

“네.”

민경은 희준과 휴게실을 떠났다.

* * *

그 시각 준후는 화장실에 있었다.

각종 영양제와 홍삼까지 챙겨 먹은 후.

20분가량 운기조식 중이었다.

이윽고 서서히 올라가는 눈꺼풀.

미소가 번지는 입가.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운기조식의 효과는 확실했다.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졌다.

무뎌졌던 집중력이 날카로워졌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영양제와 운기조식의 조합은 사기였다.

덕분에 준후는 피로를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외과의를 가로막는 커다란 적 중 하나는 바로 체력이었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로 인한 체력 저하.

그로 인한 집중력 저하 말이다.

하지만 준후는 의과의의 고질적인 체력과 집중력 문제를 영양제와 운기조식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무림을 경험한 준후만의 특권이었다.

터벅. 터벅.

화장실을 나와 준후는 복도를 걸었다.

체감상으로는 오후 4시쯤은 됐어야 하는 것 같은데.

실제 시간은 오전 11시에 불과했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니.

찬란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햇살에 닿은 얼굴 면이 따스함에 물들었다.

준후의 시선은 곧 손목에 착용한 게르마늄 팔찌에 머물렀다.

성호의 유품.

준후와 성호를 이어주는 매개체.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의가 되겠다는 다짐의 증표.

형. 봤지?

나 오늘 ICP랑 EVD 멋지게 해냈어.

민경 선배도 칭찬하더라.

형이 못 다 걸은 길.

그 길, 내가 걸을 테니까 똑똑히 지켜봐줘.

준후는 병동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신경외과의로서 준후가 꿈꾸는 종착지.

그것은 뇌사와 식물인간 환자마저 완치하는 것이었다.

성호와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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