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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 쓰는 외과 의사-131화 (130/424)

무공 쓰는 외과 의사 131화

제24장 훈련(1)

라운딩을 마친 준후는 중환자실을 나왔다.

그런데 보호자 대기실 쪽을 서성거리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김선혜.

준후가 방금 진료를 봤던 식물인간 환자의 아내였다.

선혜는 40세로 환자와 동갑이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분.”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혹시 걱정거리가 있으신가요? 많이 불안해 보이시는데.”

준후는 선혜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준후가 평소에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화법이었다.

사이가 친밀한 이들에게만 사용하는 화법이었다.

준후는 인턴 때부터 환자·보호자와 라포(유대관계 형성)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환자·보호자와 의사 사이가 가까우면.

환자의 치료 및 회복이 빨랐다.

심리적인 안정도 얻을 수 있었다.

그 반대도 성립했다.

의사가 환자·보호자와 가까우면.

의사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양질의 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오진의 위험도 줄어들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혹시 병원비 문제 때문은 아닌가요?”

“그…… 그걸 어떻게…….”

선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마법 같은 건 아니고요. 보통 환자와 보호자분은 병원비 아니면 치료나 경과 문제로 고민하시니까요.”

“사실…… 아까 중간 입원비를 받아봤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이번 달에만 200만 원이 나왔는데 갑자기 심난해지더라고요.”

선혜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도 튀어나왔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한 달에 200만 원을 병원비로 지출한다?

엄청난 출혈이 아닐 수 없었다.

심지어 선혜의 남편은 식물인간 상태였다.

언제 깨어날지.

또 그때까지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었다.

“중환자실 입원비가 많이 나오죠? 보통 하루에 10만 원에서 15만 원 정도 하니까요.”

“네. 병원에선 다 돈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준후의 입가에 자조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병원 근무도 어언 1년 차.

환자와 보호자도, 병원도, 의사도.

모든 것이 돈에 제약을 받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건 씁쓸한 거였다.

“치료는…… 언제까지…… 계획하고 계십니까?”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질문이라 준후는 고통스럽게 물었다.

식물인간 환자의 연명 치료.

이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였다.

환자 수발을 드는 보호자의 고충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경제적인 부분.

심리적인 부분에서 심각한 타격이 있으니까.

“그 전에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남편은 언제쯤 깨어나게 될까요?”

“죄송하지만…… 그건 저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의식을 차리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특이한 케이스거든요.”

“그럼 끝없이 기다려야겠네요?”

“보호자분께서 환자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면요.”

“그 말씀은…….”

“안 그래도 어제 교수님께 여쭤봤는데. 환자분은 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하셨습니다.”

“…….”

“위원회에서 결정이 떨어졌다고 해요.”

뇌사와 달리 식물인간의 연명 치료 중단은 복잡한 규정과 절차가 있었다.

우선 회생 가능성이 없어야 하고.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임종기에 이르러야 했다.

다행이라고 하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지만 환자는 해당 조건을 충족했다.

“이제 보호자분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준후는 보호자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주었다.

이제 보호자만 원하면.

연명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참고로 연명 치료 중단을 준후는 나쁘게 보지 않았다.

환자를 떠나보내는 일은 애석하지만 그렇다고 남아 있는 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아…….”

선혜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어 준후를 응시했다.

“선생님이 제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선혜가 준후의 의견을 물었다.

“제 나름의 답은 있지만 보호자분께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왜요?”

“제 판단이 보호자분께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럼 저는…… 좀 더 남편을 지켜주고 싶어요. 잘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보호자분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교수님께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계좌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그건 왜…….”

“개인적으로 병원비를 지원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보호자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준후는 기어이 보호자를 설득해서 계좌 번호를 알아냈다.

이런 순간을 위해 뉴튜브를 운영해 왔다.

친절과 배려가 닿지 않는 영역.

오로지 돈만이 위로가 가능한 영역까지 사수하기 위해서 말이다.

황송해 하는 보호자와 헤어지고.

준후는 수술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도중 보호자 계좌에 80만 원을 입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이 제 입장이었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보호자의 질문이 문득 메아리로 머릿속에 울렸다.

준후의 답은 역시 결정되어 있었다.

* * *

벅. 벅. 벅.

수술실 개수대에서 준후는 스크럽(수술 전 소독)을 하고 있었다.

소독액이 묻은 솔로.

팔뚝이며 손등, 손가락, 손톱을 거칠게 문질러대고 있었다.

수술 어시스트는 2시간 뒤에 있었건만 민경은 당장 수술방에 오라고 호출했다.

무슨 일이지 궁금했다.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 가운, 장갑, 마스크 등을 착용하고 준후는 3번 수술방으로 향했다.

지이이잉.

위이이잉.

자동문이 열리고 천장에서 에어샤워(소독가스)가 쏟아졌다.

서늘한 수술방 공기가 살갗을 스치고 소독약 냄새는 코를 찔렀다.

수술방에는 2년 차 민경과 동기 경수가 벌써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수술대 앞에 서 있었고 환자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준후야, 좀 늦었다?”

“죄송해요. 보호자랑 상담이 있어서.”

“뭐,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민경 옆에 서서 준후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급하게 호출을 받고 온 터라.

환자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 없었다.

환자는 60대 남성으로 전신마취 상태였다.

“이 환자, 얼마 전에 뇌동맥류 수술을 받았는데 COPD(만성 폐쇄성 폐 질환)도 앓고 있어.”

“기관 절개술을 하실 건가 보죠?”

“빙고. 눈치 100단이네. 오늘은 참관이랑 어시스트만 하고 다음에 직접 해봐.”

민경이 준후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기관 절개술 적응증에 대해 설명해 볼래?”

“만성 상기도 폐쇄, 폐 흡인 예방, 가래 및 이물질 제거, 장기간의 인공호흡기 사용이 필요할 때입니다.”

“신경외과 총론을 3번이나 본 너한테는 너무 쉬운 질문이었나?”

민경의 목소리에 장난기가 어렸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선배.”

“왜? 불안하게.”

“기관 절개술, 제가 직접 해도 돼요?”

준후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기관 절개술을 이미 초식화해서 외워뒀기 때문이다.

인턴 시절 5번가량 기관 절개술 어시스트를 도왔는데 그때 필요한 정보는 모두 습득했다.

“기관 절개술을 만만하게 보면 오산이야. 나름 소(小) 수술이란 말이지.”

“…….”

“잘못하면 기관 주변에 신경이랑 혈관도 건드릴 수 있고.”

“그래도 어차피 배워야 하는 처치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지만…….”

“잘할 수 있습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준후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의학지식을 하나라도 더 알고.

실전경험을 하나라도 더 쌓고 싶은 준후였다.

준후는 갈 길이 멀었다.

신경외과의 세 가지 파트(뇌 파트, 척추 파트, 정위 신경 파트)를 정복하고.

나아가서 절단된 사지를 봉합하는 수부외과.

외상 수술에 특화된 외상외과까지 정복하고 싶었다.

그 원대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준후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릴 필요가 있었다.

“휴. 하여간 준후 너는 처치나 수술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반짝거려서 탈이라니까. 알았어. 해봐.”

“감사합니다 선배.”

기관 절개술의 집도의가 준후로 결정되면서 위치 이동이 있었다.

준후는 집도의 위치에 섰고 소독 간호사가 준후 옆을 지켰다.

맞은편에 민경과 경수가 섰다.

본격적인 집도에 앞서, 준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까만 어둠을 도화지 삼아 그 위에 초식화해둔 기관 절개술의 과정을 그려보았다.

복습은 빠르고 정확했다.

“뭐야, 천하의 서준후도 긴장을 다하네?”

“긴장이요? 전 그런 거 모르고 사는데요?”

준후는 농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민경은 준후가 눈 감았던 것을 긴장한 것으로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무림에서 준후는.

사람의 팔다리가 잘리고, 장기가 쏟아지고, 머리가 잘려나가는 끔찍한 광경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심지어 본인의 검술로 악독한 사파인들을 그런 상태로 만들어 본 경험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 상황이 두렵거나 긴장될 리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기관 절개술을 실시하겠습니다. 10번 주세요.”

소독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메스를 준후는 오른손에 쥐었다.

메스가 솜털처럼 가벼웠다.

준후는 민경이 소독한 환자의 목 부근에 메스를 대었다.

스으으으윽.

한 번의 칼질로 피부가 매끈하게 잘려 나갔다.

3센티미터 길이의 가로 절개창이 생겨났다.

정갈하면서도 신속한 횡 베기.

청운검법의 제3초식인 청풍명월의 이치를 살린 것이다.

검법의 이치를 품은 준후의 메스사용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적어도 메스 사용에 관해서는.

대한민국에 그 어떤 외과의도 준후를 쫓아오지 못하리라.

종잇장을 베는 듯한.

손에 전해지는 생생한 감촉.

준후의 감각은 매우 예민했다. 마치 무림에서 검을 사용할 때와 같았다.

그래서일까.

기관 절개술에 실패할 거란 생각은 손톱만큼도 들지 않았다.

* * *

멋모르고 나대다가 슬슬 피 볼 때도 됐지.

경수는 준후의 집도를 지켜보며 코웃음을 쳤다.

준후가 남다른 인재라는 사실은 경수도 인정하는 바였다.

영문 타자 2,000으로 삽시간에 차트 입력과 오더를 처리하고.

레지던트 1년 차임에도 시간이 남는다며 개인 공부를 하고.

각종 처치도 막힘없이 하는 준후였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한계는 있는 법.

기관 절개술은 결코 만만한 수술이 아니었다. 수술 도중 출혈과 신경 손상의 위험이 있었다.

민경도 그 점을 우려했기에.

먼저 참관을 권유했던 것이고 말이다.

서준후. 넌 사회생활을 할 줄 몰라.

뭐든지 중간만 가면 되는 거라고.

환자와 의술을 향한 열정?

남들보다 빼어난 솜씨?

그딴 건 실수 한 번에 다 지워지기 마련이야.

함께 근무한 시간은 짧았지만.

경수는 준후를 한심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은 진심으로 사는 게 아니라 처세술로 사는 것이니까.

“절개는 잘했어. 길이랑 깊이도 훌륭하네. 밥 먹고 메스만 연습한 사람처럼. 계속해 봐.”

“네. 선배.”

준후가 민경의 도움을 받아 피하근육까지 절개하고 근육을 노출시켰다.

준후의 메스 사용은 여전히 현란했다.

정교했고 주저가 없었다.

말 그대로 금손을 타고난 것 같았다.

“경수야. 넌 견인 좀 해봐.”

“네.”

경수는 양손으로 견인기를 쥔 후 위아래로 절개창을 벌렸다.

절개창이 넓어지면서 수술 시야가 탁 트였다.

기관은 원통 형태였고.

띠 모양의 기관륜이 적당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기관 위로는 나비넥타이 모양의 갑상선이 붙어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어렵거든? 절개 전에 브리핑부터 해볼래?”

“우선 기관륜(기관을 감싸고 있는 고리)을 노출시켜야 하는데요. 저는 근막을 절개하고 출혈점을 겸자로 결찰한 후 기관을 절개할 계획입니다.”

준후의 대답은 평소처럼 시원시원했다.

말이야 누구든 저렇게 못 하겠냐고 경수는 생각했다.

“경수, 네 판단은 어때?”

“저도 이의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의심 가거나 이상한 게 있으면 물어봐. 제대로 납득을 해야 네가 직접 기관 절개술 할 때도 도움이 되지.”

“더하고 뺄 게 있나요. 교과서에 있는 내용 그대로인데요”

경수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문제는 말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냐, 없느냐의 문제죠.”

“너도 냉소적인 건 여전하구나.”

“누구처럼 뜨거우면 화상을 입거든요.”

경수는 에둘러 준후를 깠다.

잠깐의 대화 후 재개된 기관 절개술.

준후는 야무진 솜씨로 근막을 세로로 절개했다.

기관륜을 노출시키고.

근처에 있는 혈관을 혈관 겸자로 잠갔다.

딸칵!

용케 전(前) 처치를 끝내고.

이제 남은 건 대망의 기관 절개뿐이었다.

손을 떨어 절개 부위가 빗나가거나.

손에 힘이 과도하게 들어가서 절개창이 깊어지면.

환자의 기관은 훼손될 것이다.

의료 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압박감이 극심할 텐데도.

준후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준후의 그런 모습은 경수에게 불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주제 파악을 할 줄 알아야지.

벌써부터 기관 절개술을 한다고 설쳐?

이참에 세상의 쓴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시간이 멈춘 듯한 상황에서.

준후의 메스가 환자의 기관으로 향했다.

손에 떨림은 없었다.

손가락과 손목이 꼭 기계 같았다.

메스의 방향은 정확히 환자의 제2기관륜과 제3기관륜의 사이였으며.

메스의 칼날은 목표 지점과 정확히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나대는 것과는 별개로.

준후의 손놀림이 남다른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수였다.

서걱!

츠즈즈즛!

기관이 가로로 잘리는 순간.

절개된 틈 사이에서 핏물이 솟구쳤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왠지 사고를 칠 것 같았다니까.

경수는 족집게 도사가 된 기분에 우쭐했지만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준후는 여전히 침착했고.

따끔하게 꾸짖어야 할 민경은 침묵을 지켰다.

그래서 경수는 현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야?

나만 이상한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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